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급발진, 영국과 프랑스의 참전 핵전쟁으로 번질 뻔 했던 중동전 2차 중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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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중동전쟁. 이집트의 급발진, 핵전쟁으로 번질 뻔 했던 중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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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도포입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일어난
이스라엘 건국 전쟁 이른바 1차 중동
전쟁은 1949년 이스라엘의
명명백백한 승리로 끝났습니다 1차
중동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성공적으로
알박기 성공해 중동의 자리를 잡았고
반대로 1차 중동전쟁의 패전으로 아랍
연망 국가들에는 변혁의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국가는 이집트
있습니다 우선 1차 중동전쟁 때까
이집트는 이집트 왕국이었습니다 본니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으며 19세기
민족주의 부과 함께 이집트로
파견되었던 무함마드 알리가 이집트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1841년
이집트 왕국을 세우고 오스만 그부
독립했습니다 중간에 영국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적이 있지만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하지만 반영
정서가 유독 심했던 이집트에서 스웨즈
운하 경영권이 영국에게 있고 또 1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보란듯이
패배하면서 이집트 왕실의 측면이
추락해 버립니다 이집트의 구왕 파루크
1세도 부정부패와 사치의 결정과 같은
존재였고 이집트 왕실에 대한 불만이
주로 군부에 마련해 있었습니다 이집트
군부에 자유 장교단이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이집트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조직 자유 장교단
강력한 반영 정서를 지낸 단체로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영국과 같이 싸우던
이집트 왕실에 엄청난 불만을 뛰고
있었습니다 자유 장교단의 리더격인
인물이 어쩌면 이집트에서 파라오를
다음으로 유명한 나세르 있습니다
나세르는 세계 현대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인데요이 몇 가지 사실로
나세르의 특징을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그가 가장 존경하던
인물이 나폴레옹이었고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도 나세르 높게 평가했으며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존경하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또 나중에
나세르가 죽었는 그의 장례식이
500만 명이 모였다죠 이렇듯 후배
독재자들의 무 존경을 받는 인물이
나세르 있데요 언변도 수료하고 풍채
좋은 체구에 이때는 그의 외모가 가장
많은 이목을 끌었을 정도의 이미지였던
지라 독재에 최적화되어 있던 비주 가
성격이었고 1차 중동전쟁 당시
나세르는 소령이 있는데 1차 중동
전쟁 후 나세르가 이끄는 자유 장교단
이집트 왕가의 더 큰 불만을 품었고
결국 1952년 나세르의 자유
장교단의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쿠데타
과정에서 자유 장교단 반서구 과격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무슬림 형제단에
도움을 받기도 했죠 나세르는 파루크
1세를 폐위시키고 이집트 혁명 사령
평의회를 조직하고 이집트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파르쿠 1세를 비롯한
이집트 왕국의 왕실에 대해서는
이집트만 떠나면 추가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신변을 보장해 주면서 이집트
왕실은 유럽으로 망명을 갖고 나세르는
이집트 정부 인사를 물가리 했죠
하지만이 물가리 피해 숙청은 아니었던
것이 대외적으로 선량한 이미지를
보이고자이 왕당파 인사들만 해임시키고
꼭 왕당파가 아니라면 관록 있는
정치인들은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죠
쿠데타 세력은 이집트도 공화 정보로
전환하기로 하여 1953년 대통령제를
채택 자유 장교단의 또 다른 멤버이자
1차 중동 전쟁 당시 이집트가 아무
른 성과도 내지 못하고 도망치기
급급했을 때 몇 안드는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나이브가 이집트의
1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나세르는
부수상이었는데 부수상 임에도 나세르가
대통령 나기브 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나세르와 나이브는 서로
신경전을 버리다가 취임 1년만이
1954년 나세르는 나기브 대통령에서
해임하고 가택 연금 시켰습니다
나세르는 대통령 자리를 공속으로 둔
채 본인은 수상으로 취임했는데 다만
세르도이 나기의 대중적 인기를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론의 지지가
필요했던 나세르는 나기브 연금을
풀어주고 정치에 복귀시키는 모습을
보였지만 끝까지 나기를 압박해
나이브가 자발적으로 정치에서 물러나는
형식으로 나기브 내쫓아 버리고 이집트
혁명 사령 평의회의 의장으로 있던
나세르는 1956년 스스로 대통령이
오르면서 이집트의 2대 대통령이
[음악]
되었습니다 취임한지 얼마 안 된
독재자들은 꼭 대규모 토목공사를
버리기 마련입니다 나세르 역시 대규모
토목공사를 발표한 하는데이 나일강
중상류 아스완이라는 곳에 거대한 댐을
만들기로 합니다 나일강이 워낙 큰
강이다 보니 나일강을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됨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역할이 상당하거든요 실제로 오늘 날
아스완 댐은 엄청난 전력을 생산하고
있고 날강 대홍수를 막는데 가장 큰
기여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이 정도 큰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했죠 그런데이 자금을 미국이 상당
부분 부담해 주기로 합니다 비록
이스라엘을 지지하던 미국이었으면
아랍의 국가들을 무작정 적으로
돌리기보다는 그래도 우호적인 관 계를
체결하는게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아랍
모두에게 양다리 외교를 하는게
미국에게도 외교적 이점으로 작용할
수가 있었거든요 그러는 한편 나세르는
1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처럼
체코를 비롯한 동국관 국가들로부터
무기를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게 이스라엘이 체코로 무기를
구입하는 거랑 아랍 국가가 체코로
무기를 구입하는 건 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심지어 이때는 냉전이
그게 달할 때잖아요 결국 미국은
이집트의 아스완댐 건설 비용을 부담해
주겠다는 약속을 철회해 버립니다
나세르는 분노하 하면서 더더욱
공산주의 동구권 진영에 접근했고 터키
때문에 남하가 막혀버린 소련
입장에서는 중동 지역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이집트와 소련이 수교를 맺으며
아스완댐 건설 비용 부담은 물론
소련제 무기들을 대거 이집트에게
지원해 줍니다 나세르는 소련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관심도 없는 사회주의를
표방하기 했는데 어디까지나 외교적인
차원이 있기에 골수 정통 사회주의라고
할 수 없죠 이집트 이러한 친소련
외교는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 국가들의
반발을 썼고이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더 있어 습니다 나세르는 강경한 반영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집트
민족주의를 내세웠고 그리고 이집트도
어느 정도 아스완 댐 건설 비용을
부담해야 있기에 재원 확보 차원에서
1956년 스웨즈 운하를 국유화 해
버립니다 스웨즈 운하의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던 최대주주 영국이
방방 뛸 수밖에 없었죠 또 나세르는
다른 아랍 국가들에도 개입해서 영국의
영향력을 최소화시키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앤선이는 총리는 나세르의
중동의
하며 이집트의 군사 개입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에 동참한게 이스라엘이
있는데요 이집트가 1차 중동 전쟁의
분풀이로 이스라엘도 수해주 운나 사용
금지 지시를 내려 버렸거든요 이뿐만이
아니라 이집트의 지원으로 가자지구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페다이라는
무장 테러 단체를 만들어 이스라엘
구은 물론 이스라엘의 민간인들 테도
끔찍한 짓들을 자행하고 다녔고
이집트는이를 무견 할뿐 아니라 오히려
더 부추겼습니다 본니 이스라엘은 1차
중동전쟁 이후 온건파의 총리가 취임
있었는데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페다
이의 킹에 칠했던 이스라엘에서는 바로
강경파 있던 뱅구 리온이 복귀하였고
이제 전쟁은
[음악]
불가피했습니다 1956년 10월 2차
중동 전쟁이 터졌습니다 서구권에서는
우선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싸움을
버리면 그걸 빌미로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할 계획이었죠 선재 공격은 10월
29일 이스라엘이 먼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가자지구 넘어
신나의 반도를 침공했습니다 11월
2일 가자 지구가 며칠을 못 버티고
점령되었고 가자지구 있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명목상 이집트 군이 보호해
주고 있었는데 이스라엘군이 들어오니까
이집트 군은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오죽하면 이집트 군이 도망가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남인들을 죽이거나
남인들게 식량을 뺏어 가기도
했겠습니까 이집트 군과 함께
이스라엘과 싸울 생각이었던
팔레스타인의 무장 테러단 츠 페다
이도 어이가 없었겠죠 결국 페다 이도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습니다 페다
이에게 당한 것이 많았던 이스라엘
군을 보복하겠다고 가자지구 곳곳에서
팔 스타인 민간인들을 학살했고 물론
이스라엘 측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점령 후
이스라엘군은 신나이 반도로 더
적극적으로 진격했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공수부대와 외인부대를
투입하고 공군 동원에서 신나이 반도의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1차 중동 전직
때 이집트 구는 오합지졸이 있잖아요
나세르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체코로 터
무기들을 사들이면서 뭔가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여전히 이집트 군은
오합지졸이 있어요 군기도
개판이었다 안 돼서이 이스라엘군이 저
넓은 신나이 반도 전체를 다
차지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성공적으로 스웨즈 운하도 장악했고
그런데 나세르의 뒤에는 큰 형님이
계시죠 바로
소련이었지만 영국과 프랑스를
맹비난하면서 흐루시초프가이 전쟁이
지속된다면 본인들은 핵무기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소렌이 등장하고 또 핵무기가
언급되면서 미국이 등장을 안 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오히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에 화를냅니다 지금 스웨즈 운하
때문에 핵전쟁이 운운 대고 국제정 를
이렇게 위기에 빠뜨리는게 말이 되냐
그리고 왜 사전에 미국한테 말을 해
주지 않고 너희들 멋대로 전쟁을
일으키냐 말이죠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를 앞으로 적국으로 삼을 수도
있다면서 초강수를 두었고 별수 없이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끝내야
했습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너희도
이제 그만해 라면서 시나이 반도에
주둔하고 있다가이 눈치 슬금슬금
보면서 다 차지해 놓은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합니다 이스라엘이
미국에게 가자 지고만 달라고 했지만
미국이 안 된다고 했죠 오히려 미국이
이집트에 구원 투수로 등장한 건데
전투에선 나세르의 이집트가 졌지만
전쟁에선 영국과 프랑스가 진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무것도
얻은게 없었으며 이집트는 공식적으로
스웨즈 운하를 구유 하면서 2차 중동
전쟁으로 이집트 운이 탈탈 틀렸음에도
전쟁의 결과는 이집트의 승리이다 보니
나세르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2차 중동 전쟁을
스웨즈 전쟁이라고 합니다 나세르는
거만해지고 이스라엘은 열심히 써서 다
이겨 놓고 얻은 건 아무것도 없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가장
세력이 컸던 무장 달이가 해산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수의 무장 단체들이
조직되며이 중동은 더 깊은 혼란의
소용돌이로 들어오죠 그럼 역사 돋보이
있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