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며듣는소설 비밀스러운 밤 외출이 끝나면 침실로 들어오는 남편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아내 | '가면의 꿈' 이청준 단편소설 | #책읽어주는남자 #오디오북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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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하루의 끝, 조용한 밤.
당신을 깊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오디오북 채널,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입니다.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이번에 낭독할 작품은 이청준 작가의 단편 소설 "가면의 꿈" 입니다. 😊
즐거운 감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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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잠의 꿈꾸는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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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00:00:00 인트로
00:00:54 본문낭독
00:41:25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46:11 클로징 음악 "Counting littl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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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요약
AI 생성이청준의 소설 <가면의 꿈>을 통해 사회적 기대와 페르소나 사이에서 분열되는 현대인의 고독과 정체성 상실을 다룹니다. 엘리트로서의 삶에 지친 명식이 변장을 통해 도피처를 찾지만, 결국 가면과 본체가 역전되며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아 유지의 중요성을 성찰합니다.
오늘은 이청준 작가의 여러분들께 조금은 색다른 맛을 드릴만한 작품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단편소설 가면의 꿈입니다. 이 작품은 이청준 작가의 그간의 작품적 경험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는데요.
약간 긴장감도 있고 추리적인 요소도 있으면서 또 나름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저와 함께 작품을 감상하시면서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이청준 작가의 가면의 꿈을 시작하겠습니다.
가면의 꿈 이청준 지연은 불을 끈 침실에서 남편 명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 11시 정원을 가득 채운 달빛이 그녀의 방 창문 커튼으로 희미하게 젖어들고 있다.
외등을 켜놓은 집안은 달빛 때문에 여름날의 대낮처럼 고요하다.
명식은 2층 육조 다다미방 한 칸을 서재 겸 평상시의 거실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이따금 밤이 깊으면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이며 2층 나무 계단을 걸어 내려오곤 했다.
그러나 명식은 지금 2층엔 없었다.
그는 외출 중이었다. 지연은 그 명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찌감치 잠옷을 갈아입고 그리고 얼마간 기대에 부푼 가슴을 달래며 침대 근처를 맴돌거나
창문 곁으로 다가가 무연스레 달빛에 젖은 정원을 내다보곤 하고 있었다.
명식은 좀처럼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러나 지연은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조급해지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명식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내세울 만큼 한 것이 아니면서도 마음이 늘 그렇게 편했다.
명식의 외출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밤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언제나 명식이 2층 나무 계단을 내려온다.
그러고는 한껏 은밀스럽게 불 꺼진 지연의 잠자리를 찾아든다.
게다가 오늘은 여간 오랜만의 밤 외출이 아니었다. 뜻밖의 일이었다.
저녁을 먹을 때부터 명식의 기색이 달랐다. 밤 외출의 유혹을 느낄 땐 언제나 그랬듯이 명식은 공연의 거동이 소심스러워지고 있었다.
말소리가 낮아지고 저녁을 끝내고 나선 유리장가에 기대서서 초조함이 완연한 눈길로 지연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어찌 보면 좀 멍청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그 명식의 눈길에는 그리움 같은 것이 서리고 있었다.
밤 외출의 유혹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연은 속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어린애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변머리 없는 양반 같은 이라고.
또 기회를 만들어줘야겠군. 밥 먹은 게 좋지 않나 봐요.
두통이 있는 척 명식을 혼자 놓아둔 채 침실로 틀어박혀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명식은 그러자 곧 외등을 끄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에 그가 다시 2층 나무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 불 꺼진 정원을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걸어나가고 있겠지.
그러나 지연은 명식이 집을 나가는 것을 내다보진 않았다.
이젠 순인연도 대문까지 걸어나가는 명식을 뒤따르지 않았다.
아저씨가 밤 외출을 하실 때는 외등을 켜지 말고 모른 척 해드려라.
돌아오실 때도 마찬가지야. 아저씨는 밤늦게 불이 켜지는 걸 싫어하신단다.
넌 대문만 풀어드리고 들어가 자는 거야. 똑똑히 기억해 두지 않으면 야단친다.
아저씨가 돌아오실 땐 외등뿐만 아니라 집안에 불이 하나도 없어야 한단 말이다.
그렇게 순인연을 일러두고 있었다. 그것은 지연 자신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녀는 명식을 내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코수염을 달았을 거야. 조금 전에 그 소심스럽던 거동가는 땀판으로
갑자기 활기에 차서 불 꺼진 정원길을 그림자처럼 재빠르게 걸어나가고 있을 명식의 모습이 보지 않아도 선했다.
그는 더부룩한 가발과 코수염으로 변장을 하고 있었고 달빛이 그의 어깨 위로 뽀얗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명식이 대문을 나가고 나서 채 2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좀 더 분명한 사실로 드러났다.
명식이 대문을 나가고 나자 지연은 방금 명식이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왔던 2층 나무 계단을
이번에는 그녀 자신이 역시 발소리가 너무 크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 올라갔다.
그녀는 명식의 서재 겸 거실로 들어서자 곧바로 한쪽 테이블 곁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명식이 한 번도 지연에게 열어보인 일이 없는, 그러나 지연에게는 이미 아무것도 비밀이 될 수 없는 서랍이 하나 있었다.
지연은 익숙하게 서랍을 열어젖혔다. 예상대로였다.
서랍 안에는 몇 벌의 가발과 코수염과 태가 다른 안경들이 난잡스럽게 쑤셔박혀 있었다.
색깔과 모양이 다른 모자 종류도 몇 개 함께 뒹굴고 있었다. 모두가 명식의 밤 외출 때 사용되는 변장 용구들이었다.
더부룩한 장발 머리털 한 벌과 서양 젊은이에게나 어울릴 적갈색 코수염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의 밤 외출이군. 지연은 자기도 모르게 빙긋 미소가 번져나왔다.
벌써 11시 반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명식은 아직도 돌아오는 기척이 없었다.
지연은 다시 한 차례 유리창가로 다가가 달빛에 젖은 채 교교하게 잠들어 있는 정원을 내려다 보다가는
금세 또 침대로 되돌아가서 이번에는 몸을 벌렁 누워버렸다.
금세 명식의 밤 얼굴이 떠올랐다. 제범 멋있게 손질된 장발 머리에 코수염을 의젓하게 달고 있는 명식의 얼굴은
이상스럽게 치근한 안정감을 얻고 있었다. 그것은 지연이 명식의 기벽을 처음 발견한 날 딱 한 번밖에 본 일이 없는
그러나 그녀로서도 이젠 퍽이나 익숙한 남편의 얼굴이었다.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남편 명식은 어렸을 적부터 소문난 천재였다. 그가 다닌 옛날 학교나 집안 사람들 사이에는 두루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그는 국민학교 5학년 때 검정시험을 거쳐 거뜬히 인류 중학교에 합격했을 만큼 머리가 총명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전국의 꼬마 문사들이 모인 경복궁 백일장에서
우리들의 손이라는 시를 써서 장원을 차지한 것은 물론 심사위원 일동을 깜짝 놀라게 했을 만큼 신통한 문제를 발휘했었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거쳐 S법대를 수석으로 합격했을 때는 고등고시쯤 따놓은 당상이라 여겨졌고
그는 과연 주위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대학 3학년 재학 중에 최연소 합격자라는 영광까지 덤으로 누리면서
법관회의 관문을 돌파해 보였다. 그러니까 중매가 들어왔을 때 지연은 부모들의 성화 등살에 차근차근 그를 재어볼 겨를조차 없었다.
그런 결혼을 지연은 후회한 일도 없었다. 한 쌍의 비둘기 같은 신혼생활은 소급장난처럼 정답고 오밀조밀했다.
군법무관 복무 3년을 끝내고 나자 그는 곧 현직을 택해나섰고 젊은 판사로서 그의 법관생활은 신념과 활기에 충만해 있었다.
적어도 지연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있었다. 한데 그 명식에게 뜻밖의 기벽 한 가지가 숨겨져 오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지연이 명식의 2층 방에 올라갔다가 어이없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명식은 그날 이상스럽게도 피곤해져서 조금은 신경질이 돋은 얼굴로 대문을 들어섰고 저녁을 끝내자 그는 곧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잠시 후 지연이 커피를 끓여 들고 2층으로 명식을 따라 올라갔다.
명식은 창문 옆 걸상의 길에 앉아 어둑어둑 어둠이 내리는 정원을 내다보면서 조용한 휴식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지연의 기척에 무심히 뒤를 돌아보던 명식의 얼굴을 보자 하마터면 지연은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창가에 앉아있던 명식의 얼굴은 전혀 딴 판으로 바뀌어 있었다.
손질이 되었다곤 하지만 더부룩한 장발머리에 코수염까지 수북한 그 얼굴은 명식이 아닌 전혀 다른 남자의 얼굴이었다.
지연이 놀라는 것을 보자 명식은 그제서야 자기의 변장이 생각난 듯 슬그머니 가발을 벗어버렸다.
코수염을 떼어내면서 그는 퍽이나 낭패스런 표정으로 멋쩍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명식의 변장은 그의 말처럼 그저 그런 단순한 장난만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명식이 출근을 하고 나자 지연은 이상스럽게 자꾸 마음이 쓰여 다시 명식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때 명식의 테이블 서랍 한 곳에서 언제부터 모아들이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몇 벌의 가발과 코수염을 찾아냈다.
안경과 모자들도 있었다. 모두가 변장 도구들이었다. 벽시계가 자정 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명식은 아직도 기척이 없다. 지연은 다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멍한 얼굴로 어둠 속을 응시하고 앉아 바깥 기척을 기다렸다. 이웃에서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명식이 전혀 딴 얼굴 모습으로 대문을 나서는 걸 보았노라고도 했고 어떤 남모를 산 애가 지연이네 대문 밖에서 머뭇머뭇 서성거리고 있는 걸 보았는데
나중에는 그가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대문 안으로 사라져 들어가는 걸 보고는 적잖이 수상적은 생각이 들었노라고도 했다.
명식이 변장을 하고 해귀한 바깥 나들이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지연은 명식의 거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명식은 과연 밤 외출이 늘고 있었다.
비로소 관심이 가기 시작한 일이지만 사무실에서 돌아오는 그의 얼굴은 딱할 정도로 피곤해 있곤 했다.
대문을 들어서는 그의 표정은 날개가 꺾인 새처럼 늘 힘이 없었고 의기소침해져 있기만 했다.
말수도 훨씬 적어진 듯 했고 영문모를 신경질 같은 것이 도다 있을 적도 있었다. 피곤한 귀가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명식은 저녁이 끝나면 늘 밤 외출을 서둘렀다. 언제 어떻게 대문을 나간지도 모르게 혼자 살짝 집을 빠져나가곤 했다.
2층 서재 쯤에서 피로를 풀고 있으려니 싶다 보면 어느새 정원의 외등이 꺼져 있곤 했다.
밤 외출을 나갈 때는 반드시 외등을 끄고 나서 현관을 나서는 버릇 역시 짐작이 가는 데가 있는 일이었다.
그의 변장은 그런 밤 외출 때문만도 아닌 듯 했다. 외출이 없는 날도 그는 저녁을 끝내자마자 곧장 2층으로 올라가 혼자 서재 속에 깊이 파묻혀 버리기 일수였다.
혼자 좀 조용히 쉬고 싶다는 게 그때마다의 변명이었다. 그러나 지연은 알고 있었다.
명식은 그렇게 서재 안에 파묻혀 있을 때도 가발을 쓰고 콧수염을 붙이고 그리고 어쩌면 그의 얼굴을 가장 잘 감춰줄 수 있는 안경까지 걸치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런 식으로 변장을 하고 그 자신이 가면 뒤에서 정말로 조용한 휴식을 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지연이 명식의 변장한 얼굴을 본 것은 앞서 말한대로 그의 기벽을 발견한 그 첫날 한 번뿐이었다.
그런데 그 첫번이 중요했다. 지연은 그 첫번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명식은 가면이 된 명식의 얼굴은 속속들이 스며든 피로를 한 오락이 한 오락이 씩 조심스럽게 씻어내면서 조용한 휴식에 젖어 있는 모습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지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피곤해져서 대문을 들어서는 명식의 얼굴 모습과
그 얼굴을 가면 뒤에 감춘 채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그날의 모습이 겹쳐 이상스러울 만큼 절실한 명식의 휴식과 위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의 휴식과 위안이기도 했다. 명식의 변장에서 지연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동정과 스스로의 감동 같은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지연은 명식을 방해하지 않았다. 회귀한 느낌은 어느새 말끔히 가셔져 나갔다. 오히려 그의 변장을 돕고 나섰다.
명식이 2층 서재로 들이닥치는 것을 절대 아는 채 하지 않았다. 밤 외출에 의 유혹을 느끼는 눈치가 보이면 외등을 끄고 자신의 침실로 숨어 들어가 버림으로써 은밀스럽게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러면 명식은 역락 없이 혼자 대문을 빠져나갔고 그 가면의 외출에서 그는 퇴근 때의 피곤기와 짜증스러운 신경질을 말끔히 씻고 돌아오곤 했다.
물론 지연은 밤 외출에서 돌아오는 명식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데도 배려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대문을 들어서는 그의 표정을 바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날 밤이면 거의 빠짐없이 어둠 속으로 2층 나무 계단을 내려와서 비로소 그녀를 발견한 듯 한껏 다가매지고 한껏 왕성한 잠자리를 갖게 되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명식의 밤 외출은 날이 갈수록 자자 같다. 2층 서재로 숨어 들어가 그의 가면 뒤에서 이상스러운 휴식에 젖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여 그는 사무실에서 묻어온 피곤기를 가면 뒤에서 말끔히 씻어낸 다음 지연을 찾아 밤늦은 2층 계단을 내려오곤 했다.
명식은 분명 그 가면 뒤에서라야 비로소 휴식을 얻을 수 있는 듯 했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 변신의 연극기 같은 데서 오는 그 가면 뒤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새삼스럽게 자기를 느끼는 시간이 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은 어쨌든 이제 지연이 명식을 속속들이 다 만나는 것은 그가 그 밤 외출에서 이상스러운 방법으로 피로를 씻고 새 힘을 얻어 돌아오는 날 뿐이었다.
이었고 지연에게도 한가지 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명식을 만나고 싶은 밤의 소망은 반드시 그의 가면을 연상시켜 주곤 했다.
지연은 명식의 가면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명식의 가면을 만나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명식의 가면이 어느새 그렇게 익숙하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있었고 어찌된 셈인지 그녀는 명식의 동기까지를 포함하여 그러는 자신을 스스로 수궁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명식에게서도 혹시 그런 기미가 엿보이고 있었기 때문일까? 지연은 이제 오히려 명식의 맨얼굴 쪽에서 어떤 불편스러운 가면이 느껴지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녀에게는 명식이 맨얼굴로 대문을 들었을 때의 표정이야말로 역락없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뻣뻣하고 변화없고 그리고 어떤 뻔뻔스러운 피곤기 같은 것이
그러나 지연은 그토록 익숙해진 명식의 가면을 아직도 똑똑히 본 일이 없었다.
그 첫날 한 번 밖에 명식이 자기의 가면 뒤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모습을 그것이 진짜 자기의 얼굴이나 되는 양 익숙해져 버린 가면으로 의기양양 밤 외출에서 돌아오곤 할 명식을 다시 본 일이 없었다.
지연은 보지 않아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그 명식의 얼굴을 자신 속에다 깊이 지녀버리고 말았다.
문득문득 그것을 만나고 싶은 밤이 많았다. 이날도 지연은 그런 명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문간에서 무슨 기척이 있었던 것 같았다. 지연은 자기도 모르게 소스라치며 어둠 속으로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12시 10분이었다. 대문 쪽에서 다시 기척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좀 더 세차게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분명 명식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지연은 서서히 가슴 속이 더워져 오는 것을 느끼면서 가만히 숨을 죽인 채 바깥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연은 대문이 열리고 명식이 정원을 지나 들어오는 것을 보지 않았다. 소리만 듣고 있었다.
명식은 절대로 초인종 단추를 누르지 않는다. 가만 가만 대문만 두들긴다. 처음엔 아주 들릴락 말락한 작은 소리로.
그러나 집안에서 반응이 없으면 조금씩 조금씩 큰 소리로. 기척을 알아차린 순인연이 재빨리 정원을 건너갔다 돌아오고
그러면 그는 느릿느릿 대문을 들어서서 자신이 문단속을 끝낸 다음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집안으로 스며들곤 한다.
이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술이 꽤 심했던 모양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명식의 발소리를 들으며 지연은 이불자락을 뒤집어썼다.
서서히 더워져오던 가슴 속의 열기가 아랫도리로 먼저 번져나는 모양이었다. 기분 좋은 마비 같은 것이 지나갔다.
정말이지 이날 저녁 명식의 밤 외출은 여간 오랜만의 일이 아니었다. 명식은 자기의 가면에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지연 자신이 더 명식의 가면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틀림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변장하지 않은 명식의 얼굴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보면 그것은 금세 알 수 있었다.
날마다 겹쳐 쌓인 피로감 같은 것은 이제 변장하지 않은 명식의 맨얼굴을 완전히 뒤덮어버려서
그것을 기묘하게 뻔뻔스럽고 그리고 어떤 스스럼이나 망설임 같은 것도 엿볼 수 없는 당당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지연은 그럴 때의 명식에게서 오히려 더 많은 가면을 느끼고 있었다. 명식은 새로운 가면을 만들고 있었다.
그 대신 그는 자기의 진짜 가면과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친해져 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연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지연은 명식이 2층 서재에 틀어박혀 비밀스런 휴식을 얻고 있을 때나 밤 외출을 즐기고 있을 때의 그의 얼굴,
아마 틀림없이 가발을 쓰고 코수염을 달고 있을 그 명식의 얼굴을 더 많이 그리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연은 그 명식의 변장한 얼굴에서 또다시 어떤 불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가발과 코수염이 어찌된 일인지 더 이상 명식에게 휴식을 보증하지 못하게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노릇인지 모르지만 명식은 자기의 가면 뒤에서도 다시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 기미였다.
그는 그 가면 뒤의 휴식이 끝나고 난 다음에도 피로의 기색은 가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더 깊어져 있을 적이 생기곤 했다.
사무실에서 돌아와 대문으로 들어설 때마다 역력히 읽을 수 있었던 그 옛날의 가엾은 피곤기와 씁쓸한 낭패감 같은 것을
이번에는 거꾸로 그의 가면 뒤의 휴식 끝에서 발견해낼 수 있었다.
그는 휴식의 시간을 통해 한껏 다감하고 은밀해지기는 하면서도 무엇인가 늘 못 견디게 불안해하고
그래서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맥없는 한숨을 토해내기도 했다.
밤 외출도 훨씬 횟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럴수록 명식의 맨 얼굴은 점점 더 당당하고 뻔뻔스러워져 가고 있었는데
그는 그 가면과 같은 뻔뻔스러운 피곤기를 얼굴에다 가득가득 뒤집어 쓰고 대문으로 들어섰다가도
저녁이 끝난 뒤의 그 밤 외출의 유혹만은 끊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조심스럽게 그것을 견디어버리는 때가 많았다.
지연 쪽에서 은근히 기회를 만들어 주어도 그는 두려워하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작 밤 외출이 이루어지는 것은 어쩌다 한 번씩 뿐이었고
대개는 2층 서재로나 파묻혀 들어가서 자자진듯 기척을 감추어버리기가 예사였다.
불 꺼진 2층 계단을 밟으며 지연을 찾아 내려오는 일도 그만큼 뜸해지고 있었다.
어쩌다 밤 외출이 있은날 밤도 명식은 옛날처럼 당당하지가 못했다.
그런 밤 후의 명식의 행동은 이상스럽게도 자학적이었고
터무니없이 지연에게 미안해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갑자기 자신의 감정이 휩쓸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할 때도 있었다.
명식의 변장이나 밤 외출은 이제 지연에게까지 어떤 적막감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까닥도 알 수 없으면서 무턱대고 명식이 측근했다.
그녀는 슬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슬픔을 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는 측근하고 슬픈 명식을, 그녀 자신도 측근한 슬픔 속에서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던 명식이 모처럼 만에 이날 밤 외출을 나갔다 온 것이다.
한데 어찌된 일인지 이날 따라 그는 또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없었다.
다른 날 같으면 어찌되었든 이때쯤은 이미 그녀의 방으로 스며들어와 있을 때였다.
한데도 그는 아직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지연은 조심스럽게 잠옷을 염이었다.
두근거림 비슷한 아랫도리의 기분 좋은 마비감이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잠자리의 자세를 보기 좋게 고쳐누웠다.
그러고서 다시 한참을 기다렸다.
역시 기척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 밤에도 또...
지연은 갑자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어떤 별난 밤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명식은 썩 오랜만에 밤 외출에서 돌아와
소리 없이 2층으로 올라간 다음이었다.
지연은 물론 그녀의 침대 속에서 명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계단을 내려오는 기척이 없었다.
지연은 불쑥 상설없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술이 너무 지나쳤나 싶기도 했고
그런 일은 워낙 처음이라
다른 무슨 변고가 생기지 않았나 싶어지기도 했다.
기다리다 못해 결국 자기가 먼저 침대를 내려오고 말았다.
여자가 먼저 남편을 찾는 것처럼 보이기가 여간 쑥스럽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는 명식을 살피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루에서 잠깐 발길을 망설이던 그녀는
가만 가만 2층 계단을 올라갔다.
지연이 명식의 방문 앞까지 다가갔을 때
방 안의 반응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딴판이었다.
좀 들어오지 그래?
기다리고 있기나 했었던 듯 문을 열기도 전에
명식의 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술이 취해 있기는 커녕 너무도 정연하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지연은 쑥스러움도 있고 끌리듯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명식은 불을 켜지 않은 채 창문 근처의 어둠 속에 조용히 파묻혀 있었다.
앉지 않고 어둠 속이라 모습은 잘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려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이렇게 지내다가 어떤 분명한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지연은 감히 명식의 곁으로 갈 수가 없었다.
공연이 그가 두려웠다.
변장을 하고 있을 그의 얼굴을 만나버리기가 두려웠다.
그녀는 명식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등 없는 둥글 의자 위로 몸을 주저앉혔다.
그러나 지연은 그러고 앉아서도 명식의 어떤 분명한 얼굴을 보고 있었다.
명식은 아직 변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잔잔했다.
어딘가 한숨 같은 것이 묻어있는 잔잔한 음성이었다.
지연은 명식의 그 음성으로 그가 지금 자기는 보지도 않고 창밖으로 시선을 내보낸 채
그녀로서는 도저히 알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어떤 깊은 절망에 젖고 있다는 것을 어슴풀에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불을 끄고 앉아있으니 밤이 좋군.
대낮은 얼굴이 너무 따가워서 누구나 결국은 그렇게 되는 거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얼굴 가득히 그 엄청난 대낮의 햇빛을 스스럼 없이 견뎌낼 수 있도록 잘 단련이 되고 있는 건 다행한 일이지.
하지만 그건 다행스럽다고만은 할 수 없다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의 가면을 튼튼하게 단련시켜가고 있거든.
눈물을 흘릴 수가 없어.
가면이 우는 걸 보았을까?
물론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가면의 눈물은 속으로만 흐르기 마련이거든.
명식은 역시 취기가 좀 숨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혼잣말처럼 띄엄띄엄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앞뒤가 닿는 소리만 추려보면 대강 그런 식이었다.
지연이 보아원 대로였다.
대낮을 다니는 맨얼굴에서 가면을 느끼는 대신
가발과 코수염으로 변장을 하고 있는 당장의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있는 김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명식은 그러한 변장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고뇌를 가장 정직하게 안을 수 있는 듯한 태도였다.
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앉아서
어둠에 쌓인 명식의 희미한 모습만 더듬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을 나오고 말았다.
처음 말대로 명식은 물론 지연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버린 다음에도
이날 밤만은 끝내 그 2층의 나무 계단을 밟지 않았다.
그런 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밤은 딱 그런 날 한 번뿐이었다.
밤 외출만 잊고 나면
그럭저럭 또 그 2층의 나무 계단을 내려오곤 하던 명식이다.
웬일일까?
명식은 여전히 기척이 없었다.
지연은 또 한 번 자리를 고쳐 누웠다.
그래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은 자세가 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버렸다.
웬일일까?
또 한 번 2층을 올라가 봐?
2층 쪽은 아직도 잠잠하기만 하다.
이젠 더 이상 명식이 그 나무 계단을 내려와 주기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지연 자신에게도 이미 의미가 없는 일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가을의 밤공기는 방 안까지 싸늘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얇은 잠옷 한 겹으로 감싼 그녀의 몸은 재빨리 식어갔다.
지연은 다만 명식의 동정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의 방을 올라가 보고 싶었다.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는 그의 어렴풋한 모습 앞에
다시 한 번 묵묵히 앉아있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지연 자신도 뒤죽박죽으로 구겨진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고 편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견딜 수 없도록 명식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그녀는 그리운 듯 눈을 감았다.
슬프도록 사랑스런 명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언젠가 꼭 한 번밖에 본 일이 없는
지연이 가지고 있는 명식의 얼굴은 그것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명식의 2층 방으로 올라가 그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을 때도
어둠 속에 떠오른 명식의 얼굴은 그 첫번 날의 장발과 콧수염의 윤곽이었다.
지연은 다시 눈을 떴다.
그러고는 천천히 유리창 쪽으로 다가갔다.
커튼을 들추고 뽀얗게 달빛이 내린 정원을 내다보았다.
어떻게 한다?
꿀물?
그러나 지연은 또다시 2층으로 그를 찾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번에도 보았지만 명식은 아무리 술이 취해도 취기에 눌린 일은 없었다.
언제나 거동이 말짱했다.
눈이 흐린 일도 없었다.
꿀물은 구실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계단을 올라다니는 일에는 전혀 습관이 되어있지 않았다.
지연은 망연스러운 기분으로 달빛에 젖은 정원을 내다보며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어디선가 창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역시 2층 창유리에 붙어서서 정원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소리가 난 것은 분명 2층 쪽인 것 같았다.
그렇군.
오늘은 달빛이 있으니까.
그녀는 달빛을 받아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낼 명식 앞에서는 몇 순간도 앉아 견딜 자신이 없었다.
2층을 올라가지 않은 건 역시 잘한 일 같았다.
동시에 그녀에겐 한 가지 기묘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지연은 귀청을 열게 하여 좀 더 2층 쪽을 살피고 있었다.
창문을 닫는 소리가 없었다.
집안은 다시 교교한 정막 속에 파묻혀버렸다.
그러자 지연은 천천히 털 스웨터를 찾아내어 잠옷 위에 걸친 다음 방문을 열었다.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이며 마루를 지나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소리가 나지 않게 현관문을 조금만 열고 정원으로 나섰다.
바깥은 밤공기가 좀 더 싸늘했다.
지연은 공연인 목구멍 안에서 콕콕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려는 웃음기를 눌러 참으며
벽 쪽으로 몸을 바싹 붙여댄 채 명식의 방 창문 아래까지 다가갔다.
그러고는 버릇처럼 두 팔로 젖가슴을 싸 안으며 고개를 비틀고는 2층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예상대로였다.
명식의 방 창문이 시커멓게 열려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명식의 상체가 유령처럼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그는 아직도 우쪼고리 밖엔 와이셔츠도 벗지 않고 있었다.
얼굴을 조금 높이 쳐들고 있었기 때문에 아래서는 확실치가 않았지만
그는 가발과 코수영을 떼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그런 얼굴로 마치 어린아이가 얼굴로 눈송이를 받고 있는 것처럼
이상스럽게 그리움 깃들인 모습으로 달빛 쏟아지는 하늘을 멀리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달빛이 따가워 얼굴을 찡그리고 싶으면서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견뎌보려고 무연스러운 모습을 가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또는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달빛을 향해 훌쩍 몸을 날려 하늘로 사라져 올라가버리고 싶어
안타깝게 발도둠을 하고 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그런 모습으로 아래쪽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지연의 존재는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한 채 언제까지나 하얗게 달빛을 받고 있었다.
지연은 그런 명식의 모습에 취해 한동안 넋을 잃은 채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마 명식도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면이 울고 있다. 가면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언젠가 명식은 가면이 우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은 일이 있었다.
그는 그때 지금하고는 정반대의 경우를 두고 한 말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때 가면의 눈물은 속으로만 흐르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라면 명식은 지금 가면을 쓰고 있지 않는 쪽이었다.
그러나 지연은 지금 그 명식이 명식의 가면이 울고 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 형용이었다.
명식의 가면이 울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지연 자신이 점점 더 견딜 수 없도록 눈물이 솟아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렇게 까닭없이 자꾸만 눈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몸이 떨리도록 무서운 외로움 같은 것이 그녀를 짓눌러오고 있었지만
지연은 그토록 갑자기 자신이 외로워져 버리고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침내 지연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횡몸을 돌이켰다.
그러고는 아직도 창가에서 움직일 줄 모르는 그 가면의 하얀 울음을 남겨둔 채 쫓겨들듯 집안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다.
잠이 깊었을 리도 없는데 이날 밤 지연이 그 가면의 추락음을 듣지 못한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지연의 방 유리창 아래쪽 정원에는 언제부터인지 명식의 몸뚱이가 싸늘하게 식어 누워 있었다.
그는 아직도 하얀 와이셔츠 바람인 채로 얼굴에서는 그 길다란 가발과 코수염을 떼지 않고 있었다.
달빛이 쏟아져 내리는 하늘로 치솟아 오르려다 거꾸로 추락을 하고 만 것일까.
가면은 정원석에 찍혀 두개골을 조금 상하고 있었다.
핏자국도 남기지 않았을 만큼 조그만 상처뿐이었다.
비교적 손질이 잘 되어있는 가발 머리털도 상처를 감추고 싶은 듯 흐트러진 데가 별로 없었다.
지연이 그 명식의 얼굴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보고 있었으나 그 자신이 말대로 거기에는 눈물 자국 같은 것도 없었다.
새벽역 달빛에 식힌 그의 하얀 얼굴은 다만 아직 아침을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처럼 가면 속에서 꿈꾸듯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이 소설을 읽고서 처음 저에게 든 생각은 어쩌면 나도 하나쯤은 가면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였습니다.
소설 속의 명식처럼 저도 가면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요.
네, 분명히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파피루스라는 가면이 하나 있고 또 평범해 보이는 사람으로서의 원래 얼굴이 있죠.
현실에선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하던 일들을 가면을 쓰고 나면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용기 있는 가면의 힘이 좋아서 습관적으로 사용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가면 속의 본체인 나와 가면을 쓴 나는 역할을 바꾸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면의 역설이면서 현실의 전환이죠. 나와 가면이 동일시 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런 가면 놀이는 너무 자주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가면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나의 진짜 현실은 무너질 위험을 감수해야만 되기 때문이죠.
그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 잘 아시죠?
거기서도 보면 보통된 평범한 인물인 지킬박사가 어느 순간에 자신의 내면 속에 숨어있는 악마적인 본성을 꺼내게 되는데
그것을 반복적으로 꺼내어 사용하게 되면서 나중엔 하이드가 오히려 지킬박사를 지배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지킬박사의 현실을 파멸로 이끌게 되었죠.
저는 오늘 가면의 꿈을 읽으면서 처음엔 지킬박사처럼 명식의 어떤 악마적인 본성이 나와서 무당탕하는 소란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수리를 기다리며 읽어 나갔거든요. 그런데 조금 실망스럽게도 그렇진 않았고
다만 우리 현실에서 우리 자신들도 가지고 있을지 모를 현실적인 나의 다른 모습에 대해 한 번쯤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똑똑하고 명석한 남자 명식. 판사로서 남편으로서 그에겐 아마도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인간적으로 기대되는 기대가 컸던 만큼 그 무게감 또한 비례해서 그를 짓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그 기대감에 치여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히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명식은 또 다른 자신을 하나 더 만든 것입니다.
그는 가면을 쓰고 밤 외출을 하면서 새로운 자기의 모습으로 원래의 자기에게 쌓여있던 찌꺼기와 부담을 털어버렸던 것인데
왜냐하면 가면을 쓰지 않은 맨얼굴이 가면을 쓴 것처럼 느껴지게 되고 가면을 쓴 얼굴이 본래의 모습처럼 역전되는 자신을 느끼면서 오히려 가면을 쓴 자신이 원래의 본체로 완전히 뒤바뀌길 바라는 소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 이상 이젠 어떤 결론을 내야 합니다. 가면을 쓰고 살 것인지 아니면 벗을 것인지.
그때 명식의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가면을 쓴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지 못할 바엔 차라리 과거의 본 모습을 죽임으로써 가면을 쓴 모습으로나마 꿈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죠.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고 보니 좀 스릴러 추리 소설처럼 보였는데요.
실은 그렇진 않구요. 그냥 한 사람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에 관한 이야기. 우리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의 가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어떠셨나요? 재미있으셨나요? 즐거운 시간이셨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청준 작가의 가면의 꿈이었습니다.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