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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영상은 건강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콘텐츠로서 의학적인 진료를 대신할 수 없으며, 정확한 내용은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상가집이나 문상을 다니다 보면
급작스럽게 맞이하는 죽음이 대부분이다 보니까
아름답지 못한 경우들이 많거든요.
부통스럽게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보통 임종을 2, 3일 전에는
저희가 좀 짐작을 해볼 수는 있습니다.
이제 곧 돌아가시겠구나라고 하는 거를 나타내는 지표로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병원 혈액종양외과에서 일하고 있고요.
김범석이라고 합니다.
종양외과를 전공하고 있고
항암치료를 하는 의사예요.
제가 보는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말기암 환자분들이 많으신데요.
TV라든가 영화 같은 데서 보는 모습들이
현실에서 보는 임종이나 죽음과의 모습이랑
너무 차이가 많이 납니다.
텔레비전이나 영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 극중의 상황을 좀 미화해야 되는 순간들도 있고
그래서 선실에서 보는 임종의 모습들은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우아하거나
갑자기 돌아가신다든가 하는 일들은 많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제 말기암 환자분들 돌아가신다든가
이런 과정들을 보면
굉장히 서서히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아 이제 돌아가시겠구나라고 생각하더라도
매체에서 나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냥 이러고 있다가
어? 하고 돌아가신 일들은 별로 많지는 않습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도 여러 가지의 다른 형태가 있고
어떤 질환으로 인해 죽음을 맞느냐가
굉장히 좀 다르거든요.
외상에 의한 사망, 즉 추락사라든가 이런 거는
우리 몸에서 한꺼번에 훅 일어나는 일이죠.
더 이상 뭐 숨쓸 틈도 없이 일어나는 일인데
암과 같은 만성질환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겠죠.
암이라고 하는 것이 점점 이제 진행되고 나빠지면
우리 몸에 체력이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거든요.
이제 사람들은 이게 서서히 서서히 서서히 나빠지면서
예측 가능한 코스로 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몸이 버티는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를 넘어서면은
좀 급격히 나빠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아마도 상가집이나 문상을 다니다 보면
아이고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너무 아쉽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같은 맥락입니다.
서서히 서서히 예측 가능한 코스대로 가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이 버티는 한계에서 확 무너지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근데 이제 확 무너진다라고 하는 것이
1, 2분 안에 일어난 이런 일들은 아니고요.
이제 암 환자분들 같은 경우에는
그게 수주 내지는 수일에 걸쳐서 일어나게 되는데요.
단계들은 좀 있기는 있습니다.
가령 입맛이 없어지고 식사를 통 못하게 되고
숨이 차고 통증이 심해지고
이런 단계들은 암이 진행됨을 시사하는 나쁜 징호들이거든요.
그러다가 임종을 맞이하기 보통 한 48시간 전이 되면
소변 나오는 양이 굉장히 줄어들게 됩니다.
맥박수가 좀 빨라지고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려고 그렇고
호흡이 굉장히 거칠어지고 불규칙해지고
그러면서 의식이 나빠지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경우들도 있게 되고
그러다가 혈압이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다가
우리 몸이 버티는 한계를 넘어서면 임종에 이르는
그래서 보통 대략 임종을 2, 3일 전에는
저희가 좀 짐작을 해볼 수는 있습니다.
근데 이제 일주일 전, 2주일 전 이런 모습들은
사람들마다도 굉장히 좀 다 달라요.
가령 80대 어르신들 같은 경우는
기초 체력이 없으니까 잘 못 버티시거든요.
조금만 몸에 충격이 오더라도 금방 무너지는 경향이 있고
또 젊은 분들, 체력이 좋은 분들은
몸에 어떤 자극이나 안 좋은 데미지가 오더라도
조금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우리가 생각했었던 것부터 좀 길어지기도 하고
개인차가 분명히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 내가 임종이 임박해왔구나
이런 거를 느낄 수 있는 징후라든 것들이 있느냐
이런 건 있어요.
가끔 환자분들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평생을 돈돈돈돈 거리면서 지내시던 분이
갑자기 맛있는 거 사준다고 그러고
어디다가 기부를 하고 이런 경우들도 있고요.
사람들과 관계가 원만치 못해가지고
맨날 사람들과 트러블이 있고 뭐 이러던 분이
갑자기 관대해진다든가
변화가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얘기도 있잖아요.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어우 저 사람 이제 죽을 때가 다 됐나 왜 저래
뭐 이제 이런 경우들이 있는데
죽음이라고 하는 거를 한번 떠올려 보면
자기가 여태까지 평생 추구해왔었던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우들이 많이 있거든요.
저희가 속된 말로
죽을 때 돈 싸들고 가는 거 아니죠.
근데 내가 평생을 돈돈돈돈 거리면서 살았는데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왜 이렇게 살았었지 하는 생각을 할 수가 있고
죽음이라고 하는 거를 떠오르면서
인생관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분들은
저희가 종종 봅니다.
그런 경우에 인종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아닌데
죽음을 떠올림으로 인해가지고
삶이 더 풍요로워지거나
기존에 못했었던 일을 해온다든가
생체의 징후라는 게 호흡 숫자, 맥박 숫자, 혈압
이런 것들을 저희가 생체의 징후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건 혈압이 유지가 되느냐
유지되지 않느냐가 제일 중요하고
수축기 혈압이 50m로 떨어지게 되면
일반적으로는 심장 펌프질을 하는
제일 중요한 역할은 심장 자체의 피가 가지를 못하게 됩니다.
수축기 혈압이 50m 이하로 떨어지면
심장 기능 자체가 곧 떨어지겠구나.
근데 생각해 보면 사람이 5분 숨 못 쉬고
5분 심장이 안 치고 그냥 돌아가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인종이 거의 임박했구나
이제 곧 돌아가시겠구나라고 하는 거를 나타내는 지표로
수축기 혈압을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근데 이게 또 어떤 때는 과거로 설명이 안 될 때도
굉장히 많이 있어요.
가령 제가 기억 남는 환자분 중에서는
수축기 혈압이 거의 40, 50 이랬는데
일주일 동안 안 돌아가시고
인종이 지연된 경우들도 있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고
사람마다 개인 차이가 크기 때문에
예측이 어려운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은 어떻게 되겠느냐
너무 어려운 질문이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단 한 명의 외에도 없이
죽음이라고 하는 거를 맞이해야 되기 때문에
나는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질문을
안 해본 사람은 인류 역사상 아마 한 명도 없었을 거예요.
그만큼 죽음이란 무엇이냐
또 죽음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거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었던 질문이고요.
오랜 동안 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그동안 사람들은 종교에 많이 의지해서
그 답을 찾기도 했습니다.
종교마다 설명하는 방식들이 조금씩 다 다르고요.
어떤 종교가 맞고 어떤 종교가 틀렸다라고
단정 지어서 이야기하기는 굉장히 어렵겠죠.
근데 종교의 영역에서 설명하는 부분들이
과학으로 설명되기 좀 어려운 부분이 있긴 있는데
최근에 죽음의 마지막 순간들을
그래도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려는 시도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임사체험이라고 하는 건데요.
영어로는 Near Death Experience라고 하고
관련된 논문들이 이미 꽤 많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그건 어떤 거냐면
사람이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멈추면은
그냥 임종을 하는 게 예전에는 일반적인 코스였어요.
하지만 최근에 현대의학이 너무 발전하게 되다 보니까
급성 심근경색 같이 갑자기 심장이 멈췄는데
심폐소생술을 해가지고 멈췄었던 심장이
다시 뛰는 일들이 굉장히 심심치 않게 있거든요.
그러면은 그게 어떻게 보면은
저승길로 가다가 그 앞에서 유턴에서 다시 오게 되는 일인데
유턴에서 다시 오신 분들이
어떤 공통된 이야기를 하는 일들이 있었다는 거죠.
첫 번째 경험하는 거는
굉장히 밝은 빛을 보는 현상을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쓰러져가지고 갑자기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앞에 하얗게 강한 빛이 보였었고
너무나 마음이 평온했다.
굉장히 행복한 마음이 들었었고
유체 이탈의 경험.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붕 떠가지고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하고
또 먼저 돌아가셨었던 가족들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데리러 나왔었다.
이제 일관된 진술을 하시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예전에는 그렇게 죽다 살아나신 분들이
그런 얘기하면
아유 저거 뭐 또 그런 얘기를 해.
뭐 이러고선 넘어갔었는데
그것을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다 보니까
죽음이라고 하는 그 직전 순간에
어떤 벌어지는 이벤트들이 있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습니다.
또 한 가지 과학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들도 있는데요.
이제 가령 어떤 병원에서는
심폐소생술을 하는 응급실 위에다가
그림 같은 거를 좀 붙여 놓습니다.
그래서 위에서만 봐야지 볼 수 있는 그림인데
나중에 그분이 깨어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당시 심폐소생술 했었던 그 위에
그림 뭐 있었는지 보였냐 그러면은
밑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인데
위에서 보고선 이런 이런 그림이 있는 걸 내가 봤다.
이 사람이 어떻게 어떻게 행동하는 걸 봤다
이렇게 증언하는 얘기들이 좀 있거든요.
그런 거 보면은 야 이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지만은
그런 것들을 좀 데이터화해온 논문들도 꽤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반대의 논리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이게 뇌에 산소 공급이 차단될 때
후두엽 쪽에 산소가 먼저 차단되기 때문에
굉장히 강력한 빛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들도 있고요.
그것을 어떤 우연에 의해서 설명하거나
호르몬으로 설명하거나 이런 설명률도 있긴 있어서
아직 좀 찬반 논란이 많은 영역이긴 합니다.
근데 이제 그런 이야기들을
어르신들 중에 종종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너네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끙끙 끙끙 앓고 그러다가
큰삼촌 오실 때 보니까 눈을 번쩍 뜨시고서는
이름 한번 부르고 돌아가시더라
이런 이야기들을 종종 듣곤 해요.
과학으로 설명되는 건 아닌데
임종의 순간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라고 하는 생각도 해볼 수가 있겠고요.
또 우연히 눈을 뜬 건데
우리가 그 모습을
마치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었어
라고 믿고 싶어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일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죽음이라고 하는 그 순간은
한 번 일어나게 되면은
되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고
그렇게 해서 내가 다 사랑하지 못한 채
떠나버린 가족들을 회상을 할 때에는
아련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 감정들 중에서
좋았었던 순간을 추려내고 싶어하는 것이
남은 유족들의 일반적인 마음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까 고통스러웠었던 모습은
좀 기억하고 싶지 않고
그 중에서 조금 좋았었던 모습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 심리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 아닌가 하기도 하는데
요즘에 젊은 세대에 있는 분들은
죽음이라고 하는 걸 겪어볼 기회가
아마 전혀 없었을 거예요.
보통 사람이 죽음의 순간을
직접 보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가족의 죽음은 일반적으로 볼 수가 있거든요.
근데 요즘에 평균 수명이 80세 가까이 되고 그러니까
20, 30대 젊은 분들도
아니 우리 할머니 아직 살아 계셔가지고
돌아가시는 거 내가 본 적이 없어
이런 분들 되게 많거든요.
또 돌봄이라는 기능이
가정에서 외주화가 되다 보니까
설령 죽음이 임박해 있는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집에서 돌아가시기보다는
요즘에 다 병원에서 돌아가시게 되거든요.
근데 병원에 있다 보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고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들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한 번 죽고 나서
아 내가 죽어보니까 죽기 직전에
이렇게 인지가 되더라
라고 얘기해 준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뇌에 혈액 공급이 좀 끊긴다고 하더라도
짧게는 5, 6분 길게는 10분
뇌세포가 살아있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심장과 폐가 멈춰서
심폐하에 기준에서는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아직 뇌세포가 살아있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고요.
그러한 몇 분간의 찰나에는
인지 기능이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게
사람들은 마치 온 오프 스위치가 켜져 있는 것처럼
스위치를 키면은
스위치를 끄면은 죽음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온 오프 스위치 같지가 않고
서서히 서서히 줄어드는
조명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래서 죽음도 정의를 내리면
3가지 정도 차원에서 정의를 내릴 수가 있거든요.
첫 번째로는 심폐사
우리가 가장 흔히 알고 있는 죽음이고요.
심장이 멈추고
폐가 멈춰서 호흡이 안 되는
또 두 번째로는 뇌사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이게 현대의학이 좀 복잡해지면서
이제 나온 개념인데
심장과 폐는 아직 뛰고 있는
하지만 뇌에서 호흡에 관련되는
우리의 중요한 중추는
이미 손상을 받아서
뇌가 먼저 죽음에 빠져버린
저를 이제 뇌사라고 이야기를 하고요.
또 세 번째는 세포사라고 하는 개념이 있어요.
이거 심장과 폐가 멈추고
산소 공급이 안 되면
우리 몸의 세포들은
산소 공급을 못 받고
영양분의 공급을 받지 못하니까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세포 하나하나가
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짧게는 5분에서 10분 정도 걸리기도 하고
어떤 조식들은
산소가 없어도 한 20분, 30분 정도
있다가 세포가 죽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몸에서
모든 세포가 다 없어지고
세포사에 이르는 단계를
우리는 시신이 부패한다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즉 죽음이라고 하는 게
다양한 측면으로도 설명이 가능하고
서서히 서서히 다가오는
스펙트럼과 같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거예요.
우리 몸에서 가장
산소 공급이라던가
영양 공급이 안 될 때
취약한 부분은
신경 세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령 뇌 세포 같은 부분이
가장 취약한 부분인데요.
갑자기 어떤 이유에서든
심장마비가 왔다던가
폐가 문제가 생기고
호흡이 안 된다고 그럴 때
저산소성 허혈이라고 그래갖고
피가 공급이 안 될 때
가장 먼저 손상을 받는 부분이
뇌에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아마 주변에 보면
뇌졸중 같은 걸 겪고 나서
뇌 일부가 손상이 돼서
재생이 안 돼서
여러 장기적인 후유증을 겪는 분들
우리가 간간히 볼 수가 있는데요.
뇌라고 하는 부분은
그만큼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산소 공급이나
혈액 공급이 안 될 때
가장 먼저 손상받는
제일 죽음에 민감한
그런 장기라고 볼 수 있고요.
또 반면에 근육과 같은 장기는
산소 공급이나
영양 공급이 안 되더라도
몇 십 분씩 버틸 수 있는 걸로 되어 있어요.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이
하나의 공통된 DNA와
유전자를 갖고 있고
동일한 세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각자 하는 역할과
주변 환경에 따라 가지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들은
조금씩 다 다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거를
두렵게 생각하는 근처에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요.
첫 번째는
죽음이라고 하는 거는
여태까지 내가 해왔었던
모든 걸 무력화시킬 수가 있거든요.
돈, 명예, 권력
내가 평생을 거쳐서
추구해왔었던 가치관이라든가
쌓아올린 것들이
죽음 하나로 인해서
모든 게 다 무너져내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내가 정말 열심히 살면서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많이 잡고 그랬는데
죽기 너무 아깝다.
나는 안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 하시는 건
당연할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두려운 게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거를 또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추구해왔었던 것보다
더 중요한
어떤 놓치고 있는 것들을
죽음에 이르러서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거든요.
그래서 그게 과연 나쁜 것인가?
이거는 좀 잘 모르겠어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갖는
두 번째 이유는
죽음의 순간에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는 걸 많이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령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가
제도화가 제일 안 되어 있는
나라 중에 하나거든요.
말기 암 환자분들 돌아가실 때
진통제를 충분히 쓴다든가
적극적으로 우리가 돌봐드리면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많이 있지만
여러 의료 제도의 문제로
호스피스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호스피스 병원도 몇 군데 없고
그러다 보니까
편안한 임종, 고통 없는 임종이라고 하는 게
인간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권리가 아니라
특정한 몇 명만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자신의 부모님, 가족
이런 분들이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는 걸 보면
죽음 이퀄 고통
이 사고 방식이
머릿속에 탁 박히게 되거든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걸 이야기를 할 때
호스피스 완화 이루 이야기를
좀 안 할 수가 없는데
그런 부분들이 좀 제도적으로
많이 고쳐진다면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좀 바뀌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시간이 없다는 문제가 좀 큽니다.
일종의 악순환인데
죽음 그러면은
부정적인 거, 고통
떠올리기조차 싫은 거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
이렇게 되다 보니까
부모님의 임종을 준비를 하면서도
어려워서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우리가 보통
결혼한다고 그러면
1년씩 준비하기도 하고
대학 입식으로는
6년씩 준비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생로병사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죽음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는
시간을 거의 안 쓴다고 생각을 하면 돼요.
그래서 어? 어? 어? 하다가
돌아가시게 되고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맞이하는 죽음이
대부분이다 보니까
죽음의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한 경우들이 많거든요.
그런 이유로 우리가 죽음을
조금 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 다를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죽게 될 때
나는 어떻게 죽으면 좋지?
그럼 저는 딱 세 가지가 떠오르거든요.
첫 번째는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고통스럽게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두 번째는
저는 좀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얼마나 더 살지
이런 건 저도 모르지만
저도 제 나름대로
살아온 인생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인생을 정리해야 되는데
뭐 일주일 만에 정리하세요.
이러면 안 될 거잖아요.
적어도 제가 했었던 일들
마무리하고 하는데
뭐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는
충분한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게 두 번째고요.
마지막 세 번째로는
저는 제가 죽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둘러싸여가지고
외롭지 않게 죽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건 저의 바램이거든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어요.
근데 중요한 건 뭐냐면
그렇게 한 번 생각을 해본다는 거
자체가 중요한 거 같아요.
특히 이제 죽음을 터부시하고
논외로 하는 거를
보편화하는 문화에서는
죽음 얘기하는 걸
재수없다고 그러고
터부시여기다 보니까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안 되고 있거든요.
어떤 식으로 되는 게 좋겠다고
미리 생각할수록
삶이 좋아지고
죽음의 모습도 내가 원하는 형태에
좀 가까이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반대예요.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분들이 저한테
그런 질문 되게 많이 하세요.
선생님 저는 이렇게
살고 싶은 생각 하나도 없어요.
좀 빨리 보내주세요.
이런 이야기 하시는 분들 많거든요.
근데 요즘 뉴스 보면
캡슐 같은 데 들어가서
손쉽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기계가 나왔다는
그런 뉴스들도 있죠.
근데 제가 환자분들하고
가만히 좀 이야기를 나눠보면
빨리 죽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깊이 있게 그 내면을 보면
정말 죽고 싶은 거가 맞나?
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아요.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기가 싫다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개인적으로는
어떤 생각 갖고 있냐면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이렇게 살기 싫은 사람들만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래서 안락사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존엄한 삶
좋은 삶이 선행되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가령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제도가 잘 정착이 돼서
임종하는 순간에
육체적인 고통을
최소화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까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빨리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과연 하실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안락사 자체가
옳냐? 틀리냐?
이런 것보다도
지금 삶을 어떻게
좋게 만드느냐로
초점을 바꾸면
문제가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아요.
소위 무의미한 연명의료라고 하는 게 있어요.
만약에 급성 심근경색이 오고
긴박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에서 살아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심폐소생술 당연히 해야죠.
하지만 암과 같은 큰 병이
비가역적으로 나빠지고 있을 때
심폐소생술을 한다고 해서
소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필요한 고통만 더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저희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라고 합니다.
근데 우리나라 법이
굉장히 야속한 부분이 있어서요.
내가 그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문서를 써놓지 않으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한다고
디폴트로 그냥 간주를 해버리는 거예요.
왜? 생명은 소중하니까.
근데 생각해 보면
사람이 죽을 때
나는 심폐소생술도 하고
중간자식도 하고
갈비뼈 부러지고 뭐하고
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고 싶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100이면 100?
나는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를 편안하게 보내주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근데 거기에서의 문제점은 뭐냐면
그때 생각해 본 죽음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본
가상의 죽음인 거죠.
하지만 그 죽음이
실제로 나한테 다가와서
현실로써의 죽음이 되면
생각이 바뀌는 경우들이 많아요.
이럴 줄 몰랐었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도 있고요.
그래도 나는 고통스럽지만은
딸이 미국에서 오고 있는데
인공호흡기 잠깐이라도 하고 싶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게 틀린 얘기는 아니거든요.
그래서 선택의 문제인 건데
문제는 죽음에 대한 거를
실체로써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막상 나한테 어떤 식으로
죽음이 구체적으로 다가올지에 대한 정보가
굉장히 없다라고 하는 측면이 있는 거죠.
그래서 현실에서는
연명이로 안 한다고 그랬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하는 경우도 있고요.
또 반대의 경우도 있고
상황에 따라 갖고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뭐냐면
다른 사람의 죽음, 다른 사람의 고통에도
조금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죽음을 좀 터부시하는 문화에서는
타인의 죽음 그러면
타자화시켜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거는 그 사람의 일, 나랑은 상관없는 일
선을 하나 쫙 걷버리는 거죠.
그러면 암, 죽음 이런 것들은
나와 무관한 일이 되는 것 같으니까
당장은 편안하거든요.
근데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고
평균 수명만큼 산다 그러면
3분의 1의 확률로 나도 미래의 잠재적인 암환자가 되는 거고
그래서 주변의 암환자분들
조금 암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
임종에 가까우신 분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그분들을 좀 도와드릴 일도 생기게 되고요.
또 저런 일들도 내가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일인데
나에게 저런 일이 닥친다면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구나라는 거를
미리 생각해볼 기회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주변에 조금 몸이 안 좋으신 분이 있거나
임종에 가까우신 분이 있으면
자주 좀 뵙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 삶의 방향이 정해지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임종의 마지막 순간이 굉장히 좀 어려워요.
저희 병원에는 임종실이라고 그래서
임종이 임박해오신 분들을
좀 편안한 1인실에서 가족들이 같이 면회할 수 있고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든 그런 병실이 하나 있거든요.
근데 이제 임종실 회진을 돌거나 하다 보면
많은 가족분들이 우시는 경우가 많아요.
또 어떤 경우는 갑자기 친척분들 오고 그러면서
아이고 왜 이렇게 됐냐 나 알아보겠냐
눈 좀 떠봐라 이러면서 대성통곡을 하시는 경우가 있거든요.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이게 입장을 한번 바꿔놓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이제 임종이 임박해있어요.
그래서 내가 임종방에 누워있어요.
근데 이제 가족들이 이렇게 왔는데
안절무절 못하고 울고 불고 난리치고
아빠 없으면 이제 난 어떻게 살아나고 그래 막
감정에 치우치게 되면 떠나야 되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할까요? 불편할까요?
물론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근데 그거 슬프다는 거는
지극히 나 중심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거든요.
그래서 임종을 갔던 가족분들께는
제가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드려요.
울지 마시라.
지금은 환자 중심으로 생각을 해야 된다.
본인의 감정에 치우쳐서 중요한 환자가
임종 준비를 제대로 못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거꾸로 환자 입장에서는 가족들이
아버지 그동안 고맙고 사랑하고 혼자 먼 길 가야 되지만
나중에 우리 또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거예요.
아빠는 먼저 가지만 슬픔을 이겨내고
우리의 삶을 살아갈게요.
이렇게 얘기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 상황에서 아빠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그래
감정에 치우치면 임종을 갔던 환자분한테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이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하지만 임종을 갔던 가족분들께는
꼭 그런 이야기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