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새조차도 통과하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경계선 [자연]

기묘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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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과학이 미스터리를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미스터리
1511년 포르투갈 왕국 초신의 항해사 페르난디드 마젤라는
흥분으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 대륙에서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아시아에 도착하는 건 물론이고 세계 일주까지 가능하잖아!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업적을 내가 달성하는 거야!
4년 전 독일의 지도 제작자 마르틴-발트제 밀러가 배포했던
새로운 세계 지도를 보고 원대한 목표를 세운 마젤라는
자신의 탐험을 지원해줄 후원자를 찾기 위해 동분 서주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포르투갈 국왕과 한바탕 다투는 등 여러 고난을 겪은 그는
1517년 스페인으로 귀화해 현지 여성과 결혼까지 하게 되죠.
당시 포르투갈이 대부분의 항로를 차지하며
무역 경쟁에서 밀리고 있던 상황을 답답하게 생각하던 스페인 국왕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마젤란의 제안에 커다란 관심을 보였고
항해 관련 자금을 전액 지원하는 것은 물론
새롭게 발견한 영토의 총독 자리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마젤란을 후원합니다.
1519년 스페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마젤란은 함대를 이끌고 세계일주를 위한 항해에 나서는데요.
항해 과정에서 발생한 반란과 굶주림, 거슴 폭풍과 각종 질병 등의
여러 고난을 이겨낸 마젤란은 가까스로 지금의 괌에 도착하게 되죠.
그곳에서 더더욱 서쪽으로 나아간 마젤란은
1521년 현재의 필리핀 세부섬에 다다릅니다.
섬을 지배하고 있던 국왕 라자 후마본과 친밀한 관계를 쌓기 위해
마젤란은 그의 라이벌인 막탄섬 촌장 라프라프를
자신이 제거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게 되는데요.
작은 섬의 촌장 정도는 쉽사리 해치울 수 있다는 판단하에
마젤란은 자신의 휘하 스페인 병사 60명, 세부 병사 200명을 데리고
막탄섬으로 향했죠.
그런데 도착한 막탄섬에는 완벽하게 무장한
1500명의 라프라프의 군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적들은 모두 마젤란에게 달려들었다.
적들은 철창과 죽창, 칼몸이 흰 넓적한 칼로
우리의 거울이자 빛, 진정한 안내자를 죽였다.
크게 당황한 마젤란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요.
대장이 죽었지만 그의 부하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항해를 계속해야만 했죠.
1522년 200명이 넘는 선원들과 세척의 배를 희생한 대가로
18명의 선원만이 간신히 본국에 귀환하는 데 성공합니다.
안토니오 피가페타도 생존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요.
그는 학자로서 항해의 연대기를 작성하는 한편
도착한 곳의 생물들을 비롯한 각종 정보들을 함께 기록하였죠.
피가페타의 기록은 유럽 전역에 거단한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항해의 에피소드,
처음 들어보는 신비로운 문화와 생물들은
대중들의 상상력과 모험심을 크게 자각했는데요.
이후 필리핀, 인도네시아, 호주까지 해로가 뚫리며
사람들은 피가페타의 기록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죠.
약 300년이 흐른 1845년,
영국의 항해사 조지 윈저얼은
인도네시아와 호주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차이점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는 수마트라, 자바 등 서쪽의 섬에선
아시아 대륙에 서식하는 콧불소, 코끼리, 호랑이, 딱다구리 등이 발견되며
호주에는 캥거루, 코알라, 왕관 앵무 등이 서식한다고 설명했는데요.
당대의 생물학자들은 해당 지역이
아주 다양한 생물들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비행기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현대와 달리
19세기에는 거센 파도를 이겨내고
긴 시간 항해를 해야 했기에
단시간에 여러 장소를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더불어 장거리 항해에는
커다란 자금이 소모되기에
막대한 불을 지닌 후원자가 필수적이었는데요.
이러한 이유로 학자들에게 있어
멀리 떨어진 지역을 탐험, 연구하는 것은
일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은 중요한 기회였기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해당 지역이
인기를 끈 것이죠.
찰스, 로버트 다인과 함께
진아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생물학자
엘프리드, 러셀, 월리스 역시
같은 이유로 자신의 탐험지를
인도네시아와 호주로 선정하게 됩니다.
월리스는 사라왁 왕국의 국왕이자
탐험가인 제임스 부륵의 후원을 받아
1854년 동남아시아로 항해를 나섰는데요.
수년간 조사를 이어가던 그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죠.
몇몇 지역 간의 생태계가
확연한 차이를 보였던 것입니다.
생태계가 서로 상해한 지역을 기준으로
가상의 선을 그어본 월리스는
크게 놀라게 되는데요.
마치 누군가가 보이지 않은 선을 그어놓은 듯
선이 하나로 이어졌던 것이죠.
이곳은 몹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보통 가까운 지역의 환경은 매우 흡사하거나
비슷한 부분이 여럿 있기 마련인데
이곳만큼은 그렇지 않았던 건데요.
물론 사이에 바다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가장 가까운 지역인
자바, 발리선과 롬복선 간의 거리는
고작 31km밖에 되지 않았죠.
육상 생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조류나 해양 생물은
충분히 서로 간 교류가 가능한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선을 경계로 각 지역은
아예 다른 세계나 다름없는
생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요.
조지 윈저얼의 발표대로 서쪽에는
콧불소, 코끼리, 호랑이, 딱다구리 등
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물들이 서식했죠.
그리고 가상의 선 너머의 동쪽에는
이 생물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동쪽에 존재하는
캥거루, 코알라, 왕관 앵무 등의 생물들은
서쪽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요.
9,000km 이상 떨어진 영국과 일본보다
31km 떨어진 섬들 간의 생태계 차이가 더 크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죠.
마치 새로운 차원으로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롬복섬에는 그들이 처음 보는
신종 생물들이 가득했습니다.
조류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월리새의 시선에서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 있어
두 섬은 아주 쉽게 왕복이 가능한 거리로 보였죠.
하지만 자바와 발리섬에서 흔히 발견되는
노란 등배 짜는 새, 구리새공 바베,
새가랑, 딱다구리 등의 새들은
롬복섬에서 단 한 마리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반대로 롬복섬에 서식하는 극락조는
서쪽에서 이제껏 발견된 적이 없는 종이었는데요.
심지어 바닷속을 자유롭게 오가는 해양 생물들까지
두 생태계를 갈라놓는 가상의 선에
월리스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월리스는
자신의 대발견을 학계에 알리기도 전에
말라리아에 걸려 병상에 눕게 됩니다.
병마의 고통에 손가락도 까딱할 수 없게 된 월리스는
그 사이 월리스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했는데요.
그 결과 그의 머릿속에서 아주 획기적인 가설이 떠올랐죠.
월리스는 총 세 가지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첫째, 월리스선을 경계로 발견된 새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주로 1에서 1.5km 범위에서 활동하며
먼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는다.
둘째, 빙하기 때에는 수면이 낮아
지금은 바다로 나뉘어진 섬들이 육지로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셋째, 자바와 발리섬을 비롯한 서쪽에 서식하는 생물군은
아시아에서도 발견되며
롬복섬을 비롯한 동쪽에 서식하는 생물군은
호주에서도 발견된다.
이 세 가지 사실을 근거로
월리스는 과거 빙하기 시절
월리스선 서쪽의 섬들은 아시아에 붙어있었을 것이고
동쪽의 섬들은 호주에 붙어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는데요.
빙하기가 끝나 해수면이 상승한 이후
대륙과 섬들이 지금의 자리로 이동하였고
비주성 동물, 곤충들은 35km에 달하는
거리의 바다를 건너지 못하기 때문에
각 생태계가 분리되었다는 것이었죠.
또한 월리스선을 따라 활발한 해저 화산 활동이 일어나며
심해에 강력한 해류가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해양 생물들 역시 생태계가 분리되었다고
월리스는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가설을 통해 서식하는 생물의 종에 따라서
세계의 각 지역을 구분하는 생물 지뢰학 분야를 창시하기도 했는데요.
월리스의 가설에 대한 당시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죠.
그의 주장은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육지가 이동한다는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월리스가 9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약 1년 전인 1912년 독일 지질학회지에
대륙의 기원에 대하여라는 글이 기고되는데요.
독일의 지질학자 알프레드 백인헌은
해당 글을 통해 대륙이 움직인다는 대륙 이동서를 주장했죠.
이번에도 학계의 반응은 차갑게 그지없었습니다.
당대의 상식으로는 그 거대한 대륙이
미끄러져 움직인다는 상상을 감히 할 수 없었는데요.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아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죠.
적군의 잠수함을 상대하기 위해
급격하게 발전한 해저 탐사 기술이
바닷속 지질의 형태를 상세히 그려내며
심해에 거대한 계곡이나 산맥 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진이 주로 발생하는 곳이
바닷속 계곡, 산맥의 위치와 일치했다는 것인데요.
여러 조사를 통해 학자들은 바닷속 지층이
서로 맞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계곡과 산맥이 형성되었고
그 충격으로 지진이 발생했다는 가설을 세웠죠.
또 원자폭탄 제조를 위해
당산학 물질을 끊임없이 연구했던 원자력학계는
지표 근처에 우라늄, 토륨, 칼륨 등의 물질들이
붕괴열을 발산함으로써
멘틀 대리운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렇게 판구조론이 정립되는데요.
판구조론을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죠.
지구는 거대한 여러 개의 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멘틀의 대리운동으로 인해 판들은 떠다니며 이동한다.
이 이론은 그간의 의문이었던 여러 현상들을 명쾌히 설명해주었습니다.
월리스의 가설 역시 판구조론으로 인해 사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는데요.
조사 결과 월리스선은 판의 경계와 일치했으며
판들이 서로 부딪히며 활발한 해저 화산 활동이 일어나
수중 생물들을 갈라놓는 강력한 해류가 발생했던 것이었죠.
또 시뮬레이션을 통해 판의 이동 과정을 되짚어본 결과
월리스의 추측대로 빙하기 시절
서쪽의 섬들은 아시아에
동쪽의 섬들은 호주에 붙어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월리스선 너머의 두 지역은
아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요.
당연하게도 두 지역은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죠.
지금까지도 해당 지역은 월리스선을 경계로
아주 반이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래에는 수억 년 넘게 갈라져 있던
두 지역의 생태계가 서로 조호하게 된다고 하는데요.
계속해서 판은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약 5천만 년에서 1억 년 후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북쪽으로 이동해 인도네시아와 만나게 되죠.
학자들은 이 시기 두 생태계가 부딪히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더욱 시간이 흐른 1억 5천만 년 뒤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가 모두 육로로 이어지는데요.
2억 5천만 년이 지나면 세계는 새로운 판계야를 형성하게 되죠.
완전히 변해버린 기후와 자연환경은
합쳐진 생태계를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 못할 방향으로 인도할 겁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시기에는
지구의 기온이 크게 상승해 40에서 70도를 넘나들게 되며
극단적인 기후가 반복돼 대멸종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요.
이미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고 난 후라면
과거 중생대처럼 파충류와 절지동물류가 다시 지구에 번성할 수도 있죠.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대륙은 다시 갈라지게 되고
생물들은 멸종과 진화를 거듭하며
인류 역사는 그렇게 다시금 쎄질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지구의 첫 번째 인류라고 생각할 테죠.
기묘한 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