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로 선택한 남자!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무엇일까 [미로] 오연수 #책읽어주는남자 #오디오북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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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어드릴 작품은 한국 현대소설 오연수 작가의 미로라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의 저자 오연수 작가는 문학세계 단편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고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에 당선되었으며 문예운동 시의 신인상을
수필시대 수필의 신인상을 수상한 작가로 현재는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계신 분입니다.
저소로는 장편소설 시간의 선택이 있습니다. 오늘 읽어드리는 미로는
2020년 한국소설에 발표한 단편소설로서 공장에 취업한 어떤 사람이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동료들과 거리를 두는 데 대한 궁금증을 시작으로
왜 그 사람이 그러는지를 주인공의 호기심으로 파헤쳐나가는 이야기인데요.
소설의 결말까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는 구성과 전개가 독자를 심심하지 않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그 사람의 사연을 한번 들어볼까요?
미로, 오연수, 언제나 외로워 보이는 나희조라는 사람에게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건
따지자면 작년 여름 그가 입사한 지 꼭 3개월째 되는 때였다. 해가 중천에 뜬 채로 여간해서 기울어질 것 같지 않던 산복 더위에도
그는 서늘한 느낌마저 줄 정도로 외로워 보였다. 지형지세가 수려하고 천해의 자원보고가 동향 최대 라고 입버릇처럼 내뱉는 공장장의
캉캉한 쇳소리를 시작으로 면접시험이 끝난 지 보름, 생산부 신입사원들이 부서별 현장 배치를 시키느라 지친 탓에
그새 흘린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공작과 작업장을 막 돌아 관리부 사무실 통로 입구에 발을 디디려는 찰나
나는 우뚝 멈춰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등 뒤 가까운 곳에서 공작과 서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오늘도 점심 거를 참여해요? 역시 나를 보고 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사원들의 후생 복리까지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직무상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었다. 사원들의 중식 문제는 후생 복리 업무 속에 포괄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식사에 질적이건 양적이건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해서 뜨끔했다.
나는 결제를 위한 식단표만 알고 있었지. 요즘 들어 정작 사원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인사 담당이란 근사해 보이는 직책 하나로 외출증 없이 정문을 빠져나가 300미터 밖의 한식집에서 점심을 들고 났던 것이다.
당연히 잘못하는 일이지만 중요하다면 꽤 중요한 한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나로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뜨끔할 수밖에 없었던 건 식중독 사건으로 학을 뗀 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편하고 영양가로는 으뜸일 것으로 여겼던 햄버거와 우유를 먹은 포장반 작업조 사원들의 피부에 두드러기가 돋았고
급기야는 발열까지 해 그로 인해서 김치 반찬의 도시락으로 불이 나게 메뉴를 바꿔놓은 터였다.
그러했으니 그 말을 들은 내 신경이 오직 곤두서리야.
그러나 그 생각도 잠깐이었다.
다른 사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왁자지껄 식당으로 향했는데 유독 나이조 그 사람만이 엉덩이를 자리에 붙인 채 꼼짝 안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내과 사원들의 사기양양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서음으로서는
외톨이처럼 남아있는 그를 보채서라도 식당으로 끌고 가려던 참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슬쩍 호기심이 통해서 그리로 다가갔다.
그러자 나를 발견한 나이조는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쟁걸음으로 작업 현장으로 나가버리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째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자리를 피해버렸던 것일까?
둘만의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고 있던 차에 내가 주책없이 끼어들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얼굴 알려질대로 알려진 한 과의 서무가 다른 장소도 아닌 바로 그 과의 생산라인에서 굳이 비밀스러운 얘기를 할 턱이 없었다.
정말 속 썩이는 사람이군.
평소에 발랄한 공작과 서무가 탄식조의 말과 함께 서둘러 나이조의 뒤를 쫓아나갔다.
나는 공연이 나무 일에 끼어드는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바로 생각을 고쳐먹고 서무를 불렀다.
서무는 나이조를 쫓아가다 말고 되돌아서 내게로 왔다.
그녀는 다소 피로해 보였다.
생산부 서무들의 업무가 얼마나 사람 지치게 하는 일인 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쉽게 그녀의 피곤한 모습을 읽어낼 수가 있었다.
나는 복도 구석에 붙어있는 자동 판매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그녀에게로 하나를 건네며 물어보았다.
나이조라는 친구, 어제도 점심을 걸은 모양이죠?
그녀는 의외로 거북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답해 주었다.
어제뿐만이 아니라 입사한 이래 줄곧 걸러왔어요.
300원밖에 안 하는 식권인데도 그는 이제껏 한 번도 구입을 신청한 적이 없어요.
처음엔 월급에서 식권대를 공지하는 것조차 아까워서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구판장에서 우유와 빵을 사다가 운동장 한 구석 베개에 혼자 앉아 식사를 대신하거든요.
식당 식사가 입맛에 안 맞아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남들은 다들 먹고 오는데 유독 혼자만 입맛에 안 맞을 수가 없잖아요.
그럼 다른 이유라도?
그냥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다른 과원들과 어울리길 싫어해요.
성격 탓인 것 같기도 하고.
그것 참 별난 성격도 다 있군.
서무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멋쩍게 쳐다보며 웃다가 헤어졌다.
나는 관리부 사무실로 돌아오며 한 가지 의문에 휩싸였다.
남들과 어울리길 싫어하는 성격이라면 동료들과 떨어져 밥을 먹으면 될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생각으로 해서 그 생각은 곧 정정되었다.
그는 남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 많은 곳에 끼어 있는 것조차 싫어하는 성격인 것 같았다.
인사과 자리의 주인들은 모두 식사를 하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대신 입사 동기인 박영수만이 내 옆자리에 앉아 신문을 이리 뒤적 저리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래서야 나는 아직까지 조관 신문을 보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뭐 특별한 기사라도 실렸나?
이 넓은 공간에 홀로 앉아 신문을 뒤적이고 있게.
이 끼어 있지?
자, 나가면서 얘기하자고.
식사?
자네 요사이 요압 뚝배기집에 자주 간다며?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야.
원래 정보통이지.
같이 가자고.
사실 나는 요사이 회사부근의 한 한식집에서 점심시간만 되면 윤이라는 여자와 만나 식사를 같이 해온 터였다.
윤이는 선을 봐서 알게 된 여자였다.
두 주일 전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만난 참한 교수였는데 서로가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그건 양쪽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쪽 집안에서는 한 사위 딸 둘 줘도 아깝지 않다는 굴지의 대그룹 회사의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다는 게 믿음직스러워 보였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런 것 없이도 그녀와 난 적극적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직장이 내 직장 바로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점심시간만 되면 하루라도 걸을 세라 꼬박 그 한식집으로 달려가 그녀와 만났던 것이다.
그 집에서 몇 번 직장의 중욕들과 마주친 적은 있으나 그게 박용수의 귀에까지 전해지기엔 어딘가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그 집 뚝배기 맛이 기막히긴 한데 오늘은 일이 있어서 가지 않을 작정이야.
나는 그렇게 대꾸해버렸다.
그러자 그는 금세 정색을 하며 내 옆으로 가까이 붙어왔다.
그럼 오늘 약속은 어쩔 셈이야?
약속은 무슨 약속?
난 다 알고 있다구.
윤희와 데이트하는 것 말이야.
그는 내가 모르는 채 시치미를 떼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나는 두 귀가 쫑긋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그가 무슨 수로 알고 있단 말인가.
놀랐지?
실은 윤희와 나는 이종사촌간이야.
말하자면 윤희는 내 이모의 딸인 셈이고 나한테는 사촌누이 동생인 셈이지.
나는 그제서야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말에 실감이 갔다.
며칠 전에 윤희와 만났다가 자네 얘기를 들었지.
오늘 내가 자네와 함께 나가겠다고 말해뒀어.
나는 단단한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띵한 기분이었다.
나이조라는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능청을 떨며 말했다.
그런 줄 알았다면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서도 만날 수 있었을 거 아냐.
그동안 내색 한 번 안타니.
그렇게 예쁜 누이 동생이 있으면서도.
하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잘 됐지 뭐야.
나도 잘 됐네.
마침 지금 윤희 직장이나 그 뚝배기 집으로 전화를 넣으려던 참이었거든.
그러니 내가 전화를 걸 필요도 없이 자네가 윤희를 만나서 내가 못 나가게 됐다고 전해주면 좋을 것 같아.
무슨 바쁜 일?
응 갑자기 일이 겹쳐버렸어.
오늘 저녁 약속은 틀림없다고 추가로 전해주고.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알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 들고 있던 신문을 내밀며.
이 신문들을 보게 사람이 수십 명이나 부상을 당했어.
학원 현관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자리에 앉아 디스를 한 대 빼어물었다.
나의 조의 인사기록 카드를 찾아볼 심상이었다.
내가 윤희와 약속을 어기면서 나의 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 것은
그가 나를 보자마자 피한 데 따른 궁금증 때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남다른 특이한 인상 때문이었다.
무엇인가 캥기는 듯 불안한 모습.
3개월 전 기능직 신입사원 입사교육 때
맨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똑바로 들지 않고
묵묵히 필기만 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가 바로 나의 조였다.
뿐인가 그는 오락시간에도 남들처럼 어울리질 못했다.
다른 신입사원들은 모처럼 만에 자기 세상 만났다는 듯이
장기자랑이다 뭐다 해서 서로들 앞에 나서려는데 비해
그는 그런 것에 전혀 재미를 못 붙이는 것 같았다.
그 시끌벅적한 시간에 그는 한동안 바깥에 나갔다 돌아온 걸로 나는 기억하고
따로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무엇인가 쫓기는 듯 불안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대하곤 하자
묘하게도 자석의 양극이 음극을 향하는 것처럼
그에게 관심이 확 쏠렸던 것이다.
나는 사람이 수십 명 부상당했어 라는 박형수의 말을 떠올리곤
나의 조의 인사 기록 카드를 찾는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신문을 펼쳤다.
지방지 조간신문의 일면 톱 기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설악산으로 수학여행 온 관광버스가 깎아지른 듯한 기암 절벽과 계곡 등의
자연경관에 도취한 나머지 도로 안전 가드레일을 부수고
계곡 아래로 굴러 타고 있던 학생 두 명이 중상을 입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기사를 훑어내려가다 한 가지 사실에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절경 계곡의 추락사고라서 희귀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사고버스의 운전사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것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 운전사는 간질병 환자였다는 것이었고
수사당국에서는 그런 자를 운전사로 채용한
XX관광운수 측의 책임자까지 묻는다는 기사 내용이었다.
그 운전사가 자기의 병을 감춘 것은 잘못이지만
그래도 부양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배운 것 하나뿐인 운전기술을 섞일 수 없어
운전을 했다고 생각하니 일면 동정이 가기도 했다.
나는 신문을 접어두고 금세 다 타버린 담배를 제떠리에 비벼 껐다.
나는 인사카드함으로 갔다.
공작과 기능직 사원처를 뒤져 나희조의 인사카드를 찾아냈다.
인사카드에 적힌 것으로 보아 그의 집안이 꽤나 가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선 망독자로서 병역을 면제받은 그는
예순이 넘은 호러머니와 누이동생 둘과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적혀져 있었다.
호러머니의 직업관에는 상업이라고 적혀져 있었는데
월 수입이 10만 원을 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가게를 둔 상업이 아님은 분명했다.
무슨 날품팔이나 노점상 정도로 추측이 가는 것이었다.
그의 두 여동생은 나이가 같은 것으로 보아 쌍둥이인 모양으로 둘 다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집은 작아였으나 부동산 액수는 몇백에 지나지 않았고 동산액은 숫자에 적혀 있지도 않았다.
부동산은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유일한 유산이 아닌가 싶었다.
그의 최종 학력은 기능직 사원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공업전문학교였다.
선반기능사 2급 자격을 딴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공작과에서도 선반공정을 맡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인사카드에서 그가 가족들을 먹여살려야 할 입장이라는 것 외엔 별다른 것을 얻어내지 못했다.
나는 꽤나 초췌한 그의 사진 속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곤 인사카드를 도로함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잘못하다간 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에게 한번 쏠린 관심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의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를 꼭 해내고 싶어졌다.
하기에 그러한 것들을 알아내고 원인을 밝혀서 사원들의 멤버십을 조정하는 것이 인사 담당 사원의 임무라면 임무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 요소가 내가 하는 일에 틀림없이 작용했겠지만
설사 그런 것을 떠나서라도 나는 그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그때의 내 심리는 그런 상태였다.
그런저런 생각에 몰입해 있을 때였다.
전화가 걸려왔다.
송수화기를 들자 저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윤희였다.
그녀의 용건은 박영수로부터 내가 못 나간다는 얘기를 잘 전해들었다는 것과
그날 저녁 약속을 조금 앞당기자는 것이었다.
마늘이라 생각했던 그녀의 업무로 해서 일부러 약속 시간을 늦게 잡았던 것인데
그 일이 실상 손붙이고 보니 쉽게 끝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가보니 그녀는 벌써 와있었다.
이런저런 객담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나는 불쑥 나희조의 얘기를 꺼냈다.
그녀라면 좋은 의견을 제시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친구야.
스스로 외톨이가 돼버리는 그에게 그의 인상이 착해보여서인지
나로선 막연한 동정이 가는 거야.
윤희는 처음엔 성격 탓이죠 뭐 하고 흥미없어 하다가
내 표정이 꽤나 진지해 보여서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곰곰 생각이 잠겼다.
내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윤희는 무엇 한가지를 떠올렸는지
나를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었고 입을 열었다.
병 때문이 아닐까요?
무슨 전염병 같은 병에 걸려있는데 입원비가 없어서
약이나 근근히 사먹는 처지인데다 건강을 위해 휴직하자니 생계가 문제고
결국 사람 착한 그는 타인들에게 전염시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닐까요?
그럴듯한 얘기였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그 그럴듯한 상상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잘라서 답변해 줄 수 있었다.
나희조만이 정말로 어떤 전염병에 걸려있다면
입사 당시 신체검사 때 당연히 드러났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신체검사에서 아무런 결격 사유 없이 합격했던 것이었다.
물론 이런 문제는 있을 것이다.
신체검사 비용 절감책으로 집단검진을 하는 경우에는
형광판에 보이는 폐의 투영상만을 축소촬영하는 보통 촬영법 대신에
폐결액 초기 증세라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간단한 신체검사에서 나타나지 않는 가벼운 증세의 병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웬만큼 손을 쓰면 고쳐질 수 있는 그런 가벼운 병 따위로 해서
그렇게까지 사람들과 어울리길 꺼릴리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무슨 전염병 환자일 것이라는 윤희의 추측은
일단 빗나간 것이 되고 말았다.
역시 성격 탓일까?
그런데 그것도 그랬다.
아무리 내성적이라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늘 혼자 있어야만 하는 걸까?
단순히 성격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무슨 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가 사람들과 어울리길 꺼려하고
늘 혼자 다니려는 데는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을 법했다.
윤희는 전체로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지 애꿎은 내 얼굴만 계속 쳐다보았다.
그러자 윤희와 달콤한 얘기를 한창 나눌 수 있을 판에
괜한 일로 속을 끓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솟구쳤다.
한 사원의 비정상적인 관외 처신 문제로 그렇게까지 장시간 숙고를 한 적이 나에게는 없었다.
더구나 회사 내에서 생겨난 문제를 밖으로까지 담아내와
아무런 상관없는 윤희까지 끌어들여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고 있으며랴.
내가 괜한 일로 시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불쑥 생겨난 회의를 못 이기고 이렇게 내뱉자.
윤희가 되려 정색을 하며 그 일에서 손대는 건 직무유기예요.
이번 일은 한 선방공의 개인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알면서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는 없는 경우라고 봐요.
인사 담당 사원의 입장이기에 더욱이나
제 말이 꼭 공갈처럼 되어버렸네요.
그녀는 밉지 않게 웃었다.
그녀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직무유기죄에 해당된 데서가 아니라
나이조의 문제를 수수방관한다는 것은
무슨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그랬다.
기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쯤에서 윤희와 나의 심사숙고는 끝났다.
역시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나이조의 행동거지를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윤희의 공갈 아닌 공갈에 영향을 받은 탓도 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나이조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내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그를 꽈내해서
더 나아가서는 사내에서 절대로 소외의 위치에 있지 않은
정상적인 일원으로 복귀시키고 싶었다.
그것은 나 개인에 대한 능력 테스트일 수도
인사 담당자로서의 자신감에 대한 확인 작업일 수도 있었는데 빚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나이조는 여전히 점심시간에 동료 과원들과 식사를 하러 가지 않았으며
나는 점심시간을 틈타 윤희와 버루처럼 만나던 일까지 미뤄가면서
그를 눈여겨보는 데 신경을 썼다.
그러던 중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그가 병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해준 두 가지 일이 생겼다.
그것은 지난번에 빗나간 생각이라 여겼던 윤희의 추측을
다시 되살려내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공산권과의 교역 확대로 가공 원자재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채석장 근로자 자체 채용을 영역 하청업체에서 급한대로 신체 검사를
뒤로 미루고 서류 심사와 면접 시험만을 거쳐
일단 현장에서 작업 배치시키는 편법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하니 당연히 나중에 신체 검사에 불합격된 사람을
도로 불러내오는 시기 되어버렸다.
고통스럽게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한창 바쁜 생산라인에
우선 부족한 인원을 채워놔야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폐결액이다.
고혈압이다.
신장에 이상이 있다 하는 사람들이 간혹 생겨났다.
100명의 하나꼴은 그랬다.
공작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체 검사 불합격을 통과하면 그 해당자들은 마치 천형이라도 당한
듯 울어버리곤 했다.
안됐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공작과에서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나는 자기 일이 아닌데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이좋이 얼굴을 발견하게 되곤 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원들은 잠자코 제 일에 열중하는 데 비해
그는 자꾸 신체 검사에 불합격돼 울고 서 있는 사람에게로 눈을 돌리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른 제자리로 얼굴을 돌려
일에 열중하는 척하곤 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은 뒤 꽤 지나서 전사원의 정기검진이 있었다.
입사한 지 6개월 이상 된 사람은 모두 해당되었으므로 나이좋 역시
검진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정기검진 당일에 나이좋은 별다른 이유 없이 결근을 한 것이다.
이제까지 결근이라고는 한 적이 없는 그였기에 정기검진 때문에
빠진 결계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정기검진은 입사시 신체검사와는 달리 병이란 병은 거의 다 체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냥 바라보고 추측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를 한 번쯤 만나
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모든 궁금증을 터놓고 물어버리라.
공작과 서무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총무가로 불렀다.
나는 뭔가 뒤가 캥기는 듯한 표정 으로 온 그를 우선 안심시킬 요량
으로 바쁜데 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네 형한테 술 한잔 사고 싶은데 어떻겠습니까 하고 의향을 띄었더니
그는 일순 경계의 빛을 띄며 술 못하는데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럼 저녁이라도 합시다 했더니 그는 공지에 몰린 표정이
되며 무슨 일로 하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지 않을까 싶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대로 나 형께서 문학의
일가견이 있으시다면서요 소문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문학을 좋아하는 편이 되나 서 고교때나 대학 시절엔 시 꽤나
끄적거렸댔죠.
한데 직장에 들어오고부터는 시간도 없는 데다 그런 대화 나눌 마땅한
법도 없고 하니 하고 둘러쳐버렸다.
언젠가 공작과 서무한테서 그가 사내 외진 장소에서 혼자 독서하는
일이 종종 있노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생각대로 그는 역시 말이 없었다.
식당에 들어와서부터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나는 문학이 어떻고 소설
이 어떻고 문학 동호회가 어떻고 떠버려대다가 나중에 안되겠다
싶어 잘 알지도 못하는 공작까지 끄집어냈으나 그는 단지 네 그렇죠
아니요 하는 짤막한 단정조의 말 외엔 정말이지 지독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 없었다.
게다가 모든 궁금증을 이런지하에 속시원히 툭 털어놓고 물어버리라
마음먹었던 애당초 나의 생각은 어디론가 쑥 달아나버리고 자꾸
다른 얘기만 나왔다.
나는 디스를 한 대 빼아물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의 침묵 후에야 비로소 화제를 의도했던 바대로
돌릴 수 있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더군요 예 이거야 나양한테 미안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지만 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는 없을까요
내 말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되자 그는 또다시 경계의 낯빛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오냐 죄다 털어놔주마 하는 식인지 별로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냥요 혹시 어디 몸이 안좋아서 그러는 건 아닙니까
아니요 계속 이런식으로 질문해서 안됐지만
일전에 있었던 정기검진때 결근 을 했더군요
저희 집안 얘기가 되어나서 아실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밑으로 중학교
에 다니는 여동생이 둘 있죠 그 애들이 그만 철닥선이 없게도
집안 어려운 꼴을 보고 학교를 그만두 겠다고 했던 겁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그래야 최소한의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하루 종일 타이르느라고 부득불
신체검사 때 불합격된 사람들한테 나양은 자꾸 신경을 쓰는 것 같던데
우리나라의 폐결액 환자가 79만명 이나 된다더군요
50명 중에 하나꼴이란 얘기를 신문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지요
잘은 모르지만 폐결액은 후진국형 질병이라더군요
실제 하층민들만 대상으로 조사 해본다면 감염자 확률은 엄청날
거에요 두 가정에서 한명
저희 가족 중에도 어머니가 그걸로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입장에선 자연 신경이 쏠리게 그가 후진국형이니 하층민이니
하는 말들을 쓰는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고
중상인 내 가정형편으론 아무래도 생소할 수 밖에 없는 가난이었지만
쉽사리 납득이 가는 얘기였다 이제 대체로 나양의 행동에 수궁이
가는군요 한데 점심시간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도통 다른 때도 예외는 아니지만 인사관리문제로 그러시는거죠
다 제 성격 탓입니다 한마디로 저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있을 법한데요 선천적
이라기엔 너무 그런거까지 말씀드려야 하나요
파기사 말씀 못 드릴 것도 없죠 그는 어떤 치욕스러움조차 감수
하려는 것 같았다 전 초등학교나 중학교때 늘 아이들로부터 구박
만 받는 처지였습니다 늘 누더기 옷만 입고 이발도 제대로
못하고 등교하는 가난에 찌든 나를 놀리고 비아냥거리던
놈들이 많았습니다 가난한게 죄였죠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전문학교에 들어가선 제 스스로 아이들을 피해버렸습니다
나는 사람들과 절대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2년 전 얘기지만 돌아가신 제 아버지는
사람들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6.25전쟁 때 육군대위로 참전했던 아버지는 사람이 싸우고 죽이는
일이 떠오를 때마다 온몸을 심하게 떨곤 하셨답니다
그러던 아버지가 어느 날 사람들 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나서 화병
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우리네 식구 에겐 집 하나만을 남겨준 채 세상을
떠나신 겁니다 사실 사람들에 대한 증오감은 그때부터
시작된건지도 그는 흥분에 북받쳐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나는 고개만 끄떡끄떡 할 뿐 무어라
말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 북받쳤다 그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한 상태
여서 나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참으로 딱하고 불행한 일이었다 쓸데없이 그에 대해서 빗나간 추측
만 거듭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하지만 세상엔 나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의 반이 악인이라면 나머지
반은 선인이라는 얘기가 아닙니까 나는 겨우 그렇게 말을 꺼냈다
그날 나는 그와 헤어질 때까지 내가 나 형의 좋은 친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말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내 말에 그는 부끄럼 타는 아이 마냥
씩 웃어보였다 해가 바뀜에 따라 자연히 바빠진
업무에 매달리느라 눈코 뜰 새 없을 즈음
그리고 나이조의 말을 믿기로 작정 함에 따라 자연히 나이조란 존재
에 대한 나의 특별한 관심이 차츰 차츰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갈 즈음
게다가 양쪽 집안의 성화로 해서 윤희와 나와의 결혼일자를 정하는
등 야단 법석을 떨고 난 직후 며칠간의 본사 출장을 다녀온 나는 회사에
출근해 보고서를 작성하다가 옆자리 의 미스김으로부터 인사 업무에
관련된 한가지 우울한 사실에 접하게 되었다 생산부의 한 남자 사원이
작업 도중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작 을 일으켜 그만 손가락을 기계에
혹시나 했는데 당사자는 다름아닌 공작과의 나이조였다 사고 당시
옆에서 작업중이던 동료 과원들의 말에 따르면 열심히 선반작업에
몰두해 있던 나이조가 갑자기 사지를 부르르 떨면서 발작을 일으키다가
그만 계속 작동중인 선반에 손가락 두개가 끼어 미처 손쓸 사위도 없이
잘려나갔다는 것이었다.
동료들은 그제서야 사고를 인지하고 선반기를 원위치로 고정시킨 뒤
그를 의무실로 옮겼다는 것이었다.
순간을 인지할 수 없는 발작이라면 혹시 간질병이 아닐까 나는 언젠가
신문에서 본 설악산 계곡의 수학여행 버스 추락사고 기사를 떠올렸다.
버스 운전사가 갑작스런 발작으로 핸들을 놓침 간질병 내가 왜 미쳐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남들과 어울리다가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면 곤란할
테니까 가급적 혼자 다니려는 그래 성격과는 무관한 나는 그런 생각들로
해서 몸을 떨면서 의무실로 달려갔다.
의무실엔 응급치료를 끝내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이조와 제약원장
간호원과 안전관리사원이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총무과의 안전관리 사원은 이런 경우는 처음 당해본다
사고자의 실수에 의한 것도 아닌 순간을 인지할 수 없는 격렬에 의한
사고였으니 애초에 그런 부서 그런 일을 담당한 게 잘못이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의 말은 인사 담당자의 책임이라는 것까지 암시하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습관적인 발작 증세가 있는 사원 이라면 선반 공정라인에 배치시키
지 말았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런 증세를 당사자가 고백 하지 않는 한 무슨 수로 사전에
알아낼 수 있으랴.
나는 한편 병에 대해선 이런 방구 없었던 그가 야속하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심지어 내가 무슨 병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달리 보자면 한 가정의 생계를 맡고 있는 사람이 그런 병이
있노라고 솔직히 고백하여 스스로 내몰릴 일도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회사 측에서야 정상을 참작 하여 전과를 시키는 등의 타당한
조처를 취하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야 다를 것이었다.
종합병원으로 가서 손가락 봉합 수술 을 받으면 원상태로 될 겁니다.
잘려진 손가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니.
하기에 수술비가 많이 들긴 하겠지만 제약원장의 말이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통해 모대학 부속병원에서 달이 봉합수술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었다.
의술의 놀라운 발전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나이조는 잠자코 하얀 시트 위에 누워있었다.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내가 그의 옆으로 다가서자 그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애원하듯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발작이 있어 왔습니다.
간질병입니다.
하지만 고질적인 게 아니라서 숨기고 지내왔던 겁니다.
어떻게 저는 계속 근무할 수 있는 거겠죠.
저희 식구의 생계가 저한테 달려 있습니다.
저는 배운 것이라곤 선반기술밖에 없어요.
나는 무어라고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알았더라면 모르되 사고가 난 후에 당사자를 다른 부서
로 전과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때가 늦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가 다시 한번 야속해졌다.
내가 물어봤을 때 숨기고 있을 게 아니라 속시원히 털어놓았더라면
지금 사정은 다를 것이다.
그때 제가 제 입으로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 직장을 쫓겨나게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말씀드린 말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저 정말입니다.
제발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저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하셨었죠.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거렸다.
그는 그런 식의 말들을 반복하며 울부짖듯이 애원하고 있었다.
의무실로 인사과장이 나를 찾는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희조에 관계된 일이로구나 생각하며 인사과로 돌아오니 예상했던 대로였다.
인사과장의 말인즉 나희조는 권고사직 해당자라는 것이었다.
나희조로서는 치욕스러운 일일 것이었다.
그런 인생에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될 권고사직.
그러나 치욕이며 오점이 무엇 그리 중요하랴.
역시 내 생각대로 간제병을 속이고 입사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만두되 치료비를 회사 측에서 한 푼도 보조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계에 이상이 생겨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전에도 가끔씩 있었던 발작증세를 숨기고 선반일을 본 것 자체가 순전히 당사자의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사과장에게 그 통고 좀 늦추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 손가락 봉합수술을 끝낸 후에 통고해도 늦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만두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인사과장은 나희조의 문제를 나에게 이림했다.
하지만 무슨 수가 있으랴.
나는 그런 의도에서 공작과 과장에게 수술이 끝난 후 퇴직원을 내주길 바란다는 뜻을 통고했으나 헛수고했다.
당사자가 문제였다.
아무리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다고 해도 퇴직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그에게 수술을 할 만한 여유가 있을 리 마모했다.
입사한 지 채 1년이 안 된 퇴직자에겐 퇴직금이 산출되지 않는 것으로 급여규정에 정해져 있었다.
그가 다음 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내 책상 위에 붕대 감지 않은 다른 한 손, 왼손이었다.
다른 한 손으로 들고 온 퇴직원을 말없이 내려놓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나는 왠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그에게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은 당혹감의 무게.
그가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만 같은.
그러다가 퇴직원을 내고 현관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내가 훔쳐보듯이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가 현관을 지나쳐 나가다가 무슨 미련이 남았음인지 갑자기 휙하고 관리부 쪽을 돌아본 것이었다.
그러니 자연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는 나를 원망하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희조이 거의 자포자기하는 듯한 모습으로 퇴직원을 내고 떠난 지 며칠 뒤였다.
그동안 총무과에서 인사과로 발령받아 전과해온 박영수가 처음으로 지대부 여사원 응시자들을 수련원 교육장에서 면접하고 돌아오면서
떫은 감이라도 씹은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 살다 보니 별일을 다 보겠어.
나는 그가 면접 때문에 나갔던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무슨 문제가 있는 응시자가 있었던 게로구나 짐작하며 그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14살밖에 안 먹은 애들이 어디서 남의 주민등록등본을 구해다간 나희를 속이고 응시한 거야.
주민등록등본엔 18로 되어 있는데 얼굴들이 너무나 앳돼 보이잖아.
그러길래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했더니 둘 다 가지고 있지 않더군.
모르고 안 가져왔다고 둘러치는 데는 정말 할 말이 없었어.
18살 아래로는 뽑지 않으니까 나희를 속이고 응시한 거야.
나는 그동안 보조직 여사원 면접을 해오면서 그런 일 따윈 종종 있던 터였기 때문에 별다른 대꾸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런데 그가 나가고 나서 조금 뒤의 일이었다.
언뜻 보기엔 초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것으로 여겨질 만큼 앳돼 보이는 소녀 둘이 나를 찾아왔다.
내게로 허겁지겁 다가와 울음 베인 목소리로 일방적인 호소를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이성주 아저씨 맞죠?
우리 오빠가 그랬어요.
아저씨를 찾아가 보라고요.
꼭 합격시켜 줄 거라고요.
그런데도 면접 보는 아저씨는 우리가 어리다고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도 일 잘할 수 있단 말이에요.
우린 돈을 벌어야 한단 말이에요.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처음엔 그 애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도통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우선 그 애들을 달래놓고 물었다.
너희들 오빠가 누군데?
그 애들은 스스럼 없이 말했다.
나희조예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 애들은 바로 중학교에 다닌다는 나희조의 두 쌍둥이 여동생이었던 것이다.
오빠가 불상사를 당하고 나자
어린 여동생들이 갸락하게도 돈을 벌겠다고 발벗고 나서기를 작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찔해진 정신을 가다듬고서
그 애들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오빠는 회사를 그만둬서 당분간 돈을 벌 수 없게 됐지만
어머니가 계시니 너희들은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알겠니?
그러나 내 말은 그들에게 먹혀들어갈 수가 없는 빚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엄마는 오빠가 회사 그만두고부터 화병으로 누워만 계신단 말이에요.
벌써 며칠째 엄마는 장사도 못 나가시고
오빠는 구석방에 처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매일매일 울고 있어요.
어제 엄마가 그랬어요.
집을 팔아야겠다고.
하여간 우린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해요.
우리 일 잘할 수 있단 말이에요.
합격만 시켜주면 딴 언니들보다 두 배, 세 배 열심히 일할게요.
약속할 수 있어요, 아저씨.
나는 그 애들의 극한 상태의 말을 듣곤
지극히 형식적인 물음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 학교는?
이 마당에 학교가 다 뭐예요?
벌써 안 나간 지 며칠 됐어요.
친구들 보고 싶지 않니?
돈을 벌어야지 친구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울먹거리며 말하던 그 애들은 급기야, 흑! 하고
동시에 울음보를 터뜨렸다.
옆자리의 미스 김이 듣기 싫었던지
그 애들의 등을 떠밀어 문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떠밀려가지 않으려는 그 애들의 몸부림 하나하나에
나이조이 격련하는 모습이 산산조각나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들으셨나요?
나이조와 그의 가족들의 상황이 참 딱하죠.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젊은이가
자신이 가진 병을 숨기고 취직한 직장에서
혹여나 병을 들켜서 잘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사람들을 일부러 멀리하는 것이었군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이조의 입장이 10분 이해도 되면서
화자의 말처럼 왜 그때 털어놓을 수 있을 때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나 하는 원망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 다 말하고 도움을 구했다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짠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두 여동생의 애절한 모습들도 안 봐도 되었을 텐데요.
바라건대 나이조가 빨리 건강히 회복되어
다시 그의 가족들의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오현수 작가의 미로를 읽어드렸습니다.
저는 다음 이 시간에 또 다시 뵙기로 하고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뵐 때까지 행복하세요.
하루가 또 저물어 가네
그대는 잘 지냈나요
오늘도 힘들진 않았나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지친 마음 숨기는 그대를
괜찮다고 웃어 보이지만
나는 다 알 수 있어요
오늘 하루도 잘 지냈나요
힘들었던 순간들은 없었나요
그대의 하루 끝에서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해요
따뜻한 잔잔처럼
그대 곁에 머물게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내일도 함께 할게요
그대는 잘하고 있어요
그대로 괜찮아요
그대는 잘하고 있어요
이대로 충분해요
작은 일에도 웃었나요
누군가에게 위로 받았나요
혼자였던 시간들도
그대는 잘 견뎌내죠
완벽하지 않아도 돼요
그대로의 모습이 좋아요
힘들 땐 기대도 돼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
하루도 잘 지냈나요
힘들었던 순간들은 없었나요
그대의 하루 끝에서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해요
따뜻한 잔잔처럼
그대 곁에 머물게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내일도 함께 할게요
그대는 잘하고 있어요
그대로 괜찮아요
그대는 잘하고 있어요
이대로 충분해요
매일이 특별하진 않아도
그대가 숨쉬는 하루하루가
내겐 소중해요
그대가 여기 있어
감사해요
또 잘 지냈나요
힘들었던 순간들은 없었나요
그대의 하루 끝에서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해요
따뜻한 잔잔처럼
그대 곁에 머물게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내일도 함께 할게요
그대는 잘하고 있어요
그대로 괜찮아요
그대는 잘하고 있어요
이대로 충분해요
매일이 특별하진 않아도
그대가 숨쉬는 하루하루가
내겐 소중해요
그대가 여기 있어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