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모를 두었다. 왜냐고? 내가 아이한테 볶여서 도무지 살 수가 있어야지 [유모] 이무영 #책읽어주는남자 #오디오북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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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9:59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51:32 클로징 음악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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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어드릴 작품은 이무영의 유모입니다.
다른 이의 아기를 모유를 먹이고 키워주는 여자, 순우리말로는 젖어미, 젖어멈이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아기를 낳은 엄마가 자신의 저주로 아이를 먹일 수 없을 때
젖이 나오는 사람을 들여서 자기 자식을 키우게 하는 그런 일종의 관습인데요.
이럴 때 돈을 받고 젖을 먹여가며 아이를 키워주는 일을 유모라고 부릅니다.
영화나 소설 같은데 보면 대개 부잣집 자식들이 유모, 유모 하면서 부르는 것을 아마 한 번은 보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 유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무영 작가가 1936년 7월 신동화에 발표한 소설 유모입니다.
이 소설은 뒤로 가면 갈수록 흡입력이 점점 강해지는 작품입니다.
귀를 기울이시면서 감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이무영의 단편소설 유모 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유모 이무영 유모 제도에 대한 아무런 비판도 없이 나는 유모를 두었다.
아내한테 쪼들리는 것도 쪼들리는 것이려니와 첫째 나 자신이 아이한테 벗겨서 못 살 지경이었다.
어떤 편이냐면 아내는 4대 사상의 소유자였다. 아내 자신은 자기는 그렇게 취급하지도 않는 것을 내가 되게 크게 버려놔서
자기가 4대 주유자가 되는 것처럼 푸우 푸우 하지만은 입덧이 났을 때부터 벌써 산파 걱정을 하는 것이라던가
아직 피가 엉기지도 않았을 때 것만 아이가 논다고 수선을 피우는 것이라던가 당신 친구 부인의 혹 산파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아침마다 한마디씩 주장질을 하는 것이라던가 그것을 나의 어린 탓으로 돌리면 못 돌릴 것도 없기는 하지만은
어쨌든 4대 주유자라는 것만은 면할 도릭 없었다. 물론 나의 어린 탓도 있기는 했다.
그런데다가 어머니 아버지가 등잔덩이처럼 살아 있으면서도 군더더기 식구가 꿀벌처럼 엉겨들어서
버젓한 외딸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라난 아내였고 나 자신이 또한 이렇다는 이유는 없으면서도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눈을 못 맞추고 10여 년을 제멋대로 굴러다닌 사람이라
아내라기보다는 친구의 누이에게 대하는 것 같은 애정으로 아내에게 대해온 관계로 아내는 나를 어려워하는 대신 응석을 한다.
그러한 아내인지라 유모 걱정을 하는 것은 예사로 들어왔다. 그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번연히 제 다리 찼고 아내의 배가 빵그랗게 일어난 것을 내 눈으로 보면서도 산파 때문에 재수를 하는 아내를 그저 픽픽 웃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온 방안을 메대기를 치면서 복통을 호소할 때에서야 부랴부랴 산파 주선을 하다가 뒤눕고 말았다.
그래서 생전 해보지도 못한 해산 시중을 식무하고 칠은 쓴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젖이 안 난다고 울상을 해도 나는 들을 때 뿐이지 밖에만 나가면 잊어버리곤 했다.
글쎄 어쩌자고 나만 복기게 한대요? 당신은 아침에 휙 나가면 밤에나 들어오시니까 아주 이건...
글쎄 여보, 유머를 어디서 파누 주라우? 어떻게 갑작스레 입에 맞는 떡을 구하우? 박순영이가 아이 낳을 줄 알고 저통을 메고 다닌답니까?
이렇게 웃음의 소리를 하면 아내는 냄비 속의 콩알처럼 취다가도
아이, 내 참, 당신같이 마음이 편해서야 하고 마지못해 웃어버리고 만다.
그러고 나면 그것이 또 이럭저럭 며칠이 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정말 아내의 저통은 드러붙고 말았다.
젖먹이는 젖꼭지를 빨다가도 신산찮으면 바르르 떨고 재수를 한다. 더욱이 그날 밤은 양육꼭지를 물려도 괴벽만 피운다.
아내는 어르다, 젖꼭지로 달래다, 추석이다, 별짓을 다해도 바늘방석에 앉은 아이처럼 잡는 소리를 한다.
그러니까 참았던 분이 복받치는지 젖먹이를 내게다 집어던지듯 내안긴다.
당신 자식이니 당신이 맡으시구려. 왜, 내 자식인가? 그럼 뭐예요? 당신이 늘 그러지 않었수?
머스멜 나오면 당신꺼구, 계집애 나오면 내꺼라구. 그 말 끝에는 픽 우스리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는 어그러졌다.
아내는 팩 돌아앉아서 홀짝홀짝 울더니 무슨 큰 불행이나 되는 것처럼 점점 울음소리가 높아진다.
아무리 남자라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못 본 채 한대요. 아내는 이런 넋두리까지 하며 마음 놓고 운다.
이제 그만큼 해두구려. 어디 좀 알아봅시다. 다 그만둬요. 그까짓 자식 죽거나 말거나.
그날 밤은 둘이 다 뜬 눈으로 세웠다. 추석이면 챙알챙알 하다가도 심통이 나면 자지러진다.
나는 홍고니 잠이 들다가도 깨고 깨고 했다. 고놈의 것 그냥. 참다 못해서 중얼거리니까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모 구하긴 싫은 사람이 애 우는 소리는 왜 싫다시우? 하고 기어이 한술 뜬다.
사실 한두번 내동댕이쳐서 죽지만 않는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화풀이를 하고 싶을 만큼 아이는 보채였다.
이럴 즈음이라 유모가 있다는 말을 듣자 나는 귀가 번했다. 그날 밤부터 오기로 작정이 된 뒤에야
외손녀 보러 온다고 3, 7일이 나자마자 뛰어올라온 장모가 궁합을 봐야 하느니 손이 있는 날 옆에 내를 드릴 수야 있겠냐느니
하고 푸념을 하는 것도 못 들은 채 했다. 아내도 중학은 마친 터라 궁합을 본다고 서둘지는 않으나
유모의 젖을 분석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꽤 까다로운 주문을 한다. 그러나 이것저것 다 따질 겨를이 없을 만큼
나는 며칠 내 아이한테 달달 복귀여서 잠을 못 잤다. 뭘 그런 걸 다 따지요? 그 사람도 사람일 게니까 사람 젖이 나겠지
하지만 그 집 혈통도 안 보고 어떻게 저주를 얻어먹인대요? 무슨 병이 있는지 누가 안다우?
글쎄 괜찮대도 그러거든. 소개하는 사람도 점자는 이고 케이의 어린 것도 이 사람 저주로 살아났다는데?
이렇게 꾸며대기도 했다. 실상 그런 걱정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야말로 만들어 파는 물건도 아닌 유모를
또 어디 가서 얻어볼 길이 망연했다. 그래서 끝끝내 뻑뻑 우겨대는 것을
젖도 없는 것이 애는 무엇하러 낳는 게야? 하고 서슬히 펄에서 윽박 질러놓고 그래도 나와서는 유모를 소개해준 같이 잡지 일을 보는
S를 도렴동으로 찾아갔다. 우리는 문학 잡지 발간에 관한 의논을 한 후에 온 뜻을 이야기했다.
S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글쎄 하더니 안으로 들어간다.
S도 자기 부인이 소개한 것이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있더니 자기 아내도 유모의 근본에 대해서는 백지라고 한다.
자네가 하도 L쓰기에 집사람들로 좀 수소문을 해보라고 했더니 저 집에 있는 식모가 소개를 해서 지금 그 사람을 말하더라네?
저 집에 갔다 오면 웬만한 것이야 알겠지만은 혈통이 어떤지 병이 있는지 그것까지야 알 수 있겠는가?
그도 그럴 것이었다. 그래서 모자를 들고 일어서려니까 S는 기를 쓰고 붙들었다.
아니야. 어떻게 되었든 유모는 데려다 놓고 봐야지 않겠나? 글쎄 않겠나. 유모 집도 화동이라니까 화동 속 개동이야 뭐 찾아가겠는가 뭘.
그러고 지금 저 집에 가서 식모한테 물어보고 오겠다니까 그동안에 우리 이야기나 좀 허세 그려.
뭘 일부러 가시기까지야? 바로 요긴데 뭘. 볼 일이 없어도 하루에 몇 번씩 가는걸?
S 부인의 보고도 우리의 예측대로였다. 고향은 밀양이라는 것과 남의 소작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해나가다.
삼남수재에 눈이 개천이 돼버려서 서울로 올라왔다.
나이는 30이나 지골 사람 요량에서는 만혼인데다가 아들 하나 있던 것을 물에 띄우고 젖먹이가 하나 있었으나 그것마저 잃어버렸다.
이것이 S 부인의 보고였다. S와 저녁을 같이 하고 집에 돌아온 때는 유모도 벌써 와있었다.
언뜻 보고 그만하면 싶었다. 나이가 좀 앳되어 보이기는 했으나 귀골이 장대한 것이 얼굴도 투덕투덕했다.
얼굴에 화기가 안 도는 것은 고생에 찌들려 그런 것이라 했다. 깐깐스러운 장모의 눈에도 거슬려 보이지는 않았던지.
사람도 걱실걱실한 게 괜찮구먼서도 아이가 죽었다니 깨름직하지 않는가?
장모님 마음에 든 것을 보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훌륭한가 봅니다.
그리고 어린 것이 죽었다는 것도 홍역을 하다가 죽었다니까 왜 깨름직할 게 있어요?
이런 말은 못할 소리지만 딸린 아이가 없는 편이 되려 낫지요.
그래도 그 악스러운 장모는 점장인을 찾아가서 궁합이며 손이며 다 물어보고야 결말을 지었다.
어떡할까요? 유모 말은 제 집도 그리 멀지 않고 하니 하루에 세네 번씩 집에서 다녔으면 좋겠다고 그러는데?
이튿날 아침 자리에 누운 채 아침 담배를 피우고 있으려니까 아내가 들어와서 이런 의논을 한다.
대관절, 월급은 정했어?
15원을 달라는데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15원을 떼내고야 우린 뭘 먹고 사루?
허지만 내려면 냈지 별 수가 있어.
오맨 그렇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도 여간 내기가 아닙니다.
뭐 어디선 식모 월급이 얼마고 어디선 유모 월급이 얼만데 하며 주워 섬기는데 아주 문서가 화납지다요.
어쨌든 월급도 작정이 되었다.
물론 제 집에서 다닌다는데도 이의가 없었다.
아니 그것은 되레 이쪽에서 청할 일이었다.
아내도 참 젖은 되는 터여 집에다 둔다면 아무리 안 먹는데도 7, 8원은 먹을 거고
방 하나는 따로 치워주어야 할 거고 보태줄 것은 없더라도 주제가 사나우면 그것도 못 본 채 할 수 없을 것이고 보니
하루에 세네 번씩 제 시간만 맞춰 준다면 더 생각할 나위도 없었다.
나이 젊은 것도 꾸지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야 좋지 않겠소?
15원을 준데도 우리야 15원밖에 안 되는 폭인데 집에 둔다면 5원어치만 먹겠소?
그야 그렇지요.
그럼 도대체 뭘 그라우?
죽그릇에 넘어지는 셈치고 생색이나 내구려.
허구 그뿐인가 또?
또 뭐야?
젊은 유모한테 애 잃을까 봐 맘 캥기지도 않을 거고.
아따 겁날 것 없어요?
잘도 없을 걸.
고심하던 유모 사건의 단락을 짓자.
우리 부부는 이런 웃음의 소리까지 했다.
유모는 아내의 눈에 아주 쏙 든 모양이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그 꽤 까탈스럽고 극악스러운 장모가 이러니 저러니 말이 없다.
생김생김도 그렇지만 아주 사람이 털스러운 게 웃음의 소리도 곧잘 하대나 그려.
하고 장모가 회사에서 돌아온 날을 붙들고 유모를 추켜세울라 치면 아내는 제가 칭찬이나 받은 듯이 맞장구를 친다.
참 그래요. 아까도 와서 시골서 살던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도 구수하게 잘합디다.
그래 어디 불쌍해 듣겠더냐?
이것은 장모의 말이었다.
모녀가 주거니 박거니 유모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러면서도 어떤 편이냐면 변덕스러운 장모요.
사대주의자인 아내일이라 언제 또 무슨 트집을 잡을지 모른다고 그런 걱정까지 했다.
저 또 유아에게 맞는 모양이었다.
먹지를 못해서 비영비영하던 것이 며칠새로 두 뺨에 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랐다.
울음소리도 훨씬 영악스러워졌다.
달 소수나 되더니 이제는 정말 사람 같았다.
윤기도 없이 원숭이불기짝처럼 새빨갛은 얼굴도 점점 붉은 빛이 가시고 제 살빛이 돌아온다.
모자라서 찢어놓은 것처럼 빡빡해 빼던 눈꺼풀도 여유가 생기고 눈알에도 제법 광채가 났다.
억궁! 억궁! 아빠가 왔네?
예, 성순아.
아빠 보고 과자 좀 주우, 그래.
나는 장모가 어르는 것만 우두커니 굽어보고 섰었다.
성순이는 영글지 못한 동작업만 잽싸게 굴리고 있다.
이것이 내 자식이다.
이런 생각이 생전 처음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저것이 나의 피를 받은 것이다.
그것은 결코 기쁘지 않은 감정은 아니었다.
적어도 불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 감정은 내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기쁜 것도 같았다.
형원은 할 수 없으나 푸근한 것도 같았다.
아내가 있으면서도 어딘지 한 귀퉁이가 빈 것 같더니
손발을 바둥거리고 있는 어린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에
그 비었던 구석이 채워진 것처럼 든직도 했다.
하여튼 그것은 야릇한 감정이었다.
묵처럼 능실능실하던 살이 굳어지고
유린하고 붉은 기가 걷혀 제법 사람 형태를 쓰자
그 야릇한 감정은 차츰 차츰 부채화해가고 여물어갔다.
암만 해도 그 감정은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것은 확실히 어버이의 애정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나의 자식, 딸년에 관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모에게도 머리를 쓰게 된 것이었다.
나는 뒤늦게 유모의 피검사도 했다.
젖을 분석도 해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건강체라는 말을 의사에게서 들을 때
한숨이 휘 내쉬어졌다.
오늘은 잘 먹었을디까?
딸년에게 대한 관심이 지나쳐서
이런 주책없는 인사를 했다가 아내한테 핀잔을 맞기도 했다.
왜? 걔가 언제 젖을 안 먹었수?
어떤 날 나는 본정에 갔다가 장난감 가게 앞에 섰었다.
비행기니, 기차니, 목마니 하는 것을 이것저것 구경하다 말고
그것이 언제나 저런 목마를 타게 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셀룰로이드로 만든 손잡이를 한 개 사들고 돌아왔다.
성순아, 이것 봐라, 이것 봐.
마침 방 안에 아무도 없어서 이렇게 딸년을 어르고 있으려니까
앞치마 폭에다 손에 물기를 닦으며 아내가 들어왔다.
여보, 그것도 인간이라고 이렇게 안팡지게 쥐고 있구려.
아내는 갑자기 내가 어린 것하게 긴 캐 구는 것이 우스웠던지
이제 당신도 철이 나시나 보구려? 하고 웃는다.
그러나 딸년에게 대한 나의 관심은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관심은 나도 모르게 도를 넘어서 잔소리로 변했다.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았느니 베개를 삐뚤게 받쳐주어서 머리가 한쪽으로 일그러지겠다느니
어른들이 아이 머리맡에 앉아서 아이가 눈을 짓뜨게 되느니
나의 참견할 영역이 아닌데까지 아는 체를 하자.
아내는 말끝마다 톡톡 쏘아붙였다.
물론 수다한 경우도 있었지만 번연히 내 말이 올 것만도
되레 나를 윽박지르는 때도 있는 것 같았다.
글쎄 당신도로 그런 일 참견하시랬어요?
어려우니 알아서 할까봐.
이건 오줌 똥받는 데까지 참견이구려?
아따 이건 소리만 빽빽 지를 줄 알았지 자기 잘못한 생각은 도무지 않나?
글쎄 제발 그러지 좀 말아요.
우리끼리야 괜찮지만 유모가 듣는다면 고깝게 생각하지 않겠소?
자기는 올 때마다 기저귀까지 빨아주고 온 정성을 걔한테 다 바치는데
그런 소리 듣는다면 오죽 섭섭다고 하겠소?
생각하면 그도 그럴듯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유아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으면서
웬일인지 여자들 손에만 아이가 맡겨지는데 불안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아내에게서 아이에 관해서는 비용을 지불하는 이외에
절대 간섭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명령을 받고 말았다.
집에서 요샌 일거리가 없어서 야단이에요.
어떻게 수소문해 보셔서 일자리 한 군데 마련해 주십시오.
자기 집 이야기는 털끝만큼도 하지 않는다고
아내가 늘 이상하게 생각해오던 눈치더니
하루는 유모가 풀쑥 이런 말을 꺼냈다.
아내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거 어디 하나 쳐내주시구려? 하고 말을 시키라고 그러는지 탄한다.
원래 사람을 어디 쳐낼 만한 재주도 못되지만은
직예꾼을 소개할 만한 자리가 없으리라는 것을
아내 자신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아
필시 면치례로 한 말이겠거니 싶어 나는 잠잡고만 있었다.
그렇더라. 나는 그날로 잊어버리고 말았다.
유모도 그 후에는 다시 말이 없었다.
그런지 며칠 지난 어떤 날 나는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는 순학술 잡지를 편집해오던 논단을
갑자기 대중 잡지로 고쳐보자는 의견이 돈 것이다.
나는 물론 반대였다.
그러나 논단의 경영자인 K가 그것을 고집하는 이상
중불나게 나만이 나설 것도 없고
또 그런데야 별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
굿보고 떡이나 얻어먹는다고
반대당인 S와 함께 애꿎은 선술집만 뒤진 것이었다.
근오르시야 어떻게 하겠나? 월급 40원도 좋지만은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물론 논단 역시 합법 출판물인 터고 보니
그것을 간행함으로 해서 그의 양심이 자위를 받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급한 독자의 취미에 영합시키기 위해서만
만들어지는 잡지를 편집한다는 것은 그의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것은 계급적 양심이라고 할 것까지도 못 되는
아주 평범한 도의심의 발작이었다.
S의 심경에 나도 물론 동감이었다.
그리고 응당 그의 태도를 같이 한다는 약속을 해야만 오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말을 못했다.
동의를 표하고 태도를 작정하려고 한 그 순간
나의 머리에는 어린 것의 토실토실한 뺨이 떠올랐다.
술 덤벙 물 덤벙 살아오던 나에게
처자라는 두 글자가 뚜렷이 재인식되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편으로 해석하거나 내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두드러지게 내세울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는 하면서도
계급적으로 보아 주호만큼도 대중에게 기여함이 없는
아니, 되레 악영향을 주는 대중 취미 잡지에 이름을 내걸기가 괴롭다고
처자를 거리에 내동댕이치는 것도 괴로웠지만은
그렇다고 처자의 억매여서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꾸벅꾸벅 돈 40원에 억매인다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할 도리도 없었다.
입으로는 어쩌니 어쩌니 야불야불 짖거리면서도
몇 해 배운 아라비아 숫자의 덕택으로 타산에는 빠른 아내다.
양심과 기근과를 바꿀 아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더없이 우울했다.
내가 늦게 들어올 때에는 의뢰껏 그랬지만은 아내의 심기는 또 좋지 못했다.
그래도 전에는 일찍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 무언 중에 그러면서도 범할 수 없는 법률처럼 되어 있는 가정생활인지라
피치 못할 일이 있어서 늦었더라도 떳떳하게 배심을 부리지 못하고 눈치를 보았지만은
하고 톡 쏘아붙이는데도 귀 거슬리게 들을 여유도 없었을 만큼 나는 내 생각에만 골몰했었다.
요새는 웬일인지 유모가 발이 떠요.
아주 안 볼 사람처럼 쌀쌀하게 굴더니 아내는 이렇게 말을 붙인다.
기계가 아닌 이상 그럴 수도 있지 뭘 하고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잠잡고 있었다.
그러고 전 나는 품도 전만 못하던데 어디 다른데 또 젖을 빨리러 다니는 게나 아닐까?
아마 모녀가 앉아서 입대껏 주고받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탄하지 않았다.
얼굴 생김으로만 한데도 그네들이 말하듯이 그렇게 야말이 까진 짓은 할 것 같지도 않았지만은
머리가 어수선하여 이러고 저러고 참견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쓰다 달다 말도 없이 그대로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쓰러졌다.
취미 잡지 문제는 며칠을 두고 계속이 됐다.
사장 되는 사람은 실상 문화사업을 위한 단어니보다도
그렇게 상설없지 못한 방법으로 모은 돈이라 사람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시작한 토거 보니
잡지를 발간하고 수지도 막고 한다면 더 벌 나위 없을 것이었다.
같이 일 보는 사람들의 공기도 반수 이상이 그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았다.
다만 S만이 사의를 표하고 있을 뿐이다.
그만둬. 탈을 쓰고 참아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에 몰두했다.
이렇게 머릿속이 어수선한 동안에도 아내는 몇 번이나 나의 귀전을 울렸다.
갑자기 전보를 받고 내려가면서 장모되는 이도 유모를 갈아내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은
이것도 역시 아내의 사대주의에서 나온 의논을 깨라쯤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는 한 귀로 흘려버리곤 했다.
그러던 어떤 날이었다.
늦더위도 가시고 바람도 제법 산들산들해졌다.
마침 그날은 아침결에 소나기가 한 줄기 지나가고는
여우뼈처럼 햇살이 퍼졌다.
나는 며칠내로 무겁던 몸이 가뿐해져서
사로나가서 급한 시간을 다투는 것만 대강대강 정리를 해놓고
S, K, M 이렇게 작당을 해서 몰려나오다가 아내와 딱 마주쳤다.
웬일이요?
한 손 접는데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모가 안 와요.
유모도 사람이니 꼭 그럴 때도 있지 않겠소?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고?
글쎄 그러지지 말고 좀 가보셔요.
암만 해도 딴 데 또 가는 데가 있는 것 같아요.
길게 이야기해야 아내의 고집을 꺾자면 왁자지껄 해야만 되겠기에.
그럼하고 아내를 돌려보내고 절에 가서 놀다가 다 저녁때에야 들어갔다.
아내가 아는 채를 하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유모 왔습디까?
나는 점먹이 머리맡에 놓인 양유통을 보았다.
그럼 온종일 안 왔나 보구려?
다 저녁때에서야 다녀갔어요.
대꾸하기도 싫다는 말시다.
왜? 무슨 일이 있답디까?
남편이 알아서 몸을 못 뺏겼다고 그러더군요.
아무리 남편이 알키로서니 엎드려지면 코 닿을 테니
잠깐 다녀감직한 노릇이라고 생각했지만은
그렇지 않아도 성이 머리끝까지 난 아내를 북돋아 줄 때도 아니다.
나는 또 한 번 참았다.
여덟시가 지나서 유모가 왔다.
그래, 바깥 어른이 편찮다더니 좀 어떠시오?
하고 물으려니까 유모는 잠깐 머뭇거리는 눈치더니
이제 그만해요.
하고 다소곳이 고개를 떨어뜨린다.
어디가 어때서 그럽니까?
몸살이죠 뭐.
몸살?
몸살이라면 남의 아이를 맡은 사람이니
잠깐 다녀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려워 말고 바른대로 얘기를 하구려.
우리 친구에 영한 의사도 있고 하니
좀 가서 보이기라도 하게.
뭘요? 몸살인데요.
유모는 몸살만 자꾸 내세우더니만
자기도 난처하던지.
화병이야요. 화병.
벌이는 없죠. 양식은 떨어지죠.
성미는 급하죠.
단 두 식구라면야
그거 가지고 그럭저럭 조석은 끓여 먹지 않겠소?
그야 15원 가지고 무엇대고 무엇대고 하면 어렵기에 하겠지만
살림이란 한도가 있는 게요.
아내는 무슨 단서나 얻은 듯이 이렇게 꼬집어 말을 한다.
아이 참 생각해보셔요.
말이 15원이라지.
거기서 3원씩 집세 떼지요.
쌀값이죠. 나무값이죠. 약값이죠.
옷 해 입어야 살죠.
그럼 월급을 올려달란 말이오?
아내는 얀정없이 말문을 콕 막는다.
유모는 펄쩍 뛰듯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변명하고는
젖을 먹이고 일어섰다.
내일은 일찌감치 오죠.
아내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 후로도 아내는 날마다 앉으면 유모 말을 했다.
처음에는 귀담아 듣지도 않았지만
하도 여러 번 듣고 나니
사실 요새는 유모가 몸을 사리는 것 같지도 보였다.
어린 것도 전에는 제 어미의 젖꼭지를 물고는 챙알대다가도
유모의 저통을 들이대면
끽소리 없이 벌컥벌컥 들이켜던 것이
며칠 내로는 몹시 시답자나 하는 모양이었다.
어떤 때는 심푼용스러우면
젖꼭지를 문 채 잡는 소리를 하고
앙탈을 하는 때도 있었다.
아무래도 딴 데에 젖을 데이는 게야요.
그렇게 흔턴 젖이 요새 갑자기 그렇게 말라붙을 리가 있어요.
아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었다.
그제야 나도 생각 키웠다.
호! 끼니대에 와서 밥 먹는 것을 보면
거량이라기보다도 허겁지겁 퍼넣는다.
그것은 맛나게 먹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먹는 것 같았다.
먹던 밥을 주워도 김치 국물을 들이부어
무말랭이를 넣고 썩썩 비벼서는 아귀같이 퍼넣는다.
그것으로 보아 식량을 못 채운다는 것은 짐작되었다.
물론 15원에서 3원 집세를 떼고
장정 두 식구가 먹는데 여유가 있을 턱이야 없다지만
그렇게까지 식량이 못 된다는 것은
그의 자취시대를 요령해본데도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약질이라
얍첩이나 다리게 된다면
돈 10원 가지고 풍성할 게 어디 있으랴
이렇게 돌려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또 모체가 그렇게 부실하게 먹는다면
젖이 안 나는 것도 의당할이라 생각하자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싶었다.
그러나 내게는 더 여유가 없었다.
아니 여유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현재도 15원을 떼내고는
담배 한 감 맘 놓고 사피우지를 못하는 터다.
여기저기 1, 2원씩
어떤 때는 3, 40전씩 거미줄을 얽히듯 빚을 저우는 터였다.
그렇다고 아내의 말대로 유모를 갈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마한 것이라도 수입이 있는데
그럴 때야 그나마 뚝 끊어진다면
그도 딱할이라 싶었다.
유모를 도와준다는 동기에서 유모를 둔 것도 아니오
악의이라는 의식까지는 없다 하더라도
자기 자식 먹이자고 남의 귀한 젖
아니 그것은 피였다.
젖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이 그렇게 떳떳스러운 일은 못 될 것이었다.
더욱이 병든 남편을 안고 양식거리가 없어서
우리의 눈을 속여 다른 아이에게 젖을 빨리러 다닌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만을 나무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되래 악착한 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어떤 날 동료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 사람은
하고 조롱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내 자식만을 위해서
지금이 그들 부부에게는 유일한 생명선인 젖꼭지를 봉쇄할 용기는 안 났다.
그것은 동료들이 말 맞다나 인도주의도 아니었다.
로맨티즘도 아니었다.
논단사의 동료는 달포가 되도록 자절주를 몰랐다.
따라서 나의 우울도 게이지를 못했다.
그날도 나는 S의 집에서 두 친구와 따로의 재단을 세워서
좀 더 떳떳이 낯을 들고 해나갈 수 있을 만한 잡지를 발간키로 의논을 하고
S가 다소 희망도 없지 않은 외삼촌인 PC에게 교섭을 하기로 하고
9시에 헤어졌다.
나는 거기서 다시 팔판동 M에게 간단한 보고와 부탁을 겸해서 하고
M도 출동을 시키었다.
M의 집을 나온 때는 10시가 훨씬 지났었다.
팔판동에서 내려오자면 화동으로 빠지는 좁다란 골목 모퉁이에
담배 꼬발이 속같이 꾸민 구멍가게가 있다.
그 구멍가게에서 지게꾼 하나가 어린 것에게 무엇인지 사주고 있다.
물론 이 평범한 장면이 나의 눈을 끈 것은 아니었다.
무심코 내려오는데 나의 눈에 비쳤을 따름이다.
그러나 나는 내려오다 말고 발이 딱 붙어버렸다.
바로 지게꾼 옆에는 아이를 해서 들쳐업은 젊은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부인은 희미한 불빛에서나마 유모인 것이 분명했다.
그가 유모라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 옆에선 지게꾼이 그인 남편일 것도 분명할 것이고
또 그 지게꾼의 팔에 매달린 아이와 등에 업힌 어린 점먹이가
지게꾼과 유모의 사이에서 난 어린 것들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설사 유모 자신이 어린 것은 아니라 친다더라도 유모가 등에다 걸머쥐고 다닐 지야
유모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이라고는 생각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동정을 살피었다.
지게꾼은 손을 잡은 어린 것에게 무엇인지를 사주는 모양이었다.
어린 것은 이것저것 사달라고 조르는지 신이 나서 손가락질을 한다.
지게꾼은 한참이나 서서 아이에게 시달리더니 지게를 벗어서치고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유모가 넌 짓이 넘겨다보고 무엇이라는지 말을 하는 모양이다.
내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이나 하나 사 들리지 않고 뭘 이것저것 만지고 있소?
상상컨대 이런 종류의 말을 하는 것도 같았다.
그들은 얼마동안 주거니 박거니 하더니 도로 지게를 지고 개천을 건너선다.
유모의 손에는 배추 한 단과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큼지막한 신문봉지가 들려있었다.
콩나물인가도 싶다.
나는 생각없이 그들의 뒤를 밟아 한참이나 따라갔다.
따라가다가 정신이 도은 때는 어디로 가는 건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사는가도 알고 싶었다.
그들은 천변을 끼고 자꾸 올라갔다.
저희들끼리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나.
그래서니 아주니 하는 말대문이 가끔 흐를 뿐 무슨 이야기인지는 짐작할 도리가 없었다.
삼청동 막바지에서 그들은 비타를 타고 산기슬구로 올라간다.
나는 허리끈을 잡힌 사람처럼 무한정 따라갔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거기는 난 가게처럼 거적과 양철 조각으로만 지은 집이 사오십 채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말로만 듣던 빈민굴이 여기던가 했다.
그것은 할 일 없이 석유괴를 세워놓은 것 같은 심하게 말한다면 돼지울 그대로였다.
20세기 문명의 자랑이라는 전기가 여기까지 올리도 만무했지만 석유뿔이 남아 안 켠 집이 많았다.
불은 켰대도 불빛이 새어나올 창도 없는 집도 그 중면에 있는 것 같았다.
요모의 일행이 들어간 것도 이 집 중의 하나였다.
나쁜 짓이라고는 생각하면서도 그대로 내려오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는 발이 가는 대로 따라갔다.
그것은 이 불확의 맨 끝이었다.
희미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불확에서도 재인을 날림으로 꾸민 헛간이었다.
벽은 모두가 가만히 짝이었다.
한동안 불을 켜고 무엇을 치우고 하느라고 법석을 치우더니 어린애 우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것은 아까 등에 매달렸던 어린 것 요량에서는 갓난의 울음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나이 딸년 또래의 젖먹이 울음소리였다.
하나도 없다는 것이 자그마치 셋씩?
나는 속에서 푹 침이 올라오는 것을 꿀꺽 참았다.
그 푼더분하고 순박해 보이는 얼굴 어디에 이렇게 앙큼스러운 일면이 있었던가 싶어
나는 어둠 속에서 유모의 얼굴을 그려보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온후한 맛이 도는 그 눈원절이
더없이 후해 보이는 코
덤덤하게 담은 입
오줌동이나 이었으면 격에 맞음직한 그 얼굴 어느 구석에 그렇게 앙큼스러운 일면이 있을까
유모는 말소리까지 그랬다.
덤덤한 게 어딘지 어리석어 보였다.
웃음소리만 해도 그랬다.
앙칼진대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얼굴로나 착역으로나 음성으로나 여유가 있는 유모였다.
그 유모가 그럴 수가 없지 사실을 눈앞에 놓고는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제서야 유모를 다시 한 번 뜯어보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눈갓이 알로 축 쳐진 것이 얼굴답지 않게 요염한 인상을 주는 것 같이도 생각이었다.
그렇다. 눈이다. 눈!
언격결에 갓난 것이 잡는 소리를 한다.
묘해라고 어루는 소리가 나더니
이런 놈의 팔자가 있담.
제 자식은 저지저거 안다를 하는데
남의 자식한테 젖을 먹이러 다닌담.
세상도 고르지도 못하지 하고는 한숨이 꺼진다.
이 사람아 빈말이라도 그런 소릴락 말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아이 아니면 다섯 식구가 고태꼴 갈판이여.
이것은 남편의 말이었다.
안만해도 얘가 죽을라나보오.
어째서 못돌리고 이렇게 감기가 심할까.
무엇보다도 기침을 놔야 해.
갓난의 기침 소리라고 양철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걸 그리야.
말 거취가 젖먹이가 몹시 알른 모양이다.
과연 조금 있더니 깔딱 넘어가게 기침을 한다.
요새 며칠 제때를 못 맞춘 것도 그 까닭이었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불평에도 일리는 있었구나 했다.
또 한바탕 기침이 터졌다.
그 망할 놈의 계집앤 처먹기도 해.
나는 질겁을 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쫓기는 사람처럼 부리나케 비타를 내려와서
그 불확이 보이지 않는 데까지 와서야 숨을 내쉬었다.
까닭없이 괴로웠다.
거기에 있기만 하면 점점 무서운 말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괘씸한 년.
득 성냥을 그어서 담배를 부쳐물고
나는 한참이나 산등성인을 올려다보았다.
괘씸한 요량에서는 연놈을 한번 휘둘려봤으면 싶었다.
속이는 것보다도 속은 것이 분했다.
처음부터 그런 사정을 이야기했다더라도
자식 없는 저지 날데가 없을 게고
나 또한 그렇게 수수 때 속처럼 차질을 아는 토고 보니
그만 그쯤이야 양해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한 자기를 감쪽같이 골려먹은 유모가 밉다 못해 분했다.
에이 깜찍한 것들.
어디들 보자.
15원이나마 없으면 너들도 어려울걸.
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혼자 되뇌었다.
내가 자식을 굶겨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네 젖은 안 먹일 테다.
정말 저 때문에 큰일 났어요.
내 젖은 그나마도 안 나고
유모 젖은 자꾸만 줄어가고.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오만상을 찌푸리었을 말소리다.
아따 짜증을 내더라도 방에 들어가서나 냅시다 그려.
애는 배를 못 채워 잡는 소리를 하고
온종일 나 혼자서만 메대기를 치니 살겠어요.
아이볼 계집앤 하나 얻어주든지 식모를 하나 구해보든지
이제 그만해둬 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아내가 앉기를 기다려.
그런데
여보 하고 말을 꺼냈다.
아내는 무슨 얘기인가 싶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앉았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를 하자고 하더니 차마 용기가 안 난다.
아무리 유모의 한 짓은 괘씸하다 친다더라도
자식을 가진 어미로서의 그를 나무랄 또리는 없다 싶었다.
그 말을 듣는다면
그 성미에 녹두방정이 나올 것도 겁 안 나는 바도 아니기는 했지만
그보다도
내 자식 줄인다고 남의 자식 굶겨 죽이라고 강요할 또리는 없지 않을까 했다.
제 자식을 살리자고 유모를 구하는 아내의 모성애나
이 세상에 나올 때 어엿한 제 젖을 가지고 와서
부모의 가난 때문에 남에게 빼앗기고
골골 하는 자식을 불쌍히 생각하는 유모의 심정이나
자식에 대한 애정이면 다름이 없지 않을까.
여기에서 젖을 뺏긴 쪽을 따진다면
유모의 어린 것이 제 조통을 빨려고 하는 것은 부여된 권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 호의에 대한 사례였다.
호의란 것은 베풀 수 있는 일일지라도
결코 그것을 강요할 성질은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당당한 주권을 가진 유모의 어린 것은
강요할 성질이 못 되는 호의를 받고
그 대가로 권리를 빼앗긴 것이었다.
유모의 어린애로 써볼 때에
그것은 심히 모순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큰 모순이오.
더 억울한 것은 자기의 자유의사에서 생긴 교환이 아니오.
부모의 자유의사, 아니 돈이라는 야릇한 물건에 정복된 부모의 무능이
그것을 강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도 더 큰 모순은
그네들만 한데도 이렇게 모순된 교환 조건을
달게 받기는 하나마 결코 바라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저쪽에서 줄 권리가 있을지 몰라도
이쪽에서 달랄 권리는 없는 유모의 젖꼭지였다.
나는 나 자신을 비웃었다.
확실히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제 것을 제가 먹자고 애를 쓰는 아이를 나무란 나 자신을 조롱했다.
그리고 유아에게 맡은 조통을 맡긴 당자에게 반환했다고
유모를 욕한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쳤다.
자식에게 대한 애정으로 아니 남의 것을 일시적으로 맡은 사람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그 먼 곳을 무릅쓰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왕복한 유모가 아니었던가.
삼청동 막바지를 화동이라고 속여가며까지
눈이 말똥말똥하니 산 자식들을 주건로라고 꾸며가면서까지
자기의 맡은 임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한 유모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유모를 나무랄 용기가 다시는 안 났다.
그때 유모에게 대한 나의 감정이라면 동정이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정의감이었다.
나는 지혜가 맡긴 젖을 달라고 그 악을 떠는 어린 것을 떼치고
띵띵 부른 조통을 움켜쥐고
삼청동 막바지에서 개동 꼭대기를 달려올 때의 유모의 심정을
이리저리 상상해 보았다.
더욱이 병까지 난 어린 것을 떼 놓고
투실투실하게 살쪄가는 남의 자식을 찾아 나올 때의 유모의 표정을
상상해 보고 있었다.
나 참 싱거운 양반도 봤수.
남을 불러놓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앉으셨수. 그래?
나는 그대로 잠자꾸만 있었다.
지금의 나의 심경을 그에게 이야기한댔자
아내는 비웃기만 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은 일요일도 아니었지만 나는 사회도 안 나갔다.
아내는 아침부터 머리를 빗는다.
치마 주름을 잡는다. 법석이다.
왜? 어딜 갈라우?
좀 나갔다 오겠어요. 집에 계시다지요.
어딜 가기에?
유모, 한군데 말해볼까 해서 그래요.
네, 곧 다녀 들어올게니 아이 좀 보셔요.
유모를 두고서 무슨 유모를 또 구하러 간다고 야단이요?
하고 나는 펄쩍 뛰었다.
유모라고 쓰겠어요?
그 흔쾌나는 젖을 어떻게 하는 겐지 글쎄
요새는 빈꼭지만 빨리고 간다우.
필시 어떤 놈의 집자식한테 젖을 데이는 게야.
그러게 그렇지 뭐요.
나는 한사코 아내를 만류했다.
유모의 젖이 시원치 않은 것은
요새 자기 남편의 병으로 돈이 몰리니까
배를 줄여 그런 것이다.
그렇게 가난한 사람을 지금 당장 뗀다는 것도
사람으로서는 차마 못할 노릇이요.
그럴 리 없겠지만
설사 다른데 젖 먹이는 곳이 있다손 치더라도
굶어 죽잔을 나고 하는 노릇이고
아이 없는 어머니에게 젖이 날 턱이 없고 보니
제 자식 있는 사람의 젖을 얻어 먹이는 것보다도
갈라 먹이더라도 제 소생 없는 편이 유리하지 않느냐는 것을
여러 가지로 역설에 들리였다.
생각해 보구려.
당신이 남의 집 유모로 들어갔더라도
아무러면 남의 집 자식이 내 자식만큼이야 소중하겠소.
그건 사람의 본능인데 뭘.
그러니 두 집 유모 노릇을 한다 가정한데도
제 자식 없는 편이 되려 낯선댄다.
그 말을 듣더니 아내도 그럴싱한지 주저앉고 말았다.
유모는 열 시나 돼서 왔다.
나는 아내한테 눈짓을 해서 밥을 차려 주었다.
바깥 어른은 좀 어떠시오?
나는 이런 인사를 하면서도 낯이 간지럽기는 했다.
좀 그만합니다.
어, 그거 참 다행이군.
유모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자 나는 더 말이 안 나갔다.
유모는 몹시 거북하던지
젖이 모두 새 빠져서
하며 어린 것에게 젖꼭지를 물린다.
우리 성순이한테 젖꼭지를 물릴 때마다
유모도 이런 것 생각이 나겠구려.
까딱하면 큰일 나지.
아이 하나 기르기가 우리같이 힘들어서야.
무심코 한 말이건만 유모의 귓바퀴는 빨개졌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 말이나 유모에게는 코 찔렸을 것이다.
유모는 아무 대답도 없이 어쩔 줄을 모르더니
아유, 몹시 시장했던갑에 가협서라
하고 어린 것의 뺨을 어루만진다.
유모 어린 것 이름 대신 자식이 하나 생겼으니
부디 좀 잘 키워주슈.
저것이야 바가지나 긁을 줄 알지 뭘 안다우.
나는 이렇게 웃음의 소리를 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유모는 그 말에도 대답이 없이 얼굴만 붉어졌다.
그것이 더 안타까웠다.
푸우 나는 연기를 내뿜었다.
문구멍으로 새어든 햇살은
마치 빨랫줄처럼 방을 가로질러 맞은편 벽에 못 박혔다.
자주빛 담배연기는 물살을 이루듯 햇살을 칭칭 감고 돌아간다.
잘 머구? 나는 유모를 돌아보았다.
네, 아주 꿀떡꿀떡 넘어가요.
우리 성순이가 복은 많구나.
혼잣말로 이렇게 말을 하고 나는 내 방으로 건너왔다.
어쩐지 지금의 내 자신의 생활이 유모의 그 생활과 똑같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자신에 대한 증오가 무럭 치밀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벌써 써야 할 사직원이 여태 백지대로 있는 것은 내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어떻게 감상하셨나요?
갓 낳은 아이에게는 영양가 풍부한 엄마의 젖을 물리는 것이 당연한 것일텐데
정작 엄마에게서는 아기에게 줄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부모의 마음이야 오죽할까요?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방법으로 유모를 구해서 아기를 먹이려는 노력을 하겠죠.
요즘 같아서는 분유가 워낙에 잘 나오고 하니 이런 걱정이야 거의 없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분유가 있더라도 귀에서 쉽게 먹일 수는 없었을 듯합니다.
그렇게 해서 구해진 유모는 먹고 살기 위해 있는 자식도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기 자식에게 주어야 할 젖을 다른 아이 살리는데 주고 있는 그 유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쓰릴까 싶어서 제 마음이 애잔해지고
주인공 나가 유모에 대해 느꼈던 것처럼 저 또한 동정심과 연민의 마음이 생깁니다.
세상이 돈이라는 불공평한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때가 올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지금까지 이무영의 유모를 읽어드렸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시간에 또 재미있는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행복하세요.
빛이 아득하게 멀어지고 길이 사라져버린 듯해도
두려움 너에 있는 고요한 천둥소리가
네가 아는 더 깊은 곳에 널 집으로 데려갈 무언가 있어
바람이 몰아쳐도 뿌리는 땅속 깊이 넌 흔들릴지 몰라도
부러지지 않아 어둠이 밀려와도 네 안에 불신은 꺼지지 않는 곳에 타오르고 있어
가장 깊은 골짜기를 지나 가장 긴 어둠을 견디며
마음의 중심을 잡고 빛을 놓지마 모든 산이 네 안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새기고 있어
네 주변 사람들이 넌 해낼 수 없단 말할 때 의심의 무게가 진실을 묻어버리려 할 때
고요함 속에서 믿음이 조용히 자라나는 걸 기억해
허리케인의 눈 속 그곳에 평화가 흘러 올라니
네가 누구인지 정의하게 두지마 고요함 속에 있는 힘이 널 멀리까지 데려갈 거야
바람이 몰아쳐도 뿌리는 땅속 깊이 넌 흔들릴지 몰라도 부러지지 않아
어둠이 밀려와도 네 안에 불신은 꺼지지 않는 곳에 타오르고 있어
한 호흡씩 천천히 손을 펴고 내려놓아놓은 지금은 저 어둠 속에서도
내일의 길이 보이지 않고 어제의 그림자가 길어도 지금 이 순간만이 내게 주어진 전부
널 거꾸로 휘어짐을 가르치고 너를 지우지 못한 시간이 다시 너를 일으켜 세워
채 속에 싹트는 새싹처럼 상처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네가 지나온 모든 계절이 너의 나이 때가 되어가
바람이 몰아쳐도 뿌리는 땅속 깊이 넌 흔들리지 몰라도 부러지지 않아
어둠이 밀려와도 네 안에 불신은 꺼지지 않는 곳에 아니 절대 꺼지지 않아
가장 깊은 골짜기를 지나 가장 긴 어둠을 견디며
마음의 중심을 잡고 빛을 놓지 마
네가 건너는 모든 강과 네가 오르는 모든 산이 네 안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새기고 있어
무언가를 새기고 있어
바람이 몰아쳐도 뿌리는 더 깊이 내려
어둠이 밀려와도 불신은 타오르고 있어 부러지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