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냐? 돈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두가지 선택지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춘몽곡] 윤기정 #책읽어주는남자 #오디오북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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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00:00:00 인트로
00:02:08 본문낭독
00:52:52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54:30 클로징 음악 "그대는 모르죠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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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말을 할 때 사랑의 결실은 결혼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결혼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남선녀가 뜨겁게 사랑을 해서 그 사랑의 결실을 이루는 것이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이 되어야 한다면
사랑해서 결혼을 했으니 당연하게도 결혼을 위해선 사랑만 있으면 돼 라고 하실 건가요?
아니면 조금 더 생각해 보니까 사람과 함께 다른 조건도 좀 봐야 하지 않을까 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오늘 제가 읽어드리는 작품이 바로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련되고 상냥하고 예쁜 외모에 부유한 은행가를 아빠로 둔 젊은 여성과
조선에서도 이름날 정도로 엄청난 재력을 가진 아버지를 둔 잘생긴 젊은 남자가 있습니다.
이 둘은 보기만 해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죠.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거칠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두 젊은이의 사랑은 과연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맺지 못할까요? 이 소설을 잘 들으시면 사랑의 결실이 결혼인지
결혼의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한국소설 읽기 지금부터 윤기정 작가가 1927년 사회공론에 발표한 소설
여러분들께서 즐겁게 들어주신다면 정말 기쁠 것입니다.
수삼일 내로 개나리와 진달라의 꽃을 활짝 피게 하였다.
흠씬 위안을 얻으려 함인지 북적대는 서울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교회로나마 아쉬운데로 몰려나가는 모양이다.
오정대가 가까워 올수록 전차는 한층 분비를 따릅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차도 초만원을 이룬 채 정류장마다 별로 서는 법도 없이 줄기차게 내닥고만 있다.
이처럼 줄다름치던 전차가 어느덧 청량리 앞에 와 닿으니
차 속으로부터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앞을 다투어 내리기 시작하였다.
머리에는 강무를 쓰고 어깨에는 스프링코트를 걸친 한때의 학생 여럿.
방금 차에서 내리는 그들 틈에 건묻어 내려가지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홍능도 가는 어구에까지 이르더니만
한 번 꺾여 모두들 그 길로 잡아 들어선다. 겨운에 꼭 죽었던 풀들은 대견하게도 다시금
새싹이 파릇파릇 숨쉬기 시작하는데 간간히 은가루처럼 시설이 돋고 진자주빛인 할미꽃이 고개를 충 늘어뜨린 채 피어있고
넥가에 드문드문 섰는 수양고들. 제철 만난듯이 뾰족뾰족 싹이 트여 가지가 축충 늘어져 있다.
그들의 한때는 백사장처럼 편한 길을 무척 흥에 겨워 가로 뛰고 세로 뛰면서 걷고들 있다.
어떤 학생은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먼 산을 바라보고 목을 소숭 끼어 노래를 빼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마라톤 하듯 무작정 하고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앞으로 앞으로 줄다름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뭉텅한 돌멩이를 축구나 하듯이 발뿌리로 우락부락하게 막 걷어차면서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맨 뒤에 떨어져서 이름도 모를 이상야릇한 풀과 생생하게 피었어도 보기에 시든 듯한
할미꽃 몇송이를 따가지고 연해 코에다 댔다 뗐다 하며 천천히 걷고 있다. 바로 이때다.
철모르는 어린애들처럼 개댁질을 하는 그들의 등 뒤에서 벼랑간 경풍을 할만치 경적을 울리며 한대의 자동차가 쏜살같이 달려든다.
자동차와 그들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 올수록 요란한 엔진 소리는 귀를 시끄럽게 무소라 놓았다.
그중 맨 뒤에서 걸어가던 학생이 멈칫하고 길 옆으로 비켜선다. 지금처럼 전속력을 내달리는 자동차도 바로 그 학생 앞에 와 우뚝 선다.
승호씨, 올라타세요. 네? 연주홍빛 문하부다이로 아래위를 일매직에 그리고 몸을 꼭 맞게 해 입고 오렌지빛 숄을 아주 멋지게 어깨에 걸친 미인타입의 노상 앳되 보이는 여자 하나가
창밖을 엉거주춤한 채 내다보면서 말한다. 난 누구라고? 그런데 웬일이요?
학생은 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 여인을 바라보며 말대꾸를 하였다. 날 따돌리고 이렇게 다니시면 누가 모를 줄 아세요?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어서 올라타시죠. 거진 다 왔지만 내 홍릉 앞까지 태우다 드릴게요.
이렇게 의미 있는 듯이 조금 더 서슴지 않고 말하면서 연애 생글생글 웃는다.
어여쁘게 생긴 얼굴에다가 더욱 귀염성 있게 애교를 부린다. 따돌리기는 누가 따돌려? 일전에 만났을 때 이번 공휴일에는 아버님과 온천을 간다고 하지 않았수?
그래, 나는 어제 오후차로 내려간 줄 알았구려. 그런데 모두들 안 가셨수?
아뇨, 저만 빠졌어요. 그런데 제가 이처럼 승호씨의 뒤를 밟아온 것은 퍽 부은하신 게로구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승호의 태도가 약간 당황해진다. 그러면 올라타시래도 아니 탓이고 아버지와 같이 간 줄로만 하셨다니
제가 쫓아온 것이 불찰이죠. 뭐예요? 금시로 기색이 변해 아주 눈에 띌 만치 새침해진다.
그제야 승호는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렇게 오해할 것이 아니라 이번 일요일에는 정휘와 같이 즐겁게 못 노는구나 하고 여간 유감으로 생각한 게 아니며
또는 조금 전까지도 혼자 뒤떨어져 걸어오면서 공연이 찌뿌드하기만 하다가 의외로 반가운 사람을 대하게 되니까 그런 것이고
자동차에 얼핏 오르지 않은 것은 일행이 여럿이니까 그런 것이지 무슨 다른 이유는 절대로 없는 게요.
호호, 절 생각하시고 또는 반겨주실 줄 믿으니까 쫓아온 거죠.
그리고 휘어진 곳에서 사람이 한둘 더 타면 어때요? 저기 저렇게 몇 분 우둑우둑 서서들 계시니 어서 올라 타시라고 여쭈세요.
이 안이 꽉 차면 양옆에 매달려라도 가시죠. 그건 아무렇게나 해도 좋지만 이분 옷이 그게 뭐요? 학생 신분으로.
왜 어때요? 좀 화려한 편이지만 일요일이고 더구나 이런 곳에 나오는 데는 괜찮지 않나요?
말하자면 일요일 날은 학생이 아니요. 야외는 예외란 말이구려. 아이, 난 몰라요. 또 만나셨나 봐.
빈청거리기 시작하시니. 나도 모르겠어. 너무나 호사를 했다고 여러 사람들한테 찢고 까불림을 당하더라도
그분들의 편이나 들지 마시고 중립 행동만 취하셨으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래도 정의의 편을 들리다.
안심하오. 애당초부터 고분분투할 각오를 하고 나왔으니까 승호씨도 남자의 편을 들어서 저와 겨뤄보시죠.
여보, 운전수, 잠깐만 정거해 주오. 정의의 여무지게 하는 말에 따라 아까보다 저흑이 느리게 가던 자동차는
수삼인의 학생이 우득우득 서서 있는 앞에 와 딱 서고 말았다.
자동차 안으로 그들은 몰려 들어갔다. 움직여 가지고 얼마 가지 않는 자동차는 또다시 서서 사람을 또 실었다.
이렇게 하기를 수삼 차례 하였다. 마치 바가지에 박들을 주워 담듯이 자동차는 그들을 담아 가지고 청량사 들어가는 어구를 지나쳤다.
홍릉 앞까지 다다르니 먼저 나와 있던 한때의 학생들이 팔을 벌리고 내다르며 부르지듯이 외친다.
자동차 양편 흑바퀴에 매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새파란 솔잎이 고개를 들고서 뾰족뾰족하게 나오는 그 위에서 따뜻한 봄볕을 전신에 흠뻑 받으며 마음껏 날뛰는 10여 명의 젊은이들.
그들은 모두 전문학교가 아니면 대학에 학적을 둔 학생들이었다.
학교는 일매직에 같이 안 했지만 중학교만은 동창들이었다.
중학교까지는 그들로 하여금 같은 길을 밟게 하였으나 한 번 중학문 밖을 나서고 보니 그들의 이상과 장래의 희망은 벌써 각각 딴 길을 밟게 만들었다.
의전, 법전, 보전, 연전, 공전 그리고 대학문과 앞날에 닥쳐올 크고도 찬란한 희망을 잠시 한때라도 잊어보지 않고 반드시 맛볼 느긋한 행복을 꿈꾸며 책상머리에서 노트와 펜을 가지고 싸우면서 머리를 쥐어짜고 정신을 흔나들이는 그들은 이제 모든 것을 깨끗이 잊어버린 듯이 내어버린 듯이
마치 유치원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애들이 까닥도 모르게 즐거워 날뛰는 것과 꼭 같은 그런 기쁨과 그런 동작으로 한대 얽혀 격에 맞지 않게 개닥치를 하고 있다.
주고받는 말소리가 높았다 낮아졌다 하며 너털 웃음, 간드러진 웃음이 간간히 일어나기도 하며 흥에겨온 노래조차 이른봄 아지랑이 낀 벌판을 마음껏 뒤흔들어 놓고 사면으로 흩어진다.
그들 틈에 홍일점으로 오직 여성이라고는 하나밖에 섞여있지 않았으니 그는 서울 공공은행의 두추요 소문에 백만원이 넘는다고들 하나 그 실은 백만원이 차려면 앞으로 3-4년 더 걸려야 하겠지만
아무튼지 당대 굴지할 만한 재산가인 김어식의 무남동녀 딸로 비단결같이 고의고의 자라난 동부간에 인물곱기로 평판이 높은 데다가 보고 듣는 사람마다 부러워할 만치 끝없는 호강살이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정의란 여자이다.
정의는 방금 세상 모르고 날뛰며들 있는 여러 젊은이들 중에 한 사람인 이승호의 연인이요. 양쪽 부모가 서로 승낙까지 해준 공공연한 약혼자이다.
지방끼리만 은근히 승낙하고 둘이 모든 행동을 묵인해 내려올 뿐만 아니라 여기 지금 모인 승호의 여러 친구로 말하더라도 그들의 사이를 애인은커녕 마치 벌써 오래전에 부부나 된 것처럼 대한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승호의 아버지 이대석이로 말하더라도 여러가지 사업에 손을 대어 가지고 있는 벼락부자라고 하는 것은 경성시럽계에서 쩡쩡 울리는 그 역시 당대 인류부호이다.
대시럽가의 아드님과 은행가의 따님. 게다가 사내답게 어글어글하게 잘생긴 쾌남아와 아기자기하게 영미하고도 어예쁘게 생긴 미인 사이에 얽히는 사랑.
서로 믿고 이해하고 지극히 사랑하고들 있는 그 둘의 사이를 뉘마저 부러워하지 않으랴.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두터워만 가는 이 세상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고 옹석함이 없는 그들의 무한한 행복은 이 세상 살아가는데 한낱 행복의 표본이 되다시피 하였다.
좀 조용한 곳에서 단둘만 재미있게 속삭여 보고 싶은 승호와 정희는 꽁무니를 뺄 생각을 하고 어느 틈인지 여러 동무들의 눈을 슬슬 기어가지고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넘어서 양지가발은 조금 비탈진 곳에 와 털썩들 앉는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기쁨에 넘치는 웃음을 연해 웃고들 있다.
자기네들도 모르는 사이에 손과 손은 탑처럼 2층 3층으로 쌓여졌고 아지랑에 낀 먼 산을 사랑에 취한 듯 안개에 펼쳐있는 대자연에 취한 듯한 저흑이 긴장되고 흥분된 네 개의 눈동자는 마치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동경하는 이의 눈같이 보인다.
바로 한등성이 넘어서 다른 학생들이 요란스럽게 떠드는 소리와 노래 부르는 소리, 손뼉을 치며 웃는 소리가 이따금씩 가벼운 바람결에 검묻어 혹은 똑똑히 혹은 희미하게 들려온다.
승호씨, 왜 그래? 정다운 말씨, 은근한 대화는 안 된 지 얼마 만에 시작되었다. 댁의 아버님께서는 결혼을 퍽 재촉하시지요. 그렇지만 집에 아버님께서는 아직 이르다고 노상 말씀하세요.
승호씨도 학교를 마치시고 어서 되든 안 되든 졸업이라도 마친 다음에야 식을 거하게 하실 모양이에요.
흥, 그도 그러실 테지. 학교를 파시는 것은 한낱 핑계시고 그 실상을 캐본다면 그럴 듯한 사정이 숨어 있지.
아니, 그 사정이란 뭐예요? 에이, 화나 죽겠네. 왜 대답이 없으세요? 나한테 물을 게 뭐야?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 봐도 알로르슬. 엥? 속상해 죽겠네. 남 골만 올리고. 정령 모른단 말이요?
알지 못하니까 묻는 게 아니요. 뭘, 자기에게 해로우니까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게지. 나도 다 알아.
아휴, 하느님 맙소사. 번외 소리 작작하세요? 정, 그렇다면 말하지.
외딸 하나를 꼬이꼬이 길렀다가 남 내주기 아까워서 아니 섭섭해서 그러시는 게지 뭐예요? 안 그렇소?
그렇지만 우리 아버님께서는 얼른 손자라도 보시고 싶으신 게야. 가끔 그런 눈치에 말씀하시는 걸 빼면.
환갑이 불온하시니까 그도 그러실 테죠.
가만히 생각하면 앞앞이 자기 욕심이에요. 정의 아버님의 생각도 그렇다고는 않아도,
그리고 아주 결혼을 하고 나면 공부에 방해되겠다고 염려하시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소.
암만 해도 혼자 떨어져 있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이 공부하는데 여간 상관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어찌 됐든 간에 더 참지요. 4, 5년쯤 참고 내려왔는데 1, 2년쯤이야 더 못 기다리라구요?
내가 공부를 마치려면 적어도 미 앞으로 7, 8년은 더 있어야 할 걸.
네? 7, 8년이라뇨? 왜 그리 즐겁을 해 놀라오?
생각해 보구려. 이 학교를 마치고는 외국 가서 연구를 더 해야만 하지 않겠소?
정의의 기색이 약간 좋지 못해진다.
얼른 결혼하고 싶우? 아니오.
낯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지금 다니는 학교만 마치거든 두 말 말고 결혼합시다 그려.
올해만 훌쩍 넘어가고 내 후년 봄까지는 그다지 멀지도 않으니까.
정의도 내년 봄에 졸업하거들랑 쓸데없이 놀지 말고 피아노나 한 1년 더 공부하구려.
네. 저도 아무튼지 한 2해 동안 피아노만을 전공해볼 결심이에요.
이렇게 말대꾸를 하며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든다.
그래 무엇이 만족한지 온 얼굴에다 듬뿍 미소를 머금고 승호를 물끄럼이 쳐다본다.
승호도 덩달아 빙글에 웃는다.
한참 동안을 내리두고 왁자지껄하게 마음 놓고 떠들며
공소폭소가 연발하던 여러 동무들의 시끄럽던 자취는 어느덧 잠든 듯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사랑에 취한 이 두 젊은이는 야단법석을 하든 또는 그 무리들이 어디로 갔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으므로 의심할 나위도 없이 그들을 아주 잊어버리고 앉아있었다.
살속으로 숨어드는 듯한 봄바람은 너기른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던 두 사람의 긴장한 얼굴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품 안으로 기어든다.
종달새 소리며 그 외의 이름도 모를 무샛대의 나뭇가지 위에서 끊임없이 지저기는 그 소리만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고
결혼 행진곡에 발맞춰 천천히 걷는 듯한 몽롱한 꿈속 같은 그 가운데 깊이 잠겨 부지 중 두 몸의 거리는 지극히 가까워졌다.
뺨과 뺨이 서로 따뜻함을 유지한 가운데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두루의 등주에서 일제히
이처럼 뜻하지 아니한 불씨의 총공격에 두루의 단꿈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부서져 멈칫하고
다시 두루의 거리가 멀어지며 약간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서 본다.
그래 총동원을 해가지고 주위를 골똘히 수사한 결과가 이같이
지꾸끼로 유명한 키따리가 당장 옆에다 미인을 데리고 걸어가는 신용을 내면서 익살맞게 이죽든다.
여럿은 일제히 소리높여 웃었다.
일동은 순식간에 손과 손을 마주들 잡은 다음 승우와 정의를 동그랗게 에워싸고 빙빙 돌면서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른다.
어린애들처럼 껑충껑충 뛰면서 이렇다 말할 수 없는 미안과 부끄러움.
그렇지만 한편으로 숨길 수 없는 기쁨에 넘쳐 이래저래 어쩔 줄 모르고
다만 얼떨떨해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승우와 정의도
조금 지나니까 모든 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박자를 맞춘다.
따뜻하게 내리비치던 봄볕도 어느덧 서산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하니
먼 산의 아지랑이도 씻은 듯 부신 듯 쓰러지고
나뭇잎을 가벼이 흔드는 산들바람만이 바야흐로 황혼을 재촉하는 이들의 쓸쓸한 기분을 무사람으로 하여금 맛보게 한다.
지금까지 마음껏 놀던 그들은 조금 비탈진 곳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오고들 있다.
좌우 옆으로 주랭랑이 이어있는 한가운데 우뚝 솟은 소슬대문만 보더라도
그 집 안체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대문 안으로 썩 들어서면 반대 방향으로 중문들이 마주 건너다보고 있으니
안은 내실로 통하는 문이오 또 하나는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화려하고도 오밀조밀하게 꾸민 안팎이야말로
도저히 보통 사람으론 꿈도 꾸어보지 못할 훌륭한 차림차림이다.
더구나 사랑 동쪽의 홀로 우뚝 솟은 이 중에선
퍽 드높은 양관 안이야말로 서울 안에서 누구나 일컫는 사치할대로 사치한 요지경 속 같은 곳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본다면 벼락부자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호화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양관 2층 위 응겹실 안에서 혼자 전화를 받고 있던 승호의 부친은 차차로 저상을 한다.
나중에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말소리는 황황하고도 아른해진다.
뭐? 광산이 폭발되었다고? 응. 응. 그래. 만방이 폭락. 그래. 그래서? 응. 응. 폭락이면 좋지 않은가?
싸게 싸 팔아놓은 게 있으니까 싸게 사면 좋지. 뭐? 돈이 없어? 뭐야? 응. 그래. 공공은행의 부도야.
부도라니? 그게 정말인가? 그래 참말 부도란 말이지. 암흑의 은행에도 부도라. 응. 응.
그는 힘없이 수화기를 떨어뜨리며 그 자리에 픽 쓰러진다. 아. 하. 이제는 세상 놈들이 모두 나를 버렸구나.
헌식이조차 나를 버리고 말았구나. 만사는 휴다. 괴롭게 찌푸린 그의 얼굴에는 비장한 빛이 떠돈다.
그는 잠자코 한 뒤에 무엇을 생각한 듯이 또는 굳은 결심을 한 듯이 내실로 황황히 걸어 들어간다.
한참 만에 안으로부터 여하인 하나가 급한 걸음으로 뛰어나와 사랑 양관 아래층 현관을 들어간다.
사랑에 있던 몇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 가지고 여하인을 바라본다.
여하인은 더듬는 말로 저 큰 큰일 났어요. 얼른 좀 의사를 청해 주세요.
영간마님께서 영간마님께 영간마님께서 어쨌단 말이야. 똑똑히 말 좀 해.
영간마님 약 약을 잡수고 펄펄 뛰세요. 뭐 무슨 약을 잡수셨다.
우뚝 섰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듯이 몇 사람은 전화 있는 곳으로 또 몇 사람은 안으로 이렇게 갈팡질팡들 한다.
급보들 가지고 나온 여하인은 이제야 자기의 큰 책임을 다해 걱정 없다는 듯이 그 자리에 맥불린 사람처럼 펄썩 주저앉는다.
한구석에 가만히 서서 있던 직구준 상로가 그의 등을 탁 치면서.
서녀어멈 정신 차려. 이거 왜 이래.
서녀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이켜 보더니만 입을 삐죽하며.
이 녀석이 미쳤나. 실성을 했나. 벼랑간에 누구를 보고 함부로 반말이냐.
이거 뭐 난리가 쳐들어오니. 아니 영간마님께서 턱을 까부신다면서.
예이 빌어먹을 녀석 같으니라고.
염려 말어. 미 구해. 다른 데로 빌어먹으러 나갈 테니.
어이 보기 싫어.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넙죽넙죽 잘 이죽된다.
서녀어머니는 두 눈에 흰자위가 다 나오도록 눈을 흘기면서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승호는 자기 집안에 이런 부류의 변사가 있을 줄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온종일 재미나게 놀던 즐거운 장면 장면을 머릿속에 다시금 그려가면서
소나무와 전나무가 얽흐러진 사랑마당을 지나 양관 아래층으로 들어섰다.
조금 전에 여하인과 실룩거리던 젊은 상로가 내다르며.
서방님 빨리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왜. 글쎄. 얼른 들어가 보세요.
아니 왜 그래. 자세한 말을 좀 해주게.
영감마님 무슨 약을 잡수셨다나요.
그래 지금 안에서는 법석입니다.
뭐 어쩌고 어째. 그게 정말인가요.
무슨 소리를 못해서요.
그럼 의사가 왔나.
아직 안 왔지만 곧 올걸요.
전화를 하다 위층으로들 올라가셨으니까요.
단꿈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승호의 머리 위에는
과연 청천명력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그래 정신이 아득아득해지며 얼굴빛이 점점 해슥해지던 그는
안으로 통한 일각 대문 쪽으로 한 다름에 뛰어가더니만 안으로 사라져버린다.
승호가 급한 걸음거리로 사랑마당을 한 다름에 지나 안내창을 바라보고 들어서니
집안은 온통 우름빛이다.
가슴은 덜컥 내려앉고 두 눈은 더욱 휘둥그레져가지고
안방에 들어선 그는 다짜고짜로
아버지! 하고 부르짖으며 신음하는 그의 아버지 옆으로 가까이 다가앉았다.
한동안은 아들이 돌아왔는지 누가 옆에 왔는지도 모르고 그저 괴로워만 할 뿐이다.
이 광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승호의 가슴은 미어지는 듯하다.
하도 기가 막혀서 울음 한자만 나오고
다만 어안이 벙벙해 넋을 잃고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다.
아버지! 승호는 자기 귀에 들리기에도 어색한 목소리로 또 한번 아버지를 불러보았다.
여전히 대답은 없고 더 한층 괴로워 못 견뎌하는 모양.
자식 된 도리에 참한 눈으로 못 볼 노릇이다.
어느덧 승호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점차 그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손등으로 씻고 앉았는 승호의 가여운 형상을 바라다보고
우뚝우뚝 서있는 집안 식구들의 눈에서도 새삼스럽게 눈물이 쏟아져 혹은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혹은 한구석에 돌아서서 흑흑 느끼기도 하고 또는 그대로 선채에 목이 미어 울기도 한다.
어머니! 대체 이게 웬일입니까? 별안간에!
곁에 앉은 어머니의 얼굴을 클키 쳐다보며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물어본다.
낸들 아니!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에 들어와 보니까 이 지경이시구나!
그래, 부리야! 살이야! 사랑으로 사람을 보내고 일변 의사를 청하고 이렇게 야단 법석을 하는 중이다.
그래, 누가 의사를 부르러 갔나요? 전화로 오 박사를 급히 오라고 했단다.
승호는 또다시 아버지의 손을 힘있게 잡고서 소리 없이 울고 있을 뿐이다.
의사가 와서 응급처치를 했으나 아무 효력도 없이 암만 해도 죽을 꼬비를 그대로 넘길 성 쉽지 않다.
승호는 몇 번이나 입원을 할까요? 하고 의사들어 물어보았으나
약을 다량으로 자셨기 때문에 오늘 하루만 두고 보자.
꼬 하면서 변변치 않은 대답을 하고 돌아갔다.
어언간 밤이 이슥해졌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조금 더 차도가 없다.
밤이 의슥해 갈수록 그의 증세도 점점 더하여 갈 뿐이다.
장지 밖까지 합치면 다섯 칸이나 실이 되는 넓다란 방 안에 여러 사람이 쭉 둘러 앉았는데
누구도 수마나 크게 쉬지 않아 주의 죽은 듯이 고요한 품이 마치 무덤 속과도 같다.
이처럼 불안과 초조한 시간이 얼마 동안 계속되었다.
당장 운명하려는 사람의 얼굴을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 승호는 하도 숨이 막히는 것처럼 괴로워 참다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가지고
장지 밖으로 나와서 머리를 수그린 채 왔다 갔다 몇 번 거닐고 있었다.
그러다가 견눈으로 흘끼보니까 아버지가 팔을 쳐들어 누구를 찾는 눈치다.
그래, 얼핏 아버지 앞으로 다시 가까이 와서 다가앉았다.
승호냐? 가늘고도 힘없는 목소리는 떨리기조차 하였다.
네, 저울시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영감, 정신을 좀 차리슈.
그의 어머니도 옆에서 덩달아 말을 꺼냈다.
그리고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예, 승호야.
네, 그처럼 말씀하시기가 괴로우시면 차차하시고 그만두시죠.
아들의 진정에서 흘러나오는 간곡한 소리를 듣고도 그는 좌우로 머리를 약간 흔들며
아니, 앞으로 내 목숨이 오래 붙어있을 성 쉽지가 않아.
이렇게 띄엄띄엄 나오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승호는 벼랑간 기겁을 하며
아버님,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려.
아까 의사의 말이 생명에는 아무 관계가 없노라고 하면서 돌아갔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또 고개를 가벼이 흔들면서
아니다. 머지 않다.
다만 어린 너에게 악착한 판을 보여주는 것이
아비 된 도리에 참말로 못할 노릇을 했다.
기왕 저지른 노릇이니 용서해 다오.
사실이지. 피치 못할 절박한 사정으로 해서
이 몹쓸 애비는 이 길을 택하고야 말았다.
모면하 하려고.
애를 무진 써 봐도 결국 되지 않아.
이제는 아주 막다른 꼴을 탁 당하고 보니 할 수 없어.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고 그만.
더 생각할 나위도 없이 약을 먹었다.
이 지경 되는 것도 나의 운명이오.
이렇게 죽는 것도 내 팔자인가 보다.
이 집도 며칠이 안 가서 남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사방에서 큰 빚쟁이들이
벌떼처럼 와 하고 일어날 것이다.
세상이 모두들 부러워하고 사람마다 입에 침이 없이
왁자하게 떠들던 내가 그만 파산을 당하고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을 하고 보니 어찌 기가 안 막히겠니.
그래. 어미지 돼 매욱한 마음을 되돌려 먹을 나위도 없이
그만 이렇게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버님 그렇다고 돌아가실 리 없습니다.
자기나 좋겠니.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 생각 같아서는
오늘 이 밤을 넘길 성 쉽지 않다.
죽는데도 빈 털털이를 만들어 놓고 나 혼자만 없어지니
눈이 안 감길 것 같다.
모두들 고생할 일을 생각하면 뼈가 녹는 것 같고
또는 왜 약을 먹었는고
살아서 다시 한번 모든 것을 회복하지 못하고 못생기게
왜 죽을 마음을 먹었을까 하는 후에도 지금 당해선 난다.
아버지 그만 고정하시죠.
너무 길게 말씀하시면 몸에 해로울 것 같습니다.
아니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마지막 유언일지도 모른다.
원 도섭스런 소리도 하시는구려.
승호의 어머니가 펄쩍 뛴다.
아버님도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돌아가시긴 왜 돌아가세요.
밝은 날이면 입원을 하실 텐데요.
입원만 하시면 곧 나오십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정말 그럴까?
아까 의사의 말이 아무렇지도 않으시다구요.
그러니까 꼭 나으십니다.
승호는 자기 아버지의 손을 전신에 힘을 주어 지그시 쥐고 앉았다.
새벽 엮이 되어서 벼락부자라고 일컫던 그는 그만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체를 애워싼 승호와 그의 모친과 그의 누이들이며
또 다른 친척들의 슬픔은 여간이 아니다.
멀고 가까운 일가들이며
그 아래에서 일 보는 사람들 모두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수백 명의 밥줄이 끊어졌고
몇몇 은행은 수십만 원씩이나 좋게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런 중에도 경일은행의 손해는 더구나 컸다.
이가달게 책임상 곤란과 사재의 손해 큰 것은
누구보다도 정이 붙인 헌식이었다.
벼락부자는 왜 음독자살을 하지 아니하지 못했나?
첫째 큰 원인은 오십만 원이나 가까이 주고 산 광산이
처음에는 금이 썽 잘 나오더니
내리 이태를 두고서 파고 파고 또 파도 금은 시원하게 안 나왔다.
그리하여 이태 동안에 들어간 비용은 전부가 빚이었으니
그 빚만 해도 상당히 컸다.
그리고 둘째는 주식에 손을 댔다가 크게 낭패를 당하고 만 까닭이다.
애군이 들어 그랬는지 모두가 생각하는 바와는 빚맞았다.
그래 각 은행의 수형기일은 매일같이 다가오고
사사로의 개인에게서 쫓는 채금은 날이 갈수록 성화같았다.
이처럼 쪼들리는 판에 그나마 광산이 폭발을 했으니
사상자가 많이 났을 것은 물론이오
또는 광산만 내세우고 이리저리 융통하던 것이 그나마 송두리째 없어지고 보니
이 앞으로 돈 돌릴 것이 난감하고 앞이 깜깜해져
그만 자기 손으로 자기 목숨을 끊고 만 것이다.
그가 죽은 지 닷새 만에 간단한 형식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났다.
간략하게 장사를 지내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을 생각하며
승호의 슬픔은 더 컸었던 것이다.
승호는 제동 막바지에 있는 어느 조그만 하숙 단칸방으로 옮겼다.
모친을 모시고 궁해진 살림살이라도 버리려고 했으나
인천서 사는 시집간 승호의 큰눈이가
한사코 어머니는 당분간 자기가 모시겠노라고 고집을 펴서
하는 수 없이 어머니만은 인천을 내려가 계시게 되었으며
승호는 자기마저 매부의 집에 얹혀있기가 못해서
학교를 마칠 때까지 하숙 생활을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어머님이 인천으로 내려가시게 되던 날
누님이 그를 보고 약간 언짢아하시면서
지금 어머님의 속이 어떠시겠니?
집안이 졸지에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오죽 화가 나시며
겸해서 얼마나 적적하시겠니?
그러니까 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위로도 해드릴 겸
또는 모든 것이 준비도 되고
너도 공부나 다하고 결혼이나 하거들랑
다시 네가 모시렴
그리고 너는 정 집에 와있기가 싫거든
얼마동안만 하숙 생활이라도 해라
공의를 이용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오르내리렴
그래야 어머님도 덜 섭섭해하실 게다
부디 그래라
누님 모두가 고맙습니다
그러면 누님이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너도 당장엔 여러가지 고민이 머릿속에 하나 가득할 줄 안다
그렇지만 아무 생각도 말고
공부나 착실히 잘 해가지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넘어간 우리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라
이번의 모든 분한 서럼을 푸는 데는 오직 너 하나밖에 또 어디 있니?
그러니까 어려운 할 건 아니지만
부디 부디 공부 잘 하여라
저보다 몇 배 더 힘들어서
그건 염려 마십시오
저도 생각이 있고 또는 이미 결심한 바가 있으니까요
이런 대화가 있은 뒤 얼마 안 가서 그들의 일행은
남대문 정거장으로 나왔다
정거장 대합실에 붙어서 언짢아 하시던 어머니는
차가 떠나려고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에
창밖에 서는 아들의 얼굴을 내다보며
손수건을 연해 눈두덩으로 갖다대고 비빈다
승호는 절인 가슴을 억제하면서 움직이는 차를 쫓아가다가
점점 거리가 멀어져 하는 수 없이 발부리를 돌릴 때에는
그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핑 돌았다
만가하던 살림을 일조일석에 망치고 쫓겨가다시피 하시는 어머님
더구나 홀로 되신 외로운 신세를 생각하시고
얼마나 울고 가셨을까 하는 애달픈 생각을 할 때
가슴은 뭉클하고 앞이 캄캄할 만치 현기증을 느꼈다
첫번길이니 아무튼 누이집 식구들을 대하기가 창피하더라도
어머님을 쫓아 내려갈 것을 잘못했다고
마음속으로 깊이 깊이 후회하기를 마지않았다
금세 떠나신 어머님이지만 갑자기 그리운 생각이 든다
오는 토요일에나 내려가 뵙지
하고 정거장 밖으로 휘적휘적 걸어나왔다
어느 틈인지 전깃불이 일제히 쭉 켜졌다
저물어가는 저녁거리는 승우로 하여금
전해 없이 쓸쓸한 느낌을 더 한층 자아내게 한다
하숙으로 옮겨진 며칠 만에야 정의한테 편지를 했다
그의 집으로 찾아가도 좋으련만은
하도 손해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정의의 부친을 대할 면목이 없어서
편지도 당분간 그만두려다가
주위가 하도 쓸쓸하고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여러 번 망설이다가 한번 만나보았으면 좋겠다고 한
간단한 내용의 편지를 써보낸지가 벌써 사흘이 지났는데도
한번 찾아오긴커녕 답장조차 없다
그전 같으면 편지를 받자마자 즉시 찾아왔을 것이다
허나 답장조차 없을 적에는
반드시 무슨 충절이 있음에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가뜩이나 쥐숭숭한 머릿속이 정의로 말미암아
더 한층 덩쿨처럼 얼클어졌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번갈아 일어나
그를 때때로 괴롭게 하고 몸도 닳도록 초조하게 만들 뿐이다
천 갈래 만 갈래 생각을 하면서도
오직 정의의 마음이 변하였으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설마 정의의 마음이야 변했을리가 있나
돈은 돈이고 사랑은 사랑이지
그리고 아버지는 아버지고 자식은 자식이 아니냐
그렇다면 나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우리들의 사이를 회박놓는 시초가 아닌가
그렇지만 정의의 의사만이 안 그렇다면 고만이 아니냐
좌우간 오늘 하루 더 기다려봐서
아무 소식이 없으면 내일은 세상 없어서도 정의의 집을 찾아가야만 하겠다
그래서 모든 것을 속 시원하게 알고나야만 하겠다
이렇게 입앗말로 혼자 중얼거리며 책상 앞으로 다가앉았다
노트를 펴놓고 오늘 한 필기 위로 눈을 옮겼으나
아예 머릿속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단 한 번을 채 내리 읽지도 않아서 머리 골치만 어지럽다
어, 그만 노트를 탁 덮고 깍지 낀 손을 머리 뒤에다 댄 채
방 한가운데 비스듬히 한 일자를 긋고 반드시 들어오누워버렸다
바로 얼마 전까지 호화롭던 생활도 이제와서는 옛 꿈이 되고 말 줄이야
승어로서 일찍이 뜻하였으랴
암만 생각해도 생시같지 않다
모두가 꿈속에서 헤매는 성만 싶다
불시에 아버님이 변사를 하신 것도 꿈결 같고
남들이 부러워하던 살림살이가 일조에 파산을 하고 만 것도 정말 같지 않게 여겨진다
길에 나서면 무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는 것만 같아 고개를 쳐들 수 없다
학교에 가더라도 동무간에 어울리고 싶지 않아서
전에 절친하던 동무들이라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기를 힘썼다
학교 대문 안을 들어설라 치면 더 한층 우울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언간 하루의 학과를 마칠라 치면
하숙으로 발길을 급히 옮기면서 정의의 모습을 환영으로 그려가며
하고 발을 더욱 자주 떼어놓았다
오늘도 이러한 기분과 감정으로 하숙에 돌아와 보았으나
전화도 편지도 둘 중에 하나도 오지 않았다
그래 외로운 생각과 우울한 기분은 한층 더하여졌다
세상이 귀찮은 생각조차 든다
목을 놓고 엉엉 울고도 싶은 감정이 가슴 속에서 폭파쳐 오른다
그는 한참 동안 부하하니 괴로운 가운데 헤매다가
어렴풋이 잠이 들고 말았다
정의는 자기 아버지 앞에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서서 있다
아담하게 꾸며놓은 응접실 안은 무거운 공기가 떠돌고
얼굴과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 나타나 심상치 않은 기색들이다
너도 생각을 깊이 잘 해봐라
설령 약혼을 했다 할지라도
아버지, 그렇지만...
그렇지만이 다 뭐냐
제일 첫째는 승호의 부친이 나에게 끼친 손해로 말할 것 같으면
기가 막혀서 입 밖에 낼 수 없을만치 어마어마하나
이왕 죽은 사람이라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예 마음이 탐탁하게 끌리지 않는구나
자다가도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오르니
사위라고 어찌 정인들 끌리겠니
나도 조금만 웬만한 사람 같았더라면
그와 마찬가지로 파산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둘째는
이 앞으로 패가한 집자식인 승호에게
무슨 희망이 있다고 귀엽게 기른 너를 호락호락히 내주겠니
내 몸을 생각하고 너의 앞길을 위해서는
애비 된 나로서 단연코 너를 승호에게 맡길 수 없다
애비 말에 왜 대답이 없어?
정인은 그의 아버지 뱃속을 유리나 대고 들여다보듯이
환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승호 씨의 집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망하고 보니
승호마저 끈떨어진 망속중이처럼 된 것은 사실이다
그래 아무것 하나 보잘것 없이 된 승호를 내대고
딴 남자를 내심으로 물색하는 것이
아버지의 말 한마디로 확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아까부터 그에게 대하여 이러니 저러니 한 것도
승호를 단념시키고 딴 데로 혼철을 작정하려는 심산이오
예비수단으로 자기의 심정도 떠볼 겸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려는 야비한 짓이었거니 하고
마음먹음에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 쳐다보인다
내 언제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이는 우리 은행에 새로 들어온 서무과장이다
재산도 상당하거니마 공부도 상과대학을 마쳤으니만치
젊은 은행가로서 일반의 기대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전부터 퍽 호감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번 일이 벌어진 다음부터 승호에게 정이 뚝 떨어지고
그 대신 그에게 마음이 쏠리는구나
너만 좋다면 이번에는 약혼이고 뭐고 할 것 없이
하루 바삐 결혼식을 거행할 작정이다
그러니 너도 깊이 생각해서 이 애비의 진정을 알거든
망설일 것 없이 내 말대로 해라
마음에 꺼림직할 줄도 모르는 반은 아니다만
이제 와서 승호에게 더 바랄 게 뭐냐
정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잠잠히 서서
여러 가지 생각을 두서없이 하기 시작하였다
4, 5년 동안이나 서로 사랑해온 승호씨를
단지 그의 집안이 폐가를 했다든가
또는 아버지가 그와 관계를 끊게 한다고 아주 저버린다는 것은
어디로 보든지 차마 못할 노릇이다
그러나 지금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 이와 같이 산다면
아버님 성질에 상면도 안 하실 것이고
그렇다면 공경에 빠진 승호씨에게 희망이 있나?
또는 아버님이 보조가 있을 텐가
참 딱한 노릇이다
지금 다니는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우리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할 만한 벌이가 쉽사리 잡히는지는 또한 의문이다
아버님 전 그만 안으로 들어가겠어요
그럼 안에 들어가 잘 생각해 보아라
네
정이는 무슨 의미로 네 하고 대답하였는지 모르며
휙 돌아서 나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며칠 지난 뒤 어느 토요일날 오후였다
청목당 위층 식당에는 점심때가 지나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러나 식탁을 한가운데 놓고 마주 앉은 정이의 아버지와 승호의 주고받는 말소리는
저기 나직한 음성이었다
그들이 눈치로 보아서 때로는 꾸중하는 어른과 꾸중 듣는 어린애 같기도 하고
때로는 타일러 가며 달래는 듯도 하다
자네는 이 앞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만 할 경우니까
그렇게 하자면 먼저 잡념을 없애려면 당분간 정이와 교제를 끊는 것이 좋을성 싶으이
고개를 숙이고 그의 하는 말을 잠잠히 듣고 앉았던 승호는
그리 놀라는 눈치도 의심하는 기색도 없이
다만 무엇을 그의 예상했다는 듯이 원망스러운 눈처리로 그의 얼굴을 긁기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수그린다
그렇다고 정이의 결혼 상대자가 생겨서 딴 데로 출가를 시키려는 의사는 아닐세
그러니까 오해를 하면 안 돼
정 못하면 자네의 학비는 어디까지든지 내가 담당할 테니 그리 낙심 말게
그리고 졸업만 하고 보면 취직 같은 것도 염려할 것 없어
다른데 말해봐서 안 되면 우리 은행이라도 한자리 비집을 터이니
자네 아버님과의 교분 생각해서라도 승호는 그의 하는 말이며
태도의 전부가 이상스러운 품이 무슨 일을 고간에 숨기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조금 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때 마침 주문했던 음식을 한 접시씩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헌식이는 승호를 건너다 보면서
들게 들어 어서
먹을 생각도 안 한다
내 말에 오해를 해서는 안 되네
그것은 잘 이해하여 주게
정희 씨의 의향은 어떤가요?
의향이라니 무슨 의향이 어떻단 말인가
저와 교제를 끊는 데 대해서 말이야요
물론 걔도 두 사람의 앞길을 위해서는 좋다고 그러데
정희도 결국은 잘 이해하고 찬성이지
그런 말을 왜 저를 직접 찾아와 보고 못하나요?
몇 번 만나자고 편지를 해도 답장조차 없더니만
뒤늦게야 아버님을 통해서 이런 말을 하는 심사를 앞마 날려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입 밖에 내고 보니
정희의 얄궂은 처사가 새삼스럽게 원망스럽고
또는 정희 아버지의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야비하고 능글능글한 태도가 능구렁이를 대하는 것처럼 징글징글하였다
승호는 내내 음식을 입에다 대지도 않고 그대로 앉아있다가
하도 배리 꼴려서 거의 혼자 먹는 식사가 끝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만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일러주신 말씀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동무와 만나자는 시간이 돼서 오늘은 이만 실례를 하겠습니다
일간 또 뵙죠
저 그러면
그의 앞에서 몸부림을 쳐가며 폭백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도리어 자기의 위세만 들고 약점만 보이는 것 같아
다만 눈물을 머금고 간신히 참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모든 것을 결심하였다
응, 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었나?
암 그래야지
시킨 음식이나 들지 않고 왜 그래?
정말 점심 먹은 지가 얼마 안 돼서 아무 생각도 없어요
그래도 좀 들지 않고
그럼 먼저 물러갑니다
어서 가보게
하고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의미모를 한숨을 휘- 하고 내쉰다
재밌게 들으셨나요? 어떠셨나요?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어쩌면 지금의 현실에서도 너무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야기여서 놀랍진 않으셨죠?
저는 순수한 마음에 정의가 끝까지 우겨서 승호에게 갔다는 그런 결말도 기대해 봤는데요
역시 결혼은 현실이라고 하는 주위 사람들의 경험적인 조언들이 맞았던 것일까요?
정의 아버지의 권유에 제대로 강한 반항도 하지 않고 현실적 계산을 하는 모습에서
승호와 수년간 나누었던 정의의 사랑은 참으로 얇고도 얇은 개울 같았습니다
사랑도 필요하고 현실적 재원도 필요하겠죠
어느 하나 무시할 수는 없는 것들인데요
그래도 마지막에 그냥 물러서지 말고 정의와 승호 두 사람이 진심 사랑하는 모습을
정의의 아버지에게 보여주었더라면 좋았겠다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소설 낭독은 어떠셨나요? 편안하게 쉬시면서 감상하셨나요?
지금까지 윤기정의 춘몽곡을 읽어드렸습니다
그럼 전 다음 시간에 또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뵐 때까지 행복하세요
그대로의 그대 모습을
당신이 아름답다는 걸
당신은 모르죠
빛나는 그대를
왜 못 보는 건가
그때는 그대로
아름
그때는 그대로
그때는 이대로
그대는 그대로
작은 것에 신경 쓰며
자신을 탓하는 그대
하지만 내 눈에는
모든 게 완벽해요
시간이 그대에게
새긴 모든 흔적들
더 깊은 아름다움으로
당신이 아름답다는 걸
당신은 모르죠
빛나는 그대를
왜 못 보는 건가요
그때는 그대로
기억해요
언젠가 그대도 알게 될 걸
거울 속 그대가 세상 아름답다는 걸
당신이 아름답다는 걸
당신은 모르죠
있는 그대로가 완벽하다는 걸
그대는 모르죠
나의 눈에 비친 그 모습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때는 그대로
아름다워요
그때는 그대로
기억해요
그때는 그대로
완벽해요
빛나는 사람
그대는 그대로
사랑스러워요
그대는 아름다워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그대는 사랑스러워요
지금 이대로 언제까지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