솔직히 정치 얘기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학으로 보다 #11)
레이미제라블로 유명한 작가 빅토르 위고는
19세기 초 정치적 격변이 반복되고 있던 조국 프랑스의 모습을 직시했던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93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벌어졌던 1793년
공화파와 왕당파 간의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 소설을 통해서 정치적인 견해 차이를 뛰어넘는
인간적인 교류와 서로를 향한 이해와 용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요.
등장이 물들인 랑뜨낙과 고뱅, 시무르다니엥이 보여주는 모습은
독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기에 충분합니다.
작가가 이처럼 이해와 용서라는 주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93년의 내전이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정당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권을 잡는 정당은 국민의힘 아니면 민주당입니다.
그동안 이름이 여러 번 바뀌긴 했지만
이 두 교회로의 정당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죠.
형식상 다당제이지만 실질적으로 양당제인 셈입니다.
이쯤에 삭창시절을 떠올려보도록 하죠.
우리가 시험을 볼 때 오지선다 문제와 오엑스 문제가 있다면
어떤 문제가 조금 더 쉽게 느껴질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이 오엑스 문제를 선택할 겁니다.
둘 중에 하나만 고르면 되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싫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양당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고심 끝에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일 겁니다.
문제는 선거가 이렇게 오엑스 문제처럼 되어버리면
내가 고른 답이 아닌 다른 답은 오답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다른 답을 고른 사람에 대해서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서로 일직이니 이직이니 하면서 서로를 증오하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자기가 고르고자 하는 답이 설령 흠결이 있더라도
다른 답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하죠.
이렇게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이 극단화되면
정치인들은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번호만 달고 나오면 당선되기 때문이죠.
선택지를 넓히는 것도 좁히는 것도
결국은 주권자인 국민들의 몫입니다.
혁명적 절대 위에 인간적 절대가 있다라는 문장은
빅토르 위거의 93년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양당체제가 이렇게 공고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1793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내전이
우리나라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요?
문학축지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