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크로네시아 폰페이섬에서 설명이 안되는 고대 인공섬이 발견되었다.

MysteryTube미스터리튜브
219 팔로워
#미스터리 #거인
미스터리튜브 멤버쉽에 가입하시면 미공개 영상들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가입 링크)
https://www.youtube.com/channel/UC4kEFf5TemJXNZSF4LnNkfQ/join
Credits :
Producer- Jin, Lee. Pil, Choi
Editor- Uisu, Lee.
Narrator- Hyunjoon, Ha.
0:00 거석 문명
1:44 난마돌 유적
3:34 전설의 도시
5:23 고대 유적의 미스터리
5:57 원주민들의 이야기
8:11 섬의 전설들
우리는 압도적인 광경을 눈앞에서 목격할 경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커다란 울림이 전해져 오곤 합니다.
이러한 감각을 미학에서는 순곰이라고 하죠. 순곰이는 압도적인 자연경관이나 인간의 힘으로 차마 만들 수 없는 것으로 보이는 거대함을 마주할 때
피라미드 거성 문명 앞에서 마치 인간의 원초적 감각을 느끼는 건 역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이 가는 한계를 본능적으로 느낄 때 우리는 순곰이를 느끼는 것이죠.
캐롤라인 군도에도 우리의 순곰이를 자극하는 중요한 유족이 있습니다. 캐롤라인 군도는 미크로네시아의 가장 큰 군도이죠.
이 군도는 총 면적이 617평방마일이고 500개 이상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섬이 면적 185평방마일의 포나페이이며 인구는 대략 1만8천명입니다.
그곳은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왜냐하면 그 유명한 남마돌 유족이 있기 때문이죠.
섬의 중요성과 명성은 오직 이 폐허로 인한 것입니다.
남마돌의 유족은 먼 옛날 건설된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선사시대의 유족의 기온은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마돌의 유족에 대한 비밀은 인류의 초고대 문명이 거석 문명이었음을 방증하는 여러 자료와 그것이
UFO에 의해 건설되어야 하는 분명한 증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오늘 그 진실에 다가가려고 합니다.
포나페와 그 주변 섬들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열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686년 군도 전체가 스페인 용이 되어 캐롤라인 군도로 불리게 됩니다.
1838년 이해부터 백인들이 수차례 섬을 방문한 사실이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851년 원주민들이 한 영국의 선원들을 학살하여 영국 함대의 보복으로 섬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1880년 다양한 기독교 종파의 선교사들이 입도하여 섬의 오래된 문자판들을 불사르고 도속행사를 일정 금했습니다.
1911년 독일 순양함 엠데노가 섬을 공격, 반란은 진압되고 그들의 지도자는 공계리에 교수용에 처했습니다.
1919년 포나페를 포함한 캐롤라인 군도는 일본의 통치령이 됩니다.
1944년 태평양 전쟁 중 미국이 해당 군도를 점령합니다.
1947년 군도는 미국의 신탁 통치령이 됩니다.
이렇듯 이 작은 섬은 지정학적 가치나 중요도에 비해 너무 잦은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섬의 본래적인 종교는 완전히 상실되었고 원주민들의 문화는 말살되고 말았죠.
때문에 남마들 유적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 보입니다.
실제 이들이 추앙했던 신이 누구인지 이 말도 안되는 피라미드가 어떻게 건설된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섬의 원주민들 사이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들이 파편처럼 남아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남마들 유적이 위치한 테무엔 섬은 과거에 전설의 도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선 남마들 유적을 살펴보도록 하죠.
이 유적이 있는 작은 섬은 크기가 축구 경기장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무암으로 이뤄진 이 유적은 현재는 마치 어지러운 폐허의 미로처럼 보입니다.
구조물들은 무게가 몇 톤씩이나 되는 현무암 석재를 무수히 포개 만든 것이고
지금까지도 학자들은 이 현무암 석재들이 용암이 식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해 왔죠.
현무암의 석재는 실제로는 폰앞의 북쪽 해안 지방에서 채석되고 있었으므로
만약 이 돌이 건설용으로 운반되어온 것이 분명하다면
그곳에서 수로로 운반된 것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길이가 10에서 30피트에 달하고 때로는 무게가 10톤이 넘는 이 석재들은
폰앞의 북쪽 해안을 시발점으로 해서 10여개가 지나는 수많은 정글의 수로로 해서 운반되어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육로수송의 가능성도 무척 희박한데 왜냐하면 열대의 폭우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글을 물속에 흠뻑 잠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폰앞에는 산악지대이죠.
남마돌 주건물의 벽문에 사용된 현무암판이 몇 개인지를 살펴보죠.
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주건물에 사용된 석재의 수는 약 3만 2천개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건물은 전체 구조의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 유적지에는 수도 도랑 터널이 있고 또 장소에 따라 높이가 46피트
에 이르는 길이 875야드의 성벽이 있습니다.
이에 사용된 모든 석재의 양을 추산 해보면 최소한 그 수는 400만개에
이르게 됩니다.
과연 이를 건설한 것은 어떻게 가능 했을까요
남마돌이 건설되었을 당시에 폰 앞에의 인구는 오늘날에 비교해서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 모든 사람들이 기술적인 도움 없이 필요한 석재를 건설
현장까지 문반하는 데까지만 수학 적으로 계산해보면 300년이 넘는
기간이 걸렸을 것이죠.
사람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런 고역을 치렀던 것일까요
왜 폰 앞에 주민의 조상들은 채석장 에서 그토록 멀리 떨어진 작은 섬
에 거의 피라미드에 필적할만한 건축물을 만들었던 것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허버트 리틀링 고의 저서 헤아릴 수 없는 바다에
그 단서가 일부 드러납니다.
리틀링고는 어떤 연구를 위해 남태평양 을 여행하던 중 폰 앞에 들려 그
곳이 수만 년 전 어느 번성하던 고대 왕국의 수도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이곳에 엄청난 양의 보물이 간직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진주 채굴자들과 중국인 화교들이 보물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이곳
으로 올려들었습니다.
바닷속에 들어갔다 나온 잠수부들은 한결같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죠.
그들은 조개류와 산으로 덮여있는 잘 보존된 해저의 거리를 걸어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해저에는 둥근 지붕과 기둥과 비 석들이 무수히 있었고 건물임에
분명한 유적들의 석판들이 걸려 있었다는 것이죠.
진주 채굴자들의 말은 한동안 전설 이나 도시괴담처럼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현대적 장비를 가진 일본인 잠수자들이 이 전설이 사실이었
음을 확인했죠.
그들은 막대한 양의 금속과 진주 와 은덩이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옛 사람들의 시체 는 해저 건물 중 가장 큰 집에 안
치되어 있었다고 했고 일본인 잠수 부들은 그 시체들이 물이 들어가지
않는 백금제의 관에 넣어져 있다고 했죠.
그들은 매일같이 백금덩어리들을 해저에서 건져냈고 실제로 포나페
의 수출품은 일시적으로 바닐라 진주조개 등에서 백금으로 바뀌기
까지 했습니다.
리틀링고의 기록에 따르면 어느날 두 일본인 잠수부가 바닷속에서
영영 행방불명될 때까지 백금 채취 작업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 전쟁의 일어남에 따라 일본인들은 섬에서 영영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리틀링고의 기록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납니다.
전설로 내려오는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과장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암속에 백금이 함유되어 있지 않은 이 섬에서 백금이 발견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위의 일들은 1939년경에 일어난 일들 이었습니다.
이 비밀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파편 적으로 전해진 섬의 전설들을 긴밀
게 연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신화야말로 남마돌의 비밀을 푸는 중요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죠
지하도와 해저도시 백금의 사원 을 연결하는 중요한 키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이어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남마돌의 건축적 특성과 역사적 배경등에 대해서 알아보았
습니다.
도대체 이 유적이 건설된 배경은 무엇이며 무슨 이유로 건설된 것
구독자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 을 부탁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