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끝난 시리아 내전, 긴장하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

지식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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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비디오 조회수·2024. 12. 22.
무려 13년에 걸쳐 진행된 시리아 내전은
결국 방군 진영의 승리로 막을 내렸고
오랜 권자를 지켜온 아사드 정권은 붕괴했습니다.
그렇게 수백만 명의 난민, 수십만 명의 희생자,
파괴된 도시와 임파라가 남긴 상은 위에는
새로운 권력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시리아의 독립부터 내전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이로 인한 국제적 여파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사실 시리아는 그 독립부터가 수많은 희생으로 이루어진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1940년대 당시 프랑스의 통치를 받고 있던 시리아는
독립을 선언하며 프랑스를 향해 자국의 영토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통치력 상실을 용납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이에 무력으로 대응했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의 군대가 시리아 의회를 습격하고
독립 시위를 벌이는 군중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 및 폭격을 감행하며
천 명이 넘는 시리아인들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결국 약수한 시리아 군만으로는 프랑스에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한 시리아 당국은
영국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 시기 드골과 한참 갈등을 벌이고 있던 처칠은
이러한 요청을 수락하여 시리아의 독립에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945년 6월 1일 영국군이 시리아로 밀고 들어오고
이후 미국마저 드골을 비난하자 코너에 몰린 프랑스는
주변 강대국들의 전방위적 압박을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1945년 12월 프랑스는
다음에 초까지 군대를 철수할 것이라는 협정에 서명했고
시리아는 프랑스의 모든 병력이 철수한 이후
1946년 4월 17일에 완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피로맺은 독립은 평온한 국가 건설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시리아는 독립 이후 수많은 정치 파벌, 종파, 군벌, 지식인 그룹, 농민 출신 세력 등
다양한 일관계로 얽힌 복잡한 국내 정세와 마주하였고
1949년 첫 번째 쿠데타 이후 1960년대 초까지
시리아의 정치는 말 그대로 쿠데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사이사이 짧은 민주적 실험과 명목상의 선거들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군부 세력과 이를 둘러싼 엘리트 집단에 머물러 있었고
내부적 혼란은 국가의 정치적인 안정을 끊임없이 방해했습니다.
결국 1963년 3월 8일 사회주의적 아람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바트당이
또다시 쿠데타를 벌이며 정권을 휘어잡았고
이후 계엄령을 선포하며 장기 집권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트당의 통치 초기에도 온건파, 급진파, 군부인사 등
당의 내부적 권력 다툼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1970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하페즈 알 아사드가
쿠데타를 벌여 권력을 차지하며
아사드는 시아파의 군파 중 하나인 알라유파의 출신으로서
대외적으로는 바트당의 아람민족주의, 반제국주의, 사회주의적 가치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그의 일가친척, 알라유파 충성세력 등
아사드 개인과 강력히 연결된 이들에게 이권을 몰아주며 국가 권력을 틀어주었고
대중들의 정치적 자유는 철저히 억압되었으며
반대파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은 끊임없이 지속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리아의 경제는 부정부패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비율 죽일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 시스템으로 인해
1980년대 이후로는 성장이 억제되고
국가 경제 전체가 국제유가에 휘둘렸으며
아람이 소련의 원조에 의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아사드가 시아파 세력인 이란과 주기적으로 공조하고
이웃 국가들의 전쟁, 내전에 개입하며
아랍 세력의 원조에게 감소를 초래했고
덩달아 이러한 대외 군사 개입은 시리아의 경지침체를 가속화시켰습니다.
결국 1980년대 후반에 흘러
시리아의 외환 보육원은 바닥을 드러냈고
무역 적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며
국민들은 기본적인 생필품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아사드가 1990년대에 접어들어 소련이 몰락하고 있던 시기
제한적인 수준에서 경제 개혁을 단행했지만
결국 오랜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이 같은 아페지알 아사드의 통치는
그가 사망하는 2000년에 이르기까지 공고히 유지되었고
그의 사망 이후에도 아들인 바시아르 알 아사드가 권력을 세습하며
억압적인 통치를 이어나갔습니다.
바시아르 시기에는 더욱 급진적인 시장 개방과
민간기업 활성화를 통한 경제개편을 첨명했지만
실상은 그 경제적 과실들을
정권에 충성하는 고유층이 독식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농업과 석유가 절반이나 차지하는 취약한 산업구조에서도
끝끝내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특정 소수만이 혜택을 누리는 불평등한 상황은 갈수록 심화되었고
이 같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더불어 정치적 자유의 부재
국가 권력기구에 대한 불신
비밀경찰과 정보기관의 만연한 감시 분위기는
시리아 사회의 깊은 곳에 응어리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철상가상 2007년에서 2010년 사이 발생한 시리아의 사상 최악의 가뭄은
시리아 경제의 25%를 차지하는 농업의 붕괴를 초래했고
이로 인해 농촌 인구가 생존을 위해 도시로 몰려들어
일자리, 주거, 인프라 부족까지 발생했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과 부정부패는
대중들의 불만을 최악으로 치닫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2010년
아랍 전역에서 독재정부의 전복과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아랍의 봄이 발생합니다.
히니지에서 시작되어 바레인, 예멘 등
여러 아랍 국가들로 확산된 반정부 시위는
중동 정세에 급격한 변화를 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정부 시위의 확산 속에서
그동안 정부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던 시리아 군중들 또한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2011년 3월 무렵
어린 학생들이 반정부 문구를 담은 낙서를 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폭력적으로 체포한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대거 광장에 쏟아져 나오며
반정부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갔습니다.
2011년 7월 무렵엔 이미 10만이 넘는 시외대가
아싸대에 퇴진을 요구하였는데
이에 정부는 눈과 아키를 닫은 채
탱크를 동원하여 시위가 벌어지는 도시들을 급습하며
수많은 사상자를 유발했습니다.
이후 8월엔 군인들이 앰뷸런스 안에 있는 시위들을 향해 발포하며
그 안에 있던 시민 12명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벌어졌고
결국 이러한 정부의 잔혹한 대응은
시리아 전역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민병대에 출연을 야기하며
2012년 무렵부터 시리아를 전면적인 내전 상태로
치닫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향후 10여 년간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을 야기한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정부군과 이에 대항한 민병대의 대립으로 시작된 내전은
결국 필연적으로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개입과 함께
종파간 대립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방군 세력은
사우디, 카타르, 터키 등 순위파와 관련된 국가들의 지원을 받았으며
정부 측은 시아파의 한 분파인 알라위파로서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으며
이렇게 시리아는 이슬람 국가들 간 대리전의 장으로 변모하게 되었죠.
또한 방군 세력 사이에서도
온건파와 이슬람 올리주의 세력 간 충돌까지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정부군 방군 모두와 적대관계인 IS까지 등장하는 등
내전의 세력도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는데
설상가상 외부의 개입은 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시리아와 오랜 동맹관계를 이루고 있던 러시아가
중동과 아프리카의 영향력을 투수할 수 있는 지중해 입권을 지키기 위해서
2015년부터 직접적으로 군사 개입을 시작했고
미국을 포함한 사방 국가들은
방군 세력 중 온건파로 여겨지는 이들에게
무기와 재정 지원을 이어가며
시리아 내전은 자유주의 진영과
대항 자유주의 진영 간 대리전으로까지 확산되어 갔습니다.
이 같은 시리아 내전은 무려 10년 넘게 이어지며
민간인 사망자만 30만 명이 넘어갔고
6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터키, 레바논, 유럽 등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 참혹한 시리아 내전의 전황이
완전히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은
2020년대에 접어들어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부터였습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시작한 이래
2년이 훌쩍 넘게 전쟁의 수렁에 빠져나오지 못하며
점점 시리아에 할애하던 자원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고
이란과 헤즈벌라 역시 국제 제재와 더불어
이스라엘과의 충돌로 인해 약화되기 시작하며
아싸드를 지원할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2024년부터 정부군은 줄어가는 지원 속에
점점 반군과의 내전에서 전의를 상실하기 시작했고
전황은 미국, 영국, 프랑스, 터키, 사우디, 카타르 등
여러 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는 반군연합측으로 기울어 갔습니다.
결국 2024년 12월 8일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함락시키며
길고 길었던 정부군과의 내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고
아싸드는 모든 걸 내팽개친 채
모스크바로 도망치며 비참한 몰락을 맞이했습니다.
이로써 거액의 투자와 군사 개입에도 불구하고
아싸드를 지켜내지 못한 러시아와 이란은
중동 내 영향력 악화와 외교적 고립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죠.
러시아는 시리아 내 군사기재를 상실할 위기에 처음으로써
지중해 저금권 및 중동 내의 군사적 존재감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로 인해 푸틴은 시리아의 새로운 지배 세력과의 협상을 통해
또한 이란은 시리아를 통한 헤즈볼라와의 육로 단절로 인해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 및 재정적 지원이 크게 제약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는 레바논 내 헤즈볼라의 외축으로 이어지며
최악의 상황엔 이란을 중심으로 한 샤파 전선이
도미노로 무너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사우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국가들은 아싸드 축출로 인해
이란의 확장주의를 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들은 샤파 세력의 역할을 반기면서도
시리아의 극단주의 세력이 새 권력을 장악하는 위험을 우려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반군주도 과도정부와 빠르게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막대한 재정력과 중동내 영향력을 활용해
시리아 재건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위례한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편 서방 세력은 러시아, 이란에게 전략적 패배를 안겨다줌으로써
중동내의 상대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유럽은 시리아 재건 지원을 통해
유럽 전역의 사회 문제가 된 난민들을 귀환하도록 하고
미국과 공조하여 테러리즘의 씨앗이 되는 극단주의 세력이
시리아에 들어서지 못하도록 해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한편 다시금 백악관에 들어서게 된 트럼프는
그간 SNS를 통해 시리아 내전에 결코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해왔지만
시리아의 상황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면서
군사적 개입보다 훨씬 저렴한 옵션들을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시리아의 재건은 향후 이스라엘의 안보와도 큰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 새로운 국면 속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또한
온건파 정부 수립을 위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투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아사대 정권이 무너지고 당군이 권력을 잡은 시리아는
이제 정부 수립, 국민통합, 정치개혁, 경제재건, 인권개선 등
수많은 과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긴 세월동안 고통받았던 시리아인들이
빠른 시기 내에 고향과 국가를 되찾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되찾는 날이 오길 바라며
이번 영상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식한잔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