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무조건 남조선처럼 하라우~”북한이 한국 따라하다 전세계 웃음거리된말도 안되는 헛짓거리 T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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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대들은 믿기 힘드시겠지만 한때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던 적도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도 1974년 이전까지는 북한의 GDP가 남한의 GDP보다 앞섰다는데요.
그러던 북한이 현재는 세계 최악의 빈곤 국가 중 하나로 전락하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씨 정권의 부패와 80년대의 각종 대규모 자연재해, 세계사회의 대북경제제재 등 이유를 찾으려면 한둘이 아닌데요.
그중에는 북한 스스로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고 자초한 원인들도 여러 있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남한이 잘나가는 걸 무리해서 앞지르려다 일이 파토나서 그렇게 된 거였는데요.
북한이 어쩌다 황새 따라가다 다리 찢어진 뱁새처럼 남한 따라가려다 나라가 풍비박산난 건지 자세히 알아보죠.
북한이 남한과의 체제 경쟁을 의식해 실제 국가 역량에 비해 무리하게 추진했던 사업의 대표적인 예는
류경호텔은 1985년 남한에서 63빌딩이 완공돼 개장한 것을 보고 자극받아 87년 착공한 101층짜리 초고층 호텔인데요.
이 류경호텔은 지상층수만 따져도 101층이나 되니 순수하게 높이로만 보면 지상 60층인 63빌딩을 훨씬 웃더니 적어도 크기로는 남한을 앞서는 걸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류경호텔의 이름과 달리 호텔로서는 착공한 지 37년이 되는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기능한 적이 없다는 건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겉만 완성되었고 내부 공사는 아직까지도 전혀 이뤄지지 못해서죠.
그 때문에 중국 텐진의 골든 파이낸스 117이라는 초고층 빌딩의 공사가 2015년 중단될 때까지 기네스북의 가장 높은 빈 건물로 등재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평양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처럼 보이는 류경호텔이 이런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것은 당시 아시아 최고층 빌딩에 올랐던 63빌딩을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100층짜리 호텔을 지으라고 했던 김정일의 무리한 지시 때문이었는데요.
류경호텔의 공사에는 매년 4억 달러 이상의 외화가 투입돼 계획대로였다면 북한 gdp에 무려 5.7%나 투입되어야 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제 투입된 예산은 gdp의 2.9%밖에 안 되었지만 이것도 북한으로서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죠.
결국 북한은 공사 대금을 체불하다 89년 외부 골조 공사만 마치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는 중단해야 했는데요.
그렇게 공사가 중단된 류경호텔은 것만 완성된 채 북한 내부 경제난으로 2008년까지 아무런 공사도 진척되지 않고 방치되었습니다.
90년대 중반 중국 건설업체가 류경호텔 공사를 재개할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96년 5월 중국 기술진이 류경호텔을 점검한 결과
상층부 누수가 심각하고 콘크리트가 부식돼 붕괴 위험이 높아 폭파시켜서 건물을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체제선 전용으로 만든 류경호텔을 무너뜨릴 수 없어 그대로 방치만 했는데요.
그러다 마침내 2008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인 2012년까지 류경호텔을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에 따라 2011년 7월 드디어 착공 24년 만에 외장 공사를 마쳤지만 내부는 여전히 텅텅 빈 상태였는데요.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빈 류경호텔은 2012년 1월 CNN이 운영하는 여행정보 사이트 CNN고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추한 건물 1위로 뽑히는 불명예만 누리고 결국 그의 7월 건설을 맡았던 이집트의 오라스콤 그룹이 사업을 포기하면서 또 건설이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2024년 현재까지도 내부 공사는 전혀 진행하지 못해 류경호텔은 사실상 북한의 초대형 LED 전광판 역할만 하고 있다시피 한대요.
류경호텔 공사를 마무리 지으려면 20억 달러나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2021년 북한 GDP 168억 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GDP의 12%나 써야 완공이 가능합니다.
왜 북한이 류경호텔을 수십 년째 완공 못하는지 알 수 있죠.
거기다 그 사이 남아있는 높이 555m의 지상 123층으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를 완공해 크기로라도 체제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목표 또한 달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중국 건설 기술자들 말대로 진작에 폭파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 드는데요.
마찬가지로 80년대부터 건설이 진행되었던 순천 비난론 공장 역시 북한 재정을 갉아먹기만 한돈 먹는 하마의 대표주자입니다.
당연히 전라남도 순천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공장의 정식 명칭은 순천 비난론 연합기업소로 평안남도 순천 연봉동에 세워졌는데요.
연합기업소는 북한의 공장 중 최고 등급인 곳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북한이 이곳에 자국 경제 사활을 걸었음을 말해줍니다.
비난론은 북한 화학자인 리승기가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교토대학 타카치키 화학연구소에서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사쿠라다 니치로와 카와카미 히로시와 함께 만들었던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합성섬유입니다.
원래 명칭은 비닐론이지만 북한에서는 비난론으로 불러서 이 명칭이 굳어졌는데요.
비난론은 석탄과 석회석을 원료로 하기에 그 둘이 풍부한 북한에는 안성맞춤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70년대 포항제철소를 만든 남한에 대한 대항 의식으로 83년 순천에 연간 10만 톤의 비난론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우게 되었는데요.
당시 북한은 비난론 공장이 완공되면 400가지 화학제품 생산이 가능하게 돼 매일 입압의 고깃국을 먹을 수 있게 될 거라고 선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완벽한 계획처럼 보였죠.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 비용이 문제가 되었는데요.
비난론 공장 건설에는 무려 100억 달러나 들어갔는데 이는 건설이 시작된 83년 기준으로 북한 총생산의 77.8%나 되었습니다.
공장 하나 짓는데 나라 경제력 8알 가까이가 소모되어야 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상황이었죠.
결국 북한은 비난론 공장 하나 지으려다 84년 2월 디폴트 선언을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앞서 보여드린 유경호텔이 완공 못된 데에는 이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는데요.
그래도 어찌어찌 공장은 완공돼 89년 10월 9일 조업식을 했지만 북한은 비난론 공장을 만들고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습니다.
비난론을 만들려면 엄청난 전기가 필요한데 수력 발전에만 의존하던 80년대 북한 전력 환경은 이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원료가 되었던 석탄도 90년대에 대규모 홍수가 연이어 터져 탄광들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공급이 안 돼 결국 94년 김일성의 죽음과 함께 비난론 생산은 모두 중단되었는데요.
곧이어 닥친 고난의 행군 시기에 먹고 살려고 노동자들이 공장의 설비를 고철로 팔아먹기까지 해서 공장은 사실상 폐허처럼 되다시피 했죠.
그래서 순천 비난론 공장은 2010년 북한의 비난론 생산이 재개되었을 때도 고철 상태로 방치되다 결국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해당 부지는 인근 주민들이 논으로 쓰고 있다는데요.
그래도 겉부분이라도 완성한 유경호텔과 달리 이제는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아 북한 선전 매체들조차도 이곳은 언급 자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GDP의 80% 가까이를 쏟아부었으니 북한 경제가 안망할 수가 없었겠죠.
이미 유경호텔과 순천 비난론 공장으로 휘청거리던 80년대 북한 경제의 결정타를 가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평양 세계 청년 학생 축전이었습니다.
89년 7월에 열린 이 행사는 시기상 어떻게 봐도 전에 있었던 88 서울 올림픽을 의식한 거라고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남한이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의 국가가 되었다는 게 입증이 되니
개최바로 전해였던 87년에 있었던 칼기 폭파 테러가 대표적인데요.
하지만 그런 방해에도 88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북한의 전통적 우호국이었던 소련과 중국마저 대회에 참가하자 북한은 자존심을 완전히 구기게 되었습니다.
이를 만회하고자 북한이 내린 결론이 88 올림픽을 능가하는 세계적 행사를 치러 북한의 우수성을 증명하자는 거였는데요.
참고로 세계청년학생축전은 북한만이 아닌 세계민주청년연맹 주체로 주로 제3세계나 사회주의권 국가들에서 개최되었던 국제행사로 평양대회로 제13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88 올림픽 개최 전이었던 85년부터 준비해오다 88 올림픽이 성공한 걸 보고 더욱 자극받아 177개국 2만 2천명이 참가하는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선전했는데요.
그러나 안 그래도 앞선 사례들로 어려워진 경제환경 속에서 그런 대규모 행사를 무리해서 개최하고 진행하려다 보니 북한 경제는 더욱 수렁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북한이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해 쓴 돈은 47억 달러였는데 이는 당시 북한연간 예산보다 2억 달러나 많았습니다.
전체 gdp로 따지면 30%나 이 행사 하나를 위해 쓴 거나 마찬가지였죠.
거기다 그렇게 엄청난 돈을 들이고도 유경호텔의 공사가 중단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해 수많은 청년들을 이 행사를 위해 불렀음에도 재울 곳이 없어 평양 인근에 침대 열차를 정차시켜 거기서 자게 해야 했습니다.
북한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자랑하려다 속빈강정일 뿐이란 것만 온 천하에 보여주고 만 거였는데요.
거기다 경기 관람료라도 벌 수 있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달리 이 행사는 참가자들이 돈을 사실상 쓸 일도 없던 행사라 그런 것도 전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나랏돈 털어가며 사서 망신만 당한 꼴이죠.
차라리 경제적으로만 손해를 봤다면 다행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대회로 자국 인민들에게 북한이 사회적 체제적으로도 외부 세계에 비해 얼마나 뒤처졌는지만 보여주게 되었다는 겁니다.
당시 이 행사에는 남한 대학생도 참가했는데 북한 체제 선전용으로 삼으려던 북한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공개 석상에서 북한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미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청바지를 입고 돌아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북한 주민들은 적어도 남한이 북한보다는 자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해당 학생이 귀국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살게 되자 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으로 서울을 찾은 북한 기자들이 그 학생의 가족들을 취재했다 더욱 놀라게 되었습니다.
정치범 가족인 것 치고는 너무 멀쩡히 살아서였는데요.
정치범이 되면 가족들까지 모조리 수용소에 갇히는 북한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거기다 그 집안이 중산층이라면서 상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밥상을 내고 통조림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에 북한 기자들은 놀랐는데요.
북한에서는 통조림이 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세계 청년 학생 축전 당시 북한은 주민들에게 통조림을 두어 개씩 주며 외국인 손님을 받으면 이걸로 대접하라 지시했는데요.
그런데 남한은 그걸 일반 가정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쌓아두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요.
결국 이 행사는 이래저래 북한이 세계적으로 뒤처져 있음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더욱 뒤처지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어떻게든 남한을 이겨보겠다는 의욕만 너무 앞서 그동안 자신들이 쌓아왔던 것들마저 다 깎아먹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런 북한의 모습은 반명교사로 삼아야 할 것인데요.
쓸데없는 자존심만 내세우지 말고 내실을 다지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