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눈으로 본 일본의 충격적인 일본의 문화. 조선 통신사가 짐승의 나라?! 일본으로 간 이유 (강철구 교수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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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눈으로 본 일본의 충격적인 일본의 문화. 조선 통신사가 짐승의 나라?! 일본으로 간 이유 (강철구 교수 / 3부)
✔ 본 영상은 11월 15일에 촬영되었습니다 (시청에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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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5 조선통신사 - 오랑캐 짐승의 나라로 생각했던 일본에서 깜짝 놀란 '이것'
🌕 함께 보면 도움 되는 영상들
📌 홍익희 교수 - https://youtu.be/V9KJNpCy1tc
📌 강철구 교수 - https://youtu.be/nmpGW-VDm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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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일본하고 조선하고 외국 사이에 조선통신사라고 해서 외교관들이 왔다 갔다 하고 그랬잖아요.
그때 들어보니까 엄청나게 대접을 잘 우리가 받았다 이런 면도 있는 반면에
그 통신사 갔다 오신 분들의 기록을 보니까 오사카나 에도 지금의 도쿄죠.
그쪽의 경제적인 화려함과 문화 수준에 놀랐다라는 내용이 있거든요.
굉장히 일본이 조선보다 발달했던 시기가 있었던 건가요?
저는 진짜 할 말이 많습니다.
조선동신사는 할 말이 많은데 우리 학문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니까
이야기를 하면 원래 조선동신사가 과거에도 있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가 일본과 수교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국교가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일본에서 도쿠가와가 자기가 정권을 잡고 에도 막부가 시작이 되다 보니
인정을 받고 싶은 거예요.
국제적으로?
그렇죠.
우리도 대통령 취임식 할 때 전 세계에서 다 오지 않습니까?
에도 막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조선에게 그렇게 하려고 하다 보니까
조선에서 요청하는 걸 들어줘야 되잖아요.
너네도 임진왜란 일으켜서 우리 조선인들 다 끌고 갔잖아.
그런데 우리 조선에서도 또 이런 임진왜란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결정적으로 임진왜란에 대해서
우리가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바로 지피직이 백전불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임진왜란 이후에도 일본을 좀 알아야 되고
또 무엇보다도 끌려간 조선인들을 세환을 해야 되는데
그런 걸 협상하기 위해서는 그러면 우리가 통신사를 보내고
그런 세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1603년서부터 1811년에 이르기까지 12차례에 걸쳐서 우리가 보내요.
한 200여 년 동안에 12차례니까 한 18년에서 22년 사이에 한 번씩 보내는 거죠.
언제 보내냐면 독국아 정부가 자기 자식에게 습직을 할 때
그때 이제 축하할 경우 가는데
서울 한양에서부터 충주를 거쳐서 밀항을 거쳐서 부산을 거쳐서
시무누새끼, 고전의 대마도죠.
쯔시마를 거쳐서 시무누새끼에서 오사카, 교토, 나고야, 오다와라, 시조오카, 에도까지 가고
때로는 1600년대는 한 3번에서 4번 정도니까 니코까지 갔다 왔더라고요.
시간이 오래 걸리죠. 한 6개월에서 1년은 걸리죠.
그런데 이걸 아무나 보낼 수가 있나요?
지금도 대통령 갈 땐 BTS나 블랙핑크 데리고 가고 싶잖아요.
이때 당시도 우리도 일본 가는데 자존심 상하게 아무나 데리고 갈 수 없으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글 잘 쓰는 분들, 창 잘하는 분들, 춤도 잘 추는 분들,
이렇게 해서 같이 가는 인원이 적게는 300여 명에서 많게는 500여 명 넘게 간단 말이에요.
그럼 아까 제가 에도 시대 때의 창근교대제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창근교대제하고 다른 것은 뭐냐면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까 통역자가 필요하고
한국인들을 같이 모시고 갈 사람들까지 필요하단 말이에요.
외교사절이니까
그렇죠. 외교사절이니까. 그러면 1000명에서 많게는 2000명이 넘게 움직이는데
지금 생각해 보세요. 제가 대전에서 올라왔는데 대전에서 예를 들어서
러시아에서 400여 명이 행렬을 간다. 그러면 대전에서도 사람들 몰려들겠죠. 오늘날에도.
그런데 이때 당시에는 일본이 섬나라니까 유일하게 외국인을 볼 수 있는 것이 조선통신사에요.
물론 뉴케에서도 오긴 오지만 조선통신사가 행렬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광경인 거죠.
볼 거리 20년에 한 번 오는 거군요.
그렇죠. 한 20여 년에 한 번씩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다 나와서 본단 말이에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해행충제 책이 갔다 온 분들이 기회문을 쓰지 않습니까?
그런 기회문에 의하면 오사카에 도톤보리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관광지지 않습니까?
거기에 배로 몇십 척 한국 조선에서 온 통신사들을 모시고 간단 말이에요.
그럼 양쪽으로 요도가와에서 사람들이 보느라고 기록에는 누에고추처럼 목을 다 빼고 보고 있다.
그런데 보는 행렬이 어떻게 되냐면 키가 작은 사람은 안고 조금 중간인 사람은 무릎 꿇고 정렬이 되어서 흩어짐이 없더라.
일부는 그걸 좀 보려고 하다가 강물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더라.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질서정유나 이런 것들에 감탄하는 글들이 많이 나와요.
그렇게 해서 애도까지 갔다 오게 되는데 당시에 일본인들하고 어떻게 대화를 하냐면
우리 다 한자 문화권이니까 한자를 가지고 서로 필당을 나눌 수가 있죠.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하도 요청을 많이 해서
먹을 가는 나의 종이 팔이 아파서 일본인을 시켜서 먹을 갈았다.
글을 써서 상대방한테 주느라고.
그렇게 한국 문화에 대해서 소위 말하는 한류가 그때 당시에 들어갔죠.
그래서 1990년대에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갔을 때에 일본 당시에 쇼와천왕이죠.
쇼와천왕이 궁중 만찬회를 할 때에 과거에 애도시대 때에 조선통신사가 이렇게 와서 문화를 전파해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정도로
일본에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대로 오사카나 도쿄에 대한 이야기가 당연히 기록들이 많이 있죠.
신유안의 해유록이라는 책을 보면 마치 과거에 박지원이 중국을 가면서 요라일기를 쓴 것처럼
그런 기록들이 되게 자세히 나와 있고요.
2021년도에 보라라는 서점인가 거기서 해유록 책이 나와 있어서
혹시 읽어보시면 나와있을 텐데 제가 대충 요약을 하면
이분이 1719년이니까 이때 일본 통신사로 갔었는데요.
보니까 오사카나 도쿄를 가다 보니까 길거리가 너무 깨끗하더라.
그리고 너무 질서너무 저면하고 떠드는 사람이 없다.
자기는 통신사가 가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정돈이 되어 있고
또 척도가 규격이 정해져 있어서 예를 들어서 우리가 다다미는 1조조로 단일하거든요.
규격이 정확하게 되어 있다 보니 혹시 이쪽이 잘못되면 그것만 빼서 똑같은 규격으로 맞추다 보니까
사회가 되게 안정되어 있고 깨끗하고 반듯반듯하고 이런 모습들을 보게 된거죠.
그리고 그 외에도 토목시설이 상당히 발달이 되어 있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서점이 너무나 많았다.
서점이 많아서 책을 일반인들이 보게 되는데 공자맹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황의 퇴계집이 일본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퇴계의 이야기를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하는 일본인들이 많았고요.
조선에서는 징비록이 금서로 됐는데 일본에서는 그게 번역이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있는 것이 놀랍습니다.
임진왜란의 유성용 영상대감께서 쓰신 우리 전쟁 일본을 대비해야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금선데 일본인들은 보고 있는 거구나.
네. 그 책을 읽고 있고 번역이 되어서 나와 있고요.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지금 통신사들이 오사카를 통해서 도쿄로 가지 않습니까?
그때 자기네들이 갔다가 돌아오는데 보니까 한 2-3개월 만에 돌아오는데
그 통과했을 때의 조선통신사의 모습을 책으로 써서 출판이 됐다.
돌아올 때 보니까.
상당히 놀라운 장면들이죠.
그런데 이런 좋은 부분만 있는 거죠.
오사카가 이러니 도쿄는 어떻겠어요?
도쿄는 더 놀라울 따름이죠.
그런데 되게 부정적인 것들도 있어요.
남녀가 혼욕을 하고 있는 이런 것들은 상놈이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또 조선통신사가 가는 것을 모두가 다 좋아하지는 않죠.
일본인들이 관광을 소개를 하잖아요.
오다와라 지나다 보면 후지산이 보이지 않습니까?
눈이 덮여있고 되게 멋있잖아요.
일본사람들이 자랑을 하고 싶은 거예요.
저게 일본의 영이 담겨있고 후지산입니다.
막 자랑을 하니까 우리나라 조선에서 간 사람들이
저 정도야 우리나라 금수강산에 있는데
약간 비태면서도 살짝살짝 보면서 좀 불안한 부분도 있죠.
그래서 이걸 신요한이 후지산을 보고 시를 쓴 게 있습니다.
제가 이 시를 잠깐 가져왔는데 읽어도 될까요?
너무 좋은 문장이라서 후지산을 어떻게 평가를 했냐면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면
통신사들이 가서 보니까 질서정연하죠.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살아있죠. 너무나 깨끗하죠.
이걸 보고 어떻게 짐승이 사는 이런 오랑캐가 사는 이 땅이
이렇게 아름답고 질서정연하냐.
이게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난다는 거예요.
짐승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뭐냐면 짐승과 같은 인간들이 2000년동안 이렇게 평화롭고
번영하고 있었다니 원망스럽다.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일본을 이렇게 동등하게 안 봤군요. 우리 선조님들이.
그렇죠. 왜냐하면 훈도시 있고 시름하는 모습 보세요.
그게 우리 성리하게 젖어있는 양반들이 볼 때
얼마나 보기가 좀 그렇겠습니까.
그런데 어쨌든 그럼 내용을 들어봤을 때는
우리가 무시하던 일본이지만 직접 가서 보니까
자연도 아름답고 질서도 정연하고 경제도 화려하고
문화도 좋네. 이뻐인 거잖아요.
그런데 일본의 문화에서 또 안 좋은 부분들도 있죠.
예를 들어서 1998년대 우리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문화를 개방하면서 완전 개방을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문화계에서 반대한 이유가 뭐냐면
일본의 문화가 선정적이고 퇴폐적이고 과학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런 문화가 들어오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앞길이
별로 안 좋다 해서 반대를 했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들이 당시에도 보였던 것 같아요.
교수님 또 다음번에 모셔봐서 통신사와 이런 부분들도
깊게 한번 또 시간 가져보도록 할게요.
그럼 저희 이어서 일본의 근대화 메이지 유신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