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제 교수의 전방후원분 강좌 1강 |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들이 밝히는 임나일본부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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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안녕하세요 우순 재겠습니다 요번
시간부터는 전방
후원분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왜 그러냐면이 전방 후원분이라는
것이 어 일본의 그 천왕들은
무덤입니다 근데 우리나라에는 이게
없다 그랬는데 그것이 아니고 전라도
지역에 쫙 깔려 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아이 경기도
지역하고이 전방 후원분 시원이 어디냐
하는 걸 갖다가 제가 이제 밝혔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걸 갖다가 상세하게
이제 설명을 드리도록 하니다 맨
처음에는 지금 현재 이제 발굴을 많이
한 전라도 지역의 전방 후원분 그
현황에 대해서 먼저 이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라도 지역에서
나 나타나고 있는
그 전방 후원문의 그 연대를 보면은
5세기
말에서 5세기 한 중반까지 이렇게 쭉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영광
그다음에 나주 어 그리고 이제 어
이것도 이제
영암 그다음에 이제 광주
한평 그다음에 이제 나주 장성 해남
그다음에 광주 이런데 쭉 깔려
있거든요 전라도 지역에 깔려 있는
거죠 그래서 왜 여기에 집중적으로
이게 나올까 이제 그거에 대해서 뭐
여러 가지 설이 있어요 심지어는 어떤
고분은 발굴해 보면은 1번 쪽 유물만
나오는 유물 그분도 있어요 그래서
이제 뭐라 그러냐면 일본인 학자들은
봐라 이게 입나 1본 부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거를 이제 그 이제
이제 여러분들한테 이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 학설은 박천수 교수가
이제 쓴 논문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논문인데 그것도 이제 디테일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자 여기게 지금
분포도 여기 쭉 이렇게 여기 해남에서
터 쭉 깔려 있죠
어 그리고 맨 처음에 이제 영암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암은
여러분들이 보시듯이
바로이이 지역입니다 여기 여기가
해남이 그런데 영암의 시종면 태관리
요게 최초로 발굴한 전방수
우리나라에서 기 전체 길이가
35.6mm 그 여기에서 뭐가 나오냐
귀걸이 그다음에 구슬 쇠도끼 쇠낫
이런 근데 제일 중요한게 뭐냐면
하니아 나와요이 한 이화는 뭐냐면
1번의 전방 후원 보에 보면은 그
테두리에 이렇게 한이라는 걸 이렇게
꽂습니다 이렇게 원통형 그 턱인데
그걸 갖다 쭉 했는데 여기서 뭐가
나왔냐 한의가 50여점이 나왔어요 그
붉은색을 띄고 있고 이렇게 중간에
이렇게 턱처럼 돌린게 나오는 그래서
여기 보시면 어떻게 생겼냐
요거죠 지금 요게 발굴된
형태입니다여 보시면 뒤에가 동그랗고
여기 앞에가 네모 놨죠 멀리서 보면은
자라 같이 생겼죠 목을 이렇게 내민
그래서 자라봉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그다음에 이제 해남의 고상 구분 자
해남 북일면 방산에 있는데 건 6세기
전반에 해당됩니다 전체 길이가 75m
근데 이제 그 안에 행렬식 석실 분이
있어요 근데 여기서 나온 것들을
보면은이 석실에 불근 치를 했어요
이렇게 불근 치을 한 것은 일본의
큐슈에 아리아케 아는 그 구마모토
지역의 앞에 있는 바다가
아리아케해 거기에서 나타나는 무덤들
하고 똑같아요 예 그래서 요거는
5세기에서 6세기에 조성된 외인들의
호적 무덤 아고 같다 그리고 이제
여기 가업 편이 나왔고 여기서 이제
회청색 경질 토계 또 적 적산의 주터
그다음에 원통형 토기편이 또 나오죠
요런 것들을 전체적으로 볼 때
일본에서 나오는 그 큐슈 지역에
고분하게 있다 아라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용두리 고분을
보겠습니다 해남면 삼상 men 창리
있는 용두리 고분은 전체 길이가
41.3이에요 그 여기 이제 이렇게
그 테두리에 또랑 팠어요 그 또랑에서
토기류 아고 옥 철기 이런 것들이
나왔는데 여기서 이제 그 안에 고분
안에서 횡혈식 석실분이 나온 거죠
근데 거기에 보면은이 엔도를 이렇게
쌓고 그 사이에 점토를 채웠어요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서 이렇게 이렇게
좁아지는 그러한 석실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요렇게 된 거죠
여기 들어가면서 렇게 위로 가면서
이렇게 엎어지지 그다음에이 다 붉은
칠을 한 거예요 이거 칠을 한 겁니다
예 이런 거는 우리나라에 없거든요
그래서 1번 쪽에 요런 형태의 것들이
나타나고 고 있습니다 요게 이제
발굴된 요게 위에서 본 거죠게 보면
동그랗고 앞에가 네모난 그 전방
후원분 아 뒤쪽은 동그랗고 앞에는
네모나 그래서 전방후원분이 부르는
겁니다 요게
여기를 원 이렇게 동그랗고 앞에는
네모 놨다 그랬잖아요 그것이 딱
연결되는 부분 그 부분에 뭐가
나타나냐 원통 모양의 토기가 열을
지어서 50cm 간격으로 꽂혀 있어요
이렇게 세워져 있어요 총 길이가 8m
정도 8.2m 정도가 쭉 이렇게
확인이 되고 있는 거예요 자 그래서
여기 그리고 이제이
이 유자형 또랑이 이렇게 파져 있죠
테두리에 쭉 이렇게 그다음에 행식
석실이 나타나는데 그 안에서 금동제
귀거리 그다음에 새 화살 그다음에
이제 여러가지 이제 경토 이라든가
띠고리 뭐 이런 것들 근데 여기서
나타나는 거를 볼 때 새 화살 쪽하고
화살통 꾸미개 두 가지를 볼 때
무장적이 람 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시기가 어떻냐면 6세기
전반이요요 고분의 시기가 예 이거
월계동 장고분 보겠습니다 광주시
광산동 월계동에서 광산구 영 6세기
전후 두 개가 나오는데 하나는
45.3 m 호분이 요거는 5세기
후반
호분은
34.5m데 6세기 중반입니다 그리고
그 테두리가 또랑이 이렇게 쭉 파져
있어요 예 그리고 그 안에 이호분
이호분 모두 행렬식 석실 분이 석실이
있고 그 안에서 금기 거리 새 화살촉
수액 손칼 그다음에 철제 널 못 뭐
이게 이제 관에 다 치는 못 있죠
그다음에 유리구슬 그다음에 적갈색
원통형 투기 그다음에 이제 뭐 이런
여러 토기 조각들이 아 나왔다 그래서
여기 보면 요게 명화동 고분군이
요거요 발굴된 모습이죠 요게 이제
월계동 고분 있니다 잘 남아 있죠 예
굉장히 잘 남아 있습니다 이게 복원을
한 거죠 여기서 나온 원통형 토기 예
여기서 월계동에서 나온 원통형 토기
렇게 요런
것들은 백제의 정형적인 삼족 토입니다
거 자 그다음에 이제 한평을 보도록
습니다 한평의 신록 부부는 한 평군
월하면 예리에 있는 전체 길이가
51m 그래서 여기에서는
번식의 석실뿐만 아니라 그 속에 관관
목관에 있는데 그 목관에 뭐로
만들었냐 금성으로 만들었어요이 금성은
우리나라에 없습니다 그래서 문왕의
관도 금성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그니까
1번 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주
박물관 앞에 가면이 금송이 하나
심어져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그이
소나무 하고는 전혀 틀리죠 그다음에이
속에서 뭐냐 금동 관하고 삼각형 철
뭐가
나오는데이 요것이 뭐냐면 외와 백제계
요소가 합해진거다 그래서 여기 보면은
이제 아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반에
걸친 일본의 의 경질토기 그걸
쓰레기라고 부릅니다 그 쓰기가 일본계
여기서 나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일본 쪽하고 관련이 깊은 거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죠 자 요게
신덕고분
여기여 동그랗고 여기 내모 놨죠
여기게 이제요 유물이 출토되는
모습입니다 이제 석실에서 그다음에
거기서 나온 아 유물들 이렇게 쭉 볼
수가 있는 거 거죠 그다음에 이제
한평 주갑이 고분 요거는 한 평분
손불면 주갑 이에서 나오는데 전체
길이가 70m 있니다 꽤 크죠
그다음에 주구 구덩이가 이렇게 또랑이
쭉 외곽을 따라서 이렇게 파져 있어요
너비가
6m에 깊이는 1내지
1.5m요 축조 연대는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아 중엽요 사이로
생긴다 그래서 그 우리 요렇게
생겼습니다 위에서 볼 때 요게 이제
한평 주갑이
고분 그러면은 지금까지 살펴본 그
영상 강에서 나오는이 전방후원분
특징이 뭐냐 이거예요 이거 이제
제대로 분석한 분이 박천수 교수인데
무슨 얘기를 하냐면 여기에 영상강
유역에 있는 그 토착 세력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본
계통의 이런 것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이거 전방 후원 분인 그래서 이거를
볼 때 일본 열도 출신의 외인 일본
사람들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 큐슈 지역에
아리아케의 연안에 걸쳐진 아 유력한
호적 들일 가능성이 높다 근데 이들이
축조된 그 시기를 보면은 백제
웅진기 후반에 한정되어 있어요 아까
보셨죠 왜 5세기 말에서 6세기 그
중반까지 그리고 특이한게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게 아니라 뿔뿔이
흩어져 있어요 분산되어 배치돼 있어요
그 이거는 뭐냐면
중앙에서이 전라도 지역에다 파견한
네개 일본 계통의 백제 관원이 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왜 이들을
이용했을까 하는
거예요 자 요건데 지금 이들 이게
처음 발생 기거 발생할 때
어떻게하냐요고 공에서 쭉 와서 해남을
거쳐서 그다음에 이쪽으로 올라가고
있어요
이렇게 어 신한 목포 무한 쪽으로
요게 일기예요 여기 보면은 서남해안
아
외계서 외계 고분의 발생 이렇게
등장이죠 등장 자 요게
이제네 번째예요네 번째는 여로
들어와서 여기서부터 쭉 퍼져 나가요
이렇게 근데 여기서 보면은 요거는
외계 요건 백제예 건지 요거는 백제계
외계
따로따로 분산돼
있어요 왜 그랬느냐 요거 이제 설명을
드려야 됩니다 첫 번째 백제의
아신왕이 죽었어요 AD
45년에 그러자 둘째 아들인 훈내가
지금 태자가 어디 있냐면
전지가 일본에 있어요 일본에 파견돼
있거든요 근데 얘가 쿠테타를
일으켜서
여기가 정사를 대리 째 아들이 왜
형이 올 때까지 근데 막내 아들
설가이 자기 형을 죽여버리고 자기가
왕이 됐어요 그랬을 때 왜 왕이 병사
100명으로 전지를 갖다 호송해 이거
호위해 갖고 들어가서 그를
죽여버려이 설를 막내 아들을
죽여버리고 전지를 왕을 세우는
거죠
이때 100명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었던 장군이 있겠죠 그 장군이
일본으로 다시 돌아갔 아니라는 거예요
이곳에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건 이제 후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475년는 장수왕이 백제 한성을 쳐서
괴로 죽여요 그래서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하고 그랬을 때이 문주왕이 피살
돼요
그리고
479년 상근도 피살되고 그래서이
왕들이 계속 죽어 나가니까 어떻게
되냐면 일본에 와 있던 곤지 곤지는
누구냐면 개로왕의 동생이에요
곤지의 아들
동성왕은 귀국시켜 어떻게 하냐면
500명의 군사들을
호위해서 귀국을 시켜요 그랬는데 왕이
됐거든요 동성왕이 근데
백가는 사람한테 또 피살
됩니다 그러자 그
50년에는 그의 동생인
문영이 들어와서이 백가를 죽여 버리고
왕이 되는 거죠 이런 거로 볼 때
지금 굉장히 그 왕권이 흔들리고
있다라는 거를 볼 수가 있어요 그거를
보호해 준게 뭐냐 일본의 군사력이 아
그러면 이들을 호위하고 들어왔던
일본의 군사 아 장군들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이제 그거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여기에 보시면은
일본인들이 백제에 와서 관료를 하고
있다는 걸 볼 수가 있어요 그거는
어디서 볼 수 있냐 일본 서기에 보면
게이타 천왕 때
516년 백제는 사신으로
장마라는 장군과
함께 본에서 파견된 백제 관료이 일본
사람입니다 시나노
아따가 있다 그니까 지금이 사람은
일본 사람인데 백제에 가서 관료가 된
사람이에요 그 사신으로 온 거예요
그다 비다 천왕
때 슈의
마도의 출신인 라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어요 근데이 사람의 그 이 벼슬이
어떻게 되 16관 등에서 1관 등은
좌평 이거든요 지금이면 장군이 장
장관이에요 근데 그다음이 차관
아이겠죠 이품 발소리에 근데이 사람
지랄하는 사람이
발소리에 근데이
사람은 일본 사람이에요 근데 백제
관료에 이런 이와 같이
일본인으로서 백제 관료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라는 것이 증명이 되는
예 그리고 지금 이제 여기 보시면은이
박천수 교수가 다시 돌아와서 무슨
얘기를 하냐 한평의 신도 고분을
보면은 일본의 큐슈 지역이 아리아케해
여기에 존재했었던 유력한 호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근데 이제 제가 보기에는 그
구마모토의 야스시 여기에 보면은 라의
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면 라라는
사람이 여기 출신이에요 그리고 달까지
했잖아요 그니까 그들과 아 이렇게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까 일본의 그
마모도 지역과 후가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그 세력들이 일본 백제에 건너와서
바로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거를
알 수가 있는 거죠
자 왜
그러냐 제 유에가 일본인들을 파견한
이유는이 한성 한성 지역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계속 그 왕들이 죽어
나가잖아요 그러면서 그 남쪽을 통제할
수 있는
영향이이 중앙이 어지러우니까
힘들어져요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
여기서 4세기 후반 1에 교섭을
계속해온 문물이 6세기 전이 돼서야
가야 지역의 문물을 교체하듯이 일본
열도에서 도련이 유입되는 것은 백제의
문물의 선진성 그다음에 남해안을 통한
교통의 요충지를 장악하기 위한 이런
것들을 위해서요 리에케 하고 현해탄이
두 지역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
지역을 장악할 수 있는 세력 그니까
일본의 호적 세력 이죠 그러니까
후코가 하고 구마모토이 지역을 장악할
수 있는 그 지역의 호족들을 이용했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아
그래서 여기 보면은 아 웅진기 영상강
유역의 외인의
무사들 무장들이 이들을 전라도
지역에다 이렇게 그 투입을 시킨
이유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거예요 왜냐면 거기는 지금 마한의
유민들이 굉장히 많이 살고 있잖아요
그거를 제어하기 위해서 도리어 다른
지역 지금 일본에 있는 그런 호적
세력을
끌어들임으로서 그들의 그 결속력을
갖다가 이렇게 무너뜨리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렇게 볼 수다 자
우리가 아까도 설명드렸지만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이 세 사람이
피살되는
웅진기이 지역에 전라도 지역까지
통제력이 이렇게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그 일본에서 그 호위하고
들어왔던 그
무사들의 우두머리를 호적
세력을 그 군인들을 장군들이 있죠
장군들을 갖다가이 지역에 투입을
시켰다 이렇게 이제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아 여기에 보시면은 이들은
백제 왕하고 굉장히 결속력이 강하죠
근데 지금 문제가 뭐냐면 일본의 들은
요거를 기화로 해서 봐라 이게
임나일본 부다 이렇게 이제 주장하고
나와요
그런데 지금 문제가 뭐냐면
임나일본부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에 그런데 아까 보시면은 5세기
말에서
6세기고 사이에 이게 그 고분들이
만들어지거든요 그럼이 시기하고 전혀
상관이 없죠
도리어이 시기보다 더 끝이니까
임나일본부가 사그러지는 시기하고
맞아떨어져요 전혀 안 맞는다는
얘기예요 그니까 도리어 임나일본
부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라는
걸이 고분이 도리어 증명을 하고
있어요 요게 이제 박천수 교수의
주장입니다 근데 저는 가장 타당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을
박천수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데이
당시에 영상강 유역의 최대 세력은
누구냐면 나주의 반남고분 있니다이
반남 고분이 거기가 가장 중심
지거든요 근데 그거를 중심으로 해서
이들이 만들어진 고분을 한번
살펴보면은 여기 보십시오 동쪽에 예
재개의 나주시 세지면 송제리 고분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남쪽에는이 이게 이제 해상 교통이 반
여기 여기는 영암의 자라봉
전방후원분이 있고 북쪽에는 영상강
본류가 흐르는 여기에는 나주 보감
호분이 있어요 서북 쪽에는 영상강
하류에 한평 마산의 표산 고분이
있어요 이와 같이 반남 고분을 을
중심으로 해서 재개하고 외계의
고분들이 쫙 포일을 하고 있어요 자
무슨 얘기냐면 요거 보십시오 요게
반남 분이에요 요게 영상강 있니다
여기 보면은 요게 송제리 구분 요게
자라봉 구분요 영암 나주 그다 보감이
나주 위에는 한평 이렇게 갖고 완전히
포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이 중심 세력을 압박해 나가는
거죠 예 그래서 이들의 세력을
통제하는 이런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 외에 뭐
이제 우리 신덕 부분이라든가 명화동
고분 영천리 구분 이거 성입니다
그다음에 이제 광 월계동 고분 해남의
장고분 조산 고분 용두리 고분 이런
것들이 쭉 있는데 요거는 아까 이들을
이런 고분들을 쭉 발굴해서 분
해보면은 같은 횡혈식 석실분은 쓰고
있지만 후코가 중심으로 한 북규슈
can't 쿠마 모도를 중심으로 한
희곡의 그다음에
발전계기 계통의 것들이 이렇게 각각
나타나고 있어요 왜 그랬을까 하는
거예요 그 그 이유는 그런데다 제일
중요한 거는 이들의 배치를 보면은
분산을 시키고 있고 고립적이에요
통합이 안 돼 그건 왜 그러냐면
이들이 세력을 딱 이렇게 결집하면
문제가 생기니까 그래서 이들이
연계되는 거를 막기 위한 거예요
그래서 보시면은 어떻게 생기냐 이게
보세요 다 흐트러 놨잖아
이렇게 따로따로 돼는 그리고 계통도
다
틀리게 그러니까 그거는 백제가 이들을
이용해서 마한 세력을
제압이 통 하면서도 이들이 결합되면
골치 아프니까 그걸 갖다 이렇게 각각
다른 세력들을 이렇게 고립 배치했다
그리고 분산시켰다라는 걸 갖다가 아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이
전라도 지역의 그 전방후원분이 아
5세기 말에서 아 6세기 중반까지
이렇게 쫙 나타났다가 어 사라지는
이런 형상이 왜 그런가를 아 이렇게
이제 설명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얘기하는 인나 1본부 하고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갖다가 도리어
증명해 주고 있다는 거를
여러분들한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적했고
우리가 발굴을 통해서 어 어떤 때는
그 일본 것만 나오는 것이 있어서
우리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야 이거
뭐 또 입나 일본부 들고 나오는 거
아니야 그때 일본 학자들이 들고
나왔어요 그랬다가 도리어 그게 깨져
나가는 이런 형상을 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제
그이
과연이 전방후원분이 1번에 쫙 깔려
있는데 1번 것도 알아보고 그러면
시원이 이게 어디서부터
만들어졌을까라는 걸 갖다가 이제 또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수고했습니다
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