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 조용한 밤. 당신을 깊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오디오북 채널,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입니다.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이번에 낭독할 작품은 박완서 작가의 단편 소설 "추적자" 입니다. 😊 즐거운 감상 되세요.
[ 작가 박완서에 대하여 ]
#박완서 (朴婉緖, 1931년 10월 20일 ~ 2011년 1월 22일)는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으로 불리는 작가입니다. 교육열 강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와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입학식 닷새 만에 6·25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하고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근무했습니다. 전쟁 중 오빠와 숙부를 잃는 처절한 비극을 경험한 그는, 1953년 결혼하여 1남 4녀를 둔 전업주부로 살아가다 마흔이 되던 1970년, 전쟁의 상흔과 PX에서 만난 화가 박수근과의 교감을 담은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박완서는 이후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과 15편의 장편소설, 동화, 산문집 등 방대한 작품을 쉼 없이 남기며 한국 현대문학을 든든하게 지탱한 작가로 우뚝 섰습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전쟁으로 인한 사회질서의 붕괴, 분단의 비극, 자본주의의 이면, 도시 중산층의 삶과 허위의식, 여성문제, 노인의 삶과 죽음 등을 가로지릅니다. 특히 1970년대에는 개발독재 시대에 팽배한 물신주의를 냉소적이고 신랄하게 비판했고, 1980년대에는 가부장제와 여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습니다. 소설가 정이현은 박완서에 대해 "인간의 오장육부에 숨겨진 위선과 허위의식을 한 치도 숨김없이 태양 아래 까발리고, 공감하게 하고, 위로받게 하던 작가"라고 평했습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 1월 22일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9세.
오늘은 오라간만에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단편소설 추적자입니다. 이 작품은 제가 자신있게 권해드리는 작품인데요.
아마 다 감상하시고 나면 마음에 무언가 깊게 남겨질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지만 가볍지 않은 박완서 작가만의 특별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광수는 오늘 모처럼의 연휴를 맞아 몇몇 친구들과 등산을 갈 예정이었다.
내설악 백담사로 해서 오세암을 지나 소청봉 대청봉을 정복하고
외설악으로 하산하는 방법은 광수와 가장 사랑하는 등산 코스여서
자주 친구를 모아 리더 격이 되곤 했다.
당신 전화예요. 아내의 뼈로 통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남편이 휴일은 가족과 함께가 아닌 것에 불만이 대단했다.
아내는 더군다나 두 번째 아이를 베고 있는 중이었다.
모처럼의 연휴에 가족끼리 새마을 호나 고속버스 쯤이라도 타고
이름난 관광지 호텔에서 1박 2일쯤 하는 오붓한 재미를 누리고 싶어 한다는 걸
광수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등산 준비도 아내의 단잠을 깰세라
도둑질하듯 소리죽여 했고 아내 역시 깨이스련만 자리 속에서 꼼짝 않고 코를 골고 있었다.
누구 전화야? 당신이 대신 받으면 안 되겠어? 나 워커까지 신었단 말이야.
형님이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고소하다는 듯이 약간 누그러졌다.
뭐 형님? 광수는 배낭을 내려놓고 워커 끈을 대강대강 늦추고 발을 빼냈다.
형님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응, 내다. 허겁지겁한 게 무색할 만큼
장수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 자가 죽은 건 너도 알지?
아니요, 금시초문입니다 형님. 넌 신문도 안 보냐?
아, 네. 광수는 마치 형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뒤통수를 극적거렸다.
오늘이 장례식이다. 그래서요? 광수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 다음 대답을 알고 있었다.
그 다음 대답은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란 말이다가 될 터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장수의 가라앉은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봐야지. 제가요? 그럼, 그리고 길수도 길수한테 내가 연락해 주렴.
형님, 저는 오늘 친구들과 등산 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막 떠나려던 참이었어요. 형님 전화가 1분만 늦어서도 전 받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럴 줄 알고 일찌거니 건 거다. 장례식은 10시다. 학교장이야.
그 자가 학장으로 있던 N대 도서관에서. 이번 등산에서 제가 빠질 수 없습니다.
제가 리더거든요. 10시에 거기서 만나자. 길수한테도 그쪽으로 직접 나오도록 이르고
지난 20년 동안 마지인 장수는 그 자의 행적을 끈질기게 추적해
광수, 길수 두 아우에게 일러주는 걸 엄숙한 의무처럼 행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란 말이다가 고작이었다.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어떤 행동을 지시해오긴 처음이었다.
하긴 그 자가 죽은 게 처음이니까. 아, 그 자가 죽었구나.
형의 20여 년 동안의 무의미한 추적도 끝났구나.
광수는 문득 살을 점이는 듯한 비애와 허망감을 느꼈다.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그는 잠깐 망연히 서 있다가 다음 리더가 될 만한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 집은 마침 마장동 슈에버스 정류장 근처라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떠나지 못하게 된 사정을 친구는 꼬치꼬치 알고 싶어 했으나
그는 다만 급한 일이 생겼다고 밖에 말하지 않았다.
친구가 못마땅해 하건 섭섭해 하건 상관하지 않고 그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
등산 가는 걸 앙알대던 아내는 이번엔 등산 안 가는 걸 트집 잡기 시작했다.
당신 나하고 얘기 좀 합시다. 그 대단한 등산을 갑자기 그만둘 만한 일이 도대체 뭐유?
별일 아니라고요? 별일 아닌데 옆에 내가 안 나오는 눈물까지 짜가면서 말려도
들은 척도 안 하고 떠나던 길을 왜 못 떠나요? 알았어요. 알았단 말이에요.
당신이란 위인은 옆에 내가 목을 매달았대도 외눈은 깜짝 안 하다가도
자기 부치가 방귀만 뀌었대도 허겁지겁 달려갈 위인이란 걸.
내가 저런 위인을 남편이라고 믿고 아내의 재야물이 천박스러운 푸념도
안으로만 침잠하려는 그의 심정을 어쩌지는 못했다.
그는 멍하니 영거프 담배만 피웠다. 그렇다고 그자의 죽음이 슬픈 건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어떤 감회가 있다면 그건 그자의 죽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들 삼형제의 이제 끝날 수밖에 없이 된 추적에 대해서였다.
광수가 철모로는 중학생일 적부터 시작된 그자에 대한 그 추적은 20여 년 동안 계속됐다.
그 추적의 시작도 리더인 마지 장수였다. 삼형제가 사는 장소뿐 아니라 사는 방법까지
판이하게 뿔뿔이 살면서도 용케 유대의 줄이 끊기지 않았던 것은
같은 목적물을 추적하는 일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광수도 그 이상은 그 추적의 의미를 알고 있지 못했다.
그는 이제 남의 집에 전화를 걸어도 신뢰가 안 될 만큼 늦은 시간이다 싶을 때까지 등산복 차림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길수는 아직 미혼이라 하숙을 하고 있었다. 응, 내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놓고 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길수에게
광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전화를 통해 귀에 익은 형의 소리와도 너무 닮아 있음에 쓴 웃음을 지었다.
아휴, 형님 웬일이세요? 새벽부터. 지금이 몇인 줄 알고 새벽이냐?
형님도. 공일날 새벽하고 평일의 새벽하고 같은 시간이면 뭐 때문에 공일을 기다립니까?
그 자가 죽은 건 너도 알지? 그는 아우가 슬슬 시작하려는 농지거리를 차단하고
이번엔 의식적으로 형의 말투를 흉내내서 말했다. 아뇨, 금시초문입니다, 형님.
넌 신문도 안 보냐? 아, 네. 광수는 아우가 뒤통수 긁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요? 아우가 제법 뻔뻔스러워지면서 묻는 소리를 들으며 광수는 처음으로 입가로 웃음을 흘렸다.
너도 아마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란 말이다를 기대하고 있으리라만
이번엔 그렇게 쉽게 안 될 걸. 가봐야지. 제가요? 우리 삼형제가 다 가봐야 한다.
그 자의 장례식에 우리 삼형제가 다 가보다니요? 보나마나 큰형님의 발상이겠죠?
그 자의 영전에 우리 삼형제가 나란히 분양을 하고 재배하고 꼴 좋겠수다.
그게 겨우 이십 몇 년 동안의 형님들의 신비한 추적의 결말이라 이겁니까?
장례식은 열시다. 학교장이라더라. 그 자가 학장으로 있던 엔대 도서관 앞 광장이 연결식장이다.
형님, 저는 오늘 야구장에 가야 한단 말이에요. 우리 모교가 황금 봉황기 쟁탈 전국 고교 야구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한 거 아시죠?
겸시 초문이다. 형님도 참 신문도 안 보시나 봐. 대망의 결승 진출이에요.
졸업생들이 후원회까지 조직해서 물심양면으로 후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그만큼 키운 끝에 드디어 황금 봉황기를 코앞에 둔 이 중대한 시점에서
후원회 측 응원단장의 중책을 맡은 소생이 불참한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형님.
10시에 거기서 만나자. 형님, 형님. 광수는 내려놓으려던 수화기에서 다급한 소리가 나자 다시 귀에다 대면서 말했다.
10시다. 늦지 않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아우가 져야 하죠.
근데 형님, 이제부터 또 자기도 틀렸고. 우리 10시에 거기서 만날 거 없이 곧 만나죠.
만나서 얘기나 하다가 시간되면 같이 가죠. 참 그것도 나쁘진 않겠구나.
그나저나 어디서 만나지? 난 변두리 학교 훈장 노릇 10여 년에.
시내 일은 깜깜이라 내가 잘 아는 다방으로 정하렴. 뭐 일부러 시내까지 나갈 거 있습니까, 형님?
우린 실상 너무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참 그렇구나.
광수는 아직도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쌩쌩 찬바람을 일으키며 들락거리는 아내를 클게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집으로 오련? 조반이나 같이 먹고 가게. 뭘요? 조반 한 끼 덜 먹었다고 화숙비 덜 낼 것도 아닌데요.
여기서 한술 뜨고 종점의 종창역 다방에서 기다릴게요. 형님도 슬슬 그리로 나오세요.
길수는 그 다방이 단골인 듯 구석자리에서 오동통한 레지를 옆에 앉히고 시시덕대고 있다가 광수를 보고 손을 번쩍 들었다.
레지는 오리걸음으로 카운터로 가버렸다. 신수가 헌하구나. 야구구역 못 가서 심통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형님도 제가 언제 귀죽거나 심통 부리는 거 보셨어요?
하 참 그렇구나. 처음엔 아닌 게 아니라 심통도 좀 났지만 생각할수록 그 자가 죽은 게 잘 된 일이다 싶어 속풀었죠.
넌 그 자를 미워했니? 광수는 마치 자문하듯이 물었다.
형님은요? 길수가 그답지 않게 슬쩍 대답을 피하고 심각한 얼굴로 광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별로. 광수는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저도 별로였어요. 제가 그 자가 죽은 게 잘 됐다라고 한 건 그 자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우리 삼형제가 그 영혼모를 추적으로부터 노연한 게 시원해서예요. 추적을 어디 우리가 했니? 형님이 했지.
우린 방관자였을 따름이야. 그 자가 죽고 난 지금에야 약간은 그 점이 후회스러워져.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사실 우리가 큰형이 하시는 그 영혼모를 이를 추적이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우리의 순진한 꿈이 만들어낸 과장이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순진한 꿈?
네. 큰형을 마치 정의를 위해 악한의 뒤를 쫓고 또 쫓는 광야의 추적자쯤으로 생각하고 싶었던.
그렇지만 큰형이 우리보다 힘들어서 어떤 행동을 한 건 하나도 없었잖아요.
우리보다 그 자의 행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그걸 우리들한테 일러주는 일을 계속했다는 것밖에.
그 일도 워낙 그 자가 저명인사고 보니 신문만 좀 자세히 보거나 명사의 뒷소식에 아는 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소문만 귀담아 들어도
그 정도는 저절로 알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힘들었던 건 오히려 우리였던 것 같아요.
우리가 힘이 들었다니? 우리는 우선 큰형이 그 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다 추적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였잖우?
그런 가당찮은 이름을 붙였던 건 실상 우리의 가당찮은 소망 때문이었을 거예요.
우린 큰형이 꼭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던 거예요. 큰형이 날이 시퍼렇게 선 단검이나 성냥감만 하되 파괴력이 무서운 사제폭탄을 품고 있어
그게 어느 때고 한 번은 그 자를 향해 투척되리라는 그런 소망을 갖고 추적을 지켜본다는 거.
그게 얼마나 뼈 빠지게 힘든 일인가는 작은형도 모른다고는 못할 거요.
난 요즘도 가끔 악몽에 시달리는데 고작 형님이 살인범이 되어 내 출세길이 막힌다거나
혼인길이 막혀서 절망하는 두 가지 레퍼토리가 줄기차게 반복되는 것만 봐도 그 힘든 일로 우리의 정신이 얼마나 압박받고 있나를 가히 알만하잖우?
넌 아까부터 우리 우리 하는데 너는 몰라도 나는 형님의 추적에 그런 무서운 소망을 건 적은 없었어.
불가사의한 의식을 지켜보는 것처럼 문득문득 두려워한 건 사실이지만 작은형도 분명히 그런 소망을 가졌었습니다.
소망에는 어떤 일이 생기길 간절히 바라는 것뿐 아니라 그 일이 생길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포함되니까요.
난 작은형이 나하고 같은 소망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아주 오래전에 확인한 걸요.
작은형도 생각날 거예요.
오래전 그자가 출마하던 해 우리 삼형제가 시골 국민학교 교정에서 그자의 선거연설을 듣던 일을.
그땐 우린 군중들의 뒤편 나무 그늘에 앉아서 입후부자들이 떠벌리는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그자의 차례라는 걸 알리자마자 큰형이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한테 힘차게 손짓을 하면서 사람들을 해치고 앞으로 걸어 나갔죠.
그때나 이때나 큰형은 볼품없는 단구인데 그 후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큰형은 거인처럼 커지고 우리한테 팔짓하던 손엔 깃발이 나무 끼고 있던 것처럼 생각되니 참 이상하죠.
그러니까 회상이란 믿을 게 못 돼.
작은형, 그렇다고 회상해서 도망가려고 하지 말아요.
큰형이 그때 그렇게 거인스러워 보였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비겁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때 나도 떨고 있었지만 작은형도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어요.
우린 둘 다 도망가고 싶어 죽겠으면서도 아무도 먼저 도망갈 용기조차 없어 떨리는 손을 서로 꼭 붙들고 형의 뒤를 따랐던 거예요.
우린 바로 앞자리 단 밑에 삼형제가 나란히 앉았죠.
결국 그날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말았지만 우리가 왜 그렇게 떨었겠어요?
우린 그때 큰형이 그 자를 해치게 되리려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기다렸던 거예요.
글쎄다, 너와 내가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건 잘 생각나지 않는다만 그 다음에 있었던 일은 잘 생각난다.
그날 큰형은 참으로 늠름했었지.
네, 그것도 생각나고 말고요.
그때 큰형은 생선장수였는데 생선장수가 그렇게 훌륭해 보일 수도 있다는 건 어린 마음에도 새로운 경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큰형보다 많이 배우고 큰형보다는 출세하고 큰형으로부터 완전히 자립했다고는 하지만
그때의 큰형의 훌륭함을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는 한 맨날 장떨뱅이인 큰형이지만
마음속에 특별히 높은 자리에 모셔놓고 있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건 내 말이 맞다.
나는 요즘도 형을 생각할 때마다 마치 내가 대단한 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당당해지는데
그때나 저때나 장떨뱅이가 고작인 형이 우리에게 백이 될 턱이 없지 않니?
그건 아직도 우리가 그날 늠름하던 형을 보고 으쓱해하고 황홀해하던 그 감동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일 게다.
그렇지만 그건 큰형의 20여 년간의 추적 동안에 있었던 전무후무한 단 한 번의 압권이었을 뿐이에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형이 그 후 추적을 아주 포기했어도 우리 형의 늠름함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숭배할 수가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의 형의 늠름함의 진상은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이었는지도 몰라.
스무 살 남짓한 생선장수 청년이 늠름해야 얼마나 늠름했겠어?
고작 아우들 앞에서의 과장된 몸짓 같은 거였겠지.
형이 그때 그토록 늠름했다는 건 한낱 우리가 만들어낸 신화일 뿐일지도 몰라.
그렇더라도 그 후에 형의 그 꾸준한 추적이 없었던들 우리가 그런 신화를 키울 수는 없었을 걸.
작은형, 우린 지금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이 많죠?
길수가 약간 이마살을 찡그리고 말했다.
누굴 비난하는 투가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는 투여서 광수도 쉽게 공감했다.
글쎄다. 아마 큰형이 없어서겠지.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시계를 보았다.
아직 9시 전이었다.
모닝커피랍시고 새알같은 계란노른자가 하나 든 커피는 광수의 빈속에 구역질을 유발했다.
그는 오리걸음을 하는 레지를 손짓으로 불러 그것을 치우게 하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다방 속은 초라하고 길었다.
꼭 옛날의 전차 속만 했다.
종착역보다는 전차라는 이름이 더 솔직하고 분수에 맞는 이름일 것 같았다.
광수는 큰형이 전차 차장이던 때가 생선장수 전이던가 후이던가 생각해내려 했지만 아리송했다.
전차가 없어지면서 모처럼의 안정된 직업을 잃고 실직을 했던 건 확실한데
그게 형이 거친 수많은 경력 중 얻임의 쯤인지 그 순서는 뒤죽박죽이었다.
그게 생각할수록 그의 신경이 거슬렸지만 아우에게 물으면 또 말 많다고 핀잔받을 것 같아 혼자서 생각해내기로 했다.
그들 삼형제가 큰형을 가장으로 의지하고 살게 된 것은 졸지에 고아가 되어 무작정 상경한 후였고
그 전까지는 시골에서 부모님 모시고 넉넉지는 못하나마 단란하게 살았었다.
졸지에 고아가 되기까지의 사정 속에 바로 그자가 개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광수가 아는 건 그자가 개입되어 있다는 정도지 그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는 알고 있지 못했다.
큰형은 다 알고 있겠지 하는 걸로 일부러 궁금증을 눌러두고 있는지도 몰랐다.
큰형은 워낙 말수가 적었다. 아마 자신에서 그 말을 해주는 일이란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아버지가 졸지에 그 지경을 당한 건 장수가 고등학생, 광수가 중학생, 길수가 국문학생 일적이었다.
4살 터울이었다. 장수도 어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혼자서 어른노릇을 도맡아 하려 들었다.
장수가 욕심쟁이어서가 아니라 아우들이 어른노릇을 두려워하는 눈치 때문이었을 게다.
아버지는 지방관청의 말단관리였다.
집안의 내려오는 재산은 선산과 텃밭과 자급자족도 안 되는 천평 미만의 논의 전부였다.
그러나 농사와 월급쟁이를 겸하고 있어 그 고장에서 그런데로 사는 축에 들었다.
삼형제는 아주 농사꾼집 아이들한테 제법 우월감까지 품으며 고김살 없는 소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돌연 체포됐다.
지방관청이 관할하는 토목공사를 둘러싼 거액의 부정사건이 연일 지방신문에 대해서 특비됐다.
아버지는 겨우 주사급이었다.
인품도 그렇거니와 신분도 감히 그런 걸 넘볼 처지가 못됐다.
체포된 여러 명 중에서도 제일 급이 낮았다.
아마 어쩌다 술자리에 말석이라도 참여한 영광이 재수 나쁘게 그런 화를 몰고 온 모양이었다.
사건이 워낙 큰 사건이니만큼 누가 보기에도 그가 걸려든 건 가당차나 보였던 만큼 꼭 혐의가 풀 일이란 것도 낙관할 수가 있었다.
조사 결과 사건 자체를 헛짚었든지 소문보다는 경미한 사건이었던지
신문은 쉽게 흥분했던 것처럼 쉽게 식어버려 그 뒤 소식은 오리무중이 되었고 혐의자들도 거의 다 석방됐다.
태산 명동에 서일필격으로 오로지 아버지만이 기소되고 재판에 회부됐다.
실형을 선고받아 상고하는 사이에 시일은 끌고 아버지는 옥중에서 병을 얻었다.
면회 갔다 온 어머니는 그분의 병은 순전히 울화병이라면서 당신마저 울화병이 올마붙은 것처럼 난로 수척해져서 몸부림쳤고
병보석 운동한답시고 정신없이 그 알량한 전답을 다 날렸다.
어느 날 아버지는 정말 병보석이 됐지만 전답을 날린 돈 덕이 아니라 가망없는 빈사상태의 몸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건 어머니와 마지인 장수뿐이었다.
아버지는 숨 넘어가기 직전까지 피를 토할 것처럼 처절한 몸짓으로 그의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억울한 사정의 자세한 내막을 광수와 길수는 끝내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곧 울화병이 악화되어 아버지의 뒤를 따랐고
졸지의 가장이 된 장수는 그만히 알고 있는 것을 아무한테도 퍼뜨리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수는 두 아우를 데리고 한마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자기는 미련없이 학업을 중단하고 막벌이로 나섰지만 두 아우에게만은 어떡하든 공부를 시키려 했다.
물론 광수와 길수가 서울 바닥에서 굶어 죽지 않고 과감하게도 대학 공부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형의 덕보다는 더 많이 본인들이 부지런하고 똑똑하기 때문이었다.
본인들이 가진 고생 다해 학비를 벌면서도 시험에 잘 붙었고 장학금 놓치지 않을 만큼 학점도 잘 땄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장수의 돈벌이는 아우 아니라 자식이라도 내리 둘씩 대학 공부시키기엔 크게 모자랐다.
그러나 장수가 두 아우 졸업시킬 때까진 장가도 안 들고 최소한으로 먹고 최소한으로 입으면서 돈벌이하는 족족 아우들의 뒷바라지에 아낌없이 뒤밀었다는 걸 아우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서울로 이사온 지 1년쯤 됐을 때였다.
그들은 중랑청변 운막에서 살고 있었고 장수는 리어카를 사서 채소 행상을 하고 있었다.
밥상도 없이 저녁밥을 둘러 앉은 자리에서 장수가 구질구질한 점퍼 속주머니에서 반듯하게 접은 신문을 꺼내 펴들면서 말했다.
그 자가 암흑의 지청의 지청장으로 영전이 되었구나.
그 자가 누군데?
아우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물었다.
아버님을 돌아가시게 한 그 사건의 담당검사였느니라.
그때는 우리 고장 검찰청 차장검사였는데 이번에 영전이 됐더구나.
장수는 그 소리를 감정을 잘 절제한 담담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형이 영전을 축하하고 있는 건지 저주하고 있는 건지 원안을 품고 있는 건지 이미 사겨버린 건지 아우들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우들은 그런 궁금증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다만 형의 리어카 장수 주제에 감히 지청장을 그 자라고 하는 게 조금 더 어색하지 않고 썩 잘 어울리는데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래도 길수가 울먹이며 한마디 했다.
그래서 어쩌잔 말이야?
아버진 돌아가시고 그 사람은 잘 돼서 좋아하란 말이야?
춤이라도 추란 말이야?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야?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란 말이다.
장수는 길수의 울부짖음과는 딴판으로 얼음잔 같은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때만 해도 아우들은 그냥 그렇게 알고만 있기를 우습게 알았었다.
그래서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리어카 장수 주제에 감히 지청장을 어째볼 엄두를 못 내는 거야 당연하지 하고 형을 비웃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어떤 일을 시간과 함께 망각의 저편으로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지 않고 계속해서 알고 있기란
마치 남은 다 다른데 자기만 각성해 있기처럼 고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일이 고됐기 때문에 아우들은 차라리 형이 몹쓸 짓이라도 그 자에게 분풀이를 해서
그 일로부터 그들이 노연할 수 있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장수는 결코 아무 일도 안 저질렀고
아우들로 하여금 그 자에 대해 다만 그냥 그렇게 알고 있게 하기 위한 추적만을 멈추지 않았었다.
20여 년 동안 형의 추적을 통해 드러난 그 자의 가는 길은 대체로 순탄했다.
그들 삼형제가 사는 고장에서 볼 때 그 자가 사는 곳은 눈부신 양지였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라 약간의 기복까지도 없을 수가 없었다.
단박 정상에 닿을 듯 치솟다가도 주춤 발을 헛디딜 때도 있긴 했다.
한때 그 자가 관직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아마 암흑의 지청장 다음으로 다른 지방의 지청장으로 전임 발령이 났을 때였는데
그 인사 이동에 불만을 품고 사표를 냈었다.
그러나 그때가 때마침 자유당 말기여서 훗날 그의 출세에 도리어 그 짧은 시기가 크게 도움이 됐다.
마치 자유당의 부정부패에 절망하고 과감히 공직을 물러나 은돈생활을 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요는 그 자의 기복은 모두 양지에서의 일이었고 삼형제가 아무리 그를 추적한데도 음지에서의 일이었다.
양지만을 골라 사는 사람의 눈에 띌 리가 없었다.
하물며 그들의 추적이 완전히 정적인 추적임에 있어서리야.
그 자가 국영기업체의 장이 됐다더라.
그 자가 입후보 했다더라.
그 자가 당선이 됐다더라.
그 자가 공공분과위원장이 됐다더라.
그 자가 암흑의 회장이 됐다더라.
그 자가 외유중이라더라.
그 자가 암흑의 국대사가 됐다더라.
그 자가 공공부 장관이 됐다더라.
그래서요?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란 말이다.
이런 무의미하고 무력한 추적 중 그들 삼형제가 그 자를 눈앞에 보기는 또 한 번 그 자가 입후보 했을 때였다.
그때를 아우들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삼형제는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장수는 그때 리어카 장수에서 약간 형편이 피어서 변두리 새로 생긴 시장에 노점이나마 쫓겨대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하나 얻어 생선 장수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장수는 그의 연중무휴의 장사를 아침부터 쉬면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삼형제가 함께 야외로 피크닉을 가자는 거였다.
그들의 여지껏의 생활방식으로 봐서 삼형제가 함께 가는 피크닉이란 기상천외의 발상이었다.
더군다나 광수와 길수는 따로 저희들만의 교우관계를 갖고 있었고 큰형을 막연히 경원하고 있던 터라 그 피크닉은 생각만 해도 고역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장수의 태도는 아무도 거스를 수 없게 단호했다.
재미없는 피크닉일수록 가까운 데로나 갔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아서 그들은 쉬의 버스에서 키지를 당하면서 한없이 갔다.
어디로 가냐고 아우들은 묻지 않았다. 어차피 재미없는 데일 건 뻔했으므로 행선지가 어디건 궁금할 건 없었다.
그건 형이나 알고 있으면 됐다. 그러나 쉬의 버스를 내려서도 한 시간이나 걸어서 당도한 데가
그 지방의 선거 유세장인 구민학교 운동장인 데는 아연할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우들은 또 긴장했다. 그자가 그 지방에서 입후보 했다는 건 형의 추적의 경과보고를 통해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자와의 최초의 만남이기에 이제야말로 무슨 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으로 아우들은 전전긍긍했고
마침내 그자의 차례가 되자 형이 군중들을 밀치고 맨 앞자리로 나섬에 광수는 두려움을 걷잡지 못해 핏기가 가시고 길수는 오줌을 질금질금 지렸다.
그러나 형은 잠자코 아우들을 양옆에 거느리고 얌전히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자의 정견을 경청했다.
그자는 날립한 여러 입후보자 중에서도 군계 일학으로 혼칠하고 구변은 현하웅변이었다.
부정부패 부조리의 일손이 서민대중을 위한 정치니 자유니 민주주의니 청념결백이니 정직이니 하는 낱말로 구절구절 장식된 우국의 충정이 막힘없이 흘러나와 장래에 철철 넘쳤다.
아우들은 그때처럼 그들의 형의 말없음, 말적음이 보석같은 미덕으로 믿음직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그런 신뢰감으로 해서 당초의 경망스러운 어떤 불상사애의 예감조차 잊고 있었다.
합동유세가 끝나자 그자는 제일 먼저 군중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개의 군중들은 그대로 흩어졌지만 열성적인 지지자들은 그자의 세력권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악수의 차례를 기다리고 섰다가 그의 악수에 응하면서
이미 당선은 떼어놓은 당상이라느니 우리 고을에서 오랜만에 일꾼다운 일꾼 내놓아 무상의 영광이라느니 아부를 일삼았다.
장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악수를 기다리는 지지자 속에 끼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우들을 다음 차례로 거느린 채 드디어 그가 장수 앞에 와서 만면에 웃음을 띄고 손을 내밀었다.
장수는 뒷짐진 채 그의 얼굴을 지그시 눌러볼 뿐 꼼짝도 안했다.
그는 뜻밖의 사태에 적이 당황한 눈치였지만 어디까지나 만인 앞에 저자세여야 된다는 이 포보자의 신분을 잊지 않고 눈웃음 치며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면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다음 아우들 차례로 돌아왔다.
아우들도 형이 하던 대로 손을 거만하게 뒷짐진 채 뻣뻣이 서서 그의 절만 받았다.
그러나 형처럼 부드럽지도 날카롭지도 않되 속속들이 투시하는 것 같은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지 못했다.
그때 형의 늠름함이야말로 타인의 추종을 불허했다.
형의 그런 늠름함만은 도저히 아우들이 흉내낼 수 없는 거였기에 지금까지도 그들의 마음속에 신화처럼 남아있었다.
음지의 삶이기에 그 정도의 사건도 능히 신화일 수가 있었다.
작은 형, 그때 큰 형이 그자하고 대면했을 때의 일이 우리 마음의 신화처럼 남아있다면 그자의 마음엔 악몽이 되어 남아있었지 않나 몰라?
기르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그자는 죽었다.
그자는 참 복도 좋아.
말년의 학장이었던 건 야심만만한 그로선 결코 흡족한 자리가 못됐을 테지만 죽기 전에 마지막 직업으로 써야 얼마나 좋으냔 말이에요.
그야말로 명당 자리지.
오로지 학문과 덕망으로 길이길이 추앙될 수 있으니 아우들이 장례식장에 당도했을 때
꽤 넓은 N대 도서관 앞 광장은 조객들로 입출의 여지도 없었다.
형은 먼저 와 있으련만 아예 찾기를 단념하고 한쪽 구석에 서있는데 형 쪽에서 먼저 찾아왔다.
그가 죽다니.
형이 슬픈듯이 말했다.
아우들은 형의 슬픔보다는 형이 처음으로 그자 대신 그라고 한 것에 놀라고 있었다.
장례식은 진행 중이었다.
약간 높은 단상엔 검은 리본을 두른 고인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조화가 노란 꽃 흰 꽃의 숲을 이루고 있었고
장의 위원들과 유족들이 검은 옷을 입고 슬픔에 넘치는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앉아 있었다.
고인의 유덕을 기리는 각계각층의 추모사는 끝이 없었다.
고인의 죽음은 학계에도 정계에도 법조계에도 메울 수 없는 빈자리를 남겼고
고인의 생전의 덕과 학문과 우곡지 충정은 죽음과는 상관없이
학계에도 정계에도 법조계에도 길이길이 빛을 남길 터였다.
고인의 일생과 업적은 과연 화려했다.
어떻게 그렇게 양지만 골라 살 수가 있었을까.
신기하게 여겨질 만큼 그의 생애 중 아무리 짧은 순간도 그늘에 가려진 적이 없었다.
자녀도 그답게 훌륭하게 키워 6명 중 4명은 박사였고 2명은 사장이었다.
만일 그의 시신에서 머리카락 하나라도 얻어갈질 수만 있다면
그의 생전의 복이 조금이라도 올마붙은 거라면
누구나 체면 불고 덤벼들어 그의 시신은 그 자리에서 무산되리라.
장수는 마이크를 통해 이런 성대한 장례식의 진행을 귀담아 들으면서
그 독특한 말없음과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두 아우도 어디서 얻어 입었는지 검은 양복까지 입고 있어
더욱 볼품없이 초라해 뵈는 형이건만
형 앞이라는 것만으로 어려워 입 다물고 조용히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종 흐느끼느라 말끝을 제대로 잊지 못하는 학생의 조사가 있고
그리고 N대 합창단의 조가 합창이 있었다.
분향 순서가 되었다.
장지에 도착해야 할 시간을 생각해서 조객들은 단체로 분향을 해주기 바란다고
마이크에서 정중하게 외쳤다.
같은 소리가 되풀이 됐다.
워낙 많은 조객으로 봐서 그 소리는
긴 한 조객 아니면 제발 분향을 생략해달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분향 안 할래?
장수가 분향하려고 늘어선 줄 끝을 찾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뜻밖의 일이어서 아우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장수는 구태여 더 권하지 않고 혼자서 부리나케 줄 끝을 찾아갔다.
원, 분향까지 할 건 또 뭐람?
길수가 혼잣말처럼 투덜댔다.
누가 아니?
또 절하는 대신 뻣뻣이 서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보고 싶은 겐지
설마...
아우들은 고개를 빼고 형이 분향하는 모습을 봐두려고 했으나
우앙 저항하는 인파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를 추앙하는군요.
이 많은 사람 중에 아마 그를 그자라고 대할 자격이 있는 건
우리 큰형밖에 없겠죠?
우리 큰형이 단연 품위 있어 보이는 건 당연해요.
그런 큰형의 백으로 우리도 최저한의 품위나마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를 그자라고 부르기 위해 우리 눈에만 보이는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형에겐 한시도 쉬지 않는 추적이 있어야 했으니
추적은 곧 깨어있음이었으니
모든 사람이 권력이니 명예니 하는 것의 최면에 걸려있는 동안
형만은 깨어있어야 했으니
자기가 깨어있는 게 아니라 아우들까지 꼬집어줘야 했으니
그게 보통일이었겠니?
아우들은 마치 형의 여지껏의 추적에 대한 조사처럼
형이 분양을 끝내고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영구와 유족과 장지까지 따라갈 친지들을 태운 차들까지 떠나고
뒤처리를 하는 학생들만 남은 후에도 형을 찾을 순 없었고
형은 워낙 싱거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우들은 별로 이상해하지 않고 장례식장을 떠났다.
너도 얼른 장가나 들지 그러냐?
맨날 하숙 생활만 해서 그런지 어째 거칠어 뵌다.
광수는 아우와 헤어져야 할 동네 어규에서 이렇게 말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거요. 요새 잘 돼가는 중이니까.
새삼스럽게 잘 돼가고 말게 뭐 있냐.
벌써 몇 년째 죽자 사자 하는 사이면서.
형님도 참, 걔하고 헤어진 지가 벌써 언젠데요.
차였구나?
아니에요. 차이다니요. 그 반대예요.
그럼 네가 찼단 말이지?
깊은 관계까지 맺었다더니. 그럴 수가.
형님은 그깟 일을 갖고 뭘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해요?
찰만해서 찼고 차도 후한 없이 찼단 말이에요.
찰만해서 찼다니?
왜 있잖아요. 출세에 유리할 것 같은 아가씨가 새롭게 나타났단 말이에요.
이제 나도 철부진 아이는 지났겠다. 그걸 알고야 어떻게 놓칩니까?
그렇다고 사랑을 위한 여자와 처세를 위한 여자를 둘 다 건네릴 만큼 부도덕하지도 못하고
한쪽을 찰 수밖에요.
저런 몹쓸.
광수는 붕괴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말끝을 흐렸다.
형님 참 이상해요.
형님한테 이 이야기로 언젠가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만날 적마다 말이 안 나왔었는데
오늘은 힘 안 들이고 말이 술술 나오니 말이에요.
큰형이 없어서 그럴 거다.
아니요. 큰형 앞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내가 하려는 일에 오늘처럼 자신 있어 보긴 처음인걸요.
길수가 한 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제 갈 길로 가버렸다.
그런 길수의 모습에서 광수는 문득 최저한의 품위마저 벗어던진 인간의 모습을 본 것처럼 느꼈다.
아, 그자가 죽었구나.
형의 20여 년 동안의 추적도 끝났구나.
비로소 그들이 그자라고 부르던 사람의 죽음이 광수에게 실감되어 왔다.
재밌게 감상하셨나요?
이 소설은 마지인 장수가 추적하던 그자의 죽음을 알리면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큰형 장수와 광수, 길수, 삼형제는 그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하죠.
20여 년이나 추적했던 그자의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장수는 왜 추적만 한 걸까요?
동생들은 그 긴장되고 불안함의 연속인 형의 추적이 어떻게든 끝을 보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인 장수는 오로지 그자의 행적만을 추적할 뿐 어떠한 행동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자의 행적에 어떤 변동이 있을 때마다 그 사실을 동생들에게 알려주기만 했죠.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소설 중반부터 그 이유를 조금씩 이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만이 할 수 있는 복수였던 것입니다.
근데 이상하죠? 지켜보기만 하는 복수도 있던가? 하고요.
그런데 말이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은근한 압박을 받게 할 수 있습니다.
장수는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한 원수인 그자를 추적하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자기의 인생을 얼마간 포기하면서까지 원수의 종말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를 지켜본 것이죠.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군가 너에게 해악을 끼치거든 안가품하려 들지 말고 강가에 고요히 앉아 강물을 바라보아라.
그럼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올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소름 돋는 얘기인데요.
이 말이 이 소설과 정말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수에게 안가품을 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지켜만 봐라.
그러면 하늘이 너 대신에 원수를 벌하리라.
뭐 이런 얘기인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소름이 쫙 돋지 않나요?
아무런 행동도 안하면서 은근히 누군가가 지켜보기만 한다.
와 오싹하죠.
만약에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저는 모든 생활에서 위축이 되고 긴장이 돼서 뭔가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리 한 대 시원하게 맞고 말았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요.
큰형 장수는 그러면서도 그 추적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부모가 나 혼자만의 부모가 아니듯이 원수 또한 장수 혼자만의 원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장수는 두 동생들에게도 그것을 계속 일깨워주려고 한 것인데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형만한 아우 없다고 동생들은 형이 하는 추적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 뒷부분에선 동생들도 형의 그 의도를 어느 정도는 깨달은 것 같긴 하는데
아무튼 큰형인 장수에게선 동생들이 함부로 범접하기 어려운 어떤 당당함이 느껴진다는 것
어릴 적 그자를 어떤 선거 유세장에서 만났을 때
형이 뒷짐을 진 채 그자의 악수에 대응함에 보인 그 당당한 행동이
두 동생들에겐 정말 영웅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큰형을 존경할 이유는 충분했죠.
기나긴 추적의 종말 그자가 그가 되던 그날 장례식에서 큰형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이제 복수는 끝났다고 속으로 좋아라 했을까요?
아니면 지난 20년간의 복수의 시간이 그에게 남긴 의미를 곱씹고 있었을까요?
저는 아마도 이제야 완성된 부모님의 복수가 시원했을 것 같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지금까지 박완서 작가의 추적자를 읽어드렸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고요.
이후 시간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