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영토는 왜 이렇게 길쭉해질 수밖에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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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총 길이는 약 4,270 km
있니다 길이로 보면 미국과 캐나다를
중단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길쭉하고 그러나 칠레의 폭은 평균 약
175km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얇습니다 어쩌다가 칠레의
모양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렇게 길할 수밖에 없게 형성된
것이었을까요 때는 15세기 무렵 현
실내가 있는 지역은 원래 잉카제국의
패권 하에 여러 부족들이 살아가던
터전이었다 잉카제국은 주변 부족들을
정벌해 하며 영토를 확장하고자 했고
그렇게 이들은 계속해서 남쪽으로의
침공을 이어가며 현내 북부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확장은 이곳 마오의 강 이남의
남부 지역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마푸체 족의
강렬한 저항이 잉카의 발목을 계속해서
붙들려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결국
15세기 후반 무려 잉카는 마울레 강
전투에서 마푸체 맹렬한 저항에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현 내일
때는 마울레 강을 경계로 잉카 제국과
마푸체족이 공전하는 모양세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1532년 머나먼 대륙에서 바다를
건너온 정복자들이 남미 대륙에
본격적으로 눈독을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물의 윙카 제국은 이미
마푸체 정복의 실패 이후 황제였던
우한이 카팡 마저 연도로 사망하며
내부적으로 큰 혼란에 빠져 있었고
이에 설상가상 우아아 카파의 아들이자
이복 형제 사이였던
우아스카란 잉카의 왕위를 건 내전까지
버렸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이
내전에서 승리를 거머진 아타우 알파는
상당히 기세등등한 상황이었고 약
170명의 낯선 이방인인 스페인
군대가 근처에서 깽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도 8만이 넘는
본인의 군대를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반대로 스페인 군을
사로잡을 기회를 포착하고 있었죠
그렇게 아타오 알파는 스페인 군대에게
이곳 카하마르카 만나자고 전령을
보냈고이 덕분에 스페인군의 지도자였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잉카로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은 채 험란한
협곡을지나 카마르 그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피사로는 자신들의
소규모 군대가 활동하기 접한 광장에서
아타우 알파를 만나기를 희망했고 당시
병력도 얼마 없는 스페인 군에 대해
별다른 두려움이 없다 아타는
당연하게도이를 받아들였죠 그렇게
1532년 11월 16일 아타 파는
수많이 넘는 자신의 군대를 몇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남겨두고 수천의 병력과
함께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양측의 접견 과정에서 스페인의
성직자는 아타오 알파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하며 성경을
내밀었는데 이때 아타 파는 성경을
땅바닥에 던져 버렸고 이러한 행동을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인 스페인군은
즉시 매복한 병사들을 향해 공격
신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광장
근처에서 숨어 있던 명의 병력은
대포를 쏘기 시작하고 김하 을 끌고
광장을 해집었고 잉카의 조총을 퍼붓는
등 대학살 극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총은 커녕 병사 대부분이 철제
무기조차 없어서 나무와 양모 등으로
무장했던 인카 그은 생전 처음 보는
무기들 앞에서 벌벌 떨며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했고 그렇게 아타 월
파는 스페인군의 포로로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다음에가 되어 아타바
men 교수형으로 최후를 맞이했고
이후 90점을 잃은 잉카제국은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스페인은 계속해서
남쪽으로의 진출을 이어가며 식민지를
확장해 나갔고 1540년가 되어
어느덧 이들은 마오의 강 유역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
남쪽에는 과거 인카 제국이 정벌을
실패했던 마푸체 족이 여전히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었죠 당연하게도 당시
스페인은 마푸체 그지 정벌하여 남미의
최남 당까지 식민지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양측간의 전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1550년대
스페인과 마푸체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당시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하고 있던 스페인 식민 당국은
마푸체 또한 잉카와 마찬가지로 빠른
시간 내에 정벌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푸체
족이 살아가던 터전은 성전환 협곡과
숲로 덮여 있었고 이러한 지형 속에서
스페인이 자랑하는 말과 포화 총은
제대로된 효과를 볼리 만무했습니다
마푸체 족은 스페인군의 침략 앞에
과거 잉카제국의 침략과 마찬가지로
게릴라 전수를 펼치며 끊임없는 습격과
도망을 반복했고 스페인군은 이러한
험난한 지형에서는 유럽의 선진적인
전수를 조금더 활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마푸체 족은 이후 100년
동안이나 스페인군의 침략을 막아내며
자신들의 영토를 지킬 수 있었고 결국
17세기 중반이 되어 스페인 당국은
더 이상 별 진전도 없이 계속해서
물자 빨아먹고 군인들만 죽어 나가는이
같은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 내렸습니다 그렇게 당국은 마프의
대한 무력 정보를 포기하고 마푸체
조구의 협상을 진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호했죠 이후 스페인과 마푸체 양측은
1641년 킬린 조약을 맺어 이곳
비오비오 강을 기준으로 스페인
식민지와 마부츠 족의 경계를
확정하는데 합의했고 마부츠 족은
자치를 인정받아 이후에도 스페인과
정기적으로 회담을 가지며 문화를
교류하고 조약을 갱신하는 등 분쟁
방지를 위한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나갔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스페인의
정복 야욕은 사라지지 않았고
마푸체족의 수차의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벌어지곤 했으나 마푸체족 그
이러한 위협 속에서도 19세기
무렵까지 끝끝내 자체를 유지하며
스페인으로부터의 식민 제화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1810년대
중남미의 스페인령 식민지들이
우후죽순으로 독립을 선포하며 남미의
지정학적 환경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혁명 아이티 혁명
프랑스 혁명으로 스페인의 식민지들은
독립에 대한 갈망을 키워나가고
있었는데
거의 직후 이어진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 전역의 전쟁의 화마를 가져오며
1808년에 스페인의 국왕이
나폴레옹의 압력으로 퇴위하는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의
식민지에서는 권력 공백이 발생했고
그동안 동국 스페인 인과의 지속적인
차별의 불만을 품으며 별도의 민족주의
의식을 키워나가고 있던 크리들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교로 들고
일어나며 중남이 곳곳에서 독립을
선포하기에 렀습니다 이후 수년간에
독립 전쟁의 결과 렛 또한 다른
식민지들 함께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했고 그렇게 스페인 식민지가
자리하고 있던 지역은 새로운 독립
국가들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느 신생 독립 국가들이 그렇듯 독립
초반내는 지속적인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었고 과거
스페인의 공격을 100년 넘게 막아
오던 마푸체 대해서도 괜히 글거
부스럼이 생기지 않도록 불편한 공존을
이어 나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점차 국가가 안정화되고
인구가 급증하며 칠레는 점점
영토확장에 대한 야욕을 키워나갔고
그렇게 자신 주변의 영역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칠레의 동쪽
지역은 하기로도 유명한 안데스 산맥이
남북으로 끝없이 갈아먹고 있었기
때문에 넘어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고
결국 칠레가 목표로 삼을 지역은
북쪽에 볼리비아와 페루 남쪽의 마푸체
족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칠레의 첫 번째 목표는
과거부터 자치 집단으로 남아
국가통합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남쪽에 비옥한 농도까지 차지하고 있던
마푸체 족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게다가이
마푸체 족을 하루 빨리 정벌하지
않으면 남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영국이 개입할 우려도 있었기 때문에
칠레는 하루라도 더 빨리 마푸체 족을
자국으로 통합시킬 필요성 을 느끼고
있었죠 그렇게 1861년 남쪽을 향한
실내의 진격이 시작되었고 마푸체 족은
과거 잉카 이게 그리고 스페인에게
그러했듯 맹렬한 저항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여러 부족 집단으로
나뉘어 있던 마푸체 그동안 단일
국가로서 지속적으로 국력을 키워온
칠레 무력 앞에 점점 붙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설상가상 비슷한시기
안데스산맥 반대편에서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아르헨티나의 군세 아지
이중으로 시달리며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칠레는
1883년에 안데스산맥 기존으로 서쪽
지역의 마푸체 족을 완전히 복속시킨
수 있었고 아르헨티나도 1884년에
최종적으로 산맥의 동쪽 지역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독립 이후부터
칠레와 볼리비아는 귀중한 자원인
초석과 구노가 풍부한 아타카마 사막을
두고 끊임없는 영토 분쟁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푸체 족이 거의
힘을 잃어가던 1879년 무렵 칠레는
볼리비아의 분쟁 끝에 아타카마 사막을
차지하기 위해 마침내 볼리비아의
유일한 해안 지역을 침공했습니다
그리고 볼리비아와 방어 동맹을
체결했던 페로는 볼리비아의 편에서 서
함께 칠레를 상대로 전쟁을 개시했고
이후 4년 넘께 이어진 전쟁의 결과
칠레는 두 국가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고 그 대가로서 칠레는
아타카마 사막은 물론 페르와
볼리비아가지는 해안 지역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이 전쟁으로 인해
볼리비아는 유일한 해안 영토를 잃고
내륙 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죠 이렇게
19세기 말에 벌어진 마푸체족 정벌과
더불어 볼리비아 페루를 상대로 한
생리는 원래부터도 꽤나 긴 모양이었던
칠레의 영토를 더더욱 길쭉하게 만들어
버렸고 이렇게 칠레는 안데스 3기라는
한계로 인해 폭은 평균 약 175km
표정 밖에 되지 않지만 남쪽 끝에서
북쪽까지 무려 약 4,270 km라는
방대한 길이의 영토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자 그런데이 칠레 영토의
남쪽을 잘 살펴보면 다소 특이하게
잘려 있는 부분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칼로 자른 듯이 나눠져
아르헨티나가 보유하고 있는 영토인데
왜 칠레는이 티아라 델프 고라
섬에서이 동쪽 부분만 아르헨티나에
넘겨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다음
영상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이 국경에
관한 영상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지식한잔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