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승 박사의 주식 버블의 역사" 프랑스 대혁명의 진짜 원인, 미시시필 버블 붕괴 그후 (조현승 박사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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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승 박사의 주식 버블의 역사" 프랑스 대혁명의 진짜 원인, 미시시필 버블 붕괴 그후 (조현승 박사 / 3부)
✔ 본 영상은 11월 15일에 촬영되었습니다 (시청에 참고해 주세요)
🌕 홍익희 교수님의 신간, "모든 돈의 미래 비트코인"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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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5 과거 현재와 유사한 버블붕괴 사건
🌕 함께 보면 도움 되는 영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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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그럼 존 론은 그 뒤에 어떻게 되고 평가가 어떻게 남게 되나요?
일단 존 론은 쫓겨나요. 프랑스에서 쫓겨났는데
프랑스에서 어마어마한 이 사람도 부자가 됐었는데 그 재단에 압류 당해요.
빈털털이 된 채 쫓겨나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그래도 먹고 사는기는 했는데
어떻게 먹고 살았냐면 도박해가지고
아 원래 도박 참 좋다.
가수도 또 땄대요.
그래가지고 어느 정도 돈을 모으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하다가
나중에 이제 다른 나라에서도 이 악명이 알려진 거예요.
그러니까 존으로 그러면은 막 일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재산상 피해 많이 받으니까.
그래가지고 은신하고 도망다니고 하다가
근데 몸도 많이 쇠약해지고
자기도 자기의 실험이 실패한 거에 대해서
아마 상당히 위축이 됐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나중에 이제 영국에서 받아줘서
또 영국에 가서 좀 살고 뭐 이러다가
폐렴으로 죽었나 저건 58세에 이제 쓸쓸하게
아 58세에
쓸쓸하게 그 당시에는 58세에 죽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 화려했던 젊은 시절과는 좀 다르게 쓸쓸하게
9년 21년에 쫓겨났잖아요.
29년에 죽었으니까 사실은
8년 만에
8년 만에 쓸쓸하게 죽게 됩니다.
그러면은 교수님 이 존으로의 어떤 실험과
미시시피 버블에 대한 경제계에서
시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평가는 좀 어떤가요?
경제학자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평가를
역사 쪽에서도 평가를 하고 철학 쪽에서도 하는데
이제 역사 쪽에서 아주 하일브로노
로버트 하일브로노라고 굉장히 유명한 역사학자는
이 존으로를 갖다가 뭐라고 표현했냐면
한 모험가의 터무니없는 사기 행각에
노란한 시장의 광기였다.
이렇게 얘기를 평가를 했어요.
근데 경제학 쪽에서는
찰스 킨들버그라고 굉장히 유명한 경제사학자가 있는데
이분은 뭐라고 평가를 했냐면
합법적이고 실질적인 기업 운영이었으나
금융 문제에서 실패한 것이지 사기 행각은 아니었다.
그다음에 피터 가버라는 사람인데
로의 시도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잠재력이 큰 것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다.
그다음에 프랑스 사람인데
프랑스와 벨드라는 프랑스 역사학자인데요.
이 사람은 존으로의 시도를 단순히 투기적 실패가 아닌
금융 혁신의 중요한 실험으로 봐야 한다.
이론적 한계와 정치적 압력으로 시스템이 붕괴된 것이다.
다들 평가가 선구적이었는데
현실에서 어떤 벽에 실수가 있었던 거지
좋았던 것 같아요.
이 벨드는 뭐라고 평가를 했냐면
한 가지 존으로가 조금 잘못한 거를
이게 뭐냐면 존으로는 통화를 발행한 것
통화를 증발함으로 인해서
경제를 충분히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관계를 너무나 단순하게 봤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플레이션이라든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런 부분을 너무 등한시하고
단순하게 좋은 면만 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거죠.
그럼 통화를 많이 발행한 화폐를 많이 찍으면
경제는 무조건 성장한다.
그 당시에 존으로는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존으로도 그 정도로 단순하게 본 건 아니었고
그 당시에 보면 금화라든지
주로 제일 많이 쓰는 게 금화나
아니면 아주 유력한 은행들 있죠.
그런 데서 발행하는 어음을 썼는데
어음이라는 게 지폐처럼 단위가 소액으로
나눠질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시장에서 이것만 조금 터주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다.
이게 존으로의 기본 아이디어인데
그런데 그 중간에 그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실 지금 현재 우리가 그 시스템을 쓰고 있는 건데
인플레이션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통화 대신에 실물 가치가 있는 것만 써
그래가지고 전부 다 금화를 쓰기 시작하면
그러면 여기 있는 물안전할 때
금을 얼마를 들고 가야 될까요
그런 식으로 굉장히 그거는 시장을 갖다가 죽이는 거거든요.
그래서 존으로는 그런 거에 대해서
이걸 통해서 유통을 늘리고
그다음에 투자도 더 쉽게 하겠다는 거였는데
다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조금 그 문제점을 과소평가했던 거죠.
근데 사실 전혀 없는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생각해가지고
그런 부작용들을 갖다가 다 생각한다는 거는
그거는 좀 무리죠.
그렇죠. 지금 우리 70년대 80년대 올 쇼크 터지고
2008 금융위기도 지금도 터지잖아요.
처음 했으니까 그랬겠죠.
자 그다음에 타마스 카이저라는 역사학자인데
이 사람은 어떻게 평가했냐면
존으로의 재정개혁이 프랑스 정부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였다.
존으로의 시스템이 공공신뢰와 왕실의 경제적 신용에 의존했으나
정부의 강압적 정책과 절대주의적 통치 방식이
경제적 혼란과 공공신뢰의 상실로 이어졌다.
이렇게 평가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존으로가 잘못한 게 아니라
이건 프랑스 정부가 왕가가 잘못한 거다.
그 당시에 만약에 프랑스가 민주사회
그러니까 영국처럼 시민혁명을 겪으면서 의세민주주의가 되고
사유재산이라든가 제도적인 시스템 이 갖춰졌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본 거죠.
굉장히 좋은 평가네요.
네.
이 사람은 그렇게 평가했고 볼테르 아시죠
볼테르.
들어봤어 유일하게.
볼테르는 어떻게 평가했냐면 프랑스인들이 알고 있는 금융과 무역에 대한 모든
지식이 존으로의 덕이다.
자본금 5천만 리브르의 동인도 회사와 300척에서 1800척으로 늘어난 상선
이 모두 존으로 시스템이 이루어낸 결과다.
존으로 시스템 실패의 원인을 변화를 거부한 프랑스 사회에 있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볼테르가 무역과 사치품 에 대하여 라는 책을 1738년에 썼
거든요.
이게 1720년대 초반이었잖아요 .
그러니까 1739년이니까 한 20년이 채 안 됐죠.
한 18년 정도 지난 다음에 볼테르 가 이 평가를 이렇게 했습니다.
프랑스 내에서도 존으로에 대해서 물론 악감정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이렇게 또 존으로의 실험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던 거죠
.
그런데 그거는 저기 이렇게 먹고 살만 하고 귀족분들 얘기고 주식
투자했다가 90% 날린 분들은 그렇게 평균적으로는 싫어할 것 같은데
.
그러니까 그걸 볼테르는 이거는 존으로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
이게 원인은 뭐냐면 프랑스 사회 가 그 당시에 프랑스의 정치제도
.
이런 것들이 결국은 그 시스템이 좋은 시스템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여 평가를 한 거죠.
맞아요.
프랑스 왕가가 개입하고 비리 저지르 고 그런 게 있었죠.
존으로의 시스템은 결국 현재 지금 우리가 쓰는 제도입니다 이게 사실은
.
그러니까 이걸 갖다가 그런데 그게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사회가
그걸 운영하기 어려운 그만한 투명 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고 제도적
뒷받침이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쓰다 보니까 이러한 파국이 나온
거죠.
그럼 지금 우리가 쓰는 이 경제 시스템이 근본위제에서 미국 달러
로 그냥 신용을 하는 거고 이런 화폐 발행하다가 너무 물가 올라
가면 금리 조절하고 존으로의 시스템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화폐 시스템
이라고 봐야 되는 거죠.
시스템의 초보적인 형태죠.
초보적인 형태다.
참 재단했었네요.
그렇죠.
교수님 약간 궁금한 게 결국에는 미시시피 회사는 그 뒤에 어떻게
되나요 500립으로 주가 떨어진 뒤에 그 뒤에도 운영은 됐는데 그지부지
나중에 없어졌어요.
저도 찾아봤었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아 가지고 그러고서 망하지는
않고요.
그다음에도 운영은 돼요.
운영은 되고 나중에 이름이 바뀌 고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디가 인수했더라 그래 가지고 가게 가는데 그러다
가 이제 프랑스 사람들이 이때 큰 후유증이 뭐가 남냐면요.
하나는 뱅크라는 이름에 대해서 아주 그냥 프랑스 사람들이 경기
를 일으켜요.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에는 뱅크 를 안 써요.
정말요 소시예떼 그러니까 소시예떼
그런 거하고 무슨 크레딧 이런 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은행인데 프랑스
에서는 뱅크라는 걸 안 써요.
너무 싫으니까 그걸 안 쓰고 그다음에 또 하나는 미국 땅에 대한 애착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나중에 결국 나폴레옹 전쟁 때 팔잖아요.
팔게 되는 것도 물론 여러 가지 재정문제가 겹치긴 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으로 건너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하게 되고
재수없어서 돈 날려.
거기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게 생겨요.
거기는 황무지밖에 없어 실제로 존로가 화폐 시스템은 제가 그때
선진적인 실험이었다고 했는데 미시시피 회사는 정말 완전한 실패
였거든요.
그거는 잘못 들어간 거였어요 존로 도.
그렇게 될 수가 없는 땅이었던 거죠.
존로도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판단 을 했던 거죠.
그런데 이건 사기라기보다는 나중에 존로가 사람 보내고 개발하려고
노력했던 걸 보면 처음부터 의도한 사기는 아니었던 거예요.
나중에 남의 회사에서 나오는데 존블런트는 처음부터 없는 거 가지고
사기를 친 거거든요.
뻔히 알면서 사기 친 게 너무나 명확한데 존로 같은 경우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뭔가 해보려고 노력을 상당히 했어요 .
그렇군요.
그러면 교수님 외국인들도 여기 회사 투자했다고 했잖아요 주식
이.
많이 했죠.
그 사람들도 다 달린 거죠.
그렇죠.
하지만 그거는 숫자가 많지는 않 죠.
지금처럼 외국 주식을 사는 정도는 그렇게 많은 비율이 아니고 그 정도
되는 사람들은 그 돈 날려도 충분한 돈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그런 데
와서 사가고 그러지 그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을 거예요.
교수님 그러면 아까 존로가 세금 증수권 가져가서 굉장히 효율적으로
세금을 걷으면서도 세금을 내는 사람한테 줄여주면 되게 잘했다고
했잖아요.
그럼 이 사람 잘리고 나서는 혹시 나중에 프랑스에서 그래서 존로를
다시 부르려는 생각도 했었어요 .
했었는데 검토를 하는 과정에서 존로가 다시 오면 사람들이 어떻게
들고 일어날지 모른다.
감정이 너무 안 좋아서.
능력은 있는 사람인 건 맞거든요 .
그 사람들도 알긴 아는 거죠.
존로가 그래도 맡기면 일을 잘할 사람이고 그거는 충분히 알고 있었
는데도 불구하고 존로를 다시 부르 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존로 쫓겨나고 나서 다시 세금 증수 원래 프랑스가 하던 대로 하니까
또 비효율적으로 그렇죠.
그리고 프랑스의 재정은 그 이후에도 급속도로 악파가 됩니다.
아니.
빚 다 갚고 잘했는데 그걸 배우지 왜 이렇게 못했어요.
그게 프랑스가 재정관리를 잘 못 하는 게 전쟁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가 있어요.
왕실에서 돈을 많이 쓰는 것도 있는데 전쟁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아요
.
그러면서 루이 16세 때 가면서 폭발 을 하는 거죠.
결국 프랑스 혁명도 그거 아닌가요 세금을 마음대로 거들려니까 거기서
문제가 발생을 한 거죠.
그렇군요.
교수님 그럼 저희 이어서 마지막으로 존로 이후에 프랑스 경제와 프랑스
대혁명까지 어떻게 경제가 망가져 가는지 얘기 들어보도록 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