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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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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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도포입니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1956년 2차
중동전쟁 1967년 3차 중동 전쟁
그리고 1973년 4차 중동 전쟁까지
총네 차례의 중동 전쟁을 거치며 오늘
날 중동의 질서가 재편되었다 재편된
중동의 정세가 안정적이라고 할 수
없는데요 따지고 보면 중동 전쟁의
원인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곤 되찾지 못한
그저 난민의 불과한데요 마지막 중동
전쟁이었던 4차 중동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과 기타 중동의 국가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2023년
하마스 이스라엘 전쟁까지 어떤 역사가
흘러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내 차라의
중동 전쟁이 모두 이스라엘의
승리였기에 아랍권 국가들은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을 도와주는 서방의 국가들과
싸우기로 합니다 서남아시아에 그들이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자원이 있으니
바로 석유 선 아마샤의 석유가 현
지구상 석유 의 70% 차지하고
있거든요 석유 산유국 그리 뭉치기로
하는데 2차 중동전쟁과 3차 중동전쟁
사이였던 1960년 쿠웨이트이란
이라크 베네수엘라 사우디 아라비아
5개국이 그들끼리의 국직이고 오백을
조직했습니다 이후 4차 중동 전쟁까지
리비아 아랍에미리트 알제리 등이
가입하였습니다 오펙 회원 국만 보면은
중동전 깊숙히 개입한 국가들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같은 아랍
국가로서 아랍 연맹을 지지했기 사우디
아라비아 주도로 석유 무기화 라는
전략에 따라 4차 중동 전쟁에 맞추어
석유 수출량을 제안하였고 1973년
1차 석유 파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1979년에는 오펙 회원국 중
하나였던이란 혁명으로 인해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나 전 세계가
휘청거리기도 했죠 두 차라의 석유
파동으로 석유를 보유한 아랍권
국가들의 국제 지위가 상당히
상승했습니다 반면 중동전쟁 모두를이긴
이스라엘이 있지만 이스라엘을 역시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경제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이스라엘은 경제
위기뿐만 용 키푸르 전쟁에서 흘린
피해가 너무나도 막대기 때문에 전쟁
여론이 가시고 온건 여론에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로 인해 4대 총리 골다
메 이언을 실각했다 장관이었던 모세
다야는 총리 꿈을 단념해야 만 했죠
이집트 사다트 역시 그간의 친 소는
성향보다는 차라리 이스라엘이 꼼짝도
못하는 친미 성향 쪽으로 외교가
기울었죠 내 차례 중동전쟁의 메인
대결 구도였던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측에서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1977년 이스라엘 총일 100인이
초청하여 이집트의 사다트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전대 비문의 사건이 터지기도
하였습니다 1948년부터
1973년까지 둘 중 반드시 하나는
사라져야 하는 최악의 전쟁을 전개해
오던 두 나라가 화해 하리라곤 아무도
예상 못했을 거란 말이죠 사다트와
베인의 수교를 끝으로 지난했던
중동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평가를
받곤 둘 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이 사이에 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이 들어와 중재를 주도하면서
1979년 미국의 지미 카토가
이집트의 사다트와 이스라엘의 총리
백인을 미국으로 불러 함께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평화
협정을 맺게 했습니다 전 세계인들은
절대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이
쓰리샷을 본 거죠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좋게
마무리 됐겠지만이를 바득바득 가는
곳이 있겠죠이 모든 중동 전쟁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 있니다 일당 중동 전쟁 자체가
아라 문화권이 중동의 이스라엘이
알받기 하고 기존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아 이들을 보호하고 땅을 되찾아
준다면서 일어난 전쟁이자아요
이스라엘에게 땅을 뺏긴 일에
팔레스타인은 이집트에게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이집트와 기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싸워서 원래 땅을 회복시켜
주리라 믿었죠 그래서 중동 전쟁
때마다 게릴라전으로 협조하기 했으나
뭐 전부 이스라엘의 승리였다아요
팔레스타인은 만약 이집트에게 기대를
걸 수가 없었죠 팔레스타인에서는 3차
중동 전쟁 3년 전이었던 1964년
그들끼리 정부를 수립하기로 해서 만든
조직이 바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즉
피에로 있습니다 피에로가 팔레스타인의
정보라고 했지만 실상은 유대인
민간인들 중에는 테러 단체였습니다
그래서 같은 아락 국가에서도 피에로를
껄끄럽게 봤죠 3차 중동 전쟁 때는
요르단을 기점으로 게릴라전을 싸웠지만
3차 중동 전쟁에서 요르단도
패전하면서 피에로 역시 이스라엘 군의
공격에 길을 못 펴고 있었습니다
그럴수록 피로에서 비행기 넘치 즉
재킹 사건들을 일으켰는데 1970년
9월 6일에는 무려 다섯 기의
항공기들을 동시에 납치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걸로 요르단에서는
피에로를 좋게 보지 않았죠 1971년
피에로는 레바논으로 근거지를 옮겼고
1972년에 아마 아실 분들은 아실
유명한 사건인데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민현의 오프닝 장면인
민현 올림픽 참사를 일으켰습니다
1972년의 서독에서 뮌헨 올림픽이
개최되던 때였는데 올림픽이 한창에 된
뮌헨에서 피에로 중에서도 극단적
과격단체 검은 9월 단이 올림픽에
참여한 이스라엘 선수촌을 잠입해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인질로 삼은
사건이었습니다 4차 중동 전쟁을
끝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우호
관계로 전환됨에 따라 피해로도이 계속
분풀이 보복용 테러를 이어가 봤자
팔레스타인에 드게 될게 없다고 판단
피에로의 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
더 이상 테러를 하지 않겠다며
온건주의 노선을 표방하면서
1974년 유엔 참 한국으로 인정을
받았고 1976년엔 아랍 연맹으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테러를 안
하겠다고 하는 건 기타 국가들에게 안
하겠다는 것일뿐이 이스라엘인의 상대로
한 공격은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한편
중동 전쟁을 종지부 짓고 노벨
평화상가 수한 사다트는 아랍 연맹
내에선 아랍의 배신자라며 온가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결국 1981년
이슬람 과격 단체에 의해 수류탄에
맞고 암살을 당했습니다 사다트 암살
후 부통령이었던 무바라크가 대통령이
되어 약 30년간 독재를 일삼으면서
그 역시 사다트 이론의 한 사람으로
이스라엘과 여전히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갔고 그래서 이집트는 꾸준히
아랍 연맹의 배신자 꼬리표를 달고
있어야 했죠 다른 나라들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집트만큼이나
이스라엘과 악연을 갖고 중동전쟁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국가가 시리아
있죠 시리아는 4차 중동전쟁 직전
반서구주의와 범 아랍 주의를 내세운
바트 당의 쿠데타로 독재가 시작한
일에 계속 시리아 바트 당에서 독재를
하며 이스라엘과화한 이집트와 달리
꾸준히 이스라엘과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게 준 것과는 달리
곤란 고원은 시리아에게 안 넘겼죠
바트당이 득세한 국가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이라크인 그래서 4차
중동전쟁 때도 이라크가 시리아를
구하러 가기도 했죠 그래서 이라크와
이스라엘 사이도 좋지 못합니다
1979년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대통령이 되면서 이스라엘 이라크
관계는 더욱 안 좋아지죠 또 중동
정수에 빠뜨릴 수 없는 사건이
1975년 레바논에서 일어나 난
레바논 내전 있니다 그간 중동 전쟁을
다룰 때 레바논이 많이 언급되지는
않았죠 레바논은 아랍 국가들 중
유일하게 기독교 비율을 매우 높은
국가입니다 레바논이 나라 자체가
이슬람 내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연합해서 만들어진
국가이고 중동 전쟁 와중에는이
레바논의 대통령이 기독교인이 했죠
하지만 내 차례에 중동 전쟁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모여들었고 원래 요르단에
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피해로도
요르단 테 쫓겨난 뒤 레바논의 자리를
봤습니다 아예 레바논 연수도 베이루트
한가운데 피에로의 본부를 설치할
정도였죠 결국 1975년부터 레바논
정보와 이슬람 단체들 간의 내전 이름
바 레바논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레바논
내전을 5차 중동전쟁 이라고까지
부르는데요 시리아가 레바논 내전 내
이슬람 단체를 지원하고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전 내 기독교 정부군을
지원해주며 개입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깐
레바논 내전에서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중동 전쟁을 계속했던 겁니다
1982년에 이스라엘 과 레바논
사이에 휴전이 체결됐고 휴전의 내용에
따라 레바논은 피에로를 레바논에서 내
쫓기로 합니다 레바논에서 쫓겨난
피에로는 튀니지로 거처를 옮겼고 이제
피에로도둑 의장과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만나 평화 협정에 나섰고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한 지구와 가자
지구에 팔레스타인인들이 모여 살 수
있도록 합의를 보면서 오늘날의 영토가
확정되어이 아라파트 1994년 팔레스
인의 1대 대통령이 되었죠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해피 엔딩인 것처럼
보이잖아요 왜 지금까지 난리일까요
피에로의 아라파트 의장과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평화 협정을 체결하기
전이었던 1987년 외교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과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아라파트 아는 달리 강경 팔레스타인인
들끼리는 무장 단체 하마스를 조직해
이스라엘군은 물론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테러하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본기를 인티 하다라고 부르죠 이러니
이스라엘에서도 팔레스틴에 대한 인지가
매우매우 안 좋아졌고 아랍 아파트처럼
외교로 해결하려던 라빈 총리가
1995년 암살되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평화는 단기간에 끝이
나버렸고 라빈 총리 이후 이스라엘은
다시 급격하게 반 팔레스타인 강경
여론이 대두 되었죠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미국과 아랍 세가
최악으로 치닫자이 국제적 분위기를 타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상대로 싸움을 전개합니다 그럴수록
하마스의 본기 인티파다 더 격렬해지고
그 사이에 낀 피해로이 아라파트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다가 2004년
사망합니다이 틈을 타 하마스는 가자
지구를 장악해 지금까지 가자 지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아라파트
사우 그의 세력들은 파타라 조직 하의
요르단강 서한 지구의 팔레스타인 령을
거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하마스는 전쟁과 테러로 요르단강 서한
지구의 파타는 외교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거죠
당연히 파타만이이 정부로서 그나마
국제적 인증을 받고 있고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이 파타르
의미하며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있는 무장 테러 단체이이 이후로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하마스 사이에선
분쟁과 미사일 도발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총리들이
정권 지지도가 낮아질 때마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책을 쓰면
지지도가 높아지죠 물론이 모든 분쟁을
안 좋게 인식하는 이스라엘의 지식인
및 예수가 대도 있긴 있지만 매우
극소수고 가장 가까운 사건으로 지난
2021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에 미사일 공격을 하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침투했고 또
2023년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터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사우디
아라비아와 관계가 좋아지자 혹시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원을 끊길 것을
우려하는 하마스가 둘이 친해지지
말라고 이스라엘을 침공하며 전쟁에
개시 되는데 이스라엘과 사우디
아라비아가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에 진짜 견제했던 국가가 이란이었다
지라 지금의 전쟁은 이란이 하마스를
붙 추인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땅히 해결되는 것이 없고
매년 싸우기만 하는 가자지구의 하 와
이스라엘 그 사이에 민간인들 너무나도
잔혹하게 희생되고 있고 또 유대인들이
꽉주고 있는 서방의 재계에서는
이스라엘의 적대적인 입장을 표명한
이들을 갈라치기 하고 있고이 답없는
싸움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결과에 어쨌든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민간인들의 희상이 더 번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럼 역서 돋보기 있습니다
저희 역서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