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 탐사조사 추정, ‘6·4 톈안먼 사망자 수’?..학생들 목숨 구한 베이징의 숨은 영웅들
안녕하세요?
국제 이슈를 보는 새로운 시각 SOH 뉴스가
6월 5일 지구촌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36년 전인 1989년 6월 4일 톈안먼에서 벌어진
대학살 와중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세상을 떠났을까요?
이 숫자는 오늘날까지도 중국 내에서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초강력 금기입니다
당국이 제시한 숫자는 극히 적고, 외부에서는 온갖 설이 난무합니다
역사학자 우런화(吳仁華)는 이 어둠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정교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40여 개의 핵심 키워드를 선정해,
마치 바닷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베이징의 200여 개 병원과 당시 계엄군이 지나간
100여 곳을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반복적으로 단서를 모아가며, 그는 당시 사망자 수를
약 2000명 정도로 추산했습니다
물론 이는 우런화 교수의 독자적인 조사 결과에 불과합니다
그가 말했듯이, 당시 군사 작전은 극비 사항이었기에
일반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1989년부터 지금까지 6·4사건의 진실은 중국 공산당이
전력을 다해 봉쇄해 온 금기 구역이므로,
진실을 규명하기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당시 톈안먼에서 칭화대학교 작전 총지휘를 맡았던
리헝칭(李??)이 최근 ‘칸중궈(看中?)’와의 인터뷰에서
핵심 현장 상황을 증언했습니다
1989년 6월 3일, 당시 리헝칭은 며칠 동안 천안문 광장에서
총 규찰 대장 임무를 맡아 동분서주 하느라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고,
칭화대 부속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는데,
오후에 갑자기 동급생들이 주사바늘을 뽑고
광장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전선에서 급한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베이징의 교통요지 무시디에서 이미 최루가스가 살포되기 시작했고,
오늘 밤 큰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때가 바로 계엄군이 베이징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밤이 되었을 때까지 모든 시위대는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고수했고,
방독면도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군대의 주요 타격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의 전개는 젊은 학생들의 상상을
완전히 뛰어넘었습니다
점차 총성이 광장으로 다가오면서
하늘에는 빽빽하게 조명탄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리헝칭은 나중에야 군인들이 돌격소총 탄창에 10발마다
한 발씩 조명탄을 끼워 넣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과 그림자가 불의 그물을 엮어냈습니다.
동시에 탱크와 장갑차가 광장으로 돌진했습니다
광장의 불이 꺼지자 시민들은 기름통에 불을 붙였고,
갑자기 전신 무장을 한 군인들이 인민대회당 입구와 진수이교
주변에 소리없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가까운 지하철역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광장의 임시 구급소 안의 광경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들어왔습니다
리헝칭은 한 학생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 학생은 땅에 무릎을 꿇고 의사에게 자신을
큰 병원으로 보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어쩔 수 없다며, '차 안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서,
트렁크까지 부상자들로 꽉 찼습니다. 더는 실을 수 없어요.
게다가 학생은… 이미 희망이 없습니다.
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학생은 피 웅덩이 속에서 통곡을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광장에는 1~2만 명 정도가 남아 있었고,
대다수가 철수에 동의했습니다
칭화대 학생들이 학교 깃발을 들고 가장 먼저 나섰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군대가 기념비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고,
부서진 돌멩이가 리헝칭 자신의 몸에도 직접 튀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군대가 돌진해 왔고 총성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리헝칭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던 중,
갑자기 몇 사람이 앞에서 달려들어 그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일으켜 세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그를 다스롄의 골목길로 끌고 갔습니다
낯선 베이징 시민 몇 명이 이 학생들을 억지로 끌어낸 것이었습니다
36년이 지났고, 리헝칭은 베이징 친청 감옥을 거쳐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광장을 빠져나오지 못한 그 수천 명의 젊은이와 시민들은,
오늘날까지도 이름조차 언급될 수 없습니다
당시 베이징 거리에서 섬광탄과 탱크를 마주하며,
목숨을 걸고 학생들을 끌어내고 앞을 막아섰던
평범한 베이징 시민들, 그들은 무엇을 바랬을까요?
중국인들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국 공산당의 고압적 세뇌를 겪어온 현재,
만약 중국에서 다시 거대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난다면,
여전히 거리에 이렇게 목숨을 아끼지 않는 시민들이 나타날까요?
SOH 뉴스 이원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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