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도 씹어먹던 쌍용차가 망할뻔 했던 이유

김승현 안피디의 스포일러
23 팔로워
현대차도 씹어먹던 쌍용차가 망할뻔 했던 이유
■ 아정당 유튜브 : https://bit.ly/3PkdMge
■ 아정당 요금표 확인하기 : https://bit.ly/3v8VPKV
□ 빈 공간
□ 빈 공간
· 광고·협찬 문의 : [email protected]
· 김승현 안피디의 스포일러
#쌍용차 #kgm #kg모빌리티
뭐 요즘 세대한테 굉장히 낯선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쌍용차는 한때
현대차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차들을
만드는 브랜드였습니다 현대차는 미스
BC 쌍용차는 벤츠와 기술 제외를
했었고 체어맨과 무소 심지어 이스타나
아지 어떤 차든 벤츠의 손길이 안
닿는 차가 없었을 정도였거든요 그랬던
회사가 IMF 때는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가 대우차가 망한 이유로 잘
나가다 싶더니 아마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굉장히 살벌한 장면들이 뉴스에
많이 나왔던 사용차 노주 사태 이거
그냥 말로만 듣고 이때 어떤 있었다
정도로 넘어가는게 대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꽤 중요한
사건이라고 봅니다 왜냐면이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거든요 앞으로 자동차 회사와
노동자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알 수 있고요 그래서 오늘은
정치 택은 싹 빼고 쌍용차 노조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빠르게
정리해
[음악]
드리겠습니다
쌍용차 노조 사태 뭐 사진이나 자료
화면으로만 접하거나이 당시에이 사태를
뉴스로 지켜보던 분들은 체감상 반년
이상 파업을 한 것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저도 엄청나게 오래한 건 줄
알고 있었는데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생각보다 그리 오래한 건 아니더라고요
2009년 5월 21일부터 8월
6일까지 총 77일간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럼 대체 쌍용차 노조
사태라는 건 뭐냐 사전적 의미처럼
정의하면 었 습니다이 당시 민주
노총과 금속 노조 쌍용차 노조들이
평택 공장에서 무기한 전면 총파업에
돌입했고이 과정에서 경찰과의 무력
충돌 그리고 희생자도 발생한 굉장히
아픈 사건 중 하나입니다 오징어
게임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기도 한데
무기한 파업은 대체 왜 일어났던
걸까요 이건 다시 1997년 IMF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당시에는 규모가 꽤 크던
대기업들도 다른 대기업한테 넘어가고
그러던 시절입니다 정부에서 어의
현대차 기아차 좀 민수에 가고 거
대우차는 쌍용차 좀 인수해 가죠
이러면 현실이 되던 시절이 든요이
당시 쌍용차는 대우차에 매각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대우차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부도가 났고 이걸 계기로 다시
쌍용차는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
연생산량 16만대 이상을 기록할
정도였는데 2004년에 중국 상하의
자동차에 매각되면서 모든 사건이
전개됩니다이 당시 정부와 채권단인
결정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여기서부터 꽤 많은게 꼬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거든요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당시 상하이 차가 핵심
기술하고 연구원들이 빼돌린 거 말고는
이렇다 성과가 없었잖아요 이때 당시
나왔던 차들 디자인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상하의 차가 전혀
진심이 없는 상태로 회사를 운영하니
신차 생산도 원활하지 않고 결국
적자가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이런
상태가 유지되면서 끝내 2009년
1월에 쌍용차는 서울 회생 법원에
법정 관리 신청을 하게 됩니다 그 해
2월에는 법원의 회생 절차 계지가
결정됐는데 비교적 최근에 쌍용차가
회생 절차에 들어간다 에디슨 모터스가
인수를 노리고 있다 말이 많을 때가
있었죠이 일이 있기 전에도 회생
절차가 있었다는 겁니다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드러났는데 당시
쌍용차 중국인 이사의 임기 만료와
법정 관리 신청 시기가 일치하면서
상하의 차가 철수하려고 그린 큰
그림이라는 의혹도 있었습니다 그 뒤로
기술을 빼돌린 사실도 언론의 보도가
됐으니 아예 의혹이라고 보기는
힘들겠죠 여기서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회사가 어려워서 경영을
다시 정성하는 나가는 비용을 줄여야
하죠 그래서이 당시에 전체 인원이
36% 이원수로 치면 2646명을
대상으로 인력 감추 관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노조원들이 반발하면서 사건의
본격 됩니다 2009년 5월 21일에
금속노조 사용차 지부 노조원들이 평택
공장에서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고
26일부터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공장에 들어가는 걸
막아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쌍용차는
5월 31일 오전 8시 30분 직장
패에 선언을 하고 6월 8일에는 희망
퇴직자를 제외한 976명 아테 정리
해고를 통보해 버렸습니다 6월
26일에는 정리 해고자 976명 중
2012년까지 200명 정도 되는
인원을 무구 휴직 및 우선 재고용
하고 450명 테 희망 기회를
주겠다는 회사측의 수정안이 나왔습니다
노조는 공장 전과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걸 거부했고 회사 직원들이 공장
진입을 시도합니다 회사 직원
3200명이 기숙사 문화고 철조망을
통해서 공장 안으로 진입하자 노조가
쇠파이프 세총 지계차 같은 걸
동원해서 사측 지원들을 몰아냅니다
이때부터 노조와 사측의 대립이 본격화
되는데 노조 측에서는 도장 1
공장과이 공장에서 대기하면서 사측으로
새총을 발사하고 화염병을 던지며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민주 노총을
비롯한 470명이 노조원들은 정 문
우측 주차장에서 9월을 외치면서 노조
지원 유세를 버렸고요 이날 쌍용차
대표가 철수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사측
직원들은 우선 해산합니다 이때 노조의
저항 수준이 너무 심각할 정도로
커지니 26일 무력 충돌 이후에
경찰은 특수본 설치하고 공권력 투입을
결정합니다 정치적 논란은 이때 많이
생기게 되는데 이건 배제하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만 쭉 보자고요 우선
7월 6일에는 압수 수생 영장이
발부됩니다이 영장이 발부되면서
공권력이 투입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진 거죠 7월 11일에는 실제
로 공장주 출입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출입구를 공권력이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는 살벌한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경찰은 우선 공장
쪽 도로 모두의 검문소를 설치하고
금속 노조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출입을 봉쇄했고이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들도 출입 통제를 당했습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출입 통제를
받아서 정문 앞에서 파업에 참가하던
노동자들과 농성도 참여했고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측 직원들한테
둘러싸여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합니다이 과정에서 지원 시위를 저지하
고 대기하던 경찰 병력과 충돌 하는
일도 발생하고 회사 측에서는 물과
음식을 공장 내에 반입하지 못하게
하면서 이것도 논란이 됐습니다 경찰은
노조원들이 던지는 화염병에 대응한다는
걸 명분으로 2월 25일부터 8월
5일까지 체로 원액 2리가 섞인 물
20만 리를 살포한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오늘날 노조와 정부의
충돌에 대한 감루 일박의 불씨가
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규모도
상당했습니다 경찰 진압 작전 중에는
최초로 헬기를 이용한 혼합 살포가
이루어졌고요 7월 20일에는 사법부의
명령이 떨어 입니다 수원 지방 법원이
평택 공장을 회사측에 인도하라는 강제
집행 명령을 내리고이 명령을 계기로
당시 경기 지방 경찰청 인원을
투입됩니다 34개 중대 무려
3,000여명의 다르는 경찰을
동원했는데 이날 집행관 변호사 사측
직원 등 네명을 강제 집행하려고 세
번에 걸쳐 도장 이공장 앞으로
진출하려 했다가 노조가 저항하며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이날 오후 금속
노조는 정문앞 공터에서 공권력 투입
규탄 기자 회견을 가진다고 선언합니다
경찰에 해산하면서 기자 회견은
무산됐고 7월 24일 는 뉴스에서
많이 보던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노조 600명이 도장 공장 복지동
같은 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여기서 170명 정도 되는 인원들이
도장이 공장하고 오페스 처리장
주변에서 화염병과 볼트를 투척합니다
지게차 그리고 불을 붙인 페 타이어도
동원해서 경찰 투입에 저항했고 오후
3시에는 경찰 특공대 세계 제대 네개
기동 부대가 로디우스 차체 공장에
진입하고 그 1대를 장악하자 옥상에
있던 노조원들이 화염병을 투척하며
저항합니다 경찰은 화재 위험을
명분으로 헬기로 최대액 비닐 지를
투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고이 날은
진짜 말이 그대로 아수라 장이였습니다
오후 5시 쯤에는 노조원들이 차체
공장에 방화를 시도하려 해서 소화기로
지나를 하고 경찰 15개 중대가 모든
출입문에 배치되기도 합니다 7월
28일이 되고 경찰은 진압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식량과 물 반입도
막아 버립니다 노조원들의 가족 대과
사회단체 소속 인원들이 물을
전달하려다 사측 직원에 가로 막히기도
하고 다음날에는 민주 노총에서 물을
전달하려고
행진하려는 합니다 8월 4일에는
경찰이 노조원들이 주요 거점을
확보하려고 복지동 그 조립 공장
진입을 시도합니다 노조측은 세총으로
볼트를 발사하고 카이런 차체 공장
옥상에 신화를 뿌려 방화를 하는 등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일시 후퇴합니다
8월 5일 아침 8시 경에는 경찰이
크레인이 연결된 컨테이너 박스와
사다리를 이용해서 조립 공장 옥상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합니다 10시 쯤에는
경찰 특공대랑 기동 부대원들이 해이랑
고가 사다리 차를 이용해서 도장
1공장 옥상에 진입하고 이렇게 복지동
옥상 카이런가격 차체 공장을
순차적으로 확보하고 사측 직원
3천명은 공장 자재 정리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날 12시 노조측의 본관
뒤 컨테이너 박스에서 실무 교섭을
버리고 노사 합의서 조인식을
개최하면서 77일간의 파업이
종료됩니다 왜 일어난 일인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노조와
경찰은 각각 뭐 때문에 비판을 받았냐
당시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
그리고 노조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무력 행사를 하게 됩니다 원인 자체는
상하의 차이의 빌런 짓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후에 일어났던 협상 과정에서
화염병의 세총 심지 지게차까지
동원해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경찰
병력을 비롯한 국가 자산 손실도
상당했습니다 파워브라는 취지는 이해를
하나 그 과정 때문에 비판을 받았던
거죠 경찰뿐만 아니라 노조원들도
부상과 피해가 상당 했으니까요 반대로
경찰쪽 비판도 계속 됐습니다 경찰
측에서는 안전을 중심으로 인내심을
갖고 대응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헬기도 동원되고 특공대까지 가세하면서
진역 과정에서 일어난 부상과 물리적
피해가 상당 했잖아요 부상자는
143명 파손된 경찰 버스는 23대
파손된 장비는 140 48점이
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이 당시 경찰은
노조를 상대로 20억 5,440 원에
달하는 피해액을 배상하라고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했고 법원은 노동자들이
13억 7,670 원을 내야한다고
판결합니다 상소 이후에 서울고등
법원에선 11억 372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대법원은 설 고법
항소심 일심 판결과 같은 똑같은
내용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절차 이후
2010년 10월에 쌍용차는 마인드라
매각 됐다가 비슷한 이유로 경영
악화에 시달리면서 2022년 8월
26일 지금의 지 그룹이 인수를 하게
됩니다 참 여러 가지 아픈 역사와
함께 결론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순수
기업으로 돌아왔는데이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이걸 통해
배울 수 있는게 뭔지 또한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대화가 참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죠
사측은 노동자들과 협의하도록
노력했어야 하고 노동자들은 밥그릇
싸움이기 하지만 무력 시위로 번지지
않도록 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건 이제 교과서적인 얘기고
좀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하자면 노즈를
구분 without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때 당시 파업 사태의 중심에
있던 건 누군 가요 쌍용차 민주노총
금속 노조 그리고 정부와 경찰
인력들이 사실 이게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산 노동자 파업 파면
현대기아 차도 많이 떠오르실 텐데
여기도 이제 민주노총이란 말이죠
무력시위 장면이 꽤 많이 등장했고
매년 임다형 문제로 이슈가 많이
되기도 합니다 임단협에서 요구하는
성과급 그리고 그에 대한 명분이
불명확하다는 것 때문에 저 또한
논평을 많이 했는데요 지금은 또
kgm 노조가 이런 강성 태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작년 기준으로 13년째
파업을 안 한 건 물론이고 최근에
쌍용차 회생 절차 당시에도 어땠나요
회생 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다만
노동자가 일방적으로만 희생하도록
강요하지 말아 달라 이것도 뭐
공장이나 회사를 점거하고 한 마이
아니라 기자 회견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입니다 결과적으로 kg
그룹이 안정적으로 인수해서 지금이
kgm이 됐고요 많이 안 알려져
있지만 지난 2019년 10월에
쌍용차는 금속 노조에서 탈퇴했습니다
노조원들이 투표를 통해서 탈퇴를
결정했고 이소리는 즉 2019년
이후부터는 민주노총 금속 노조 소속이
아닌 기업 노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조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냐에 따라 추가하는 바가 살짝 다를
수 있거든요 노동자가 잘 살아야
한다는 건 모든 노조의 기본
전쟁입니다 그런데 기업 노조는 기업이
잘돼야 노동자도 잘된다는 방향에
공존합니다 왜냐면 말 그대로 기업
아래에 있는 노조이고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민주 노총 사나 금속 노조 그리고
여기에 있는 현대차 지부나 기아차
지부는 노동자로서 현대 기아차 소속이
맞지만 노조원으로는 현대 기아차
소속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기업
노조가 아니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노조원인 거죠 그래서 비교 저 기업
노조보다 회사의 어려움 같은게 덜
타격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겁니다
기업 노조는 그냥 기업과 노동자가
잘되는 방향으로만 가면 되는데 민주
노총은 정치적 행보도 고려하면서
움직일 수밖에 없거든요 민주노총
스스로도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주장하기 때문에 실제로 노동 이슈만
다루는게 아니라 정치적 이슈도
개입하고 다릅니다 남북 정상회담 때
사드 의체를 요구하겠다고 한게
대표적인데요 그래서 오늘 이야기한
역사적 사실들이 중요한 건 물론이고요
오늘날 알 수 있는 이런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문제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노조라는게 노동자들을 위한 조합
단체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노동자이기도 한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
우리 아는 왜 이렇게 다를까 싶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거죠 어디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주장하는 바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문주 노총 소속이 아닌
시민들이 보기에는 현대차를 비롯한
노조의 행동이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9년과 2022년 모두 쌍용차는
경영이 어려워서 회생 절차 에
돌입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동일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너무나도 다르고 2009년에는 금속
노조 2022년에는 기업 노조 있다는
점 또한 다릅니다 회생절차 과정에서
일어난 노사간의 모습도 너무 달랐고요
왜 그랬을까요 판단은 보시는 분들
있게 맡기겠습니다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용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의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저는 안피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