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현인의 지혜] 담묵장원(淡墨狀元)

SOH 희망지성
871 팔로워
147 비디오 조회수·2025. 8. 25.
문화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여러분은 장원이란 말의 무게를 아실 겁니다.
중국에서 당 고조 시절에 첫 과거시험이 있었어요.
손복가라고 하는 사람이 장원을 했고,
청대 마지막 장원 유출림까지
1283년이라는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 장구한 기간에 얼마나 많은 장원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불과 777명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문관무관 합쳐서이니
문관만 보면 더욱 희소하겠죠?
이러니 한 사람의 장원 급제마다
반드시 일화 하나쯤은 있을 법합니다.
오늘 그 중에서 담묵 장원이라는 일화를 소개하려는데요.
담묵, 묽은 먹이라는 뜻이죠?
그럼 묽은 먹물 장원?
무슨 유래가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청대 양공진의 권계록이라는 책에 보면
왕이함과 왕이오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둘 다 수제여서 어린 시절부터 명성이 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라고 불렸지요.
이왕이라면 보통은 왕이지와 왕원지,
명필 부자를 이르는 뜻이기도 한데요.
이 사람들도 왕이함과 왕이오도 이왕이었던 겁니다.
두 형제는 함께 건릉 60년의 회시에 참여했습니다.
회시란 과거의 한 형식입니다.
당시 시험관은 두광래라고 하는 학자였는데
그날 시험 주제가 아주 독특했습니다.
민지, 소호, 호지
쉬운 말로는 백성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좋은 것에 대해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대학에 나오는 것이고
두광래는 그 부분에 대한 자기 특유의 지론을 가지고
강연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시험 결과 그 견해가 일치됐는지
왕이함은 장원에 이르렀고
동생 왕이오는 2등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낙방한 사람들은 의혹과 불만이 들끓었습니다.
어떻게 시험관의 마음에 쏙 드는 그런 견해를
다반으로 제출할 수 있었냐는 것이지요.
더구나 형제가 똑같이 말입니다.
마침 그런 불만의 의견에 편승하여
파신이라고 하는 관리가 건릉제에게 모함을 했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왜 모함했을까요?
두광래가 그의 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왕이함은 장원이 취소되었고
왕이오 또한 밀려났습니다.
물론 시험관 두광래도 좌천되어 버렸죠.
모함쟁이 파신은 속으로 쾌제를 불렀겠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또 어느 해
어정 과거시험이 열렸고
왕이함은 또 참가했습니다.
참가는 했다고 하나
사실 그는 과거와 관련한 이런 보이지 않는 암투에
진절머리가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제를 받자마자
목도 대충 갈아서
다반을 슥삭슥삭 써서 제출하고는
귀 나오고 말았죠.
세상의 부귀공명에
마음이 완전히 쉬워져 버린 것입니다.
마음이 쉬워졌다.
이건 참 보이지 않는 중요한 정기가 되기도 하겠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던 일이
마음을 쉬는 순간
드르르 이뤄지기도 합니다.
겪어보셨죠?
그런데 참 일이 공교롭게 되었습니다.
그 모함쟁이 간신 파신이
이번 회시에 시험관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와 인맥이 닿아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겠죠.
서당 훈장이 자기와 인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귓속말로 당부해 주었죠.
이보게, 남들처럼 진한 먹물로 답을 쓰지 말게
연한 먹으로 답을 쓰란 말일세. 알겠지?
그럼 내가 심사할 때
이름을 가려서 보이지 않아도
자네 것을 알아볼 수 있을 테니.
자, 시험 후 다반지를 쭉 살피던 파신은
연한 단목으로 쓴 다반지를 발견했죠.
그것을 얼른 모든 선비들의 다반지 위에 올려놓고
부리문진을 눌러두었습니다.
아시나요? 이것을 압권이라 합니다.
과거 시험 다반지를 권이라 하는데
다른 다반지를 누르는 자리에 있다 하여
압권이라 했습니다.
압도적인 수준의 작품을 보통 압권이라고 요즘은 하죠.
그러면 나중에 황제가 와서
모든 다반지를 굳이 다 살필 필요 없이
위에 것부터 살펴보곤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권룡제가 온 자리에서
1등 장원봉트를 뜯는데
거기 다반지가 흐린 단목으로 쓰인 것을 보고는
권룡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지요.
이번 장원은 누가 정했는가?
파신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수신이 정했어 옵니다.
이 다반을 작성한 이는 나와보라.
왕이암이 앞으로 나서니
권룡제는 이전에 장원에 올랐다가 취소된 그 사람임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파신을 보고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이번 장원도 두광래가 내통한 것이라고 할 것인가?
파신은 두렵고 부끄러워 감히 입도 떼지 못했습니다.
권룡제는 혀를 차고 탄식했습니다.
이를 보니 왕씨 형제가 과거에 1, 2등 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였구나.
그래서 황제는 직접 왕이암을 장원으로 삼았고
두광래가 억울하게 좌천되었던 것도 원상복귀 시켰으며
동생 왕이오도 그 다음 해에 재시험을 보아
진사배슬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왕이암은 담목장원이라고도 불렸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결국 모든 일은 바르게 돌아간다 하여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가 상당히 높은 자리인 예구부실항으로 임명된 후에
짧은 일어가 있습니다.
강을 건너던 중 사공이 실수로
사태 끝에 다듬지 않은 날카로운 자리로
왕이암 대감의 손목을 찌르고 말았습니다.
사공은 이 높은 관리의 손목에서 피가 철철 나는 것을 보았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그가 부들부들 떨며 쩔쩔 매는데
왕이암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실수한 거 아닌가? 큰일도 아니니
마음에 두지 말고 배나 잘 접게나.
사공은 감동하여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데
왕이암 대감은 급히 몸을 숙여 그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많은 사람이
그의 아량에 감탄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황제에게도 깊은 신임을 받았고
학자들에게 신망이 높았으며
백성들에게도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