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사이트】 中 탐관오리들의 대반전! 감옥 갔다 오니 억만장자! 중공 반부패의 충격적 민낯! (보도 이태연)

칸중국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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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이태현입니다.
중국공산당체제에서함관오리는단순히
공직사회의오점이아니라오히려
중공체제의훈장처럼여겨지고있습니다.
중공의반부패운동은거대한고기
분쇄기처럼 관료들을 끊임없이 갈아넣고 있고
부추를베어내는듯한무리씩끊임없이
제거하는방식으로진행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형기를 감형받고 출소한 부패
관리들은지금어떻게살고있을까요?
수억위안의부패를저지르고막강한
권력을휘둘렀던고위관리들은모든
것을잃은채몰락했을까요?
많은 사람은 이들이 출소 후 빈 툴툴이로
전락했을것이라고생각할수있습니다.
하지만이는중국의절대권력체제가
만들어낸인맥의잔존가치와과거권력이
지닌영향력을지나치게과소평가한것입니다.
일당독재와권력지상주의가지배하는
사회에서는실각과출소가곧권력의
완전한소멸을의미하지않습니다.
과거쌓아올린인맥과영향력이여전히돈벌이
수단으로활용될수있기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살펴볼 8가지 사례는 부패관리들이
권력을잃은뒤에도어떻게과거의영향력을
이용해살아가는지그리고그이면에어떤
구조적문제가숨어있는지를보여줍니다.
1. 장희강은 1954년생으로 호북성
천문시의전시위원회서기입니다.
그는중국공직사회에서이른바
오독서기로악명을떨쳤습니다.
여기서오독이란허풍, 관직매매,
성매매, 도박, 부패를가리킵니다.
중공검찰은 장희강이 그에게
뇌물을 받고 공금을 횡령했으며
백여명이 넘는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유지했다고지적했습니다.
또한정치적으로실적을부풀리는
허위과장풍조를 조장하고 권력과
성을거래했다는혐의도받았습니다.
그는 2002년뇌물수수혐의로
징역 15년을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여러차례감형을받은
끝에 2010년출소했습니다.
출소후에는과거관료사회에서쌓은인맥을
활용해 지인들의 도움으로 찻집을 열었습니다.
이후 음식과 서예, 국악연구에 관심을 돌렸습니다.
그는 이후 국악전문가를 자처하며
강좌를열고책을출판했습니다.
사회문제에대해서도의견을내놓으며비교적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때부패와각종부도덕한행위로
비판받았던인물이이제는강단에올라
대중에게인의도덕을가르치는것입니다.
과거의 행적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 놓인 극명한 대조입니다.
입으로는 인의도덕을 외치지만 과거의 부패와
비행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 묻고 있는 것일까요?
장희강의 사례는 단순히 한 부패 관료의 인생
역전을 넘어 권력을 잃은 뒤에도 과거의
인맥과영향력이새로운생존기반으로
활용될수있다는체제를보여줍니다.
이구효환은 1958년생으로 중국
국가통계국장을 지냈으며 제10기
전국정치협상회의위원을역임한고위관료입니다.
2006년 그는 상하이 사회보장기금 사건에
연루됐고 중혼 혐의까지 제기되면서 당적과 공직을
모두 박탈당하는 쌍계 처분을 받았습니다.
재직당시한여성기자가그의
아들을출산했다는보도도나왔습니다.
2007년 구효원은 중혼죄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2008년 2월 출소한 뒤 그는 곧바로
여러유명기업의수석경제학자로영입됐습니다.
각종금융포럼에참석하며활동을재개했고책
출판과강연등을통해수익을올렸습니다.
중국 자본시장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사회
엘리트계층으로복귀한것입니다.
2018년 7월에는 양광보험그룹 사나
양광자산관리주식유한회사의
최고전략책임자로취임했습니다.
국가핵심통계를관리하던고위관료가
실각하고 실형까지 선고받았지만 출소 후
그의 경력은 사실상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기업과자본가들은그를외면하기는커녕
오히려기빈으로대우했습니다.
그배경에는과거관료사회에서쌓은인맥과
중국공산당체제내부의정책흐름을
읽는능력이있다는분석이나옵니다.
결국이사례는중국의권력형비리
처벌이 실질적인 사회적 퇴출로
이어지는지에의문을제기합니다.
고위관료에게감옥은몰락의끝이아니라잠시
경력을멈춘뒤더큰자본과인맥을바탕으로
복귀하는 통로가 된 것 아니냐는 비판입니다.
징역형을 선고받고 출소한 전직
성장이 불과 몇 년 만에 수천만 위안의
재산을 가진 부호로 변신했습니다.
강서성 전성장 예흔채의 이야기입니다.
예흔채는 부패와 직권남용,
사적인 청탁, 밀수 비호,
기밀누설등각종비위의혹에휩싸였습니다.
특히자신의권력을이용해부적절한
관계에있던여성에게막대한경제적
이익을제공했다는의혹도제기됐습니다.
1986년 그는 사리사욕을 위해 직무를 부정하게
처리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1989년 출소한 예훈책은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어민간기업을설립했습니다.
그는 불과 몇 년 만에 수천만 위안의
자산을보유한부호로성장했습니다.
지역에서상당한영향력을행사하는
사업가로자리잡았습니다.
일반적인 전과자들은 출소 후 경비원
일자리조차구하기어려운현실입니다.
그런데전직고위관료였던그는어떻게
단기간에막대한부를축적할수있었을까요?
그배경으로는재직시절형성한권력인맥과과거
특혜를주고받았던기업인들의지원을지목합니다.
과거권력을통해제공한혜택이출소후
사업기회와재산으로돌아왔다는주장입니다.
결국이는부패종식이아니라권력을통해
형성된부가민간사업의형태로이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낳고 있습니다.
자, 뇌물수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전직고위관료가출소후다시불법업체의
뒤를봐주다재수감됐다는주장이나왔습니다.
광동성 주해시 전 공상국장 종류순의 사례입니다.
2001년 당시 52세였던 종류순은
뇌물수수와 그의 재산의 출처불명
혐의로징역 15년을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수감기간은 약 8년에 그쳤습니다.
2009년감형으로조기출소했습니다.
문제는출소이후였습니다.
종유수는 과거 공상행정관리분야에서 쌓은 인맥과
영향력을 이용해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불법업체의고액연봉고문으로활동했습니다.
과거함께했던부하직원들과의관계를
이용해단속기관의움직임을미리빼돌려
불법업체에전달했다는것입니다.
감독해야할기관의내부정보가오히려단속을
피하는수단으로악용됐다는주장입니다.
결국그는단속정보유출문제로다시
수감되는이른바두번째감옥행을맞았습니다.
이 사례는 부패 관료가 형기를
마친다고 해서 부패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아니라는점을보여줍니다.
공식직책을잃어도과거권력으로
형성한인맥은남습니다.
자신이발탁하거나승진시킨인물들과의관계를
통해감독정보를얻고불법사업에도움을
주며다시이익을챙길수있다는것입니다.
핵심은바로여기에있습니다.
부패한관료한명을처벌해도그를둘러싼인맥과
이해관계가그대로남아있다면부패는사라지는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엔 안희석 남부현
전현위원회 서기 은광립입니다.
뇌물수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전직 현위원회 서기가 출소한 뒤
국유기업의 부총경리로 승진했습니다.
그러나그는다시부패혐의로체포됐습니다.
2001년 은광립은 관직매매와 그 액의 뇌물수수
혐의로징역 10년을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실제복역기간은 5년에불과했습니다.
2006년 중국 관영 신화사는 그를
대표적인사례로소개했습니다.
같은해그는가석방으로출소했습니다.
출소 직후 은광립은 안위성 농간그룹 산하 안위성
농업서비스주식유한회사에입사했습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해 부총리 경리까지 올랐으나
국유자산사적분배혐의로다시체포됐습니다.
부패실형을선고받은인물이출소하자마자
국유기업의핵심임원으로복귀하고결국
두번째형사처벌위기에놓인것입니다.
이사례는중국의부패처벌이과연실질적인
퇴출로이어지는지의문을제기합니다.
국민의재산을관리해야할자리에부패전력이
있는인물이다시기용되고그가또다시비리에
연루됐다면문제는개인의일탈에만있지않습니다.
인사와감독체계자체에도허점이있는것
아니냐는비판이나올수밖에없습니다.
결국권력과인맥을유지하는관리에게
감옥은정치적생명의끝이아니라잠시
멈추었다가다시복귀하기위한과정에
불과한것인가라는의문이제기됩니다.
6. 뇌물수수로징역 8년을선고받은전직
고위관료가출소후폐품사업을사실상독점하고
대형제철소의 부공장장으로까지 복귀했습니다.
하남성 정주시 전시위원회 상무위원이자 공주시
전시위원회 서기였던 양진의 이야기입니다.
양진은 1996년 뇌물수수죄로
징역 8년을선고받았습니다.
2004년 2월조기출소한그는
곧바로사업에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출소후그의사업은
일반적인배품수거와는달랐습니다.
그는 과거 공업도시에서 쌓은 인맥과 자원을 활용해
지역의배품수거시장을사실상독점했습니다.
사업 첫해에만 순이익이 10만 위안,
한화 약 2천만원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월수입 1만 위안 약
200만원을 넘기는 고소득자가 됐다는 것입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그 이후의 행보입니다.
양진해는 대형제철소의 부공장장으로 영입돼
생산업무를 총괄하며 기업경영진에 복귀했습니다.
여기서의문이생깁니다.
뇌물수수로 실형까지 선고받은 전직관료가 어떻게
출소직후부터안정적인사업기반을확보하고
대형제철소의 고위직까지 맡을 수 있었을까요?
그 배경으로 과거 권력을 행사하며 형성한 인맥과
산업현장에 남아있는 영향력을 지목합니다.
출소 후의 성공이 단순한 자수성가가
아니라 과거 관료 시절 쌓은 관계와
자원에힘입은것아니냐는의혹입니다.
양진애는 출소 후 폐품을 수거하며
스스로생계를꾸렸다고주장했습니다.
그러나일반서민들이 3년차를몰고
거리를돌며고물을모으는것과
공업도시의 철강찌꺼기와 폐금속을 사실상
독점하는사업은전혀다른이야기입니다.
핵심은 폐품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사실이아닙니다.
누구는시장에진입하기위해고군분투하는데누구는
과거권력으로쌓은인맥을바탕으로사업기회를
확보할수있었던것아니냐는것입니다.
이는 과거의 정치권력이 경제적 특혜로
전환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합니다.
공직에서물러나고감옥에다녀와도인맥과영향력이
유지된다면 권력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업상의
우위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직 국유기업
회장이다시억만장자로부활했습니다.
중국관영매체는그를역경을딛고성공한
기업가로치켜세웠지만정작그가어떻게
재계의발판을마련했는지는의문이남습니다.
홍탑그룹전회장저시근의이야기입니다.
저시건은 1928년생으로운남성
홍탑그룹의전회장이었습니다.
1998년 8월 6일 검찰은 그를 횡령죄와
그에게 재산출처불명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1999년그는무기징역을선고받았습니다.
이후형량은징역 12년으로감형됐고
병보석에 해당하는 외부치료도 허가받았습니다.
외부치료를받던저시건은 2002년도에약
2,400무 160헥타르에달하는황무지를
임차해귤재배사업을시작했습니다.
그가 생산한 귤은 저등이라는
브랜드로 알려졌습니다.
사업은 전국적인 성공신화로 떠올랐고
그의 자산은 다시 1억 위안 한어약
200억원을 넘어섰습니다.
관영매체들은 저시건을 실패와 역경을 딛고
일어선 기업가의 모범으로 소개했습니다.
한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인물이
농업사업으로 재기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저시건은 2019년사망했습니다.
그러나이성공신화에는반드시
짚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창업자는 토지확보부터 자금조달, 판로
개척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반면 저 지간은 중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대규모농지를확보하고사업을시작해
다시막대한부를축적했습니다.
그출발선은과연일반창업자와같았을까요?
그 배경으로 저 지간이 과거 권력과 국유기업
경영자로활동하며쌓아온인맥과체제
내부의자원동원능력을지목합니다.
과거의권력과인맥이사업기회와자금조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면 그의 제기는 단순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사업의 성공만으로 특혜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토지와 자금에 접근할 수 있었던
배경은 분명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저 시근의 사례는 두 가지
상반된평가를났습니다.
하나는 불굴의 의지로 재기에
성공한 기업가라는 찬사입니다.
다른 하나는 과거 권력으로 축적한 인맥과 자원이
경제적 특권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입니다.
뇌물 수수로 징역 11년을 선고받은
전직고위관료가출소하자꽃다발과
고급승용차가그를맞이했습니다.
축하예포까지 올렸다는 것입니다.
부패관료의 출소현장이라고는
믿기어려운광경입니다.
산서성 성위원회 부서기와 태원시 시위원회
서기를 지낸 구호근의 이야기입니다.
구호근은 2006년 뇌물수수죄로
징역 11년을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2011년 10월 구금기간
삽입과 감형을 거쳐 조기출소했습니다.
출소당일 지역관료와 유명인사, 신분이 있던
부유한 기업들이 차량을 몰고 그를 찾아왔습니다.
집 앞에는 환영인파가 몰렸고 분위기는 마치
영웅의 금의환향을 연상케 했습니다.
이장면은중국반부패정책의역설로지적합니다.
뇌물수수로처벌받은전직관료가출소
후비난받기는 커녕 과거의 인맥을 통해
여전히환대를받았다는것입니다.
일반서민에게 정권은 사회복귀의
장벽이 되지만 권력층은 과거의 인맥과
영향력을유지할수있다는비판입니다.
물론 환영 장면만으로 부패 관계가 계속됐거나
경제적보상이오갔다고단정할수는없습니다.
그러나법정에서처벌받은인물이
사회에서는여전히기빈으로대접받았다면
중국의 반부패 처벌이 권력층의 흑권까지
끊어낼수있는지의문은남습니다.
결론은지금까지살펴본
사례에는공통점이있습니다.
권력을이용해범죄를저지른고위관료들이
처벌을받고도출소후과거의인맥과영향력을
발판삼아다시부와지위를되찾았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일부 관료의
도덕적하락에만있는것일까요?
그 근본 원인은 권력을 독점하고 허권을
재생산하는 중국 체제 자체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법독립이보장되지않고언론의권력을
자유롭게감시할수없으며국민의실질적인
견제마저제한된다면권력은누구의통제도
받지 않는 특권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공직은국민을위한책임이아니라사적이익을
얻는수단으로전락할위험에놓입니다.
더큰문제는처벌이후에도과거의
인맥과이해관계가살아남는다는점입니다.
관직에서얻은영향력이출소후사업기회와
경제적이익으로이어진다면감옥에다녀오는
것만으로는 특권의 고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바뀌어도구조는그대로남기때문입니다.
바로여기에중공반부패운동의
한계가있다고지적합니다.
권력을감시하는제도는그대로둔채일부관료만
처벌한다면 부패의 토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사람이물러난자리를다른사람이차지하고
낡은 특권은 새로운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결국권력에대한통제없이처벌만반복하는
것은문제의뿌리를제거하는일이아닙니다.
이를왼손이오른손을붙잡는정치적
연극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입니다.
탐관오리는 체제의 예외적인 일탈자일까요? 아니면
견제받지않는권력이만들어낸구조적산물일까요?
결론은분명합니다.
권력을감시하고책임을물을제도가없다면몇몇
관료를처벌해도특권은사라지지않습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체제를 바꿀 수
없으며권력을통제하지않는한그자리는또
다른 탐관오리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영상은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셔서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