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랑선교회 대표 김한식 목사 소천] 고 김한식 목사를 기억하는 방식

[한사랑선교회 대표 김한식 목사 소천] 고 김한식 목사를 기억하는 방식

231 비디오 조회수·2024. 6. 21.  #김한식목사 #김한식목사소천 #한사랑선교회

2024년 6월 18일 소천한 한사랑선교회 대표 김한식 목사의 부음기사를 찾기 위해 네이버 등을 검색했지만 어떤 기사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네이버 등에 검색되지 않는 한 교계신문에 짧게 부음 기사가 났고 기독 일간지에 광고로 부음과 장례절차 등을 고지하는 내용이 나오긴 했지만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기록문화연구소는 김한식 목사는 한국 기독교계가 외면하기에는 아쉬운, 아니 한국 교회가 기억해야 할 기독교 지도자라고 생각하기에 간단하게나마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김 목사는 3년 전 발병한 췌장암에 따른 합병증으로 투병하다 결국 패혈증으로 지난 18일 오후 5시에 별세했습니다. 향년 77세. 췌장암이 5개 장기에 전이되었고 마지막 5일 정도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예배드리며 이생에서의 최후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박주선 사모는 남편이 밝은 모습으로 이 땅을 떠나셨다고 전했습니다.
고 김한식 목사는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서울대 학생회 부회장이 되어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운동권 학생 리더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국대학생선교회 대표 김준곤 목사를 찾아갔는데 그 때 “김군, 김군에게는 책임이 없소?”라는 김준곤 목사의 말이 레마로 다가와 깊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 마치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거꾸러진 것 같이 김 목사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유신 정권 타도를 인생 목표로 삼았던 청년 김한식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에 붙들려 이후 평생 복음 운동에 생을 바쳤습니다.
김 목사는 1971년 10월 17일에 한사랑선교회를 창립했습니다, 한사랑선교회는 빛(light) 생명(life), 사랑(Love) 등 3L을 모토로 생명의 빛 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주의 선교단체입니다. 김 목사와 한사랑선교회는 하나님 사랑을 통한 나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1983년 장충체육관을 시작으로 마스바 대각성 성회를 계속 개최하며 우리 민족의 회개와 사랑을 촉구했습니다. 그의 나라 사랑은 남한에만 국한되지 않고, 북한 동포를 위해 국수공장을 운영하고 주체사상의 허구성을 알리는데 진력했습니다. 이밖에도 구국순례대행진, 6.25시절 음식 먹기 국민운동, 주한미군철수 반대 서명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한사랑선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순수한 복음의 회복을 외치며 80년대 말과 90년대에 많은 성장을 하며 한국 교회 부흥에 기여했습니다.
김한식 목사는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군소후보로서 득표율도 극히 미미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정치영역으로 확대하려는 그의 마음 속 깊은 열망은 일반 사회는 물론 교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를 기점으로 한사랑선교회 활동도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김 목사가 끝까지 순수 복음 운동을 견지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복음 운동과 사회 운동, 나라 사랑 운동은 결코 이분법적으로 나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지만은요.
저는 김 목사가 한국교회에 기여한 가장 큰 부분으로 이스라엘 회복 운동을 한사랑선교회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점을 꼽고 싶습니다. 김 목사는 마음 깊이 하나님의 눈동자인 이스라엘을 사랑했습니다. 아직 한국교회에 이스라엘의 믿는 유대인인 메시아닉 주에 대한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던 1990년부터 김 목사와 한사랑선교회는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회복 운동을 펼쳤습니다. 1990년대에 마이클 브라운, 댄 저스터, 가이 코헨, 아셰르 인트레이터 등 이스라엘 사역자들을 초청해 이스라엘 회복 집회를 가졌습니다. 김 목사는 이스라엘 티쿤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을 정도로 이스라엘 사랑에 진심이었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에 이스라엘 사역이 눈에 띄게 활발하게 전개된 밑바탕에는 김한식 목사와 한사랑선교회의 헌신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이스라엘 회복 사역을 펼치는 분들 중 많은 이들이 한사랑선교회 소속이었거나 과거 한사랑 선교회의 이스라엘 집회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이스라엘 사역자들은 한사랑선교회를 창립하고 이스라엘을 사랑한 김한식 목사에게 빚을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한사랑선교회 총무로 김한식 목사와 함께 사역한 김영대 목사(헐몬산교회 담임)는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 북한 영혼 사랑, 이스라엘 사랑이야말로 김 목사가 남긴 가장 큰 발자취라며 이 사랑의 정신을 후대에도 계속 이어가게 하는 것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인간을 평가할 때, 우리는 포괄적인 측면에서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면 빛과 그림자가 분명히 나눠집니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그가 평생 추구했던 점, 견지했던 방향 등을 생각할 때, 부분적인 그림자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분명 부분적으로 김한식 목사에게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 이스라엘 사랑이라는 포괄적 측면에서 볼 때, 부분적인 아쉬운 점까지도 사랑을 실천하려는 몸부림이었다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분명 김한식 목사는 한국교회 부흥의 시대의 걸출한 영적 리더로서 복음으로 사회를 변혁하려는 기독교 운동가였으며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복음의 로맨티스트였다고 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김한식 목사는 부고 기사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이 땅을 떠났지만 그를 맞이하는 천국에서는 성대한 잔치가 벌어질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 김한식 목사를 기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기록으로 남깁니다. [기록문화연구소 소장 이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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