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과 조제핀은 어떻게 만났을까? 나폴레옹의 역사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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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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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역사적
인물들 중에서 철혈 군주 독재자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인물 1위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바로 나폴레옹
있니다 전쟁론의 저술한 클라우제
비치는 나폴레옹을 전쟁의 신이라고
한단어 표현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아주
상반되고 각양각색의 평가를 받는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그만큼 역사의
거인이라는 뜻인데 정말 나폴레옹의
생애는 극적이기 그저 없었습니다 역서
도포기 인물전 나폴레옹에 대해 파헤쳐
보겠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69년
그때는 프랑스 령이었던 이탈리아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령이라 나폴레옹의 국적은
프랑스이민 나폴레옹은 자기 고향이
프랑스 본토 출신이 아니라는 이후로
고향 이야기하는 거를 꺼려했다고 하죠
나폴레옹은 8남매 중에서 둘째였던
태어나기 전에 코르시카 섬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중 하나였던
제노바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코르시카 3의 현지인들은 군대를
만들어 독립전쟁을 펼치고 있었는데
나폴레옹의 아빠 카를로 보나파르트가
독립군 게릴라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직전에 코르시카 섬의
영유권이 프랑스로 넘어갔던 거죠
나폴레옹의 부모님은 코르시카
파견되었던 프랑스 총독 드 마르베스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요 드 마르베스
총독은 특히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시아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어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냐는 추문이 돌기도 했죠
나폴레옹의 부모는 드 마르베스 총독과
인연을 이용해 나폴레옹을 가난한 귀족
자제들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던
브리엔 왕립 군사 교에 입학
시켰습니다 이곳에서 나폴레옹은
코르시카 억양 때문에 따돌림을 많이
당했다고 하는데 수하에 타고난 재능을
보여서 선생들이 그를 8리 육군 서관
학교 포병대 입학시켰다 그러나 아버지
카를로 보나파르트가 위암으로 죽고 드
마르베스 총독도 더 이상 보나파르트
가문에 후원을 해 주지 않자 코르시카
있던 가족들은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학비를 마련할 여건이 안
된 보나파르트는 1785년 입학한지
11개월 만에 조기 졸려 버렸고
곧바로 포병 장교 시험에 응시에
가까스로 합격했죠 임관 후 얼마 가는
별다른 군사적들이 투입되지 않아 그
지루한 시간에는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소문난 독서 왕이었는데
특히 고대 그리스와 고대로마의 그
숱한 영웅들을 다룬 역사책을
[음악]
좋아했다죠 이후 나폴레옹은 파리로
발령 받았는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졌습니다 나폴레옹은이
대혼란을 피해 파리를 떠나 고향
코르시카 돌아왔습니다 나폴레옹은
고향에서 자경단을 조직해 코르시카의
치한 담당을 자처했는데 이때 코르시카
있던 자코뱅 파와 어울려 다녔습니다
자코뱅 파는 혁명 강경 파드를
말합니다 고향 코르시카의 나폴레옹이
흠모하던 파스칼의 파울리 아고
있었습니다 파울리는 과거 나폴레옹의
아버지와 함께 코르시카 독립 전쟁을
이끌었던 독립군의 리더였는데 어
파울리의 혁명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했던 터라 나폴레옹과
사이가 틀어집니다 나폴레옹의 집을
불태우는 등 가족에 대한 파울리의
박해가 심해지자 나폴레옹은 가족들을
데리고 프랑스 본토 남부에 마르세유로
이사했어 한편 프랑스 대혁명은 유럽
타 국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민중이 들고 일어나
국가를 전복하고 국왕을 처형하다
유럽의 타 국가 지배층들의 혹시나
프랑스 대학명이 자국의 민족들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며 프랑스
혁명 정부 자체를 부정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네덜란드 스페인 등이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고 1793년 터 프랑스를
공격해 왔습니다 나폴레옹이 있던
마르세 툴롱의 영국 스페인 연합군이
들어와 툴롱은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마침 그곳에 있던
나폴레옹을 포병 장교로 임명했던
툴롱은 시찰하던 혁명 정부의 파견
의원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툴롱은
포기하려고 하자 나폴레옹은 같은 고향
출신의 의원이었던 살리 체트 통해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포병대의 활약으로 영국
스페인 군을 무찌릅니다 이때
나폴레옹이 정부에 이렇게 보고했던
저는 눈부신 승리를 약속했고
보시다시피 약속을 지켰습니다 툴롱의
승리한 후 나폴레옹은 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툴롱 전투의 활약상도 있
고 프랑스 남부지방 대표 의원이었던
오기 탱이이 나폴레옹이 썼다는 자고
파를 찬양하는 정치판 플랫 보케르
식사를 입고는이 나폴레온 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이 오기 스팅이 누구냐
다름 아닌 프랑스 대혁명의 제도자
로비스 피에르의 친동생이 었죠
코르시카 출신으로 연줄이 없던
나폴레옹은 이렇게 해서 프랑스 최고
지도자의 동생을 후견인으로 두었습니다
하지만 오기은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 사건으로 형 로비스 페르와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당했습니다 테르미도르
반동이 이란 급진 강경파 자코뱅
파였던 로비스 피르의 공포 정치에
환멸을 느낀 온건파 지롱드 파가
일으킨 반란이었다 백판의 줄줄이
제거되었고 혁명 정부는 지롱드 파의
폴 바라스 주도하였고 당연히
나폴레옹도 그동안 오기 스텐과 어울려
지냈다는 이후로 체포되었고 단두대의
목이 잘릴 날만 기다려야 했던
나폴레옹은 다행히도 동향 의원이었던
살리 체트 도움으로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1795년 나폴레옹은
파리에서 왕당 파들이 일으킨 반란
방데미에르 13일 사건 진압 작전에
배치됐습니다 입 나폴레옹은 시민군을
한대 모은 뒤 포도탄 퍼보 학살해
버렸죠 그리고 진압 직전에 성공한
공로로 폴 바라스 총회를 받으며
나폴레옹은 다시 혁명 정보의 중심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역시 거대한
역사적 인물들은 어느 정도 위기와
함께 운도 따라 줘야 하는 법인가
[음악]
봅니다 원래 나폴레옹은 형수의
여동생과 결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라스 덕분에 파리 사교계의 인맥을
쌓아가던 나폴레옹이 바르스 내연력
조제핀 만나게 되었는데 조제핀
나폴레옹보다 여섯 살 연상에 심지어
애도 있었지만 나폴레옹이이 조제핀게
흠뻑 빠져버린 겁니다 조제핀 본명은
마리 조제프 로즈입니다 분홍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집안이 쫄딱 망한 뒤로는 가족과 함께
거지 생활을 전전하다가 고모의 중자로
프랑스 귀족 집안의 막내아들
알렉산드르 보아르네 혼인 냈죠
알렉산드르 보아르네 아내 조제핀
두고도 사창가를 들락 거였으면 조제핀
또한 군인이나 귀족과 바람을 필
정도로 부부 금슬이 좋지 못했습니다
남편 알렉산드르 혁명정부 강경파
간부들에게 미운털이 박혀 감옥에
체포되었을 때 조제핀 투옥되었고
그녀는 남편과 같이 처형 판결을
받았으나 남편만 죽고 그녀는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강경파들이 내
쫓기면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뒤 조제프 절친 테레사
탈리 아을 따라 사교계를 돌아다니면서
바라스 만났고 그덕에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죠 그러던 중 나폴레옹과
맞는 조세핀은 젊고 유능하고 총방
받는 길이나 나폴레옹에게 투자하기로
했던 거죠 둘은 5개월간 밤마다 매일
만나 사랑을 나누었죠이 나폴레옹의
팬지를 보면 가관인데 매일 아침 당신
생각을 하면 눈을 뜨 지난밤에
황홀했던 기억에 나의 모든 감각에
숨을 쉬지 못하고 있어 그대에게
천번의 키스를 보내오 그렇지만 내게는
키스를 보내지 마시오 대신에 내 피를
불사르겠다 나폴레옹은 야쿠니 파운
하고 1796년 조제핀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이 조제핀 암내가 엄청
심했다고 하는데 나폴레옹은 조재 팬에
뭐가
[음악]
좋았을까요 새롭게 혁명정부를 끈
바라스 1796년 이탈리아 원정을
결정하고 그 사령관으로 당시 26살의
나폴리을 임명했습니다 이탈리아 원정의
목표는 첫째 대프랑스 동맹 중
하나였던 오스트리아를 내쫓고 둘째
이탈리아로부터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었죠 나폴레옹의 회고록에 의하면
당시 이탈리아 원정에 투입된 프랑스
군인들은 급료도 못 받고 군화도 없을
정도로이 프랑스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렸다고 하네요 1796년 4월
나폴레옹은 체바 몬도 피 먼트를
차례대로 점령하고 오스트리아군을
추격하면서 5월에는 밀라노에
입성했습니다 밀라노 입성 전에 7는
로이강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꼬마
하사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프랑스군이 로디 강의 교량이 포진해
있었는데 오스트리아군이 교량에 집중한
사이이 나폴레옹이 사전에 보내 둔
프랑스 기병대가 적의 측면을 기습했다
겁니다 적군의 시선을 정면에 돌려놓고
기병대가 적진의 측면을 기습하는
작전이이 나폴레옹의 주특기 전술입니다
밀라노를 점령한 후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들을 남을게 없을
때까지 탈탈 약탈 했다죠 1796년
4월부터 7월까지 프랑스에 보낸
금액이 무려 6천만 프랑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본국으로부터
미술품 감정사들이 초빙해 밀라노의
수준 높은 미술품들도 본국에
보냈습니다 나폴레옹은 1796년 8월
카스틸리오네 전투 9월 바사노 전투
11월 아르콜 다리 전투 그리고
이듬의 1월 리블리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이기고 2월에는 만토바
점령했습니다 물론 승리를 쉽게 치한
건 아니었습니다 특히 아르콜 다리
전투는 정말 아찔했는데 아르콜 다리
위 군대 맨 앞에서 프랑스 국기를
휘두르던 나폴레옹 바로 앞에 포탄이
떨어졌고 부하 장교들이 졸도한
나폴레옹을 데리고 나오자이를 보고
자극을 받은 프랑스 병사들이
오스트리아 군에게 돌격해 이틀 만에
다리를 점령했다는 이야기가이 나폴레옹
본인의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베네치아까지 진군한 후
이탈리아 북부를 가로지르며 오스트리아
본토까지 진입했습니다 오스트리아로
진입하자 오스트리아의 카릴 대공이
휴전을 제안하면서 나폴레옹의 1차
이탈리아 원정은 끝이납니다 1797년
10월 캄포포르미오 조약을 책을 해
이탈리아 북부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분할하기로 했죠 나폴레옹의 1차
이탈리아 원정으로 무려 16만 명의
포로와 2천 대가 넘는 대포를
노력했습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에서
이학 데스타 발돋음 했죠 원전 기간
나폴레옹을 가장 괴롭혔던 건 싸움이
아니라 조제핀이었습니다 전쟁 중
나폴레옹은 수도 없이 조제핀게 편지를
보냈지만 그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고
히려 나이 어린 귀족과 바람을 피고
있었죠 나폴레옹은 본국의 바라스게
편지를 써서 지금 조제핀이 아픈 거
같다고 원정을 중단하겠다고 하자 깜짝
놀란 바라스 조제핀 나폴레옹 있는
이탈리아로 강제로 보내 버렸습니다
조제핀 나폴레옹이 만토바 점령을
목전에 둘 무렵 심지어 내연남을
데리고 도착해 억지로 나폴레옹과 남은
이탈리아 원정을 함께했죠 오스트리아를
해결한 프랑스는 이제 영국을
상대하기로 했는데 영국과 전면전을
버리기보다는 영국의 주요 시장이었던
인도를 점령해 영국의 의 인도 시장을
마비시킬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형병 정부에 인도로 가려면
그전에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지역이
있다고이 지역을 먼저 공격하자고
제한했습니다 바로 이집트 있죠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2부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역사
도박이었다 2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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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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