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박현도 교수님을 모시고 이스라엘과 이란 하마스 분쟁과
중동의 지정학적 이슈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인터뷰 시작 전에 제가 뉴스 를 보다보니까 하마스의 1인자
수장 시누아르가 이스라엘에 폭격 으로 사망했다는 걸 미국 국무부
였던 것 같은데 아마 제 생각에는 공식적으로 확인을 한 것 같아요.
이게 진짜 사실인가요 지금
네.
이스라엘 쪽에서 dna 조사를 했고 확인을 한 걸로 나오거든요.
야허야 시누아르가 세상을 떠난 거죠.
어차피 결국에는 이스라엘이 야허 야 시누아르를 제거할 거라는 것은
거의 100% 확실했던 거고요.
아무튼 전쟁을 기획했던 두 사람이 모두 죽었습니다.
야허야 시누아르가 이번에 죽고 그 전에는 무한매드 데이프 둘 다
죽었고.
그러면 이제 이스라엘이 앞으로 전쟁을 하지 않고 그만둘 것이냐
그건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지도자가 사라진다고 해서 조직 이 완전히 다 끝난 건 아니고 계속
적으로 새로운 지도자가 자상적으로 나올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 큰 전쟁의 흐름은 끝났는데 가사에서.
그렇지만 계속적으로 저강도에 하마스를 이스라엘 말로는 소탕하는
작전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게 또 지도자가 죽었다고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협정
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평화협정 이루어질 수는 없을 거예요 .
평화협정은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소탕해야 될 대상이네요.
소탕해야 될 대상으로 생각하죠 .
또 요즘 이스라엘과 이란 관련해서 고복공격이 임박했다고 하는데
이게 오차중동전쟁이 될 수 있는 불씨가 있다고들 하잖아요.
일명 레드라인이라고 해서 여기는 이스라엘이 공격하면 이란도 참을
수 없다.
이런 레드라인은 혹시 좀 있을까요
핵시설이나 정유시설은 이란이 참을 수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군사시설도 미국이 강력하게 이스라엘을 설득을 해서
이스라엘이 핵시설과 정유시설은 건들지 않고 군사시설만 건들겠다
고 얘기를 했는데 군사시설이 핵 시설과 연관된 군사시설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경우도 문제가 안 될 수는 없겠죠.
그리고 솔직한 표현을 하자면 탄 야후 총이 말을 얼만큼 이랬겠냐
이거죠.
분명히 군사시설만 한다고 했는데 안 할 수도 있잖아요.
그동안 계속 그랬으니까.
미국 쪽에서 네타냐후 총리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스라엘이
군사시설만 선보기로 했다고 하니까 이스라엘 총리실에서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또 발표했잖아요.
알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선을 지키지는 가봐야 안다.
가봐야 알죠.
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이게 참 복잡하군요.
그런데 교수님 이렇게 이슈적인 걸 얘기를 많이 하지만 사실은 잘
몰라요.
솔직히 이스라엘하고 이란이 왜 싸우는지 잘 모르거든요.
그래서 이스라엘과 이란 간에 풀기 어려운 감정이 생긴 이유를 역사
적으로 들어봤으면 하는데 또 제가 조사해보니까 과거에는 우호국
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거 있잖아요 .
서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사이가 나빠지면 아예 친하게 지내지 않던
친구보다 훨씬 사이가 나빠지잖아요 .
지금 그 반작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란이라는 나라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국가로 인정한 무슬림 국가
중에서는 두 번째로 인정했어요 .
제일 먼저 인정한 나라는 트루키 에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이란이 했거든요 .
그리고 이란은 그 당시가 이란의 왕정시대거든요.
왕정시대에 이란은 세속화 정책 을 했고 그리고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데서 이스라엘의 도움이 많이 필요 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과 좋은 관계를 지냈고 이스라엘은 또 이란에게
원하는 게 있잖아요.
석유.
네.
그래서 양국 관계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래서 군사협력이 잘 됐고요.
심지어는 이란에서 예를 들면 이란 에서 석유를 수출을 할 때 유럽으로
석유를 수출한다고 하면 배에 실어서 홍해를 지나서 스웨즈 운하를 통해서
유럽으로 가잖아요.
그런데 스웨즈 운하를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로 빠지는 길이 있습니다.
티란해협으로요.
티란해협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파이프라인을 건설을 해서 파이프라인
으로 지중해로 뺄 수가 있거든요.
그게 트랜스 이스라엘 파이프라인 이라고 하는데 그걸 건설하게 됐어요.
이란이 이스라엘 쪽에.
이란과 이스라엘이 5대5로 합자를 해서 파이프를.
68년부터 시작을 하는데 가장 남쪽 에 있는 에일레탕에서 가장 북쪽
에 있는 아슈켈론까지 파이프라인 건설을 해서 석유를 원유를 집어넣고
그걸 반대쪽에서 빼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이스라엘도 쓸 것 쓰고
좋은 관계였죠.
굉장히 좋은 관계였네요.
네.
좋은 관계였습니다.
교수님.
그런데 이걸 제가 공부해보니까 이게 그냥 국가 간의 관계로만 보면
조금 한계가 있고 이란을 먼저 알아야 겠더라고요.
이란은 찾아보니까 예전에는 무슬림 이 아니고 조로아스터교인가 이런
종교적인 게 시작해서 무슬림 시아파라고도 하고 이걸 간단하게
교수님 이란이 어떤 나라인지 이스라엘 과 외교가 되기 전에 설명 부탁
드릴게요.
누구든지 제일 먼저 어떤 대상을 알려면 이름부터 시작해야 되잖아요
.
이란이라는 말을 사실은 이란이라고 그러거든요.
이란이라는 말은 히틀러 때문에 좀 폭망한 말이긴 한데 아리안이라는
말이잖아요.
아리안.
아리안에서 나온 말입니다.
약간 그 인종 아리안적 우세 뭐 이런.
그런데 아리안이라는 게 인종적인 말은 아니고요.
원래 고교란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아리안에서 나오고 이란이란 말을 본격적으로 많이 썼던 것은 한참
후대 에란샤허르라고 이슬람 이전의 왕정이었던 사산조.
그때 에란샤허르라고 쓰면서 이란의 말이 더욱 통용되는데 전반적으로
이란이라는 말은 고대 인도 유럽어 계통의 말로서 이란어 계통의 말로
고귀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이란 땅에 지금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역사 속에 들어온 게 제국을 잃은 건 6세기
거든요.
기원전 6세기.
기원전이요.
그러면 한 2700년 전 그 정도 되는 건가요 그렇죠
그렇죠.
엄청 전이군요.
그 유명한 쿠로슈 황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책에 보면 아케메네스 왕조라고 얘기하거든요.
아케메네스는 그리스 사람들이 부른 이름이고요.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하하마니슈 입니다.
하하마니슈인데 이렇게 말을 하더라도 그리스 애들이 들으면 그걸 쓸 수가
없으니까 아케메네스라고 아케메네스 라고 쓴 거예요.
나름 그렇게 쓴 거예요.
하하마니슈인데 아케메네스라고 쓴 거죠.
그래서 이 왕조가 들어섰고 그리고 이 왕조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에
하나는 왕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레스대와 우리말로 고레스
또는 키루스라고 그러는데 들어보셨죠 교회 다니신 분들은 더 많이 들어봤을
거예요.
왜냐하면 구약성경이라고 그리스 도인들이 구약성경이라고 부르는
책의 45장에 나오는 이름입니다.
유대인들이 유배생활을 하잖아요 .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이 바빌론에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 바빌론을 멸망시키고 그 노예 를 해방시켜준 왕입니다.
그렇게 또 인연이 있군요.
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히브리 성경 그리스도인만의 구약성경에서
이 고레스 키루스 대왕을 뭐라고 부르냐면 메시야라고 불러요.
이거 아무한테나 붙여주는 일은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겁니다.
메시야가 몇 없잖아요.
아니 몇 없는 게 아니라 유대인들이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려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야를 .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이 사람은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야
.
엄청난 거네요.
네 그리스도인들은 그 메시야가 우리 예수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
그러면 진짜 우리를 해방시켜줬 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이란 사람들의 조상이 2700년 전에 유대인들 이스라엘
조상을 해방시켜준 거예요.
지금 얘네는 싸울 일이 아니야.
이건 솔직히 엄청 좋은 관계네요 .
싸울 일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우리가 유다 지망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게 바로
이 페르시아 제국이에요.
너네 해방시켜줬는데 너네 우리 하고 살라면 살고 너네 가고 싶으면
가라.
되게 좋네요.
네.
그래서 걔네들이 간다고 해서 만든 게 예후두 지방이에요.
거기서 유다 지방입니다.
그게 페르시아 제국의 유대 지방 속주였죠.
그래서 유다 지방이라는 것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만들어서 유대인들 거기서
나오는 게 예후디 라는 말이 나와요.
예후디.
야후디 예후디.
유다라는 말입니다.
유대인이라는 말이 거기서 쓰게 되고요.
그러니까 페르시아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제국입니다.
그렇군요.
페르시아 제국.
그래서 우리가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하는 걸 페르시아라는 말은 이 아케메니스 왕조가 도읍을 정했던 것이 고대
페르시아어가 쇠기문자로 쓰거든요 .
그 쇠기문자를 그대로 읽어보면 읽는 스틸은 파아라사가 되거든요
.
파아라사인데 그걸 그 당시의 음 으로 복원하면 파아르사 라고 볼
수 있어요.
파아르사.
파아르사를 파아르사라는 말을 듣고 지역 이름이거든요.
지금 이란의 남쪽 지방.
거기서 그리스 사람들이 듣고 그게 페르시스라고 쓴 거예요.
페르시스라고 쓰고 그게 라틴어에서 페르시아가 되는 거고 영어에서
페르시아가 되는 거죠.
이러면 그 분들이 직접 부른 말이 아니고 그리스인이 전해드렸고
그리스 통해서 유럽 가니까 유럽 가서 이렇게 된 거고요.
우리한테 그래서 페르시아로 들어온 거고 그게 지역 이름인데 이게 아케메니스
이것도 역시 그리스 사람들 아케메니스 왕조에서 시작된 거고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우리가 현대에서 고대 페르시아에 관계되는
이름들이 거의 다가 그리스를 통해서 들어오거든요.
그래서 키루스 대왕 이름이라는 것도 우리 성경 같은 데서 고레스
라고 쓰다가 요즘은 키루스라고 쓰는데 그게 원래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
의 쇠그먼자를 읽으면 쿠루슈 에요.
쿠루슈 그러니까 그걸 금사라면부터 쿠루슈라고 하거든요.
현대 이란어로는 쿠루슈입니다.
그거를 그리스 애들이 듣고 쿠루스 라고 키루스라고 썼어요.
그걸 키루스라는 말을 듣고 그걸 쓴 걸 라틴 사람들이 키루스라고
썼고요.
키루스를 영어애들이 키루스라고 부르는 거고요.
또 심지어 영어애들은 그걸 사이러스 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러니까 이게 쿠루슈 이름이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서구 문명을 받아 들이면서 단어가 이렇게 된 건데
그 위대한 왕국이 바로 아케메니스 왕국이고 그 다음에 쿠루슈와 함께
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 다리우스.
다리우스.
들어봤어요.
스타르타.
다리우스 이름도 고대세기 문자를 읽으면 다라야 바우슈거든요.
다라야 바우슈인데 다리우스가 된 거고 그리스 이름에서요.
이분이 이 황제는 가장 널리 땅을 넓힌 황제였죠.
그래서 어마어마한 황제 역할을 했고요.
그런데 그리스 애들하고 주로 많이 싸웠잖아요.
많이 실패를 하고 마라톤 전쟁도 나오고 그리스 지역을 지배를 하긴
했는데 완벽하게 지배를 못했고요 .
결국에는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 이 왜 위대하냐면 페르시아 제국
이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제국의 원형이다.
제국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혹시
글쎄요.
저희는 땅 크고 황제면 제국.
원래 제국은 제국 안에는 다양한 언어가 존재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해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합니다.
그걸 하나로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제국이에요.
그래 니네들 다 그렇게 편하게 살아 내가 너희들의 보호막이 돼줄게
이게 제국이거든요.
이게 가장 최초의 제국이라고 본격적으로 하는 게 페르시아 제국이고요.
제국을 이끌어가려면 그러면 언어 는 하나는 뭔가를 많이 쓰는 말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페르시아
로 쓸 것 같잖아요.
페르시아는 황제나 썼지만 사람들이 페르시아를 다 알 수 없으니까
아라하모를 주로 썼어요.
아라하모로 알파벳을 쓰고 아라하모로 썼고 세계문제도 썼고 그리고 제국
이 같이 살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돌향령이 통일이 돼야 되잖아요
.
돌향령을 통일했고 그리고 그 먼 거리 지금으로 치면 이라크에서
터키 쭉 지금의 비행기라면 금방 이지만 한 2600킬로 정도 되는 거리
를 파발 아멘과사처럼 말 쉬고 하는데 역참제도를 운영을 했어요.
이건 기가 막힌 겁니다.
왕의 길을 만들어서 역참제도니까 택배가 굉장히 빠른 거죠.
왕의 말을 전달하거나 중요한 소식 을 전달하는 말들 그래서 거기 말들이
쉬고 있는 것을 이런 것도 다 발전 했고 그러니까 제국의 원형.
당시에 그리스가 통일왕국을 못 이루고 있었는데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라든지 그리스 사람들은 요 페르시아를 굉장히 높게 평가
했습니다.
그래서 크세노폰 같은 경우에는 페르시아 황제 크로슈 대왕의 교육
이라는 책 키로파이디아라는 책 도 썼어요.
그래서 내용이 허구도 섞여있긴 하지만 페르시아 제왕학에 대한
글이죠.
그런 처세술이라든지 왕이 되는 제왕학이라든지 페르시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나중에 근대 에 들어왔어도 유럽사람들이 근대
이전에 개몽주시대 몽테스쿄라든지 볼테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전부
다 페르시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페르시아의 과거에 관용적이고 훌륭한 것에 비하면 우리 지금 유럽의
군주제도는 얼마나 전제구 독재 인가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거든요
.
그래서 유럽사람들이 과거인 그리스 인들 그리고 근대에 들어왔을 때는
유럽사람들이 페르시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페르시아를 사랑한다는
그런 표현을 뭐라고 하냐면 페르소필리아 페르시아 사랑 이런 말까지 있을
정도로 그 원형이 됐던 제국이 아케메니스 왕조입니다.
정말 페르시아 이란의 선조님들은 굉장히 큰 강대한 제국 그리고 제국
의 원형일 뿐만 아니라 주변국하고 도 되게 잘 지냈네요.
주변국하고 잘 지낸게 아니라 주변국 을 다 복속시켰죠.
어쨌든 그때 뭐 그런거 안하는 시대 는 그런 것이 아니니까요.
땅이 넓기 때문에 위대하다라든지 땅이 넓으면 크긴 하죠.
대자는 쓸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위대하다라고 할 때는 땅이 크고 힘이 센 걸 위대
하라기보다는 페르시아의 정신 관용정신 그게 굉장히 빛났고요
.
달도 차면 기운다고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지도자 아니겠습니까
좀 띨빵한 지도자가 생기면 나라는 망해요.
그래서 마지막 나리오스 3세가 좀 띨빵했죠.
국가를 제대로 제국을 이미 제국 은 이미 기울었고 그걸 추령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무너지는데 그래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실
대왕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알렉산드로스 왕의 정복을 받아서 무너지죠.
그런데 알렉산드로스도 페르시아 제국을 굉장히 경탄해 했어요.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데 페르시아 제국이 끝나면서 알렉산드로스
가 지배를 하고 알렉산드로스는 짧게 살다가 죽잖아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장군들이 알렉산드로스
가 정복한 곳을 나눠가지면서 이쪽 우리가 중동이라고 하는 지역 페르시아
까지 포함한 이 지역은 셀루코스라는 장군이 가져서 셀루코스 왕조가
생기거든요.
이 생기는 왕조가 지나면서 새롭게 다시 왕조가 들어선 왕조가 파르티아
왕조라는 겁니다.
파르티아 왕조는 보통 기원전 220년 에서 기원한 200년까지 한 400년
정도 존속한 왕조인데요.
파르티아는 라틴어 입니다.
원래의 말은 페르시아어로는 파르쌔바 이렇게 하는데 라틴어들이 듣고
파르티아라고 쓴거죠.
파르티아인데 씨 발음이 없으니까 파르티아.
보면 다 라틴어나 그리스 애들이 이렇게 바꾸는 거군요.
그래서 우리 현재 교과서에 파르티아 로 나와있거든요.
그런데 동양사에서는 중국에서는 안식국이라고 했어요.
안식국.
왜 그런지 아세요.
뭐 안식이를 시키나 싶어요.
초대왕 이름이 페르시아어로 아슈크 에요.
아슈크 또는 방어는 아르샤크 거든요.
중국사람이 듣기에는 가장 가깝게 표현한게 안식을 한자로 쓴거고
우리가 우리걸 발음을 하면 안식 이죠.
아마 그게 중국발음으로는 안슈크 될거에요.
그래서 안식국이라고 하고요.
이 제국은 누구랑 맞장을 떴냐면 로마.
로마하고 맞장떴고 이 제국을 기억하는 또다른 코드는 실크로드.
중국이 한나라 때 108년에 처음으로 서해까지 내려오잖아요.
장건 이렇게 해가지고요.
그때 존재했었던 페르시아 제국 이 바로 안식국입니다.
그러면 교수님 우리가 흔히 옛날 역사 볼 때 유럽쪽에 로마가 대장
먹고 동쪽에 중국 한나라가 대장 먹었는데 이 중간에 페르시아가
있는거군요.
실크로드로 연결해주네요.
그리고 이 제국이 누구한테 무너 지냐면 이슬람 이전에 마지막 왕조가
있습니다.
마지막 왕조가 사산조에요.
사산조 페르시아인데 이들에게 무너져서 사산조 페르시아가 언제까지
존재하느냐 하면 기혼후 651년에 이슬람에 망하거든요.
아랍 무슬림군들에게 망하거든요.
그럼 페르시아는 아랍사람이 아니 니까 종교도 이슬람은 아니었던
거군요.
그러니까 고대 페르시아부터 페르시아의 유유히 내려온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종교는 조로하스토교입니다.
조로하스토교.
네.
조로하스토.
조로하스토도요.
죄송합니다.
이것도 그리스 발음이에요.
또 그렇군요.
이게 고대 페르시아는 사라흐스트라 라고 얘기를 해요.
사라흐스트라.
그런데 그걸 가장 가깝게 쓴 사람이 니체가 썼잖아요.
자라투스트라니 이렇게 말했다.
그 자라투스트라에요.
그 자라투스트라인데 이 종교는 역사상 최초의 유일신교라고 얘기를
많이 합니다.
유일신을 믿었고 그다음에 제가 페르시아제국 얘기할 때 최초의
페르시아제국을 할 때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줬다고 얘기했잖아요.
유대인들이 유배 이전에 썼던 문헌 과 유배에서 해방된 다음에 썼던
문헌의 단어들이 없던 단어들이 생겨요.
그래서 종교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얘기를 하냐면 유배에서 해방된
페르시아제국에서 해방된 페르시아제국이 해방시켜준 유대인들이 조로하스토교
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봐요 .
그래서 조로하스토교가 가지고 있었던 중요한 개념들 천국과 지옥
최후의 심판 메시아 이런 개념들 천사장 이런 개념들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얘기하면 전부 다 그리스토교나 유대교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던 게 실질적으로 는 조로하스토교의 영향이라는
거죠.
그전에는 그게 없었다가 들어왔다.
그 개념이 명확해지면서 그 단어들이 쓰이고요.
그러니까 없었던 단어가 썼다는 것은 단어가 없었다는 것은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요 .
조로하스토교가 유대교에 영향을 줬고 유대교는 다시 그리스토교
에 이슬람에 영향을 줬으니까 조로하스토교가 대단한 거죠.
조로하스토교는 신의 창조물인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야
되냐면 세 가지입니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좋은데요.
좋죠.
다 지키세요.
노력은 합니다.
혹시 그룹 퀸 좋아하세요 퀸 락그룹 아닌가요
락그룹이요.
아시네.
저는 나이가 제가 40살이 넘기 때문에 월드컵 때 게임에 나왔어요.
퀸의 노래가.
또 그런 게임으로.
We are the champions.
그 그룹이 제가 중학교 때 인기가 있었던 그룹인데 남학생들이 당시
퀸과 아바 둘 중에 나는 퀸 팬이다 아바 팬이다.
남성적인 애들이 퀸을 좋아했고 저는 아바를 좋아했었어요.
퀸의 리드싱어 들어보셨죠 프레디 머큐리.
보헤미안 엡소디 영화 나오고.
프레디 머큐리가 집안이 조로하스토 교에요.
그게 아직도 이어져 내려오는군 요.
이란에서는 지금 한 3만 5천명만 남아있어요.
이슬람 시대 이후에 많이 이주 가고 녹록치 않으니까 주로 어디로
가냐면 인도로 많이 갔거든요.
그래서 인도는 10만이 넘는 걸로 우리가 얘기를 하는데 인도에서도
이들이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 이 말처럼 굉장히 사람들이 믿을
만한 사람으로 유명했고 그래서 믿을 만한 상인 그리고 유명했고
그러다 보니까 인도 최고의 자동차 그룹이 있죠 타타 그룹.
거기가 그게 조로하스토 교 사람들 이에요.
그래서 인도에서는 이 사람들을 파르시라고 부릅니다.
들어보셨죠 파르사 파르사 파르시 페르시아 파르시라고 불러요.
그런데 프레디 머큐리의 부모님이 파르시.
왜냐하면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영국의 관리였고 그러면서
이제 영국 시민권을 받았겠죠.
그래서 부모님은 다 영국에서 살게 되고 프레디 머큐리도 영국에서
태어난 거죠.
이야 이렇게 흔들리는군요 조로하스토교.
그 조로하스토교 쭉 내려왔죠 이슬람 이전까지는 굉장히 중요한 거고
동양사에서는 이 조로하스토교를 뭐라고 부르냐면 배화교라고 불러
세요.
불을 숭배한다.
왜냐하면 조로하스토교 사원에 가면 불이 있거든요.
그런데 불을 숭배하는 건 아니에요 .
불이 신의 상징이라고 생각을 해요 .
그래서 불을 끄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해서 예를 들면 이란의 아즈디
조로하스토교 사원이 있는데 거기는 이 불이 1500년 동안 계속 타고 있다고
얘기를 해요.
불씨를 안 끄는 게 제일 중요해요 .
조선시대 옛날에 우리 거기 어른들 얘기 들어보면 며느리가 해야 되지
마선 절대 지켜야 될 게 부엌에 불을 불씨를 끄면 안 된다.
마치 그것처럼 불을 계속 이어 온 겁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사람들이 그것만 딱 보고 얘네들이 불숭배하는구나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라고 불렀던 게 조로하스토교입니다.
교수님 그럼 이렇게 조로하스토교 어떻게 보면 본인들의 전통 종교를
잘 지켜오고 제국을 운영했던 페르시아 인데 이슬람 왕조한테 아랍사람들
에 정복을 마지막으로 당했다고 했잖아요.
그 얘기 좀.
651년에 사산제국이 무너집니다.
사산제국의 마지막 황제 이름이 야스데게르드라고요.
야스데게르드의 3세 결국엔 죽음 을 당하고요.
651년에 도망다니다가 결국에는 죽음을 당해요.
그러면서 페르시아의 유구한 역사 는 끝나고 아랍무슬림들이 지배
를 하죠.
그런데 페르시아 지역이 아랍무슬림 들이 지배를 했지만 이게 아랍무슬림
이 소수잖아요.
결국에는 페르시아가 완전히 복속 하지는 않습니다.
종교는 바꿔요.
저도 그게 가장 의문이었어요.
이거 천 년 이상 내려온 종교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뀔
수가 있느냐.
그런데 보통 아랍인들이 가져온 이슬람이 페르시아 지역이 이란
지역이 퍼지기는 거의 300년 정도 걸리는 아주 오래된 과정이거든요
.
점차적으로 바뀝니다.
점차적으로 바뀌는데 제가 그런 질문을 이란 선생님한테 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느냐 그랬더니 조라스터 교는 약간 계급
의 종교거든요.
사제계급이 있고 이런 게 좀 강한 거고 이슬람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보편적이거든요.
그래서 그게 하나의 이유가 되고 그리고 선생님이 저한테 멋있는
시를 하나 해줍니다.
제가 멋있게 하나 읽으면 페르시아 로.
아랍인들은 도둑처럼 와서 우리를 때렸지만 아름다운 종교를 주었다
네.
아름다운 종교가 이슬람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651년 이후로 이슬람이 점차적으로 페르시아에 퍼져서 페르시아
이 지역이 이슬람화가 되기 시작 했고요.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다시 페르시아의 정체성 모국어가 페르시아가 아니더라도
페르시아라는 게 굉장히 큰 문화 니까 정체성을 가지고 페르시아
가 주도하는 역사가 다시 쓰여진 것은 그로부터 한 천 년 후입니다.
오랜 기간 어떻게 보면 이슬람 영향 아랍 영향이 있었네요.
아니요.
아랍 영향이라기보다는 아랍이 정복한 다음에 간 다음에 여러 군소
트리크 사람들이 내려와서 트리크 를 쓰는 사람들이 이란을 지배했
고 또 몽골이 와서 지배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지금 오늘날 이란과 연결되는
새로운 제국 큰 제국이 1501년에 쓰는데 그게 바로 사파비입니다.
사파비.
네.
사파비.
그런데 이 사파비를 세운 사람들은 요.
원래 페르시아 사람들은 아니에요 .
크루드인들 아니면 트리크인들 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종교도 이 사람들은 순리파 였어요.
순리파.
이슬람 순리파.
네.
그런데 1501년에 샤이스마일인데요.
샤이스마일이 당시 사파비가 이란 쪽에 자리 잡으면서 누구랑 가장
많이 싸우냐.
항상 옆에 있는 나라하고 좋을 수가 없잖아요.
국경으로 맞이되고 있던 오스만 트루크하고 아주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지금의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트루크.
오스만 트루크.
사이가 너무 안 좋았어요.
그런데 오스만 트루크는 순리파 거든요.
그러니까 오스만 트루크하게 저항 하기 위해서 뭐를 하겠습니까.
개종을 하자.
그리고 시아파로 다 개종을 시켜요 .
아.
그렇지.
죄나랑 싸우는데 우리가 같은 종교 를 믿으면 적개심이 옅어지니까
.
네.
그리고 시아파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는 힘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
설명이 굉장히 길으니까.
그건 웅닥체방 제가 다음에 순리 시아할 때 얘기를 하고요.
아무튼 시아파로 뭉치는 게 유리 하다.
그래서 이제 다 개종을 시켜서 오늘날 원래 이란 지역이 압도적인 순리
지역이에요.
그런데 시아로 다 개종을 합니다.
1501년 이후에요.
오늘날 시아파가 된 것은 1501년 이후 이란이에요.
그러면서 이란의 독특한 정체성 그러니까 얘네들은 아랍인들이
아니고 페르시아어를 쓰고 그리고 시아파죠.
그리고 이제 왕조가 들어왔고 그 다음에 여러 왕조의 부침을 겪다
가 결국에는 외국의 지배는 받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면 식민지배는 받지 않아요 .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힘이 세서 아니요.
영국도 러시아도 이란 땅을 먹고 싶어 했거든요.
둘이 부딪히니까 사실은 남북으로 가르려고 1907년에 지네끼리 비밀
조약도 했었어요.
그런데 러시아 혁명나고 복잡해지면서 결국에는 가르지를 못했고 그 대신
이 둘이 항상 쉽게 말하면 간섭 을 했죠.
예를 들면 1941년에 팔레비 왕조 가 독일에 너무 친하니까 꼴을 못
보겠다 해서 소련군과 영국군이 들어와서 왕을 강제 퇴위시켜요
.
그럼 옛날 우리 조선의대처럼 침 없는 나라
그리고 강제 퇴위시키고 어디로 보내요.
다른 나라로.
남아공항으로 갔다가 결국은 모르셔스 에서 죽거든요.
그 아들이 왕이 된 게 팔레비 거든요.
아들 팔레비.
그래서 이 왕조는 마지막 왕조 는 근대화 세속화 하면서 이슬람보다는
근대화 세속화 얘기를 많이 했고 그래서 이 시대에는 여자들도 미니
스카트 입고 남녀공학 입고 술도 먹고 디스코장도 가고 그랬었죠.
팝송도 흐르고 이스라엘과도 친하고.
이스라엘과 미국의 도움으로 모사드 와 같은 조직도 만들었고요.
정보조직.
아주 굉장히 밀접하게 친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미국이 못하게 하는 걸 몰래 이란과 하기 위해서 미사일
개발도 같이 하고.
와 이 분은 완전 절친인데요 네 절친이에요.
절친이었어요.
그러다가 79년에 이란혁명이 나면서 이란이라는 나라가 왕정에서 공화
정으로 바뀌었고 세속에서 이슬람 으로 바뀐겁니다.
그리고 친미 친이스라엘에서 반미 반이스라엘이 된거죠.
이란사람들도 우리하고 똑같아요 .
온탕간 냉탕 왔다갔다 해요.
중간이 없네요 그쪽이 우리도 중간 없잖아요.
온탕 아니면 냉탕이야 우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