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과부네 며느리들의 일탈이 시작됐다 "그려 젊디 젊은 것이 사내생각도 나겄지" [며느리] 이무영 #책읽어주는남자 #오디오북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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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5:34 클로징 음악 "살아보니 그저 그렇더라"
#오디오북 #한국문학낭독 #자기전듣는책 #소설낭독 #파피루스의책읽는하루
오늘의 책 읽기 작품은 이무영 작가가 1955년에 발표한 며느리입니다.
이무영 작가는 농촌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죠.
그래서 이 작품도 그의 소설답게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농촌소설입니다.
이무영 작가를 익혀러 흙의 작가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국현대소설사에서 농민, 농촌의 테마를 가장 먼저 창작현장으로 이끌어낸 작가 중에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농민문학을 특기로 하는 문단활동을 하면서 1931년 동아일보 희곡현상공모집에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로 당선되었습니다.
또 그는 1933년 문학동인 구인회의 멤버이기도 하죠.
오늘 읽어드릴 소설 며느리는 농촌의 삶을 배경으로 하는 농촌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농민들의 삶의 애환만을 담은 그런 본격 농민소설은 아닙니다.
이 소설을 잘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소설 속에서 과부 시어머니와 첫째 며느리 사이의 내적 심리와 갈등이 재미있게 표현된 소설입니다.
눈을 감고 들어보시면 마치 예전에 tv에서 방영하던 tv문학관 한편을 보는 듯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재미있게 감상하실 수 있는 작품이니 끝까지 함께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소설 읽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다른 날도 아닌 바로 한식날 시작을 한 객적은 비가 이틀이나 줄기차게 쏟아진 이후로는
보기 내일 모래라는데 소나기 한 줄기 않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모짜리판에서 이삭이 날 지경이다.
연후해 같으면 지금 한창 이듬맥이다, 피살이다, 메미충이 생겼느니 어쩌니 할 판인데
중답들도 아직 모를 내업을 염량도 못하고 있다.
밭도 그대로 퍽 무거워져 빠졌다.
오이다, 열무다, 목화다.
제철 찾아 심기는 했으나 워낙 내리쪼이기만 하니까 싹이 트다 말고 모두 시들어버린다.
하늘은 방귀도 안 뀌고 오줌도 안 놀라고.
설마 망종까지야 한 보지락 하겠지.
이 설마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망종이 지나고 하지가 되어도 거짓말처럼 비 한 방울 하지 않는다.
설마를 믿고 호미모를 냈던 사람들도 물을 대다 대다 지쳐서 나자빠지고 말았다.
아니 그래 이런 놈의 하늘이 있단 말인가.
7년 가뭄에 비 안 오는 날 없다고면서도 이건 그런 빗방울 한 번도 하지를 않으니.
농군들은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그 놈의 원자탄인가 뭔가 때문에 천지 조화가 생겼다더니.
아마 그게 정말인 모양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요렇게 흐려보지도 못할 수가 있담.
단호도 휙 지나갔다.
그래도 죽네 사네 하면서도 단호절이면 인조견 나부랭이라도 떨치는 아이들이 보이고
누가 서둘러서던지 동구방 느티나무에 그네라도 메어 있으련만.
아이들이 끈개도 없는 새끼줄 그네를 버드나무 가지에 메고 싸움박질을 할 뿐이다.
그네고 자시고 할 경황이 없는 모양이다.
달걀 노른자위처럼 삼배출짜리로만 쏙 뽑아 차지한 구장래 빼어놓고는
논 묵히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한식대 한 번 젖어본 채로 가랑비 한 번 오지 않았고 보니
논바닥이 아니라 그대로 타장마당처럼 굳었다.
너대뽀지락은 와야만 뭐라고 내어볼 형편이다.
다들 굶어죽었군. 굶어죽었어.
아마 이제 우리나라에 떼정승이 날려나보다.
굶어죽기란 정승하기보다도 어렵다는 말을 빌려하는 소리다.
물길만 믿고 뭐를 냈던 논들도 요새는 물퍼대기에 온 집안이 논뚜렁잠을 자지 않으면 안되었다.
누가 내배 다치려 하십게 거두름을 피우던 구장까지가
요새는 아들이 갖다준 군대 우장을 뒤집어쓰고 저녁이면 논으로 나간다.
이런 판국이니 온 동네 사람들이 다 고르고 난 찌걱지만 얻어 차지한
박과분해야 더할 것도 없다.
순조로워야 마석이나 얻어먹는 너마지기가 그대로 쩍 갈라진 채
나자빠져 있던 것이다.
작년 1년내 박과분은 두 며느리에 지금은 무남동녀처럼 되어버린
복녀까지를 끌고 다니며 극성을 부려서 퇴비를 천관 가까이나 장만했었다.
그래서 장녀상까지 탔지만 박과분의 욕심은
금년에는 아랫배미 두 마지기에서는 양석을 한번 내어보자는 배심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양석은커녕 꽂아보지도 못하게 되었고 보니 기가 찰밖에는 없다.
하는 수 없이 메밀이라도 뿌려둔다고 군대에 가서 있는 둘째 아들 창수가
지난 정월달에 벗어던지고 간 군대 잠바에다 돈도 300환이나 얹어주고서
메밀씨를 구해다 놓기는 했으나 아직도 초복 전인지라 미련이 있어서 심지를 않고
아침이면 이렇게 며느리들 보고 그날 일기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박과부가 새벽마다 며느리들한테 그날 일기를 묻는 데는 또한 딴 이유가 있다.
그날의 날씨도 날씨지만 며느리들의 대답으로 그날 며느리들의 마음속을 점쳐보기 위해서다.
박과부는 아직도 쉬인을 둘 넘었을 뿐이오.
자리잡아 드러누워 있는 병자도 아니다.
해가 뜨도록 질퍼나니 드러누워 있는 그런 성미도 못된다.
그러고 보니 눈이 뜨이는 길로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하늘을 치여다볼 수도 있건만
반드시 두 며느리한테 그날 일기를 묻는 것은 며느리들의 대답소리로
그날 며느리의 기분을 살피자는 수단인 것이다.
얘들아 오늘은 좀 어떨 것 같으냐 하는 소리는 비가 옴직하냐는 소리도 되거니와
얘들아 너희들 기분이 어떠냐 하는 질문과도 같다.
안개만 자욱해요 라던가 또 틀렸나봐요 또는 비는커녕 눈도 안오겠어요
이런 대답 내용으로도 며느리들의 그날 일기가 짐작이 되었지만
말소리로도 며느리들이 부어있는지 심푸녕해야 하는지 기분이 가라앉았는지가 짐작이 간다.
먼저 부엌에 나온 것이 어떤 며느리 인가를 알기 위한 방법도 된다.
원래 따지자면 작은 며느리가 먼저 일어나 나와야 한다.
그러나 매약 먼저 대답하는 것은 큰 며느리다.
작은 며느리가 먼저 일어나와야 할 계제인데 그것이 나중에 나오면
이런 걱정이 앞서고 큰 며느리가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박과부는 한편
이런 생각이 들어 큰 며느리가 의젓해 보이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쓸쓸한 자리 속에 질퍼니 들어있기가 싫으니까 뛰쳐나오는지도 모르리
이런 불안이 또 머리를 들고 일어선다.
그렇다고 박과부가 수다스러운 사람이래서만도 아니다.
남편이 외정 때 징용으로 일본 야하다 제철소에 끌려갔다가 기계에 치어 죽은 지 10년이다.
이 10년간의 중년 과부 생활이 자연 박과부를 거세게 만들었고
다심하게만 했지만 두 며느리한테 신경을 쓰는 것은 반드시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닌 것이
두 며느리가 다 요새 와서 마음이 들뜬 것처럼 보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큰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같은 신세였고 둘째는 남편이 있기는 하지만 생과부다.
작은 아들 창수는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군대에 끌려가서 벌써 3년째나 되는 것이다.
이달에는 풀린다. 세달에는 풀린다. 편지만 오다. 또 꽁 구워먹은 수작이었고
부양 책임 있는 집자식은 곧 제대를 시킨다는 구장 말만 듣고 면소에도 몇 번이나 쫓아갔었다.
아버지도 없는 두 자식 중에 큰 아들 창선이는 휴전이 되기 바로 직전에 전사를 했고
둘째 아들 창수가 군대에 갔고 보니 그런 법이 생겼다면 응당 창수만은 돌아와야 하는 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말뿐이지 또 흐지부지하고 말았다.
진정서를 내면 된다는 바람에 300환이나 들여서 대서를 시켰더니 반장 구장 면장의 증명이 없다 해서 무효가 되었다던 것이다.
그래서 또 몇 달째 미정 미정 밀려오고 있다. 큰 며느리라야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고 보니 그야말로 청상과부다.
창선이가 전사했다는 소문이 돌자 동네 사람들은 글쎄 창선이 되기 붙어있을까?
자식이 있다고는 하지만 극한 계집애 하나 이렇게 은근히 걱정을 했었다.
동네 사람뿐만 아니라 박과부도 그랬다.
아이가 삽삽하고 부침성도 있고 워낙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고생을 하고 자란 터라 속도 트였다지만
저것이 머스메이기나 했더라면 박과부는 손녀를 바라보면서 몇 번이나 이렇게 한탄을 했었다.
아들이었더라면 혹시 그것한테나 마음을 붙이고 붙어있을지도 모른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사랍시고 지낸 지 한 두어 달쯤 되어서던가 한 번 박과부가 선손을 써본 적도 있다.
얘 애 애미야 너 기나긴 청춘을 어떻게 저것만 바라고 살 수 있겠느냐
나야 내가 저것한테라도 마음을 붙이고 있기를 바라지만 어디 너한테야
이렇게 며느리의 마음을 떠버려니까 며느리는 펄쩍 뛰었었다.
아니 어머니도 망측한 말씀을 하시네요.
아마 어머니가 제가 싫어지셨나 봐.
암만 싫다셔도 이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테니 그런 줄 아세요 어머니.
이렇게 낙을 낙을 웃기까지 했었다.
그런 큰 며느리였다.
그래도 말은 그랬지만 어디 그려래야 했다.
그러나 한결같은 며느리였다.
아니 제 남편이 살았을 때보다도 더 자상했다.
이것 어머니나 잡수셔요.
전 많이 먹고 왔어요.
요가족 위안회에 초대를 받고 여주 읍내에 갔다 온 며느리는 거기서 주더라는 도시락을 고스란히 싸들고 왔었다.
박화부는 정말인 줄 알고 그 도시락을 둘째 며느리하고 나누어 먹고 말았더니
후에 밖에서 듣고 나니 그것 하나 주고 말았다던 것이다.
그런 며느리였다.
그렇던 며느리가 작년 가을부터 확실히 눈치가 좀 달라진 것이다.
박화부는 자기가 보낸 10년 동안을 생각해보고는
젊디 젊은 것이 사내 생각도 나겠지.
이렇게 너그러이 보아주기로 했었지만
올 봄 접어들면서부터는 전에 없던 툭명도 생겼고
어떤 때는 택하고 맞서려고도 든다.
한식 철만 지나면 농가에서는 눈이 핑핑 돌아간다.
겹시도 담가야 했고 모짜리판도 마련해야 했고
온갖 박곡식도 파종을 해야 했다.
보리밭도 매고 거름도 주어야 했다.
이렇게 한창 달구치는 판에 떡 친정회를 다녀온다고 나서는 며느리이기도 했다.
박화부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얘야 내가 정신이 있는 사람이냐
그래 봄에 온 사둔은 꼴도 보기 싫다는데
이 바쁜 철에 사둔 집을 간다고 나서
내가 마음이 변해도 이만한 점만 변한 게 아니로구나
그 말을 듣고 나니 방순이는 찔리는 데가 있다.
어려서부터 농가에서 자랐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곡식 커가는데 여간 재미를 붙이던 방순이가 아니다.
시집을 오던 해다.
창선이가 철도 아닌 봄학질을 알았었다.
골이 쪼개지는 것 같다고 하며 머리에 물수건을 대어 달라던 것이다.
방순이는 물동이를 이고
한 대의 운물로 찬물을 길러간 것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얼마만에야 들어온 며느리를 보고 박화부가
넌 운물을 팠느냐? 하고 물으니까
밭에 좀 들러왔어요.
병자 위에서 물 길러간 사람이 밭엔 웬 밭?
왜가 싹이 났나 해서요.
간밤 꿈엔 안 났겠지요?
그래 싹이 났던.
박화부도 대견해서 웃었었다.
농가집 면며느리는 저래야 하느니라 했던 것이다.
요만큼 꼬쪽이 나왔어요 어머님.
어떻게나 귀엽던지 똑 따주고 싶겠지요.
너 그러다가 내 남편한테 왜 싹이 더 중요하냐고 쫓겨날라.
고마워서 한 소리였다.
쫓아내면 쫓겨가지요 뭐.
어디 가면 왜 싹 없을라고요.
저런 망할 것.
그래 남편보다도 왜 싹이 더 대단하다는 거야?
하고 창선이가 방에서 소리를 쳤을 때도
이런 방순이었었다.
이렇던 며느리가 이 바쁜 봄철에 친정회를 가겠노라는 것이다.
하고 박화부는 앵동그라졌다.
아마 봄철에 친정간다는 사람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도 너밖에 없을 거다.
내가 다 날 업수여기고 하는 수작인 줄 나도 안다.
할 대로 해.
아들이 아직 살아있었을 때의 박화부는 며느리를 들복가되는 시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아직 젊은 과부였던 이만큼 그렇게 녹록한 시어머니도 아니었었다.
자식이 며느리방에 들어간다고 트집을 잡아 죽내 산에 나대기까지는 않았어도
며느리방에서 나오는 아들을 보는 눈은 어느 때 한 번 모질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러나 자식이 덜컥 죽고 난 다음부터는 자기도 모르게 큰 며느리를 바라다보는 눈은 달라졌었고
말소리에도 가시가 돋지는 않았었다.
정말 가겠다는 거냐?
어서 가봐라. 가서 아주 올 것 없다.
지금이 어느 철인데 사돈집을 간다는 거야.
아들이 죽은 후로 이렇게 며느리한테 모진 소리를 하기도 처음이었거니와
며느리 또한 시어머니의 뜻을 무시하기도 그것이 처음이었다.
어디 사돈집인가요? 신정집이지요.
누가 월에나 있겠답니까?
하도 꿈자리가 뒤숭숭하니까 잠깐 다녀만 오겠다고 그러지 않아요?
뭐냐? 마음대로 해. 말리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하란 말이야.
언제 내가 어른을 어른으로 알았더냐? 시어미 대접을 했고?
이런 말다툼을 하고서도 며느리는 귀엽고 어린 것을 끌고 저희 집에를 갔다 왔던 것이다.
생각더니보다는 일찍 돌아왔었다.
그러나 날짜가 문제가 아니다.
가지 말라는데 갔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고부간 사이에 틈이 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며느리가 시어미 말을 거역했다는 이 엄연한 사실이 박과부의 의혹을 샀었고
그렇게 보고 나면 그럴 만한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올정월달에도 집에를 갔다 왔는데 또 간다는 것도 우습거니와.
요 한 보름 전에는 육촌오라버니인가 뭔가 된다는 젊은아이가 다녀갔고
편지도 두 번이나 왔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박과부는 그 육촌오라비라는 사나이가 심상치 않으니라 한 것이다.
치마에 바람이 나게 나대어도 미쳐 손이 안 돌아갈 봄철에
일손을 쥔 채 맥놓고서 섰기가 일수다.
밭을 메다가도 그랬다.
절구질을 하다가도 그랬었다.
그럴 때마다 박과부는
하고 쏘아붙일라 치면
재라서 질겁을 해서 다시 일손을 잡지만 그때뿐이었다.
넌 아무래도 탈인한 사람인가 보다.
일하던 사람이 이랜 정신이 없고 뭔 생각이 팔리는 거냐.
그럴 마련이면 아주 요정을 내자.
너 갈 데 있건 가고 어느 뉘집개가 짓느냐는 투다.
그러면 박과부는 속이 왈칵 뒤집혀지고 말던 것이다.
동료야 너 내 큰형이 혹 보따리를 싸는가 잘 살펴봐라.
장터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때는 박과부는 딸한테 슬며시 귀뜸도 한다.
여인네만 살고 있는 터고 보니 사내처럼 놔둬라야 할 일도 많던 것이다.
왜 어머니?
글쎄 잘 챙겨보란 말이다.
너 두고 봐라.
내 큰형은 마음이 변했어.
이제 제 집으로 간다고 내댈 거니 두고 봐.
하고 아직 열다섯밖에 안 된 동료한테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설마가 뭐야? 잘 살펴봐.
박과부는 이렇게 장담도 했지만 역시 나이를 먹으니만큼 짐작도 빨랐다.
큰 며느리 방순이는 첫정월에 친정에를 다녀온 뒤부터 시집을 떠날 궁리만 해오고 있던 것이다.
이 이상 혼자는 견디기가 어려웠었다.
방순이가 귀엽고 이 집을 나가리라는 결심을 마지막으로 한 것은 단호날 저녁이었다.
방순이는 저번에 육촌 오라버니라고 시어머니한테 거짓말을 한 춘근이와 그런 약속까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호에는 친정에 다녀서 오마하고 그 길로 곧장 영등포로 오라던 것이다.
방순이도 그러마 했었다.
춘근이와는 어려서부터 잘 알던 사이다.
방순이가 국민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춘근이는 이미 상업학교 고등과 1학년이었다.
어려서는 서로 욕지거리도 하던 사이였지만 커갈수록 길에서 마주치면 외면도 했고
방순이가 이성이라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을 무렵 춘근이는 서울 여학생과 결혼을 하고 말았다.
물론 춘근이와 그런 약속을 한 적도 없고 서로 손 한번 만져본 일도 없기는 했지만
방순이는 꼭 속아 넘어간 것만 같았다.
말하자면 방순이가 짝사랑을 한 셈이었다.
방순이가 18살 때 일이다.
그 뒤 방순이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창선이와 결혼을 했고 춘근이의 이름조차 잊고 살아봤었다.
그 춘근이를 지난정월 집에 갔다가 우연히도 만났던 것이다.
춘근이는 아내한테 아이가 없어서 늘 불만이란 이야기는 전에도 들었었지만 지난 겨울에 아주 헤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영등포에서는 자동차 부소품 장사를 조그맣게 차려가지고 먹을 것은 걱정이 없다고도 했다.
바로 보름날 밤이었다.
춘근 누이동생 춘자도 친정에 와 있어서
방순이는 오래간만에 코를 같이 흘리던 동무와 함께 동네 처녀애들과 팔뚝맞기 화투장난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춘근이가 들어오면서
하고 춘자는 나무라면서도 자리를 마련해준다.
방순이도 맞았고 춘근이가 맞기도 했다.
세 번째인가.
방순이가 졌을 때다.
춘근이는 방순이의 손을 쥐는 것이 아니라 사뭇 잡던 것이다.
은근한 이야기를 하듯 손에다 힘을 자그시 주면서
울면 안 돼요.
지금까지는 사정을 봤지만 아까 방순이가 날 몹시 때렸으니까 나도 사정을 안 볼 테야.
곤래지 않지요.
춘근이는 이런 소리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방순이의 손가락이 아플 만큼 춘근의 손아귀에는 힘이 주어진다.
방순이의 손을 잡는 기쁨을 연장하기 위해서였던지도 모른다.
방순이도 어쩐 일인지 그것이 싫지가 않았다.
아니, 싫기는 고사하고 허젓한 행복에 잠겨지는 것 같은 기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걱정 마세요.
정말?
그럼요.
춘자 오빠쯤한테 맞아선 아프지 않아요.
방순이도 이 행복된 남편이 출정한 뒤로 그리우고 살아온 남자의 살결에서 풍기는
황홀한 체추에 잠기는 기쁨을 연장시키고 싶어졌었다.
춘근이한테 맞는 매도 행복일 것만 같다.
살짝보다도 호도에게 맞고 싶다.
이것이 인연이 되었다.
남편을 잃은 후로 막은 물처럼 괴었던 남성에게 대한 열정이 터진 물처럼 춘근이에게 향하여 쏟아져갔다.
둘은 살짝 두 번이나 만났다.
춘근이는 방순이한테 모든 것을 요구도 했다.
방순이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러고 싶기도 했었다.
다만 갈 때까지 못 간 것은 그럴 기회와 장소가 없었을 따름이었다.
방순이, 내 얘기 들었지?
들었어요.
그럼 나하고 서울로 가자고.
서로 모를 사이도 아니고.
춘자 오빠야 얼마든지 섹시장가를 갈 수 있을 텐데 뭘 그래요?
섹시장가?
그런 것 비린내 나는 것들보다 난 방순이가 좋아.
다 인연이야.
원랜 방순이와 혼인을 했었어야 했을 텐데 사주가 바뀌었던가 봐.
그래 놓으니까 방순이는 그렇게 됐고 난 또 이렇게 된 거야.
사람이란 다 연대가 맞아야 하는 게지.
아인? 떼두고 와요.
거짓말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처음뿐이었다.
정도 들었지만 춘근이한테까지 남의 씨를 끌고 다닐 수는 없다 싶었던 것이다.
지금서 얘기지만 난 방순이하고 결혼하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서도 방순이를 늘 생각했었어.
정말 방순이는 이런 구석에서 썩기가 아까운 사람이야.
괜시리 그러지 뭐.
괜시리가 다 뭐야.
방순이가 화장이나 하고 옷이나 쭉 빼보라고.
서울 장안에서도 방순이 인물 당할 여자라고는 몇 안 돼요.
춘근이는 이런 소리도 했었다.
친정 어머니는 그런 속도 모르고 걸빗하면 춘근이 욕을 한다.
펑펑 된다는 것이다.
거짓말도 곧 자라는 눈치를 하기도 했었다.
그 사람 말은 콩으로 매줄 순대도 도시 고지 들리지 않더라.
그저 조 혼자 잘랐다지.
어머니의 이런 험담까지도 귀에 거슬리게끔 된 방순이었다.
그래도 친정에서 시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방순이 머리도 좀 식었었다.
안 될 말이지. 말이 되나.
이렇게 저 자신이 허벅다리를 꼬집기도 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어린 딸을 품에다가 바짝 끌어다가
얼굴을 비벼대기도 했었다.
안 되고 말고 우리 불쌍한 애기를 두고서 어떡해.
내가 환장을 했나 봐.
그러나 이러한 니우침도 사나이에게서 풍기던 살내가
한번 코로 스며들기 시작만 하면
걷잡을 수가 없이 되는 방순이었다.
오랫동안 줄이며 살아온 살내였다.
한복 중이었건만.
가슴 한구석에서 찬바람이 일기 시작만 하면
내장을 그대로 휩쓸어가는 것 같다.
몸이 비빗 뒤틀리며 목안이 타온다.
그럴 때면 아이고 뭐시고 다 내어 던져버릴 수 있을 것 같아지는 것이다.
그까짓 계집애.
제 자식의 씨인데 어련히 잘 기를 나고
방순이를 이런 애욕의 함정 속에다 잡아넣은 데는
또한 작은 며느리 분녀가 한 몫을 보아준 것은 사실이다.
작은 며느리는 나이 스물셋이었다.
얼굴이 동구스러움 한 것이 이쁘다기보다는 귀여운 얼굴이다.
이 분녀는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씩은 사내가 다녀가건만
작년 초가을부터 살짝이 자리에서 빠져나가고는 한다.
똑똑히는 몰라도 짐작헌데 구장짓 작은 아들인성 싶었다.
서울 가서 대학을 다닌다고 논 팔아라 밭 팔아라 하더니만
구장도 더 될 수 없던지 불러내렸다.
하는 일도 없이 빈들거리면서 구장일을 대신 보기도 한다.
그런 위인이었다.
분녀가 빠져나갔다가 돌아온 이튿날 아침에 볼라치면
얼굴이 밤사이에 불과해진 것도 같다.
생기까지 돌았다.
자네 오늘 아침엔 아주 얼굴에 화기가 도네 나
뭐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지?
참아 간밤에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하라 치면 동서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면서도
행! 역시 기쁜 모양이었다.
얄미운 생각도 없지 않았다.
아직도 나이 어린 것이 착살맞게도 사내한테 바치는 꼴이
꼭 주여받고도 싶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를 시어머니한테 토설할 수도 없다.
자네 어딜 갔다 오나?
한 번은 참다 못해서 들어오는 동서를 나무란 일도 있다.
설사병 때문에 큰일 났어요.
요 앙큼한 것.
곧 이런 소리가 나가는 것을 꾹 참았다.
디딤돌 뒷간이고 보니 그런 앙큼한 거짓말도 못하렴만
사내의 눈이 어두워지면 그런 분간도 안 가는지 모른다 싶다.
이 동서가 구장집 작은 아들을 만나고 오는 동안이란
방순이한테는 정말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괘씸한 생각.
얄밉고 착살맞은 생각.
이런 증오의 감정도 감정이려니와
젊은 사나이의 품 안에 안기어 숨을 핥다길 동서를 상상할 때
방순이는 일종 회오리 바람 속에 휘갑을 당하던 것이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순간이었다.
참기 어려운 격정이기도 했었다.
동세년이 저쪈데 나꺼 좀 가버려?
이런 생각을 할 때는 방순이도 제정신으로 돌아간 때다.
그러나 그런 반성이란 역시 의지였다.
생리는 아니다.
초복을 지난 지 사흘째 되는 날 밤
방순이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
그 전전날 충군이한테서 편지가 왔던 것이다.
시어머니란 까막눈인지라 편지를 본데도 무슨 그림인지도 모르겠지만
시누이는 그래도 국민학교 3학년까지는 다닌 터라
그럭저럭 뜯어볼 줄은 알아.
은근히 마음을 졸이었지만
그날은 마침 들깨밭을 매고 있는데
학교에 갔다 오던 동네 아이가 우체부가 주더라면서
편지 한 장을 주던 것이다.
마침 시어머니는 뚝 넘어 고추밭에 내려가고 없었다.
6월 6든날 새벽
장수리 버스 정거장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오랍이 6든날 여주 올라간다.
한번 만나고 싶다마는 만날 길이 없구나.
기별할 것이 있거든 내가 그리로 나오든지
사람을 내어 보내든지 해라.
이런 사연이 무슨 뜻인지 방순이는 잘 알고 있다.
나올 때는 아무것도 생각 말고
입은 채로 살짝 나오라는 말은 전부터 해오던 부탁이다.
사실 또 헌 털뱅이를 들고 나갔자
서울 바닥에 가서 걸칠 만한 것도 못된다.
저녁을 먹고 동서가 동료와 목마를 하러 간다고 나간 틈에
인조견 치마 두 개와 적삼 한 개를 뚜루루 말아서
장 뒤에 숨겨놓고 빠져나갈 국리만 하고 있다.
장수리라면 친정 가는 길과 정반대 길인지라
들킨다 해도 잡힐 염려는 없다.
충근이가 그런데까지 머리를 쓴 것이 고마웠다.
이제 남은 일이란 과부 시어머니의
어린 자식까지 내어던지고 도망을 하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일 뿐이다.
그런 시어머니하고
방순이는 이렇게 트집을 잡아본다.
전에는 흉이 아니었지만 사실 남편이 있을 때는
뭐니뭐니 해도 트집을 잡아서 들복기도 한 시어머니라 했다.
과부치고서는 심한 시어머니도 아니었지만
지금 방순이는 지난날 남편이 살았을 동안
가끔 가다가 들고 울러 넘기던 심한 시어머니만을
기억에 살려보는 것이다.
아들이 좀 일찌감치 아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심통이 나서 뭐다 뭐다 자꾸만 불러내던 것이다.
아들도 그런 어머니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던지라
곧잘 말을 듣다가도 어떤 때는
머리가 아파서 그래요 좀 내버려둬 줘요
하고 퉁명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 과부 어머니는
봉당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푸념을 해대던 것이다.
한 번은 너 이놈 내 개짓만 아느냐
하고 옆에 내 역성을 한다고
머리를 끄어들고 주먹으로 아들이 등을 퐁퐁 팬 일도 있다.
그런 시어머니 밑에서 어떻게
방순이는 이렇게 자기를 합리화 시켜간다.
시누이년이란 것도 그렇지
여우처럼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 말 없는 말 고자질이나
하다가 방순이는 멈칫했다.
몸이 달아서 시누이까지 끌고 들어가보려 했지만
아무리 따져보아도 시누이는 그런 시누이가 아니다.
아직 나이가 어려도 오라범 댁을 불쌍하게 여기었고
조카도 귀여워했고 먹을 것이 생겨도
언니 좀 먹어요 먹어야 저지나지
이런 시누이였다.
죄로 가지 그 시누이를 모함하다니 정말 궁했다.
아무리 시어머니를 몹쓸 시어미로 몰아보아도 그랬고
시누이를 끌고 들어가보아도
어린 자식에 과부 시어머니를 두고
산에 꽁무니를 따라가는 자기를
떳떳하게 만들어줄 구실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궁지에 빠진 방순이를 건져준 구실이 나섰다.
방순이는 눈이 번했다.
가난이었다.
거기다가 30년째 처음 볼 가뭄이라는 것이다.
뭘 먹고 살아?
사실 작년은 흉년도 아니었건만
겨우내 죽으로 살다시피 했었다.
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질경이 죽이 끼기였다.
지겨워. 난 그런 배곰꾼 못 살아.
내가 나가면 나 한 입이라도 덜어주는 셈이지.
사람 한 입이 얼마라고.
나 하나 없어도 그깟 농사 질개구.
정말 살 길을 찾기나 한 것처럼 눈앞이 훤해온다.
그래야지. 내가 한 입이라도 덜어주어야지.
서울 가서 돈푼이라도 만지면 얼마씩이라도 보내주지.
그게 더 잘하는 일이지.
진순이년한테만 해도 그렇지.
죽도 못 얻어먹는데
어미가 나가면 그래도 한 입이 주는 셈이고.
거기다 또 돈푼이나 보태준다면.
사실 방순이는 자기 행동을 싸고 돌려서가 아니라
포미모도 못고든 채
나자뻗어있는 논바닥들이 눈앞에 서원했다.
밭곡도 새들새들 말라가고 있었고
오늘만 해도 땡볕만 내리쪼이어
나뭇잎까지도 후줄근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곡식과 함께 살아온 방순이다.
어른들한테서 듣고 보고 해서이기도 하지만
가뭄에 타죽어가는 곡식을 보는 것은
정말 자기 자신이 말라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이기도 했다.
사실 비가 푸근히 와서
곡식들이 거무대대하게 부쩍부쩍 자란다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싶다.
그리고 또 곡식들이 그렇게 자라기 시작하면
그런 잡념이 생길 틈이 없었을 것이다.
들에 나가보면 노는 무거 자빠졌고
수수다 조다 심지어 그것도 입에 넣는 곡식이라고
옥수수까지 잎이 새들거린다.
날로날로 말라비틀어지는 곡식잎을 보니
사람도 그대로 시드는 것만 같았다.
곡식 시들고 농군이 살찐 일도 없다.
옛날 같았으면 만주 이민으로나 나선다지.
이제 다 굶어 죽었다.
하늘도 인종이 너무 많으니까 좀 인종을 줄이자는 거야.
노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하던 소리들이다.
방순이는 잘 생각했으니까.
하면서도 역시 한편으로는
달아난 뒤에 동네 옆의 애들이 주고받을 욕지거리를 생각만 해도
진땀이 솟는다.
무섭기까지 하다.
그런 환양년.
아무리 사내가 그립기루니
늙은 과부 시어미에 어린 자식까지 내던지고
이런 소리가 곧 귀전에서 난다.
그러면 방순이는 또 흉년을 내세운다.
이 흉년에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했다.
방순이는 또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진순이한테도 그래.
어미가 있어 굶기기보다는
하다 못해서 옷 한가지씩을 해보낸대도
벌써 구실이 아니었다.
그것이 도리일 것만 같다.
시어머니도 그러길 바랄지도 모르지 않나.
한 달에 단돈 몇 푼씩만이라도 보태주면.
이런 결심에 선 것은
첫딱이 호들갑을 떨며 울어댈 무렵이었다.
간밤에도 살짝 빠져나갔다가 들어온 동서는
내가 무슨 걱정.
내 팔자를 봐요.
하는듯이 내 활개를 펴고 잠이 들어 있었다.
방순이는 죽은 듯이 자리에 들어 있었다.
달기 두 회만 울면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시간이 가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조바심까지 난다.
장차 저지르려는 일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진땀이 자꾸만 흐른다.
마치 무더운 날씨 같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잠시라도 눈을 붙이자는 것이다.
꿈이었다.
벼락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번개도 났다.
대나처럼 밝아지더니만 또 꽈르르 꽈르르
어디를 내려 조진다.
무서운 비였다.
아니 비가 아니라 사뭇 폭포다.
에이구 잘 쏟아진다.
며칠이든지 나려 퍼부어라.
꿈속에서도 방순이는 이렇게 부르지졌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와지끈 와지끈 벼락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세상을 다 깨어두드려 부수어도 좋은 이라 했다.
세상이 반쪽이 되더라도 비만 오라 했다.
그러다가 방순이는 눈이 번쩍 뜨였다.
꿈속에서 들은 벼락소리와 빗소리는 아직도 그 이 귀에 남아있었다.
아니 아직도 와지끈거리고 비가 폭포처럼 내리 퍼붓고 있다.
빨리 달아나자.
꿈이건 생시이건 지금의 방순이한테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저 빠져나갈 궁리밖에 없었다.
방순은 눈을 뜨면서 벌떡 일어나서 장미칠 더듬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보퉁이다.
보퉁이를 잡은 방순은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꿈인지 생시인지도 구별이 나지 않는다.
아직도 비가 퍼붓고 있었다.
벼락소리도 마찬가지다.
번개도 치고 있었다.
꿈이다 하고 방순은 멍청했다.
아니다 생시다.
꿈도 같았고 생시도 같았다.
꿈인가 생시인가?
또 한번 어리둥절하고 나서야 방순이는 그것이 꿈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생시였다.
빗소리가 우레같다.
추녀 물이 아니라 물을 쏟는 소리다.
역시 생시였다.
무서운 비였다.
그것이 꿈이 아니고 생시요.
쏟아지는 것이 비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방순이는 저도 모르게 정말 자기 자신도 모를 동안에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역시 비였다.
번개불이 확 일며 또 꽈르르 한다.
비가 온다.
문을 열어젖힌 순간 방순이 입에서는 이런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서운 환이었다.
그리고 같은 순간에 그는 보퉁이를 내동댕이 치면서 봉당으로 뛰어내렸었다.
어머님 비가 와요. 비가.
어? 하고 박과부가 고쟁이 바람으로 뛰어나오기까지에
방순이는 아직도 세상 모르고 잠을 자는 동서를 대고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여보게 비가 오네.
어서 일라.
박과부도 고쟁이 바람으로 어쩔 줄을 모른다.
어머님. 옷다랭이 물길을 타야 하잖아요.
암 타야지. 타야 말고.
젠장. 사람이 있나.
우리 네 식구 다 달라붙으면 안 돼요?
자네도 어서 챙기게.
방순이는 버스 정거장도 있고 방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마침 쏟아지는 빗줄기를 헤치고 먼동도 터오고 있다.
재밌게 감상하셨나요?
작가는 농촌에서 가뭄일 때와 비가 내릴 때
각각의 상황에서 도덕성, 인간성이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대비하며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충군과 떠날 마음을 먹고 있던 첫째 며느리 방순이가
억수같이 내리는 장대비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되돌리는 장면은 뭔가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비와 함께 일순에 날려지는 듯한 그 장면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으로써 최고의 장면이라 할만합니다.
그런 시원한 결말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욕망은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도덕을 능가하는 것일까
한번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만들어준 작품이었습니다.
즐겁게 감상하셨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무영의 며느리를 읽어드렸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이 시간에 또 재미있는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들
시간 지나니 이미 다 흘러가더라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걷다보면
어느새 여기 와있고
그저 그런 인생이야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면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별거 아닌 일상이 인생이 되더라
품도 마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지금 보니 그냥 하루하루 사람들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흘러가더라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물어보면 답이 없고
그냥 사라지니까
그저 그런 인생이야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면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별거 아닌 일상이 인생이 되더라
되돌아보면 보이지만 어쩌겠어
지나간 건데
다시 살라 해도 똑같이 살 것 같아
그저 그런 인생이야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면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별거 아닌 일상이 인생이 되더라
욕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게 행복이더라
인생이란 게 사는 거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