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ory depicts a family's journey through tragedy, loss, and eventual healing. It follows a mother's lifelong devotion and prayer to overcome the pain of a husband's sudden death, and a son's process of reconciling with his roots. Through the act of joint burial, the narrative explores how love and faith can mend broken hearts and provide a true sense of belonging.
오늘 여러분들께 읽어드릴 작품은 이인록 작가의 합장이라는 단편소설입니다.
이인록 작가는 2017년 배웅이라는 작품으로 신라문학대상 소설부분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을 했습니다.
그 이후 어떤 동행, 배웅, 그해 여름, 16년, 합장, 태풍전야 등의 단편소설을 꾸준히 발표해 왔는데요.
이들 작품들을 한데 묶어서 16년이라는 소설집을 2020년에 내기도 했습니다.
그 작품들 중에서 제가 이 합장을 먼저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글에 흡입력이 있어서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읽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이 작품을 읽어드릴텐데요.
여러분도 저와 같이 즐거운 작품 감상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소설 읽기를 시작할까요?
파멸을 결정하고 마무리 짓기까지 혼자로선 감당하기 벅찬 일이었다.
어쩌면 드레지지 못한 사람으로 비칠지도 모르기에 마음은 무겁다.
그 마음으로 등대와 방파제를 번갈아 바라보니 이한 정말 혼자 남겨진 외톨이라 실감되었다.
천지를 덮고 있는 안개가 나까지 덮어주길 바랐다.
고향 문중 화수에 다녀온 날 저녁.
고향 안부를 묻는 어머니와 마주 앉게 되었다.
모두들 무고하시더냐? 고향도 많이 변해가지?
경로당의 할머니들 모습이 많이 줄어들고 있고 빈집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벌초에 대해서는 다른 얘기 없었느냐?
해마다 문중 벌초 문제가 대두되곤 하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는 모양이더군요.
사가 벌초야 어떻게든 하겠지만 문중 벌초가 많은 손을 피로로 핥아인데 말이다.
어머니 앞에서 죄송합니다만 저로서도 벌초가 연중 행사 가운데 힘이 부칩니다.
말 나온 김에 벌초도 그렇고 미국에 있는 정민이가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 온다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늙은 내가 산소에 가는 것도 그렇고 하니 내 아버지 산소를 우리 밭 가장자리에 내가 묻히려고 남겨둔 곳으로 옮기면 어떻겠느냐?
어머니의 말은 의외였다. 한편으로는 내가 은근히 바라고 바라던 일이었다.
저도 어머니께 말은 안 했습니다만 아버지 산소를 옮기는 상상은 해보았습니다.
이제 미국 사람이 되는 정민이가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온당한 일일까도 생각했고요.
먼 훗날 그대로 묵혀서 산의 일부가 되는 날이 올 테지만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데도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송대말 등대가 보이는 우리 밭 둔덕 나무 아래 묻어달라고 말하지 않더냐?
그 전에 내 아버지를 먼저 모셔놓고 나를 묻어다오.
참, 어머니도 왜 자꾸 그런 말씀을 하고 그러세요?
요즘 가끔 내 아버지가 꿈에 보인단다. 희미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런 말씀을 하지 마세요. 아버지 산소 이장은 여러 정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래, 이장은 조심스러운 일이니 세밀히 살펴보거라.
방으로 돌아온 내가 다소 골똘한 표정을 짓자 아내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어머님과 무슨 얘기를 했어요? 고향 아버지 산소를 우리 밭 가장자리로 옮겼으면 하시네.
갑자기 왜 그러시는데요?
갑자기가 아닌 것 같더라고. 이상한 말씀도 조금씩 하고.
이상한 말씀이라니요?
뭐 별다른 말씀은 아니고. 나는 내심 반겼다.
1년에 한 번 벌초 때만 찾아가는 고향이 내게는 각다분하게 다가오는 것 또한 불인할 수 없었다.
3살 때 떠나왔다는 고향은 항상 낯설었다.
잠자리에 들면서 상념에 젖으려는데 내가 군에 가게 되어 집을 떠나기 전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해주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 번씩 들려주던 그 전 얘기보다는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그 해 사라오 태풍이 우리나라, 특히 동해안 지방으로 막심한 피해를 남긴 채 지나간 몇 달 후였단다.
아버지가 웬 청년을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수협 옆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엄마를 돕던 나는 인사도 생략한 채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아버지와 청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낯선 청년과 함께라 미처 인사도 못 드리고 엉거주춤한 내게 아버지가 말했다.
정이야, 쳐다보지만 말고 밥 두 그릇 차려라.
아니, 웬 손님인가요? 뒤에서 엄마가 말했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우리 회사 직원인데 출항할 때까지 며칠 우리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이네.
나는 조금 놀라서 살며시 홀쪽 식탁에 앉아있는 청년을 훔쳐보았다.
수산회사 간부로 있는 아버지가 직원이라며 데리고 온 사람이라 하니 괜히 눈보다는 귀를 그쪽으로 보냈다.
이군, 어려워하지 말고 많이 먹게. 우선 인사하고.
집사람과 딸이라네. 이 사람은 이명수다.
며칠이지만 서로 대면대면하게 지내지 말고 스스럼 없이 지내도록 하자고.
청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조아리는 것으로 엄마와 내게 인사를 대신하는 듯했다.
조금은 소란스럽게 식사를 하는 아버지에 비해 소리 없이 식사를 마친 청년은 아버지와 회사에 간다며 함께 식당을 나섰다.
엄마는 사전에 얘기를 들은 바도 없었기에 둘이 나간 뒤에도 다소 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내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도 엄마는 고개만 저었다.
저녁에 집으로 온 아버지와 청년은 저녁을 먹고 살림집이 있는 식당 뒤 우리 집으로 함께 들어섰다.
나는 애써 둘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여동생 경희와 내가 함께 쓰는 방을 내어주고 우리는 우선 엄마 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알렸다.
청송의 잘 아는 사람 아들이다.
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자리를 찾던 중 우리 회사로 오게 되었다.
우선 숙식을 해결할 곳이 구해질 때까지 며칠 데리고 있어야 할 형편이니 당신과 정희도 이해해주고 가족같이 대해주길 바란다.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엄마와 내가 항변하기에는 일은 앞서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며칠은 상당한 시간이 지나게 되었고 따로 하숙집을 구해나갈 때 나는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지경까지 되었다.
하숙집이 있었지만 한 번씩 저녁 식사는 우리 식당에서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면 엄마는 괜히 기분 좋은 얼굴로 명수야 많이 먹어라.
그래 회사 생활은 좀 어떠냐 하고 궁금해했다.
그럴 때 명수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예 근무 잘하고 있습니다 했고 나는 눈을 피했다.
한 번씩 제법 긴 출항에서 돌아올 때면 그는 어김없이 우리 식당에 와서 저녁을 먹곤 했다.
조금씩 명수의 시선이 살가워질 때 명수는 희미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명수가 하숙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어기적대고 있었다.
눈짓은 말하고 있었다.
잠깐 봐요.
명수가 엄마 눈치를 살피며 개걸음으로 식당을 나간 뒤 엄마한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식당을 나섰다.
여기저기 불을 밝힌 식당을 지나 우리는 어느새 방파제까지 걸어갔다.
방파제 넘어 언덕 위 송대말 등대가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파도소리만 세차게 들려왔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서서 나는 식당으로 그는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출항 때를 제외하고는 저녁마다 명수는 식당으로 왔다.
나도 어느새 은근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한 눈으로 우리를 살피고도 우정 모른 채 하는 엄마에 비해 아버지는 명수를 조금씩 경계하는 빛을 비치면서 잡돌이하는 느낌이 내게도 전해져왔다.
그럴 즈음 이미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에어라지 하나로 합쳐진 사이가 된 뒤였다.
어른들의 직감은 우리가 실토하도록 만들었다.
내 몸에 씨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아버지의 성정으로 보아 우리의 두 다리가 무사리라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거기에 항구에서 식당을 하며 경우에 어긋나는 일에는 티끌만한 용납도 하지 않아서 직사포라는 별명을 얻은 엄마에게 우리의 일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이 좁은 항구에서 우리 둘의 일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치명적이지만 아직은 성인으로 대접받기에는 엉거주춤한 나이에 아기를 가졌다는 소문이 나면
소름 돋는 일인 것이다.
더구나 명수 회사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일은 불을 보듯 할 것이다.
우리의 소문이 이 항구에서만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겠는가?
앞뒤를 잰다는 건 한가한 발상에 지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 우리는 쪽지 하나 남기고 뜨기로 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사라진 우리 둘에게 닥쳐올 아픔을 지금 상상한다는 것 또한 의미가 없다고 여겨졌다.
일단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에 우리는 의견을 함께했다.
명수가 수산고등학교를 다녔던 그곳이 목적지였다.
겨울 새벽 첫차를 타는 정류장엔 마침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KC까지 가서 PC로 가는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누가 봐도 아직 학생 티가 나는 우리를 힐끔거리는 시선도 느껴야 했다.
평생이 가출하는 학생의 모습인 우리를 가여워해 줄 사람은 없었다.
그곳의 질의와 형편을 조금은 꿰뚫는 명수는 자갈치 시장의 앞면이 있는 가게에 일자리를 얻었다.
배달도 하고 허드렛 일까지 하는 조건이었다.
우리는 근처의 단깐방에 아무것도 없는 살림살이 자리를 잡았다.
낮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에 쉬 잠들지 못했다.
쪽지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랐을까.
아니 이런 괘씸하게 짝이 없는 놈들이 있나.
우리를 찾아내어 치도곤을 칠 굽니에 하루해가 짧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이런 철없는 얘들 보소. 세상에 애가 애를 가졌다니.
이런 한심한 종자들이 세상에 어디 있어.
라며 식당을 작파하고 우리를 찾으러 다닐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밤새 흘렀다.
이렇게 대책없이 떠나오기보다는 차라리 머리채를 잡히고 다리가 부러지는 일을 당하더라도
아버지와 엄마에게 자복하고 죽여달라고 엎드려 용서를 빌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출구도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수없는 밤은 그렇게 막막하게 지나갔다.
우리 고향 항구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큰 배임을 알리는 배꼬동 소리가 밤새 들리는 항구에서 우리는 그래도 한 번씩 웃을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움직임을 전해오는 배 속의 기척에 짜릿한 행복이 전해져 온 것이다.
하지만 내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한편으로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얼굴로 불안함을 서로 내심 감추어야 했다.
그 즈음 고향의 친구들과 한 번씩 연락을 주고받는 명수에게 긴박한 소식이 전해졌다.
아버지가 청송 명수네 집에 자초지종을 알리면서 집안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명수를 찾으려 백방으로 기별을 살펴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군 입대 영장까지 나와 있어서 노심초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전달이 명수에게 전해졌다.
발등이 불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일까.
굵게 담은 입술로 천장을 응시하는 눈에 한숨이 더해지는 날이 이어졌다.
이제 퇴로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며칠 잠을 설치는 것 같던 명수가 내게 바투 다가앉으며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같이 돌아가자. 청송 우리 집으로 가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우리 집에 쪽지 하나 써놓고 도망쳐 나와서는 명수 자기 집으로 가자는 말이 꿈속같이 들려왔다.
점점 불러오는 배를 잡고 자기 집으로 가자는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다. 죽음을 각오하고 부모님께 내맡기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나? 내가 군에 가면 너 혼자 아기를 어떻게 키운단 말이고.
그렇다고 간포 집으로 들어갈 용기는 있나? 죽었다고 생각하고 눈 딱 감고 청송으로 가자.
며칠간 서로 눈을 피하던 우리는 결정했다.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청송으로 가기로 했다.
어두워져 도착하려 막차 시간에 맞추었고 서두르지 않아서 짧은 겨울 저녁은 이내 깊어지고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선 우리는 호롱불이 비치는 방을 바라보며 망연히 서 있었다.
어무이, 어무이요. 밖에 누가 왔나? 누구? 방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방 안에 불빛이 마당으로 쏟아져 내렸다.
명수가, 명수 맞제? 명수야, 명수야, 명수야.
뭐라? 명수? 명수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이는 두 분이 엎어지듯 마당으로 내려섰다.
아이고, 명수야.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 있더냐? 명수야. 그래, 그동안 어디 있었더냐? 얼굴 좀 보자.
그리고 뒤의 여자는... 어느새 명수 어머니의 다그침은 통곡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아버지는 돌아서서 큼큼 기침소리만 내뱉었다.
깜깜하던 마당이 조금씩 불빛에 희미하게 다가왔다.
명수를 끌어안고 한바탕 울음을 쏟아내던 어머니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어찌 된 일이냐? 어찌 된 일이냔 말이다? 내 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세상에, 이 무슨 핵에 망측한 일이란 말이냐? 동네 남사스럽게.
우선 방으로 들어가자. 아버지는 끝내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죄인의 모습으로 방에 들어선 우리는 꿇어 앉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둘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던 어머니는 황망함을 감추며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그래, 아직 저녁도 못 먹었제? 좀 있어봐라 하며 부엌으로 나가셨다. 끌끌 혀를 차는 소리가 방안까지 들려왔다.
돌아앉은 아버지는 부여잡은 담뱃대에서 뻑뻑 소리가 나도록 담배연기만 뿜어댔다.
잠시 후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셨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걸렀던 우리는 체면을 내던지고 밥상 앞에 머리를 맞댔다.
좀 천천히 먹으라며 물그릇을 내미는 어머니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밥과 반찬을 깨끗이 비운 우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아버지도 돌아앉았다. 그래, 오늘 밤 이야기를 우째 다 들을 수 있겠나?
간포에서 오셨을 때 대충 들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명수는 군대에 가야하고.
색시 배를 보니 채 두 달도 안 남은 것 같구나. 우리는 또다시 목을 조아렸다.
그제야 아버지는 우리 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처음 소식을 듣고 당장 찾아가서 둘의 다리몽둥이를 꺾어놓으려 했었다.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어디 말해보거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저는 곧 군대에 가야하니 아기와 정희, 참 인사드려라. 간포 정희입니다. 제가 제대할 때까지 집에 좀 데리고 있어 주이소.
몇 날 며칠 머리를 맞대고 국미를 해봐도 이렇게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둘이 여기로 온 걸 간포 집에서는 알고 있나? 아직은 모릅니다. 곧 알게 되겠지요.
두 가지 일을 앞에 둔 지금 경황이 없다. 오늘은 늦었다. 우선 야를 좀 쉬게 해라.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가에 비치는 물기를 보았다. 고개를 돌렸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가슴에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으려는 표정이었다. 다음날 반나절이 되지 않아서 우리 소문이 온 동네에 퍼진 모양이었다.
집성촌의 일가 친척 할머니들이 몰려들었고 비교적 젊은 사람들은 담 너머에서 우리 집을 기웃거렸다. 우리는 침묵했다.
바라보는 동네 사람들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조용히 말을 주고받았다. 어머니도 그저 면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우리 둘을 가려주었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그렇게 며칠을 우리는 방 안에서만 보냈다. 하루하루 물속의 시간 같은 날이 지나서 명수가 군대에 가야 할 날이 닥쳐왔다.
이대로 군대에 갈 수는 없으며 찬물을 떠놓고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로 우리는 마주 선절을 나누고 사진도 남겼다.
몸조심을 당부하는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네 아버지는 군대에 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날 즈음 너가 태어났다.
애써 기쁨을 감추는 듯한 아버님과 어머님의 표정은 그래도 나를 위로하는 빛이 되었다. 부실하지 않도록 산후조리를 도와주는 어머니의 손길에서 조금씩 훈기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농봉기가 되어도 일을 거들지 못하는 몸으로 동네를 나다닌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현실이었다. 겨울밤이면 몸을 으스스하게 하던 소척새 소리와 아련하게 들려오던 봄날의 뻐꾸기 울음소리도 어김없이 너와 나를 찾아왔다.
시간은 참으로 유정했다. 너의 웅아리가 늘어가고 몇 번의 내 아버지 휴가가 지나갔고 어느덧 내 아버지는 제대를 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추수에 맞춰 제대한 아버지가 비난한 살림이지만 집안일을 거들고 겨울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집안 아재의 제안이 있었다. 면소재지 마을 김포수가 포수 한 사람과 몰입군 다섯 사람을 모았는데 몰입군 한 사람을 더 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들 눈에 전방부대 유격장 조교로 복무했던 내 아버지는 안성맞춤의 몰입군으로 포섭된 것이었다.
농한기로 가마니짜기와 새끼고기 외엔 딱히 내세울 일이 없었던 내 아버지는 별 망설임 없이 그들을 따라 나서게 되었다. 포수 두 명에 몰입군 여섯 명의 팀이 꾸려진 것이었다.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출발한 일정이 하루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때도 있었지만 빈손으로 돌아올 때도 덜어있었다.
몇 년이 지나도 이쪽의 지리나 위치에 어두운 나로서는 그들의 행성지나 목적지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사냥에서 돌아온 내 아버지가 그날에 쏟아부었던 긴박했던 순간과 밀고 당기는 추격에 대해 얘기할 땐 나도 모르게 한 번씩 빠져들기도 했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올 때 장총을 앞세운 두 사람의 포숫 위에 따라오던 몰입군 여섯 사람의 의기소심에서 사냥의 허탈함도 읽을 수 있었다. 상현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있던 새벽, 어쩌면 오늘 밤 안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나설 때는 비장함마저 보였다.
빈계 계곡은 물론이고 금성산까지도 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과연 그날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밤이 제법 깊어서 돌아왔다. 전과는 있었다. 멧돼지 한 마리와 고란이 한 마리였다.
다음날 동네는 잔치가 벌어졌다. 그들의 분배 방식은 가히 민주적이었다. 10등분한 고기는 총을 가진 포수가 2인분씩, 나머지는 몰입군 여섯 사람의 몫이었다.
그날 밤 새벽이었다. 이상한 신음소리에 나는 잠이 깼다. 그러나 일순간, 나는 아니다 하는 내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꿈을 꾼 모양이었다. 등잔불을 밝히자 이마에 땀이 흥건했고 눈동자가 흐릿했다. 무슨 꿈을 꾸었기에 난 아니다며 고함을 치는지 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내 아버지는 소름에 떠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한숨과 함께 말하더라. 멧돼지와 고라니 떼가 나를 덮치며 절벽으로 내모는 꿈이었다. 멧돼지와 고라니라면 어제 잡아온 것 말이네.
일어나 앉은 내 아버지는 문지방을 응시하며 낀 팔짱에 힘을 주는 것이 보였다. 피곤해서 그런 모양이다. 꿈은 그냥 꿈이니 그만 자자. 태어난 척 내가 말했지만 쉬잠들지 못하는 내 아버지의 기척이 느껴졌다. 며칠 뒤 그들은 다시 떠났다.
이번엔 춘산면으로 간다고 했다. 그날은 해가 지기 전 돌아왔다. 고라니 한 마리였는데 자기 몫은 받지 않았다고 했다. 표정이 그리 박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을 미루는 듯 했다. 밥 먹는 모양도 시원찮았다. 다시 한번 다그치자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심란하게 말했다.
이제 몰입군 그만둬야겠다. 이 겨울에 뭐 딱히 할 일이 없잖아. 그래도 마음에 느끼지 않으면 안 가면 되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면서 대답을 미루던 내 아버지가 단호하게 다물었던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내 아버지의 눈에 이상한 빛이 스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건 무지막지한 일이다. 그들의 생사 여탈권을 내가 가진 것도 아니고. 상을 물리며 그날 사냥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던 내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몰입군 중에 가장 젊은 내 아버지는 상목 하목을 가리지 않았다 했다.
오늘은 언덕과 비타를 몇 굽이 지나야 하는 하목을 막게 되었다. 재빼기까지는 산등성이 몇 개를 넘어야 하는 위치였다. 하목에서 대기하면서 먼 길을 가지 않고도 녀석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뒤엔 갈무리를 잘하자는 다짐을 세웠다.
그렇게 길목을 살피는데 탄피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짧게 세 번 울리는 신호로 모두들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작대기로 주위의 나무 등걸을 두들기며 상목 쪽으로 몰아가는 발걸음에 오늘따라 힘이 부대꼈다. 노루마기까지는 아직 많이도 남아있는 숲속이었다.
묵정밭이 있었던 자리에 녀석들이 한바탕 뒹굴다가 떠난 흔적이 보였다. 그 흔적에 마치 신소리를 곧잘하는 집안아재의 걸쭉한 입담이 묻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곧이어 전체 모여라 신호로 약속된 길게 부는 탄피 호루라기 소리가 몇 차례 울렸다.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비탈진 산기슭을 거침없이 뛰어올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등성에 올라섰을 때였다.
얼핏 핏자국이 보였다. 고라니가 지나간 듯 표시가 보였다. 이어서 드문드문 핏자국이 이어졌다. 내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함성을 한번 지르고 작대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살금살금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때 막다른 산모퉁이 돌아나가는 언덕 아래 무언가 보였다. 숲 사이에 엉덩이와 뒷다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고라니였다. 힘든 숨을 몰아쉬며 내 아버지를 쳐다보는 눈이 애처로웠단다.
막대기를 치켜세우자 순박한 눈망울과 선고운 등의 마지막 숨을 들여보내는 표정을 짓다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꼭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얼굴이었다는 것이다.
내 아버지는 막대기를 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숲속에서 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며 작대기를 세우자 숲속으로 형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고라니 휘파람 소리였단다.
소리의 주인공이 고라니 가족일 거라 생각하니 함께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먹이를 찾아 나왔다가 가족을 잃었을 고라니가 처연하게 생각되더란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내리쬐는 햇볕에 잠시 어지러워졌다.
그랬다. 돌연 여기가 어딘지 흐릿했다. 잠시 후 고라니 위치를 알리는 내 아버지 소리에 모두들 모여들었다. 내 아버지는 고라니를 외면했다. 고라니를 수습하고 나설 때도 뒤에 처졌다.
애처롭게 올려다보며 무슨 말을 하는 듯하던 고라니의 두 눈이 선명하게 내 아버지 두 눈을 파고들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숲속으로 멀어지던 힘 잃은 발자국 소리가 산을 내려올 때까지 내 아버지 귀를 맴돌았다고 처연히 말하더라.
사냥을 가지 않고 며칠을 보내던 내 아버지가 잠자리에서 뒤척이는 밤이 잦아졌다. 어느 날 밤엔 가위 눌린 듯한 시눔을 뱉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밤을 힘들어했다. 그러던 다음 날 아침 평상시같이 일어나지 않고 말했다.
몸이 좀 이상한데? 몸이 이상하다니? 어떤데 그런 말을 하노? 몸살과는 달라. 온 삭신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 그날부터 내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해져갔다. 특별한 통증도 없이 그냥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인 듯했다.
며칠 쉬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던 아버님 어머님도 이상한 일도 다 있네? 하며 증상을 말하며 묻고 다녀도 신통한 처방은 없었다. 아예 자리를 보전하고 거동이 어려워지고 눈이 심리나 들어간 몰골이 되었을 때 심상치 않은 일이라며 다급한 처방을 하기도 했다.
신안고난 할 것 같았던 내 아버지는 첫 증상 후 한 달 만에 눈을 감았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원희 아버지, 이건 아니다. 왜 이래? 왜 이러냐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재원이 저 초롱초롱한 눈을 두고 어디 간다는 말인데?
내 통곡소리가 온 동네에 퍼졌고 우리 집 마당에 구름같이 몰려든 사람들은 내 팔에 안겨서 눈을 감은 내 아버지를 외면하지 않았다. 느닷없는 일이었고 동네 사람 모두는 이 무슨 날벼락이냐며 입을 모았다. 찰나같이 내 아버지의 눈빛에 힘이 보이는 듯했다.
내게 애원하는 눈은 두려움과 포기 그리고 너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때 눈에 고인 눈물이 어떻게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내 통곡소리가 밤새 그칠 줄 모른 것과 함께 너는 세 살 그 눈으로 엄마를 붙들고 있었다.
내 절규가 너의 눈 속에 맺히고 나는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믿어지지 않은 일 앞에서 혼절했던 내가 깨어났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너는 내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불쌍한 너를 두고 간 내 아버지보다 너를 살펴야 한다는 절박함이 사무죄를 마치고도 정신을 온전히 차리지 못한 나를 때렸다.
네 아버지를 내가 사지로 몰았다는 자책과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서 내가 은원을 감춘 사람으로 비춰진다는 생각에 이르자 견딜 수 없었다. 몇 일 동안 두문 불출 뒤 아버님 어머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모든 것은 저의 죄로 시작되었습니다. 조금이나마 저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곳으로 재원이와 함께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두분은 아무 말도 안 하셨다.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내게 그래 무너진 내 마음을 추스리려면 시간이 필요하겠다. 잠시 이곳을 떠나 마음이 다져질 때 오도록 해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재원이 잘 보살피고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아버님도 내 잘못은 없다. 단지 처음 사냥에 따라간다 할 때 내가 말릴 걸 그랬다. 나는 처음부터 사냥이 맛득지 않았다. 저 귀가 씹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산을 위로한들 소용이 있겠느냐. 북망산천은 누구나 가는 일이지만 재원이 애비의 황망한 떠남에 괜히 해본 소리다.
아버지도 나를 위로해 주셨다. 어머니는 스스로 회안의 강물에 쓸려온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깨를 오그리며 얼굴을 감싼 두 손을 한동안 풀지 않았다. 가늘게 떨던 손으로 눈자위를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 고향을 떠나온 지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 아버지는 세 살에 접어드는 너를 두고 하늘나라로 갔다. 그런 날벼락이 없었지. 느닷없는 이별은 평생 가슴에 멍을 남겼다. 너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온 세월의 조각들은 파도치는 바다 위의 이렵현주 같았다.
저에게 제대로 남아있는 기억이란 모두 깜깜합니다. 어머니와 남긴 단 한 장의 사진만이 아버지를 그리는 유일한 증거가 되고 있어서 저도 쉼없이 흔들렸지 않습니까?
그래, 너를 내 뱃속에 두고 분해가기 전 동네 일가 친척들 앞에서 그야말로 냉수 한 그릇 놓고 부랴부랴 올린 결혼식 때 남긴 사진이 유일하니 참 무정한 세월이었다.
다행히 그 사진이 있어서 어머니도 굴절된 기억이나마 세울 수 있었는가 봅니다. 평생 해오던 합장의 빌미가 되기도 했지. 여인 잠으로 밤을 보낸 아침엔 어김없이 합장을 하게 되었다.
꿈에 가끔 보이던 내 아버지가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게 되곤 더했다. 어머니의 쉬지 않던 그 합장이 저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정민이 유학 갈 때도 어머니가 해주신 합장으로 우리 식구들을 보듬뜬 모습을 정민이도 잊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가 피워올린 한이 합장으로 모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어머니와 저의 중심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고요.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서러움과 끝이 안 보이는 절망감을 붙들어준 건 어쩌면 한번 시작한 합장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내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라는 기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단둘이 남은 너와 나를 위한 합장이었다. 그것은 평생 나와 함께 했었다.
저도 어려서부터 보았던 어머니의 합장이 어머니와 저를 붙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사람들 모르게 밤중에 길을 도와 너를 데리고 떠나온 고향을 이제까지 한 번도 찾지 못한 것 또한 한으로 남아있다.
한밤에 도망친 뒤 스물다섯에 청상이 되어 5년 만에 돌아왔지만 간포로 들어가지 못하고 친정초입 전촌마을 이모집에서 피신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고향을 고향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너를 보는 안타까움도 있다.
세 살 때 떠나온 고향을 벌초때만 찾아가서 애비 벌초를 하고 와서도 그리 박지 않은 내 심정을 내가 왜 모르겠느냐.
그래도 내가 나설 수 없는 현실 앞에 어쩌면 내가 근원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청상이 되어 60년간 죄인의 심정으로 지나온 세월이 참으로 무심하구나.
이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
한가지 묘소를 건드리는 일은 신중할 일이다.
그쪽 일에 밝은 이들의 의견도 듣고 너무 서둘지 말고 신중하게 진행했으면 싶다.
어머니는 막연한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동안 나를 옥죄인 것은 벌초였다.
아버지 묘소가 있어서 벌초때만 찾아가는 고향은 고향으로 불리기에는 아무리 찾아가도 낯설게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고향을 지키는 일가 친척들이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이젠 네 아버지 벌초를 네가 와서 해라는 전달이 전해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형제들 모두 대처로 떠난 곳.
문중의 종과 횡도 느슨해진 지금은 더한 것이었다.
그동안의 벌초는 집안 사촌 형들이 맡아서 한 것이었다.
어쩌면 동네 일가 친척들은 나를 폄하했을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는 터였다.
애비 없는 자식까지는 몰라도 얼굴 제대로 익힐 수 없는 사이의 일가 친척은 이웃 사촌을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가 크기 전 찾던 고향에서는 정말 몰라서 그랬겠지만
야가 누구? 하고 물으면 옆에서 누가 명수 아들 재원의 아이가
재원이라고? 그새 많이 컸네. 그래 엄마는 잘 있나?
하며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나던 친척 할머니들이 애잔해하던 모습들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어머니 안부 뒤에는 엄마 아직 혼자 사느냐? 하는 궁금증이 보태어 전해져왔다.
위토도 내 명의로 된 밭되기도 남아있지 않은 고향이기에 살가운 정은 저만 지어있는 것이다.
벌초대를 놓치고 혼자 쓸쓸히 찾아가는 적막한 산소에서의 벌초는 외동 아들이 나를 울렸다.
평생 살아온 이곳에서 생각하는 멀리 있는 고향은 마음 한복판 해먹은 기억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마치 고향과 내가 대척점에 서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제례에 대한 상식이 일천한 나는 어느 지인의 도움으로 상조회사와 연락이 닿았다.
고인을 모시는 문상부터 발인, 출상 그리고 마무리 상례를 전문으로 하는 그들에게 이장이 아닌 파멸을 꺼내기가 주저되었다.
이런저런 형편을 말하고 수목장을 하려는 장소로 옮기고자 한다하니 한참 동안 나를 살피던 그들이 본론을 말했다.
묘의 위치, 예상 경비, 참석 가는 가족, 날짜 등을 물었다.
참석 가족은 나 혼자며 그쪽의 일정에 맞추겠다고 했다.
예상 경비 안에는 일체의 제수 음식도 포함되었다.
나는 몸만 가면 되었다.
어머니께도 말씀드리니 평생 발길 끄는 고향과 내 아버지 산소에 갈 염치가 없다 하신다.
날짜는 잡혔다.
고향의 집안 형님께 아버지 산소 파멸에 대해 전화를 드리자 이를 도와달라는 뜻으로 여겼는지 한발 빼고 싶다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모든 일은 상조회사에서 합니다.
동네를 지나서 선산 뒷자락 산등성위에 산소가 있어서 어차피 동네 사람들이 알터이니 형님은 먼저 얘기 들었다고만 동네에 얘기해 주시면 됩니다.
라는 요지를 전했다.
그때서야 형님은 포클레이는 필요 없겠네 하며 관심의 예를 보여주셨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저도 그냥 몸만 가는걸요 라며 부담을 지워드렸다.
이번 일이 끝나면 이제 고향을 다시 찾는 일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고향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외로 돌리며 중심에서 벗어나려 했던 때가 떠올랐다.
따로 출발한 그들과 내가 면소 제지에서 만나 함께 산소로 출발했다.
그들 일행은 세 사람이었다.
동네를 지날 땐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그들은 내 발걸음을 재촉하며 거침없이 나아갔다.
동네를 벗어나자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시작될 장마를 견제하는 듯 콩밭의 이파리들이 이리저리 쏠리고 있었다.
산길로 접어들자 벌초때마다 무인지경으로 키자라있는 길없는 길의 잡초는 벌써부터 그 기세를 키우고 있었다.
풀줄기와 함께 엉킨 나뭇가지를 헤치며 조그만 풀계단 위에 올라섰다.
증조부님 산소 맨 아래쪽 산자락의 아버지 산소는 진작부터 완전히 봉분의 형체는 잃고 있었다.
내가 산소로 안내하자 그들은 금방 경건해졌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말을 나누던 그들이 산소 앞에 자리를 펴고 제수음식을 차렸다.
나더러 먼저 한잔 올리라 했다.
먼저 절을 한 뒤 한 잔을 올렸다.
그때 한 사람이 이제 아드님이 좋은 곳으로 모시려 하오니 놀라지 마십시오 라는 말을 했다.
그들 일행 중 한 사람도 한 잔을 올렸다.
간단한 재를 마치고 고수레에 파는 소리가 들리고 짧은 음복을 가졌다.
이제 파묘가 시작될 것이다.
그들이 산소 앞 뒤와 좌우를 살핀 뒤 한 지점에 삽질을 시작했다.
평평한 지경까지 허물어진 봉분은 낮아진 지면을 내보이며 살을 뒤집었다.
그때 내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놀란 얼굴로 몇 발짝 물러서서 전화를 받았다.
아내였다.
여보, 어머님께서
어머님이 왜?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하시고 한숨 자야겠다며 안방에 들어가셨는데
일어나실 시간이 되어도 기척이 없으시기에 방에 들어가니
들어가니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어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어머님 돌아가셔서 디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모셨어요.
이제 막 파묘를 시작했는데
이 무슨
이쪽 일 수습하려면 아직 멀었고 당장 달려갈 수도 없으니
당신이 옆에서 지켜보소.
최대한 일찍 출발할 테니
작업은 일순 흐트러지는 듯했다.
내 통화를 들은 그들도 난감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 일도 중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작업은 속도를 내고 있었다.
세 사람의 빈틈없는 손놀림은 불필요한 위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면적에서 최대한의 작업 효과를 내고 있었다.
과연 전문가다운 일처리였다.
60년 만에 열려진 묘혈은 의외로 깊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은 유골은 불면 날아갈 것 같았다.
조심스레 유골을 수습하여 준비해온 간이 화장시설인 화로에 담고
고화력 간이 토치로 화장을 했다.
유골은 생각보다 빨리 사그라든 모양이 되었다.
곧바로 돌절구에 넣고 공이로 빻는 작업도 순조로웠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느 한 사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한 줌 재로 변한 유골을 유골함에 담았다.
작업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헤쳐진 봉분을 평평하게 손질하는 것으로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그들이 가져왔던 도구를 챙기며 어머님 사고 소식에 놀라셨겠지만
유골함 잘 챙기고 조심해서 가시라는 인사까지 해주었다.
새삼스럽게 이제 다시 병원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하며 둘러보는 산소가 낯설게 보였다.
돌아오는 길 마침 동구에 계시던 동네 사람 몇이 그래 조심해서 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정확한 형편을 알 수 없는 어머니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고향 동네를 일별하며 돌아섰다.
몇 차례 휴대폰이 울렸지만 핸들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뒤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섰다.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조금 전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한다.
한걸음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경황없는 눈치로 서성이던 집사람이 내게로 달려온다.
아내는 괜히 미안해하는 얼굴이었다.
집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아내는 실감나지 않았다 했다.
편안히 주무시는 모습으로 옆면에 든 어머니 머리맡에 색발엔 아버지 사진 두 장이 놓여있었다 한다.
문득 어머님이 평생 해오던 합장의 모습이 떠올랐고
오늘 고향에서 모시고 온 아버지의 유골함이 떠올랐다.
60년 전 떠나온 고향을 한 번도 찾지 못한 채 평생 합장으로 새겨온 지아비를
이제 이렇게 합장으로 만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3일장으로 치러진 어머니의 장례는 케이시 하늘마루 장사공원에서 화장을 하여 유골함을 받았다.
문상객들이 장지를 물을 때 수목장으로 모시기로 했다고 말했다.
평소 어머니가 노래 부르던 송대말 등대가 바라보이는 간포우리밭 가장자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느새 안개는 흔적도 없이 거쳤다.
힘차게 뻗은 방파제도 의연했다.
남쪽 해안선을 따라 새로 만들어진 방파제 그 너머에 설치되는 테트라포드 조송공사장의 장비와 사람들이 아득했다.
등대는 꼭꼭한 자세로 동해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날씨는 쾌청해지고 있었다.
옛날 두 분이 처음 만났던 폭우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함께 누워 원없이 바라볼 바다.
그 바다가 한 번도 내 고향이라고 말하지 못했던 이곳이 이젠 정말 내 고향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어떻게 들으셨나요?
이 소설은 고향 생각이 나게 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만나게 된 이야기며
화자인 주인공을 임신하게 되어 집을 몰래 도망나오던 그때의 두렵고 막막했던 심정과
또 동물사냥 때문에 생긴 마음의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이름 모를 병 때문에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야기
또 마지막엔 60년을 아버지만을 그리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너무나 극적으로 죽음으로써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그 이야기까지
길고 긴 장편 영화를 한 편 보듯이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옆에 같이 합장을 해달라는 어머니의 소원은 결국 이루어졌죠.
바다가 바라보이는 고향 간포의 밭 가장자리에서
두 분은 그 긴 세월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로 아마 밤을 새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합장에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두 손을 모으고 먼저 떠난 남편이 평안하길 바라고 또 아들과 자신이 못할하길 기원하는 의미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남편과 같이 묻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었습니다.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저는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후엔 잘 알지도 못했던 우리나라의 어느 지역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후엔 평생 가보기도 어려울 것 같은 시베리아의 허벌판과
파리의 어느 구석진 선술집안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눈에 서언히 보이기도 하죠.
이것이 우리가 문학작품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강한 이유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 작품을 읽고 나니까 지금 제가 간포에 있는 등대에 기대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요.
상상력도 이 정도면 병인가요?
재밌지 않나요?
편안한 시간이 되셨나요?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밤이 말을 아낄 때 나는 마음을 너에게도 못한 말 오늘 너에게만 보낼게
밤이 말을 아낄 때 조금 솔직해져도 돼 흔들리는 나의 하루를 이 고요함에 맡길게
지나간 것들 떠올려 괜찮다며 웃던 날들 사실은 조금 아팠던 그때의 나를 안아줘
불을 다 끄고 눈 감아 작은 숨결만 남겨둔 채 괜찮아 괜찮아 속삭여 내일의 나를 기다려
창밖에 비친 달빛 벽에 길게 기대앉아 천천히 식는 차 한 잔 숨도 조용해지는 밤
밤이 말을 아낄 때 나는 마음을 너에게도 못한 말 오늘 너에게만 보낼게
밤이 말을 아낄 때 조금 솔직해져도 돼 흔들리는 나의 하루를 이 고요함에 맡길게
지나간 것들 떠올려 괜찮다며 웃던 날들 사실은 조금 아팠던 그때의 나를 안아줘
불을 다 끄고 눈 감아 작은 숨결만 남겨둔 채 괜찮아 괜찮아 속삭여 내일의 나를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