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이렇게까지 파국으로 치달았을까?

지식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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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스페인이 만신창이가 되어있던 시기
기회를 잡고 들고 일어선 남미 북부 지역은
오늘날과 다르게 1819년 무렵부터
이렇게 그란 콜롬비아라는 단일 국가로 뭉쳐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압제 정하기 위해서
여러 지역들이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이렇게 남미 국가들이 식민지가 아닌
독립국가로서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동안
때마침 영국도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1814년에 네덜란드로부터 오늘날 가이아나 지역을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이후 영국은 네덜란드로부터 넘겨받은 정착총과 그 시설들을 그대로 활용하며
농장을 운영하거나 광석을 캐내기 시작했죠.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그란 콜롬비아의 심개를 상당히 거슬리게 만들었습니다.
과거 이곳이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시기
네덜란드는 에스키보강의 서쪽 지역으로 영역을 넓혀나간 바 있었고
이에 대해 스페인은
에스키보강 너머는 기존부터 자신의 영역으로 정해진 바 있었으니
건들지 말라며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란 콜롬비아는 과거 스페인의 주장을 근거로 하여
자신들의 영토는 이 에스키보강까지였다고 주장하였고
영국을 향해 불법적으로 식민지를 운영하는 행위를 즉시 멈추라고 요구했죠.
그러나 영국 입장에서는 네덜란드가 소유하고 있던 영역을 그대로 넘겨받은 것 뿐이었고
베네수엘라가 주장하는 영토는 당시 영국이 소유하고 있는 영역의 대부분에 해당했기 때문에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이후 영국은 베네수엘라가 문제를 제기하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고 식민지 개발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러한 영국 간의 분쟁은 그란 콜롬비아가 세계로 찢어진 이후로도 그대로 이어졌고
영국과 분쟁적을 맞댄 베네수엘라는 영국에 지속적으로 공식적인 항의를 표했습니다.
결국 영국은 수십 년간 분쟁으로 골치가 아픈 기아나의 세쪽 국경을 명확히 측량하기로 결정했고
독일 출신의 타움가인 쇼언부르크에게 조사를 맡겼습니다.
그렇게 1841년 쇼언부르크는 기아나 국경의 측량 결과를 영국 당국에 전달하였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기존의 베네수엘라와 영국이 분쟁을 벌이던 라인을 아득히 넘어선 이 경계는
쇼언부르크 라인이라고 불리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영국은 베네수엘라를 향해 이 같은 국경으로 분쟁을 종결 짓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베네수엘라는 맹렬히 반발하며 에세키버간 서쪽으로 넘어오지 말 것을 천명했습니다.
결국 영국은 한 발 물러나 1850년에 베네수엘라와 합의하여
이 지역에 대한 식민지하를 중단하는 데 일시적으로 합의했지만
그 이후로도 양국 간의 국경은 애매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876년
영국과 베네수엘라의 분쟁지역인 이 쿠이니강에서 금광이 발견됩니다.
1850년 이후 약 20년 동안 애매하게 남아있었던 양국 간의 국경 문제는
금광이라는 잭팟으로 인해 다시금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영국은 어느새 쇼언부르크 라인이 여기까지였다고 은근슬쩍 주장하며
1886년에 강제로 이 라인을 임시 국경으로 삼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는 얼마 뒤 영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해버렸죠.
결국 당시 베네수엘라가 판단하기로
이러한 영국의 강제력 행사를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유럽 열강에 아메리카 개입을 극도로 거부하고 있던 미국이었습니다.
1895년 베네수엘라는 빌리엄 린지 스크럭스라는
콜롬비아 주재 미국 대사를 로비스트로 고용하여 미국 정부에 압력을 넣도록 했고
당시 스크럭스는 유럽 열강인 영국이 멋대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입건을 행사하며
미국의 고립주의 정책을 무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스크럭스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이후 미국이 분쟁에서의 중재를 천명하자
아메리카에서의 패권을 틀어주고 있는 미국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었던 영국은
이를 받아들였고
결국 베네수엘라와 영국은 미국의 중재 하에
영토 분쟁을 결정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재판을 벌이기 위해서 양국은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두 명의 위원을 선출하였는데
당시 영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있던 베네수엘라는
베네수엘라인이 아닌 미국인 두 명을 선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양측의 분쟁에 관계가 없는 러시아 측 위원 한 명도 선출되어
이렇게 총 5명의 위원이 영토 분쟁에 합의를 이어가게 되었죠.
그렇게 수년이 지나 1899년 10월이 되어
미국은 마침내 최종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는 상당히 영국 측에 유리했습니다.
영국은 자신들이 내세운 쇼브루크 라인을 거의 대부분 지켜놓을 수 있었고
분쟁의 핵심이었던 금광의 모든 부분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미국이 이러한 결정에 대해 크게 실망하며
중재 반대 의견을 표명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고
결국 양국은 이 중재를 바탕으로 국경을 측량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후로도 베네수엘라는 영국을 향해 국경을 재조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영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렇게 수십 년이 흐르며 양측의 국경은
중재의 결과대로 굳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49년
과거 영토 중재 과정에서
정치적 거래가 있었다는 문서가 공개됩니다.
해당 문서에는 러시아 측 위원이 영국에 방문하여
영국 측 위원들과 모종의 거래를 향한 정황이 적혀있었고
이 같은 문서가 공개되자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는
빼앗긴 에세큐버 영토를 되찾자는 시민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베네수엘라는 에세큐버 침공계획, 유엔총회에서의 호소
저명한 해외학자들의 지지 확보 등
영토를 되찾기 위한 온갖 노력을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영국의 공식문서 보관소에서
영국과 러시아 간의 공모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까지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1966년 베네수엘라와 영국
그리고 영국령 기하나는
영국령 기하나가 독립하기 직전에 영토에 관한 협약을 맺었고
협약의 내용을 간추리자면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았습니다.
해당 지역이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
일단은 분쟁지역을 새로 독립하는 가이아나 정부에 관할 하에 둘 것
1899년 중재 판결의 무효성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의할 것
대략 이러한 합의 이후 같은 해 가이아나는 독립을 선포했고
이제 분쟁의 주체도 영국이 아닌 가이아나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 영국과도 그러했듯
양국은 분쟁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수십 년을 날려보냈고
그 과정에서 더 강한 군사력을 지닌 베네수엘라가
무력 행사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1980년에 아르헨티나가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처참히 패배한 것을 직시한 이후로는
그러한 생각마저 조용히 정리해버렸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은 독립한 가이아나의 영연방으로서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미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편을 들어준 전력이 있던 미국이
가이아나와의 무력 총돌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었죠.
또한 해당 지역의 경제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도
베네수엘라가 무력 행위까지는 벌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는
서로의 입장만을 주장하는 외교적 분쟁만을 벌여왔고
이러한 기조는 21세기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2006년 베네수엘라가 자국의 국계에 별 하나를 추가한 것도
분쟁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는 행위의 일환이었죠.
그러던 2015년
미국의 석유회사 엑소모빌이
가이아나 앞바다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합니다.
그동안 잠잠했던 양국 간의 분쟁은
엑소모빌의 발표 이후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이미 국가 경제가 나락으로 치닫고 있던 베네수엘라는
자국의 영토에서 나온 이 석유 자원은
오로지 자신들의 경제 회복과 국민 복지를 위한 것이라며
유전이 발견된 모든 구역에 대해서 영유권을 주장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가이아나는 2018년에 국제사법재판소 ICJ에
분쟁 해결을 요청했는데
이에 베네수엘라는 ICJ에 관할 건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항의했지만
2020년 12월에 ICJ는
해당 분쟁에 자신들의 관할 건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며
사건의 본안 심리를 진행해 나갔습니다.
한편 가이아나 유전의 석유 매장량은 110억 배럴 이상으로서
세계 17위 수준의 규모를 이룬 것으로 밝혀졌고
이는 21세기에 발견된 매장지 중 최대 규모로 평가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기존까지 세계의 기아나 중에서
가장 낮은 1인당 소득과 더불어
무려 35%라는 최악의 빈곤율을 자랑하던 가이아나는
2019년 본격적인 석유 수출을 시작으로
최대 62%라는 말도 안 되는 경제 성장을 이룩하기 시작했고
2023년엔 1인당 GDP 2만 달러를 돌파하기에 이를렀습니다.
이로 인해 베네수엘라는 유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이아나 어선 납포, 분쟁 지역 마을에서의 저공 비행 등
지속적인 무력 시위를 벌여나갔고
2023년부터는 분쟁 지역 합병에 대한 독자적인 국민 투표와
국경 지역의 병력 증강 등 군사 행동의 전조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ICJ는 2023년 12월 베네수엘라를 향해
명확한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현상변경 행동을 취하지 말 것을 명령했으나
마두로 정권은 정권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써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서
국경 지대에서의 병력 증강을 끊임없이 이어 나갔습니다.
결국 남미에서 벌어진 이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이해관계가 얽힌 주변 국가들까지 줄줄이 개입하기 시작했고
특히 엑소모빌을 통해 가이아나에서 석유 유익을 취하고 있는 미국
가이아나가 소속된 영연방을 주도하고 있는 영국
베네수엘라 가이아나와 직접 국경을 접하고 있는 브라질은
베네수엘라를 향해 무력 행사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 간 영토 분쟁은
이들 국가를 둘러싼 다양한 국가들이 이해관계까지 얽혀
국제 분쟁으로 격화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특히나 이 막대한 규모의 석유 자원으로 인해
그 갈등의 해결은 더더욱 요원해 보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베네수엘라와 영국 그리고 가이아나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벌여온 분쟁의 진행 과정이었습니다.
양국 간 분쟁이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같은
무력 충돌 및 수많은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영상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식탄잔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