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열전] 제10화 명대(明代) 의학자 장경악... "모든 활동의 근본은 양기(陽氣)"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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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비디오 조회수·2025. 2. 25.
문화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방지석 원장님과 함께하는 명의 10장
제10화 명대 대표의학자 장경악 장경악은 이름이 장개빈이며 자는 회경 혹아 경악
벼론은 통일자입니다. 장경악의 조상은 주원장을 도와 명조를 세우는데 전력을 다한 공으로
식록 천호에 봉해졌고 세습직인 소홍위에 지휘사로 임명됐습니다.
장경악은 어릴 때 병법에 흥미를 느꼈으며 육아 경전도 두루 공부했습니다.
아버지 장수봉은 총명한 장경악에게 큰 기대를 걸고 그가 13세 되던 해
천자가 있는 북경으로 가 북경의 명의 김몽석을 만나게 됩니다.
장경악은 김몽석을 스승으로 모시고 의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을 배우는 한편
김몽석은 북경의 호족과 어울리면서 식견을 넓혔고 이로 인해 호탕한 기질이 더 강해졌습니다.
김몽석은 과거 시험에 필요한 팔고문을 가르치는 대신 선대의 지혜와 우주의 이치
일륜이 담긴 제자백과의 경사자 집을 중심으로 가르쳤습니다.
훗날 장경악의 저서들이 하나같이 이론이 논리정연하고 명백한 것은 이때 쌓은 탄탄한 학문적 기초가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상류사회는 유학과 도교사상이 성행했던 때로 장경악은 역학, 천문, 성리학, 음률, 병법에 통달했으며 특히 의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후 막부에 입대해 동북지방을 순회, 임진왜란에도 참전했으며
유관과 봉성과 암농강 남쪽에도 족적을 남겼습니다. 수년간의 무인생활로 염증을 느낀 장경악은 이후 벼슬길에 관심을 끊고
평소 뜻을 주던 의술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명성은 단시간에 전국으로 퍼졌으며
의성이라 불리는 한나라 명의 장중경과 금원나라 명의 이동원의 제림이라는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57세 되던 해 남방으로 돌아가 향년 78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장경악은 임상진료와 저술활동에 매진했습니다.
현재 한의사들은 동의보감 외에도 장경악이 남긴 저설을 즐겨봅니다.
청나라와 조선 말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학설과 연구가 많이 있었지만 현재 한의학 기틀의 상당 부분이 명대와 조선중기에 이미 모양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장경악의 대표적인 저설로는 한의학의 원전인 황제의 내경의 내용을 12가지 유용어로 나눠
원문과 주석을 달아 황제의 내경을 가장 체계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을 받은 유경이 있습니다.
같은 해 유경도익과 유경부익을 다시 편찬했습니다. 유경도익은 11권으로 운기, 음향호행, 경락, 경열, 침구의 조작 등 그림을 그려 설명했고
유경부익은 4권으로 역학, 고대음률과 의학과의 관계를 자신의 의학이론을 정립해 깊이 있게 서술했습니다.
의학의 바탕을 이루는 이론은 상당 부분 금나라와 원나라의 사학파를 지칭하는 금원사대가에 의해 완성됐지만
시대별로 음향과 질병, 치료법이 달랐기에 이론과 학설도 시대적 관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장경악이 이론 업적에 비해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허준과 비슷한 시대의 인물로 허준의 역작 동의보감에
장경악의 학설과 처방이 실릴 수 없었던 이유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장경악은 사대가의 학설에 해박했으며 풍부한 임상 경험을 통해 시대의 상황에 맞는 옴버학설을 주창했습니다.
그의 학설은 사대가의 학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의 처방이 널리 쓰일 정도로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장경악은 옴버파의 대표주자입니다. 옴버파는 신체의 응기를 보아하기 위해 차가운 성질의 약을 주로 사용한
한량파의 상반된 의미로도 볼 수 있는데 장경악은 자신의 저석 경악전서에서 한량파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장경악은 모든 활동의 근본이 양기임을 강조했으며 양기에 바탕이 되는 응기 또한 보외의 함을 설파했습니다.
한량파도 응기를 중요하게 봤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점이 있지만 장경악은 따뜻한 성질을 가진 약질을 활용해 응기를 보충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숙지황이 포함된 처방입니다. 숙지황은 생지황을 9번 쪄서 말린 것으로 생지황이 차가운 약재인데 비해 숙지황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면서도 응기를 보충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당시 의사들 사이에 장경악은 장숙지라고도 불렸습니다.
장숙지는 장경악이 숙지황이라는 약재를 즐겼었기 때문에 붙은 별명입니다. 숙지황은 의미화할 때 보완은 대표적인 약재로 현재 한의약계에서도 많이 쓰이는 것 중 하나입니다.
장경악이 옴보파의 대표주자로서 양기를 보완은 따뜻한 성질을 가진 약물을 주로 사용했지만 차가운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차가운 약물은 온도가 낮다는 뜻이 아니라 복용했을 때 체온을 낮추거나 설사하는 등 아래로 기운이 내려가게 하는 진정과 하강작용을 하는 약물을 말합니다.
따뜻한 약물은 반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장경악이 명나라 소홍지방을 지날 때 일화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토해도 소용없고 급기야 코피까지 심하게 흘리고 있었습니다.
나으리 유명하신 그 장경악 의원 나으리가 아니십니까? 제 아이가 새못을 삼켜 피까지 흘리고 있는데 살려주세요. 이리 간청 드립니다.
어서 가서 망초라는 약재를 구해오게나. 그런 다음 자석, 돼지기름, 꿀 등을 배압해 먹이면 효과가 있을 것도 같네만.
아이는 처방대로 섞은 것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못을 대변으로 배설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아이고 나으리 정말로 제 아이가 목숨을 구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경악이 여기에서 사용한 망초는 설사하게 하는 차가운 성질의 약재지만
상황에 따라 이런 약재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의사였습니다.
중국의 역대의 의사들은 황제 내경을 필두로 하는 원서를 토대로 시대에 맞는 이론과 처방을 개발했고 다음 시대의 의사는 전시대의 이론과 처방을 연구하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발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경악은 경악전서의 한 부분인 전축록 양부족론 편에서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설파한 뒤
끝에 이것 또한 편벽된 견해가 아니겠는가 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