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오늘은 견원
지간이 적대적 공생관계 중국 인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중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뭔가요 아마 전 세계인
대다수가 어마어마한 인구수를 중국의
대표적 특징으로 꼽을 듯합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 이후 중국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인구 1위
국가로 군림해 왔기 때문이죠 요즘은
다른 안 좋은 이미지도 많은 듯하지만
뭐 어쨌든 중국은 유의 인구 통계국이
1950년부터 인구정보 수 집을
시작한 이래로 계속해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기준 중국의 인구수는
약 14억 217만 명으로 짓게 되고
있는데 겨우 5천만 명이 넘는
한국으로서는 사실 제대로 상상조차
되지 않을만큼 현실감이 없는 규모이자
그런데 2023년 중국의 인구수를
뛰어넘는 국가가 등장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바로 인도 이죠 현재
인도의 공식 인구수는 14억
41710으로 중국보다 약 2천만 명
정도 많습니다 사실 인도가 중국
중국의 인구수를 뛰어넘을 거란 사실은
꽤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왔죠 중국이
무려 5세기부터 2023년 초반까지
약 1500년 동안 국권 인구수 1위
국가 타이틀을 지키는 동안 인도는
꾸준 2위였는데 인도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중국은 몇
년 전부터 출생 화수가 감소하고 인구
증가세가 둔화되는 등 인구 감소
징후가 나타났으니까 그런데 중국과
인도 두 국가는 단순히 인구 대국이라
타이틀로만 비교하기엔 생각보다 역사적
문화적 경제적 지정학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하게 얽힌 관계입니다 양국은
아시아의 강대국으로서 오랫동안 서로를
견제하는 동시에 필요에 따라 긴밀이
협력하는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를
지속해 왔죠 중국과 인도는 모두
아시아 주요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다
넓은 땅과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수를
가진 것은 물론 심지어 국경까지 맞다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위협적이라
느끼면서도 서로를 무시하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외부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문제가 국경이 여러분도
한번쯤 뉴스에서 보셨을 겁니다 중국과
인도는 희망 야 산맥을 따라 약
3488 km 달하는 긴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데 제대로 경계가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지리적
특성상 강이나 호수 눈사태 등으로
인해 국경선이 언제든 옮겨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죠 때문에 양국간의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중국은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아루나찰
프라데시주 전체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며 남 티베트가 부르는데 당연히
인도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인도는 현재 중국이 시료 지배하는
히말라야 악사이 친 구원의 유권을
주장하고 있죠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이 심화된 것은 1962년부터
있데 양국이 정확한 국경선에 합의하지
못해 지속적인 분쟁이 유발되다 보니
1996년부터는 중국과 인도가 시료
지배하는 지역의 경계선인 실지
통제선을 설정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실지 통제선을 따라 여러 지점에서
양국 군인들이 서로 마주보며 경계를
서고 있다 보니 여전히 간헐적으로
충돌이 발생하고 있죠 그 중에서도
결정적으로 양국관계 악영향을 끼치게
된 아니 현재까지 경향을 끼치고 있는
충돌은 불과 4년 전인 2020년
6월에 발생했습니다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던 건 둘의 싸움 방식이었죠
주먹으로 격투를 하거나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들고 싸웠거든요 중국
군인들은 언월도를 들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웃긴
해프닝처럼 느껴지지만 사망자까지
발생했죠 심지어 중국과 인도 모두
핵보유국이 때문에 어쩌면 이번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왔습니다 애초에 2020년의 국경
분쟁은 단순히 갑작스러 충돌이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된 국경 문제와 지역
패권에 둘러싼 경쟁의 결과였으며
2020년 6월 국경 충돌 이후
인도는 320개의 중국 앱을 금지하고
중국 기업에 대한 세무 조사를
실시하는 등 경제 제재를 가했습니다
중국 역시 이에 대응하여 인도산
제품에 대한 수익 규제를 강화하고
인도 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죠 여기까지만
살펴본다면 중국과 인도의 관계는 답도
없는 견원 지간으로 보이지만 둘의
관계는 2분법적인 시각으로 간단히 볼
문제는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중국과
인도가 여러 문제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죠 중국과 인도는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우선 중인 관계의
역사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사실 중국과
인도가 처음부터 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좀 많이 뒤로가 보면 중국과
인도의 문화 및 경제적 교류는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인 고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실크로드를 통해
활발하게 교육했던 두 국가는 단순히
상품 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와
사상도 나누었죠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 발언한 불교가 한나라 명제
시대에 중국으로 전파되기도 했고요
많은 중국 승려들이 인도를 방문하여
불교 경전을 가져오는가 하며 인도
승려들 역시 중국을 방문하여 불교를
전파하고 또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불교는 양국간의 중요한
문화적 연결 고리가 되었습니다 이후
수천년 동안 비교적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던 중국과 인도 사이에 긴장감이
생긴 것은 20세기 중반부터 이죠
19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 지배로
인해 인도의 대회 정책과 무역이
영국의 통제를 받게 되면서 정확히는
영국 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도와
중국 간의 직접적인 교류를 제안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과거보다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죠 애초에 관계가
멀어졌는데 싸울 이유도 없으니까요
19세기 후반에 러시아는 부동항
확보와 영향력 확대를 위해 남아
정책을 추진했는데 당시 인도를 식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의 남아를
큰 위협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1880년대부터 영국은 러시아의
남아를 막아 인도를 보호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티베트를 포함한 히말라야
지역을 사용하려 했죠 인도를 보호한다
그 감싸 주는 것 같은데 자기
식민지를 위협하지 못하도록이
맞겠습니다 문제는 당시 청나라가
티베트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청나라는 일찍이
1720년에 티베트에서 몽골 세력을
몰아내고 티베트 전역을 장악했는데이는
티베트가 청나라가 몽골과 신장 등
내륙 아시아 지역을 통지하는데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나라는 티베트를 티베트
기족과 승려 계층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치했습니다뿐 실지 적인 통제력과
영향력은 다소 약해져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남아 정책과 영국의 대응으로
인해 티베트가 국제적 관심사로
부상하면서 청나라의 명목상 지배권도
위협받게 되었습니다 티베트를
완충지대로 삼고자 했던 영국이
1904년에 티베트 원정으로 티베트
성도인 라사를 점령하는 등 외세가
개입하자 티베트 지배층은 첫날에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 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했거든요 1911년 신의
혁명으로 청나라가 붕괴되자 티베트는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했고 그 결과
1913년부터 1914년까지 영국과
중국 티베트는 티베트의 지위와 국경
문제를 다루는 심라 협약을 논의하게
됩니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티베트를
외부 티베트와 내부 티베트로 나눠서
외부 티베트는 중국의 종주권 하에
있지만 자치권을 인정해 주고 내부
티베트는 중국의 직접 통치하에 두는
것이었죠이 협약을 논의하는 동안 영국
측은 인도와 티베트 사이의 국경 선인
이른바 맥마 라인을 설정합니다 당시
해당 국경선을 주도했던 영국 측
외교관의 이름이 헨리 맥마흔이 있기
때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죠
하지만 중국은 애초에 심라 협약도
영국에 의한 불평등 조약으로 간주했기
맥마 라인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인도는 맥마흔 라인이 자국의 유리한
국경 선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국경
선이라 주장했고 이때부터 국경에 대한
의견은 일치하지 않았지만 중국과
인도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죠 오히려
1947년이 되어 자와 할날 네루가
인도의 총리가 되면서 인도는 중국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 내루
총리는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이 에서 벗어나 냉전으로 터
해방되고 더나아가 인도와 중국이 손을
잡고 아시아를 지배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는데이를
실현시키려면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했기에 중국 국민당 정권과
우호관계를 수립했고 1949년에는
공산당이 국민당을 밀어내고 중화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자 내루 총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중국 공산당을
승인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티베트의 독립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양국 사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하죠
종합하자면 영국이 개입한 심라 협약과
맥마흔 라인이 티베트의 독립 문제가
터지면서 분쟁이 씨앗이 된 겁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중화인민 공화국이
수립된 뒤 티베트를 일시적으로
해방시켰다 ka 이듬의 10월 군대를
몰고 티베트에 진입하여 다시 티베트를
점령하였습니다 1951년 5월에는
중국이 티베트 정부에게 무력을 사용해
티베트 평화 해방을 위한 17개조
협정까지 체결했이 17개조 협정에서
중국은 티베의 자치권을 약속했지만
당연히 약속은 허울에 불과했고 중국은
점진적으로 로 티베트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티베트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간섭이 나날이 증가하자 티베트
내부에서는 자연스레 중국 공산당에
대한 반감이 심화되었고 1956년부터
동부 티베트에서 반중국 봉기가
시작되었죠 1959년 3월 10일
라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본기가
일어났는데 중국군은 발빠르게 라사를
장악하여이 본기를 진압했습니다 약
2,000명의 티베트 반군이 사망하고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와 그의 추종자들
약 80명이 라사를 떠나 인도로
망명하여죠 이때부터 중국과 인도의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의
총리 네루가 티베트 반군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달라이라마를 포함해
약 8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거나
중국은 인도가 티베트 문제에
개입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실이
가정 동안 내루 총리는 중국과 갈등을
빚지 않기 위해 매우 노력했습니다
1954년 4월 인도는 중국령
티베트와 인도 사이의 무역 교류협정
체결에 동의하여 사실상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임을 인정하는가 하며 같은
해 4월에는 르가드 존슨 경계선이라는
국경선을 수정하여 악사이친 지역의
일부를 중국에 양보하였다 경계선
이북에 있었던 통신 설비까지 무상으로
중국측에 양도할만큼 큰 호위를
보였죠이 무렵 인도와 중국 사이에는
평화공존 원칙까지 체결되었고이 밖에도
인도는 매년 중국이 UN 회원국이 될
수 있도록 결의안을 상정하고 한국
전쟁 때도 중국의 입장을 변호하고
대만의 중국 반환을 주장하는 등
중국과 우호관계를 쌓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죠
그런데 중국의 생각 은 달랐습니다
당시 중국은 내루 총리가 영국에서
교육받은 인물인데다 인도 독립 후에도
영연방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보며 못마땅하게 여겼죠
반 제국주의 노선을 걷는 중국의 눈에
내려는 서구 제국주의 영양 아래 있는
인물로 보였거든요 또 냉전식이 어느
강대국 블록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인도의 외교 원칙 비동맹 정책 역시
중국의 눈에는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
즉 중국에게도 호이만 보일뿐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죠
이런 와중에 인도 정부가 달라이
라마의 망명을 받아주자 중국은 인도를
제거할 대상으로 여기며 인도와의 국경
서부 지역인 악사이 치의
1,200km 동부 지역인 아루나찰
프라데시 48,000 제곱 km
중국의 영토라고 선언해 버립니다
그리고 이때 보다 명확하게 맥만
라인을 부정하면서 인도와 중국 사이에
국경이 설정된 적도 없는 것처럼
말이죠 이건 생각보다 큰 도발입니다
국경이 설정된 적 없다는 곧 국경
분쟁 전쟁을 할 각오까지 하겠다는
말이거든요 두 국가의 영토 분쟁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순전히 힘의
논리가 되고요 양국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던 무렵인 1960년 4월 저원
라의 중국 총리는 인도를 방문하여
수십년째 이어져도 국경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수차례
외교 문서를 교환했으며 합의점을 찾지
못하죠 이때 내루 총리는 자국 영토를
침범하는 중국에 대응하고자 전진
정책을 채택하게 됩니다 전진 정책을
통해 인도는 중국이 점령한 용토의
인도군 초소를 설치합니다 내로는
중국이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 예상치
못했고 그냥 영토만 지키겠다는
생각이었죠 중국군의 군사적 능력을
과소 평가하기도 했고요 1962년
10월 20일 중국은 선점 포고 없이
인도를 침공하였고 동시 다발적으로
시작된 중공군의 공격에 인도군은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이
전쟁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는
중국과 인도 둘 다 이미지상 실시했기
때문이죠 전쟁 결과 인도는 비동맹
운동 국제 조직에서의 지도력
약화되었고 외교 정책 또한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아시아 지배를 꿈꿨던
네루의 이상주의적 외교 정책에서
현실주의적 외교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었죠 국경선 문제 역시 중국이
주장하는 실지 통제선을 받아들여야
했고요 가장 큰 변화는 인도가 중국을
대하는 자세 즉 중국을 군사적인
적으로 재정의 하게 되었다는 점이죠
시간이 흘러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면서 국제정세는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중국은 이미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 중이었고 인도 역시
1991년부터 경제 자유와 정책을
시작하면서 경제 발전을 위해 외국
투자 무역 확대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어도 중국과 인도는
서로에게 매력적인 아니 필수적인 경제
파트너였 국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이 수월할 뿐더러 비용도 적게
들고 양국 모두 중산층이 성장
중인데다 인구가 많아 시장의 규모도
엄청났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제 협력을
통해 그동안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 또한 밑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1991년부터 관계 개선을 시작하여
1993년에 국경 평화유지 협정을
체결하고 1996년에는 신뢰구축 조치
협정을 체결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는 양국과 무역량이 급증하기
시작했죠 2000년에는 양국 교육
얘기 30억 달러를 달성하고
2008년부터는 중국이 인도의 최대
교육 파트너로 부상하면서
2021년에는 양국 교육 얘기
127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정상 회담 및
고위급 방문이 증가하고 브릭스 상하
협력기구 등 다작한 협력체 공동
참여하는 등 정치 외교관계 또한
안정적인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국경
분쟁이 해결된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둘의 덩치가 더 커지면 커질수록 국경
분쟁은 더 치열해졌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악사이 친 지역에서
중국군과 인도군이 대치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2017년에도 도클 랑군
대치 사건 2020년에는 앞서 말했듯
중인 관계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친
가랑 계국 사건이 발생했죠 인도에서
중국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었고
인도 정부는 중국 제품 수비에 대한
무역 장벽을 높였습니다 중국 앱을
금지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전 수
조사를 시행하는 등 경제적 제제도
시행했고 애초의 인도는 오랜 기간
동안 대중국 무역에서 심각한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참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으려고 노력했죠 중국은
세계 무역 기구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이 이상 서로
간의 직접적인 보복 조치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말하는 것만 보면
다신 너희와 그 어떤 교류도 하지
않을 거야 같은 느낌이었지만 딱이
정도였죠 중국과 인도 모두 경제적
이익 때문에 서로의 시장을 포기하 긴
어렵기 때문이죠 전문가들도 중국과
인도의 완전한 단절 디커플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망했고 실제로
2024년 7월 중국과 인도는 매무
장관 회담을 통해 양국간 국경 분쟁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조속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즉 앞으로 양국 관계는
지금처럼 불편한 동거가 될 가능성이
높죠 분쟁은 여전히 존재하고 서로에
대해 인식은 좋지 못하지만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경쟁과 경제적 협력이
균형을 모색하며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네요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따르면 2075년 세계 3대
경제 대국은 중국과 미국 인도입니다
물론 예측은 예측일 뿐이지만 미래
인도의 위상은 지금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아질리는 없죠 미국은 벌써 인도의
CEO 카르텔 이야기가 나온지 오래
되었고요 둘의 관계는 성장은 갈등은
아시아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현재 중국은
수출해 무시할 수 없는 가장 큰
손님이고 미래를 성 장을 생각하면
인도와의 관계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겠죠 적대적 공생관계 중국 인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 이번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