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인트로 00:17 구독자 인사 00:28 시신 5000건 부검을 하며 본 가장 비극적인 죽음 01:15 “하수구에서 발견됩니다” 법의학자도 충격받은 오토바이 사고 01:51 매일 죽음을 보는 법의학자가 살면서 꼭 지키는 ‘이것’ 02:18 ‘이걸’ 경험하면 죽기 전 인생 후회하지 않습니다 04:13 임종 직전 사람들이 예외없이 후회하는 일 05:24 법의학자가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죽음 1위 06:03 수많은 죽음을 보고 느낀 “절대 이렇게는 안 살겁니다” 07:15 “살아있는 사람의 부검이 접수됐다” 억울한 죽음의 진실 08:54 나의 죽음은 누가 결정해야 할까? 09:38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원가의 목표에 쫓겼고
타인과의 비교 속에 살았던 사람은
후회가 많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물질적인 건 필요가 없어요.
시신에 입히는 수위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그러잖아요.
뭘 넣어갖고 갈 수가 없으니까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장 먼저 하는 후회가
제 기억에 1번인가 2번인가 바로
안녕하세요.
지시인사이드 구독자 여러분
저는 전북대학교에서
법의학교실 교수로 있는 이호라고 합니다.
법의학자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주검을 주로 상대하는 의사입니다.
네이전트 때부터 보면 딱 올해가 30년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면
부검 참관으로 보면 한 5천 건이 좀 넘는 것 같고
감정서를 쓴 건 한 3천 건 정도 된 것 같아요.
아마 법의학하는 사람들 대부분 같은 생각일 텐데
어린 아이의 죽음
생이 좀 짧은
채 뭘 해보지 못한 죽음들이 좀 안타깝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가는 트라우마들이 많아요.
가족이 집안 내에 사망하잖아요.
가족을 잃은 슬픔도 있지만
그 사망자를 제일 먼저 본 사람이 또 트라우마가 있어요.
또 하나는 대량 참사들
그때 각자의 삶의 목적을 갖고 이동 중에 발생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 시신을 수습하다 보면
다양한 사연들을 듣게 되거든요.
그런 사연들을 보면서
어떻게 보면 이분들하고 지내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한테
불쌍사가 발생하는 거거든요.
그런 사연까지 다 보면 참 안타깝기도 하죠.
오토바이는 특히 보호장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 사고보다는 더 손상 정도가 심하죠.
대개 보면 차량은
탑승자가 이탈되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오토바이는 탑승자가 한참 떨어진 상태에 발견되기 때문에
충격보다도 전도 손상이 많아요.
추락하는 것처럼
도로에서 이탈돼서 다른 곳
농로나 하수구나 이런 쪽 가서 찾아지는 경우도 있고
또 하나는 오토바이는 동승자가 있잖아요.
그러면 누가 운전했는가가 책임 소재가 있거든요.
오토바이는 누가 운전했는지는
과학적 증명이 좀 어려워요.
둘 다 이탈했기 때문에
그런 게 책임 소재를 딸 때
나중에 사후에 복잡해지는 거죠.
우리한테 주어진 매뉴얼들이 있어요.
그걸 지키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아요.
고속도로 내에서 빗길에서의 속도랄지
앞차와의 거리랄지
안전벨트를 맨다 할지
그런 것들 있잖아요.
그 매뉴얼을 지키면 돼요.
또 그 매뉴얼은 우리도 지켜야 되지만
안 되는 제조회사도 그 매뉴얼을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제대로 아파트를 짓는 것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졌던 경험들이
농축된 게 매뉴얼로 들어와 있거든요.
그걸 지키지 않으면 결국 또다시 반복된 사고가 있어요.
우리는 한 순간, 한 찰나만 살거든요.
모든 순간은 딱 한 번만이면 주어지는 찰나예요.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모래시계에서
흘러내리는 속도나 흘러내리는 속도는 사실은 알지만
내 모래시계 윗부분은 몰라요.
얼마나 남아있는지
언제 갈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걸 미리 생각한다면
흘러내리는 모래시계 속도나
그거에 대해서 의미를 둘 수 있죠.
근데 우리는 참 착각대로 하는 게 있어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지만
그 죽음이 나의 죽음이거든요.
근데 나의 죽음은 언어가 성립되지 않아요.
내가 있으면 죽음이 없고
죽음이 있으면 내가 없는 거거든요.
우린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 뿐이에요.
공포와 두려움이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생을 보면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지 말고
누구나 죽어가는 보편적인 진리니까
그런 걸 한번 생각해본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죠.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은 아니에요.
제가 요즘 김경일 교수님이 하신 방송에서 제가 느낀 건데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영소에
수많은 사람이 가서 생존한 사람이 있고
그 중간에 생을 포기하고 죽어간 사람도 있죠.
가스실에 걸려가서 죽은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 삶을 포기한 사람도 많았다고 그래요.
근데 그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그렇게 몰랐었는데
생존한 사람은 왜 생존했을까를 찾았다는 거예요.
보니까 이 수영소에 들어오기 전에
가지는 고추와 인내와 많은 시련을 겪고
그 강인함을 가진 사람이 생존한 게 아니고
아주 행복했던 시간이 많았던 사람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람
이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생존했다는 걸 최근에 찾아냈대요.
그래서 고통 앞에 행복 마일리가 많은 사람이
앞으로 다가올 두려움이나 공포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생은 어차피 끝난다면
내가 인생을 살면서
관계의 행복함,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들
누군가한테 사랑을 줬던 충만함
이런 것들을 많이 겪은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생이 고단했고
뭔가의 목표에 쫓겼고
타인과의 비교 속에 살았던 사람은
후회가 많을 것 같아요.
근데 죽음 또한 만나기 싫을 것 같아요.
아직 채 해결하지 못한 것도 많고
아쉬움도 많은데
이걸 가지는 게 두렵지 않겠어요?
그냥 그걸로 저는 죽음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장 먼저 하는 후회가
제 기억에 1번인가 2번에 바로
내 아이들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못했던 것
내 아이들과 가깝게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들
이런 것들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나로 인해서 시작된 관계
나하고 외졌던 관계 속에서
성실함을 보이지 못했고
솔직함을 주고받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하는 것 같으니까
거기서 배우면 되죠.
그렇게 살면 되죠.
아끼지 마세요. 시간
그러니까 물질적인 건 필요가 없어요.
누구 말대로
시신에 입히는 수위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그러잖아요.
뭘 넣어갖고 갈 수가 없으니까
알렉산더도 죽을 때
나의 손을 관 밖으로 내 보이게 하라 그랬어요.
그 제왕마저도 손에 쥐고 가는 것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내 기억 속에서 갖고 있고
나를 기억하는 그 사람들의 기억만
서로 남는 거지.
제가 이제 삶을 살면서
두 가지를 얘기하거든요.
하나는 백미러예요.
하나는 내비게이션이고
백미러는 차를 타고 가면서
백미러 볼 일은 없죠.
단지 궁금했을 때 볼 뿐이죠.
그래서 백미러는 이미 지나온 길이기 때문에
반성의 의미가 아니고
후회의 의미가 있어요. 가끔은
내가 뭘 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의 의미로 쳐다볼 때는
전방을 놓치기 시작해요.
백미러를 너무 자주 보지 마라.
또 하나는 내비게이션이에요.
내비게이션은 잘못 들었으잖아요.
그럼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아요.
전혀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경로를 찾겠습니다.
그 두 가지만 생각하고
살아가면 좋겠어요.
저도 죽음을 보니까
저의 죽음에 대한 생각도
안 할 수는 없죠.
우연한 어떤 사고는 피하고 싶고
사고가 혹시 있더라도
내 가족들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형태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또 한 번 더 마음이 아프거든요.
위험을 하거나 마지막 보낼 때
그 처참한 시신이 손괴된 모습을 보면
가슴 또 아파요.
그런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두 번째는
사건으로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되돌이기면
자연스러운 죽음이었으면 좋겠고
가까운 사람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다.
법의학자들이 생각할 때는
그런 죽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한테 올 때는
그런 죽음들은 오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검시의 대상이 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죠.
죽기 전에 의심스러운 일들을
안 하고 살고 있어야겠다.
그래서 나의 죽음이
검시를 하고
뭔가 의심을 밝혀야 되고
이런 것들이 대상이 안 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나의 행적과 행동과 말과 모든 것이
누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행적도 묘연하고
갑자기 왜 그 사람이 거기서 발견됐지?
또 이 사람이 말했던 것과 다른 건데?
이런 것들이 있어요.
저희는 적지 않게 보는 거죠.
맨날 만나는 게 그런 부검들이 많으니까.
이런 식으로 내 생이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은 하나 있어요.
저는 어차피 법의학자니까
교수고
교수는 정년이 있어요.
정년 되면
작은 숲속 도서관이라는 게 있어요.
요즘 우리 전주 지역에는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작은 산들
컨테이너박스를 만들어서
도서관이 만들어져 있어요.
그건 1년의 운영비를 얼마 받아서
운영을 해요.
그런 도서관을 하나 받아서
청소년들하고 대화하는
그런 어떤 공간을
운영하면서 살고 싶고
그러면서 이제
사회의 공익적 일론은
사망진단서가 필요한 분들이 있어요.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돌아가시지 못하셔서
그런 분들의 사망진단서
이런 걸 발부하고
시체검사 발부하고
죽음에 있어서
검시가 필요하냐 안 하냐
이런 걸 알려주는
수사의 초기 단계
또 그런 일도 하면서
조용히 이렇게
촛불이 다 태우고
그냥 조용히 촛불이 사라지듯이 갔으면 좋겠어요.
바람 불어서 중간에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
아직 사망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연은
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넘어졌어요.
그래서 팔에 골절이 와서
금속 고정
쇄신 박는다고 하죠.
그걸 고2 때 했고
또 이걸 제거를 해줘야 돼요.
1년 정도 지나면
제거하는 수술을 들어갔는데
깨어나지 못한 거죠.
수술 중에 갑자기
뇌출혈이 발생했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생각할 때는
그런 우연이 있을 수가 없잖아요.
팔에 대한 수술을 하는데
지금 내 딸이 중환자실에 있는데
회생 가능성은 없어 보여요.
근데 아무래도 의료 사고 같아.
근데 일반인이 생각할 때는
병원은 기득권층이고
그렇다면 수사기관도 같은
친밀한 관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니까
지역에서는 부검을 안 하고 싶은 거죠.
섬이니까
그래서 미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검사를 통해서 연락을 한 거예요.
그 검사가 저한테 연락이 왔는데
아직 사망한 상태는 아니라고 해서
사망한 이후에 연락을 다시 달라.
그러고 끊었다가
한 보름쯤 있다가
중환자실에서 사망했다.
부검 영장을 청구했으니
제주도로 와서 부검을 해달라.
그래서 내려간 거죠.
그래서 제가
영상화학과 교수한테
CT 사진을 그냥 저기로 줬어요.
아무 정보를 주지 않고.
그랬더니 뇌출혈이 없다고 그래요.
자기가 부검한 뇌에서도
뇌출혈이 현재 찾을 수가 없고
그렇다면 사인이
마취 이후에 깨어나지 못한 거니까
어떤 구체적인 행위는 적시하지 못하겠지만
마취 중에 깨어나지 못한 것은
마취 연관 사망으로 봐야 된다.
하고 감정서를 냈죠.
그래서 이제
마취과사는
공상과실치사는
벌금은 되고
소송도 이제 다
아버지가 이기게 됐죠.
그때가 2003년인가
그러거든요.
20년이 지났으니까
그 친구가 살아있으면
40살 가까이 됐죠.
아직도 19살로 저는 기억하는 거고
아빠도 19살이 멈춰있고
그런 사인이죠.
안락사와 존엄사는 좀 달라요.
안락사는
이미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가족에 의해서
연명을 중단하는 것도
안락사에 들어있어요.
근데 존엄사는
내가 생전에
나의 뜻을 밝힌 것이 존엄사예요.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결국은
안락사 부분보다는
존엄사 부분을 좀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생전에 내가
불필요한 연명수단으로
내 생을 연장시키지 말아달라
라고 표현한 거라면
받아들여야 되지 않을까.
저는 가끔
존엄사나 안락사를 보면서
그 사람의 의지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될까를
생각해보거든요.
암이나 여러 가지로 봐서
본인이
나의 생이 이렇게 끝났으면 좋겠다고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저는 그건 좀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은
죽은 사람들한테
드리는 게 아니고
그걸 통해서
산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요.
우리들이
한 죽음으로부터
배워야 될 교운도 많고
블루타코의 영웅전을 썼던
블루타코가
다른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나 봐요.
그때
한참 뒤에서
자기 정말 예뻤던
딸이 죽었다는
편지를 받게 돼요.
그 자리에서
부인한테 편지를 써요.
이 편지를 받을 때는 이미
그 애를 장례 치르고
한참이 지났을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이 딸에 대해서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했고
예뻐했고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이
재밌는 거 웃은 걸 보고
크게 웃는 걸
우리는 경박스럽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어떤 슬픔도
과하게 슬퍼하면
주변 사람들은
이 슬픔의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나았지 않을까?
옆에서 생각할 거라는 거예요.
얘가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되지 않나?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애는
살아있는 동안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었던 존재입니까.
이것이
퇴색되지 않은 만큼만
당신이
절제 있는
슬픔을 갖기 바랍니다.
편지를 써요.
그걸 보면서
저도 가족들한테
그런 표현을 해요.
감히
저는 경험이 없지만
다시 오지 않는 그 순간들
보석 같은 시간들이
퇴색하지 않을 만큼만
슬퍼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그런 전반적인 것들이
제가 책에서 하고 싶었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